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부활주일] 감람산의 선언 (행 1:1~11)

  • 잡초 잡초
  • 342
  • 0

첨부 1


- 설교 : 고신일 목사

6    저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 묻자와 가로되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7  가라사대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의 알바 아니요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9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10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 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11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사도행전 1장 6~11절) 

<목회기도>

할렐루야!
부활의 기쁨과 영생의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찬양대의 힘찬 찬양으로 영광 받으심을 믿고 감사드립니다.
오늘 우리가 예배를 드립니다.
하나님, 이 세상 100년도 안 되는 삶을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의 '끝' 이 아님을 선언해 주신 것 감사합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으로 그것을 증명해 주셨음에 감사 드립니다.
누구든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낭패와 실망 당한 이…, 절망과 좌절의 늪에서 헤매는 이…,
소망 없다며 절망하는 이…, 사랑 없다며 탄식하는 모든 이들에게…
소망의 아침을 맞게 하심을 감사 드립니다.
캄캄한 어둠, 막힌 돌문… 같은 절망들도 소망으로 변화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셔서 승리의 간증을 하며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기쁜 부활절 예배에… 군대에 나가 있음으로, 객지에, 외국에 나가 있음으로
병상에 누워 있음으로, 낙심하여 여기 나오지 못한 이들에게도 은혜 허락하셔서
저들도 우리와 함께 있는 이 복된 자리의 주인공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부족한 종 말씀 전할 때 성령께서 함께 하실 줄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부활절을 맞은 모든 성도들에게
승리의 기쁨과 영생의 소망으로 평안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부활절만 되면 늘 부르며, 꼭 부르고 싶은 찬송이 있습니다.
찬송가 151장 <다시 사신 구세주>라는 곡은
설교 전에 부르면 우리의 부활 신앙을 고백하는 것 같아 좋고…
세상 조롱에 답하는 것 같아 좋고…
제가 전할 메시지를 곡에 실어 미리 전하는 것 같아 좋습니다.
 
♬ 찬송가 151장 "다시 사신 구세주"  1절 함께 부르겠습니다.
"다시 사신 구세주 나항상 섬기네 / 온 세상 조롱해도 주 정녕 사셨네
그 은혜로운 손 길 부드러운 음성 / 내평생 주님 앞에 늘 계시네
예수 예수 늘 살아계셔서 / 주 동행하여 주시며 늘 말씀하시네
예수 예수 내구세주 예수 / 내 맘에 살아 계시네 늘 살아계시네
 
설교는 옛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이 아닙니다.
도덕 강의를 듣는 시간도 아닙니다.
이스라엘 역사나 유대인의 삶을 공부하는 시간도 아닙니다.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代言) 하는 시간이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마틴 루터(Martin Luther)는
"설교가 성경을 말하고 있는 한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 마틴 루터 - 라고 했고
존 칼빈(John Calvin)은 
"설교가 성경을 설교하고 있는 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가진다는 것은
명백한 것이다" - 존 칼빈 - 라고 했습니다.
이 시간 전하는 설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설교를 통해
내게 무엇을 말씀하시려는가'하는 자세로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여러분 각자에게 필요한 은혜의 말씀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예수님이 세상에 오셔서 많은 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음을 선언하셨고(막1:14~15, 눅17:20~21).
예수님은 귀신을 내어쫓는 것은 물론 많은 이적들을 행하셨고
당시 보통 사람들이 상대하기 싫어하던 죄인들까지도 가깝게 대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참으로 오실 구원자 메시야인가',
'혹시 그분일까'하고 예수님을 바라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갈수록 보통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들을
계속 행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기대가 더욱더 커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작은 나귀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실 때
사람들은 흥분하기 시작했습니다. 
옷을 벗어 길에 깔고,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영웅에게 흔들던
종려나무가지를 길에 깔고 흔들며,
"우리를 구원하소서", "호산나"하며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이 갑자기 죄인으로 전락하여
가장 참혹한 형벌인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말았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예수님의 추종자들이 얼마나 허탈했겠습니까?
제자들은 예수님 때문에 고향도 버리고,
하던 일도 팽개치고 예수님만 따라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믿고 따르던 예수님이…  처형당했으니 얼마나 황당했겠습니까?
같은 무리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체포되면 처벌될 것이 뻔했습니다.
 
