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즐겁고 기쁜 날 (시 118:14~24)

  • 잡초 잡초
  • 298
  • 0

첨부 1


- 설교: 강석공 목사 I 2005년3월27일 설교 
 
  우리 주님이 무덤을 박차고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아침입니다. 주님은 부활을 믿고 기뻐하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새 생명을 주셔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그 약속을 확증하는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군대에서 경험한 일입니다. 별이 세 개인 사령관이 움직일 것 같으면 별도 따라서 움직입니다. 사령관이 탄 차의 속은 들여다 볼 수 없지만 번호판에 별이 붙어 있으면 사령관이 차에 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령부 건물 앞에 사령관 깃발이 깃대에 걸려서 펄럭이고 있으면 사령관이 건물 안에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사람들입니까? 여러 가지 설명이 있을 수 있지만 부활하신 주님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 증거, 또는 표시가 무엇입니까? 저는 그 증거가 바로 기쁨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기쁨이 깃발처럼 펄럭이면서 우리 안에 부활 생명이 있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믿은 옛 성도들은 항상 놀라운 기쁨을 체험했습니다. 옛 성도들은 왜 그토록 기뻐했을까요? 그리고 오늘 왜 우리도 기뻐해야 할까요? 오늘 봉독한 본문 말씀을 통해서 그 해답을 찾도록 하겠습니다.

  첫째,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능력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크고 놀라운 능력으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사실 부활 주일은 오늘 하루지만 부활의 절기는 오늘 하루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절기는 부활 주일 새벽부터 오순절 성령 강림 주일까지 50일 동안 계속됩니다. 7주를 보내고 주일까지 50일, 이 50일 동안의 부활 절기를 “기쁨의 50일”이라고도 사람들은 불렀습니다. 니케아 종교 회의는 이 절기에 무릎을 꿇는 것도 금지할 정도로 부활의 기쁨을 강조했습니다. 능력으로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 하면서 어떻게 슬퍼할 수 있겠습니까? 이 부활 절기는 오직 기쁨이 넘치는 시기라는 사실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둘째,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찬송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또한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기쁨의 50일은 사순절 40일보다 더 길지 않습니까? 그 힘들었던 고난의 날보다 더 긴 기쁨의 날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기쁨은 고난을 뚫고 이긴 다음에 나타나는 감격스러운 사건입니다. 이 감격은 지난 날의 모든 슬픔을 잊고도 남을 만큼 위대하기 때문에 저절로 찬송이 터져나오게 마련입니다. 오늘 우리는 영원한 새 집을 얻게 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부러워할 까닭이 결코 없습니다. 우리가 바로 기쁨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고난의 시간을 다 덮을 만큼 영광의 시간은 길고 또 깁니다. 이 새 집으로 들어가면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찬송입니다. 찬송을 받으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영원한 찬송 제목이 되신다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기억해 합니다.

  셋째, 시인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또한 기뻐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오시기 훨씬 전에 기록되었지만 이미 주님의 부활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 주고 있었습니다. 주님의 부활은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함축적인 말로 지시되는 사건입니다. 버린 돌, 즉 십자가에서 죽으신 주님이 다시 살아나셔서 장차 부활할 성도들로 이루어질 교회의 머릿돌이 되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렇습니다!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된 성도들이 겉으로 나타낼 증거와 표시는 기쁨입니다. 직장사역연구소 소장으로 잘 알려진 방선기 목사가 경험한 사건이 있어서 간략하게 그의 글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어느 날 지금까지 만났던 기사들과는 아주 다른 기사 한 분을 만났습니다. 이 분은 나를 태우고 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내게 어느 길로 가는 것이 좋겠느냐고 물었습니다. 나도 가끔 어느 쪽으로 갈까 망설이던 지점인데 그런 질문을 받으니까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한참 가다가 비슷한 지점에 왔는데 또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내 의견을 먼저 묻는 것을 보고 “왜 손님한테 가는 길을 일일이 묻느냐?”고 물었더니, 손님마다 자기가 익숙한 길이 있는데 그 길로 가 드리는 것이 손님에게 좋은 일이고 그렇게 하면 혹시 길이 막히더라도 자신도 마음에 부담이 덜어지니까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맞는 말이지만 다른 기사들과 너무 다른 것 같아서 그 분에게 흥미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그 분을 시험해볼 양으로 요즈음 경기가 어떻냐고 물어보았습니다. 다른 기사들처럼 그에게서 투덜거리는 반응이 나오지 않을까 짐작했는데 웬걸 그는 의외의 대답을 했습니다. “경기라는 것이 각자가 하기 나름이에요. 집에서 놀면 경기가 안좋고, 이렇게 열심이 달리면 경기가 좋아집니다. 저는 경기 좋습니다.” 멋진 대답이기는 하지만 예상치 못한 대답이어서 조금은 놀랐습니다.

  이 때 차 안의 라디오 소리가 들렸는데 극동방송이었습니다. 그는 계속해서 말하기를 이렇게 좋은 찬송 들으면서 운전을 하다가 때때로 전도도 할 수 있으니 운전하며 사는 것이 좋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한 번 더 그 분을 시험할 양으로 “운전하다 보면 짜증나는 일이 많지요?”하고 물었습니다. 그는 물론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목적지에 도착해서 돈 없다는 사람도 있고 차를 세우고 만원어치만 태워 달라는 사람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태워주는데 그런 경우 만원이 나오는 지점에서 메타를 꺾는다고 하며 어차피 그 돈으로 목적지까지 태워 주기로 했는데 계속해서 메타의 숫자가 올라가면 그 사람에게 부담만 주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문득 영화 같은데서나 볼 수 있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개인 택시도 아닌 회사 택시를 운전하는 기사에게서 이런 모습을 보고는 정말 기분이 좋았습니다. 같은 성도의 한 사람으로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기사들이 있다면 택시를 타는 손님들에게 복음의 영향력이 엄청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택시에서 내릴 때 당연히 메타 요금 외에 보너스를 얹어서 지불했습니다. 그 날 나는 세상의 택시를 탄 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택시를 탄 것 같았습니다.

  바로 그 택시 기사야 말로 부활의 주님을 그의 마음 속에 온전히 모시고 다니는 것 같지 않습니까? 능력의 주님, 찬송의 주님, 그리고 구원의 주님이 그의 삶을 온전히 주장하고 계시는 것 같지 않습니까? 영혼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모든 택시 승객들에게 잘 보여 주고 있는 그 택시 기사야 말로 우리 모두가 본 받아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활 절기, 기쁨의 50일은 고난의 시간들보다 더 길고 어떤 능력보다 더 크고 어떤 노래보다도 더 위대한 구원의 찬송이 계속되는 기간입니다. 이토록 크고 놀라운 기쁨이 부활의 선물로 우리에게 내려옵니다. 때문에 이제부터 우리의 입에서 할렐루야가 끊이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여호와를 찬양하라!” 이보다 더 큰 기쁨의 소리가 이 세상 어디에 또 있겠습니까? 날마다의 삶의 현장에서 기쁘고 즐겁게 부활의 주님을 전하는 증인으로서 충성을 다함으로써 마침내 그 부활에 동참하는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