그런데… 사흘만에 죽음에서 살아나셨습니다. 할렐루야!
이 또한 얼마나 기막힌 일이었겠습니까?
죽음을 확인하고 무덤에 장사까지 지냈는데…
부활하여 사람들에게 보이시는 예수님을 보고 얼마나 소동이 컸겠습니까?
사람들은 쉽게 믿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기독교 신앙의 초석이요 핵심입니다.
예수님이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죽음에 얽매여 사는 인류에게 부활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15:20) 했습니다.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모든 성도들도 부활하게 될 것을 보증해 주는
첫 사건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고전15:13)
고 선언했습니다.
 
승리의 날
 
부활절은 온 세상의 크리스챤들이 지키는 기쁨과 감격의 날로, '승리의 날'입니다.
신약 성경 260장 가운데 100여 번 기록된 부활은 기독교의 중심이 되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만일 부활이 없다면 기독교의 모든 신앙의 터전이나 사도들의 메시지,
성경말씀, 찬양대의 찬양, 설교… 이 모든 것이 다 필요 없습니다. 다~ 거짓말입니다.
왜냐하면 기독교의 진리는 '부활'이라는 터전 위에 세워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분명히 선언하셨고, 증명해 보이셨고, 성경에 기록해 놓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에는 우리의 '몸'도 부활할 것을 선언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죽어 누우셨던 곳은 빈 무덤으로 남아 있습니다.
(마28:6, 막16:6, 눅24:3, 요20:1~7, 11~15)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의 누우셨던 곳을 보라"(마28:6)
"청년이 이르되 `놀라지 말라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나사렛 예수를 찾는구나
그가 살아나셨고 여기 계시지 아니하니라 보라 그를 두었던 곳이니라"(막16:6)
 
부활하신 예수님은 '살'과 '뼈'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유령으로 나타난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과 함께 생선도 잡수셨습니다(눅24:39~43).
누가복음 24장 39절에 보면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또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이 말씀을 하시고 손과 발을 보이시나
  저희가 너무 기쁘므로 오히려 믿지 못하고 기이히 여길 때에 이르시되
  `여기 무슨 먹을 것이 있느냐?' 하시니
  이에 구운 생선 한 토막을 드리매 받으사 그 앞에서 잡수시더라" (눅24:39~43)
 
물론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부활하시기 전의 몸과 완전히 동일하지는 않았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문이 잠겨 있는 곳에도 그냥 들어가셨고(요20:19,26).
아무런 기구도 없이 하늘로 올라 가셨습니다(행1:9).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은 공간의 제한을 받지 않으셨고
자연법칙(중력 법칙)의 지배를 받지도 않으셨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일이 비과학적이고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은 정말 무식한 사람들입니다.
아인슈타인은 4차원 혹은 그 이상의 시(時) 공간이 존재할 수 있음을
분명히 보여 주었습니다.
원리적으로도 4차원의 존재가 3차원에서 시공간을 이동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합니다.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과학으로 증명된 것을 분명히 믿고 신뢰하여 다른 사람에게 가르칩니다.
그러나 과학을 통해 증명되어 있고 배워서 아는 것보다
아직도 과학이 풀지 못한 것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즘 감기로 고생하는 분들이 많은데, 아직도 의사들 조차
감기가 정확하게 무슨 원인으로 생기는 것인지 모른다고 합니다.
과학의 수준이 아직 이정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부활하신 모습을 확실히 보여 주셨습니다.
-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육신이
  사람들에게 만져진 일이 두 번이나 있었고(마28:9, 요20:17),
-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줄 알라, 나를 만져 보라"하셨고(눅24:39)
- 요한복음 20장 27절에서는 도마에게 상처를 만져 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그 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 있고 어떤 이는 잠들었으며"(고전15:6) 했습니다. 
 
기다리라… 받으리라
 
사도행전 1장에 보면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 40일 동안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행1:3).
부활하신 예수님은 승천하시기까지 40일 동안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습니다.(행1:3)
특별히 분부하셨던 말씀이 하나 있는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하나님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은 누가복음 끝부분과 사도행전 처음 부분에 나옵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에 보면
"볼찌어다 내가 내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눅24:49)
사도행전 1장 4절에
"사도와 같이 모이사 저희에게 분부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행1:4) 했습니다.
 
이 명령은 당시의 상황으로 보아 순종하기 어려운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셨지만 제자들이
예루살렘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처형했던 사람들이 그대로 세력을 잡고 거주하는 곳이 예루살렘인데…
되도록 그곳을 빨리 떠나야 안전했습니다.
왜냐하면 제자들은 예루살렘이 고향도 아니고, 예루살렘에 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예루살렘에서 일하는 직장이나 직업이 있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 없는 예루살렘에 머물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은
"…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 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시며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감람산에 예수님과 제자들이 모였습니다(행1:12).
  감람산 (Mount of Olives)
예루살렘 동쪽에 있는 해발 841m의 산으로 
이 산은 감람나무가 많았기 때문에 감람산이라 불렸다고 한다.
신약에서는 예수님과 관련되어서 자주 타나는데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눅19:37), 세상 종말에 대해 가르치심(마24:3),
낮에 가르치시고 밤에 쉬심(눅21:37),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와 잡히심(마26:30, 36/막14:26, 32/ 눅22:39)과
승천(행1:9~12) 등이 일어난 장소였다.
감람산에 무덤이 많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감람산에는 약 2,000여 년이 넘는
아주 오래된 무덤부터 최근의 무덤에 이르기까지 많은 무덤이 있다.
유대인들은 심판의 주님이 감람산에 오실 것으로 믿어(슥14:4)
빨리 부활하고 싶어서 자신이 죽으면 감람산에 묻히기를 원했다.
이러한 이유로 중세 유럽의 유대인들 중에서는 죽을 날이 가까워지면
예루살렘으로 와서 임종을 맞기도 했다고 한다.
또한 기드론 골짜기를 경계로 예루살렘의 동편에 위치하고 있는 감람산에는
회교도들의 묘지가 있다. 훗날 메시아가 감람산에서
예루살렘 성의 동쪽문을 통해 성전에 들어가는 것을 저지하기 위해서
회교도들이 이곳에 묘지를 만든 것이었다.
이것은 그들이 메시아가 오시는 것에 대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 주는 것이다.  - [비전성경사전] 참조 - 
 
그곳에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마지막 질문을 던졌습니다.
"…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하니" (행1:6)
죽음을 이기시고 부활하신 예수님~
주님이 세우실 나라, 회복시킬 나라… 그 나라를 이루실 때가 이 때입니까?
그때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너무도 간단했습니다.
"너희의 알 바 아니요" (행1:7) 했습니다. 이 말은 '너희는 알 것 없어'라는 뜻입니다.
"그때(times)와 그 시기(기한, dates)은 아버지(하나님)의 권한으로 정하신 것이니
그것까지 알려고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을 구별하신 답입니다.
하나님의 권한에 있는 일정들을…, 하나님의 권한에 있는 계획들을…
인간이 알려 하거나, 예측하거나, 변경시키려 해서는 안된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시간을 사람들이 사용하는 달력이나
사람들이 계산하는 시간으로 판단하여 때를 알려 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단지 예수님은 4절 말씀대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만 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루살렘에 머물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을 믿고 기다릴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조건이라면 가능합니다.
예수님을 역사적인 인물로 오셔서 살았다가 죽은 인물로 생각하면
기다릴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죽었다가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는 구세주로 믿으면
그 사람은 기다릴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빛되고 소금된 삶을 살고
세상 사람들이 아무리 조롱해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는 조건은 하나입니다.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느냐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예수님이 구세주이신 것을 믿지 못하는 분들은 이 시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이… 임하시면…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남기신 말씀이 8절입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1:8)
"But you will receive power when the Holy Spirit comes on you;~" - NIV -
 
성령이… 임하시면… 우리들의 삶의 문제 대부분은 해결됩니다.
죄의식과 정신적 갈등…, 긴장과 의심…, 불투명한 장래와 죽음에 대한 두려움…
염려와 근심… , 모든 문제들이 평안과 자유와 쉼과 확신으로 바뀝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성령이 그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믿으십니까?
예수 믿으면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는 것을 믿으십니까?
믿으시면 여러분 속에 성령이 계신 것도 믿으십니까?
믿지 못하는 분들은 고린도전서 12장 3절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고전12:3)
여러분 속에 성령께서 계시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요한일서 4장 15절에 보면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저 안에 거하시고
  저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요일4:15)
사도행전 2장 38절에 보면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행2:38)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사람은 성령을 선물로 받은 사람입니다.
성령께서 함께 하는 사람은 세상 사람과 생각이 다릅니다. 가치관이 다릅니다.
 
예수를, 부활하신 예수를 본 사람들… 승천하신 예수를 본 사람들(행1:9)…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부활의 증인(witness)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부활의 증인으로 사는 사람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가실 때
흰 옷 입은 사람들이 말한 11절에 보면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행1:11) 했습니다.
 
언제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가든지…, 언제 다시 오실 예수님을 만나든지…
그 기쁨의 날을 기다리며 살아야 합니다.
세상을 살면서 우리 힘으로, 의지로… 믿음을 지키기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힘이 되어 주셔야 합니다.
성령의 능력 권능을 받아야 우리가 힘있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록 힘들고 어려우며, 때론 멸시를 받아도
빛 되고 소금 되게, 예수 냄새 풍기며… 증인된 삶을 살며…, 복음 전하며 살다가
언제 하나님 나라에 가던지… 다시 오시마 약속하신 주님을 이 땅에서 만나든지…
그 때가, 그 시기가, 언제이든지… 기쁨과 감사로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부활을 믿는 사람이요, 권능 받은 사람입니다.
 
이미 우리에게 종말은 선언되었습니다. 그 종말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이미 죽음이 예고된 사람입니다.
이미 종말이 예고되었으나 아직 그 날은 아닙니다.
그래서, 종말은 이미(already)와 아직(not yet)의 구조 속에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 종말의 시작과 종말의 절정 - 사이에 살고 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롭고 완전한 죄사함을 의미를 알고 이미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완전해진 것은 아닙니다.(빌3:7~14)
그래서 매순간 순간 온전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사망의 승리가 이미 우리의 것임을 압니다(고전3:22).
그러나 아직 우리들은 여전히 죽음을 앞두고 살고 있습니다.(빌3:20~21)
 
아무쪼록 제가 바라기는 여러분이 살아계실 때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죽음을 보지 않고 천국으로 옮기움을 받았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평균적으로 1주일에 한번은 영안실에 갑니다.
그럴 때마다 저는 "하나님, 저는 여기에 너무 자주 옵니다.
다른 사람의 일로는 자주 와도 좋지만
저는 여기에 주인공으로 오지 않게 하옵소서"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살아있는 동안 주님이 다시 오시지 않는다면
어느 날 저도 그런 자리의 주인공으로 있게 될 것입니다.
 
사람이 나이 먹는 것, 자기에게 주어진 환경을 인정하면 마음이 편하지만
인정하지 않으면 삶이 피곤해집니다.
저도 요즘엔 중고등학교 여학생들이 제게 '오빠'라고 하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아저씨'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 '아저씨'임을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바꿀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는 평안이 있어야 합니다.
제가 보니 우리 교회에도 할머니가 되었는데도
할머니 아닌 척 할려고 피곤하게 사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그냥 할머니로 받아들이면 편할텐데… 여러분 받아들이세요.
오이를 붙이고, 계란을 발라도…  구기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방법이 없습니다.
 
우리는 사망에서 이긴 부활을 믿는 사람들이지만
우리는 죽음을 앞두고 늙어가는 사람들입니다.(고전3:22, 빌3:20~21)
우리는 이미 성령 안에서 살고 있음에 틀림없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사단의 공격을 받는 사람들입니다.(갈5:16~26)
그러므로 부활을 믿고 천국을 소망하며 사는 우리는
현재의 세상 삶에도 충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세상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가정을 지키기 어렵습니다.
남편, 아내가 서로 다른 성격, 다른 환경에서 자라서 부부가 되어
한 가정을 이루어 평생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렵습니까.
부모가 되고, 자식이 되는 것, 형제우애를 지키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판을 깨고 싶은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고, 때로는 눈물 흘리며
가정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 지키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빛되고 소금되게 사는 것 어렵습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사는 것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마음에 합하게 살기 위해 애쓰는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부끄러움 없이 살다가 하나님 앞에 갔을 때
"잘 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아름다운 칭찬 받는 자리의 주인공이 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 이 기쁨과 감격의 부활절 아침에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살기로 결단하며
부활의 산 증인으로 살기로 결단하는 모든 성도들
성령충만함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고
믿음의 행진에 승리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5년  3월  27일 주일낮설교>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