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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요 20:2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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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춘수 목사

먼저 2005부활절을 맞이하여 주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2003년 3월 미국에서 발간된 책으로 지금까지 전세계적으로 1000만권이상 팔린 요즘의 베스트 셀러가 있습니다. “다빈치코드”라는 소설책입니다. 비록 소설이지만 기독교에 대해서 예수님에게 근본을 흔드는 무서운 내용이 소개됩니다. 그 소설 책에의하면 예수님은 막달라마리아와 결혼을 한 것으로 소개됩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에 대하여 알고있는 비밀조직이 있는데 바로 시온수도회라는 것입니다. 이 시온 수도회는 교회의 반대로 예수님의 결혼소식을 말하지 못하고 그 비밀을 암호처럼 그림이나 책 그리고 조각품에 은밀하게 표시해놓았다는 것입니다. 미술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바로 그 시온수도회의 회원이고 예수님과 막달라 마리아의 결혼을 알리기 위해서 ‘마지막만찬’을 그렸다는 것입니다. 이 소설에서 예수님은 한 인간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지금까지 전해오는 모든 기독교의 이야기는 하나의 신화에 불과하다고 합니다.이런 반기독교적인 내용으로 인해서 많은 사람들이 이 책을 읽고 예수님을 부인하고 기독교를 부정하고 있습니다.심지어는 기독교내부에 있는 연약한 성도들조차도 이런 내용의 글을 대면하면서 의심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21세기를 살아가고 있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존재를 의심하고 있고 예수님의 모든 일들을 의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지금의 문제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이땅에 계시던 그때에도 의심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 의심의 세력 중에는 예수님의 제자들도 있었습니다.
본문에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 도마에게 나타나는 내용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박히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며칠만에 부활하셨습니까? 3일만에 부활하셨습니다. 죽음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그가 평소에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제자들에게 나타나는 일이었습니다. 예수님이 분명히 육체로 부활하셨습니다. 그리고 주님을 아는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말씀하실 때 육체로 부활하셨다는 것과 사람들에게 분명히 보여졌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앞절의 20절에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손과 옆구리를 보이시니“라고 합니다. 부활장으로 알려진 고전15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보이셨다고 합니다. 고전15:5-8 게바에게 보이시고 열두제자에게와 후에 오백여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으니 그중에 지금까지 태반이나 살아있고 어떤 이들은 잠들었으며 그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그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왜 주님께서 보이시도록 부활하셧을까요?
의심하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의심을 줄이고확신에 거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서 도마라고 하는 제자가 있습니다. 여기 도마에게 어느날 다른 제자들이 말을 합니다.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그러자 도마는 이렇게 말을 합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합니다.
여기 예수님의 제자 도마조차도 의심했습니다. 분명히 예수님의 능력을 보았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부활하심의 소식도 들었습니다. 그런데 의심합니다. 오늘 우리들 중에도 의심하는 분들은 없습니까? 분명히 우리들 중에도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왜 도마는 의심했을까요? 아니 왜 우리들은 의심할까요? 어떻게 하면 의심을 극복하고 확신에 거하는 믿음생활을 할 수 있습니까? 오늘 의심의 도마가 확신의 도마로 바뀌는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그 비결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까?


1.의심을 극복해야 합니다.
보통 우리의 믿음 생활에서 부활을 의심하고 기적을 의심하고 많은 영적인 것들을 의심할때가 있습니다. 우리로 하여금 의심하게 하는 몇가지 요인이 있습니다.

첫째는 고립되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도마가 의심하는 이유는 믿음의 형제들로부터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세상을 떠났을때에 가롯유다와 도마를 제외하고 모든 제자들이 함께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독 도마는 관계하지 않고 떨어져 있었습니다. 왜 그런지는 모릅니다. 오늘 내가 교회공동체와 떨어져 고독한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혼자 갈등하고 혼자 고민하면서 보내고 있지는 않습니까? 여러분 고립되었을때 의심할 수 있습니다. 고립되었을때 범죄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시조 하와도 남편과 분리되어 혼자 있을때 마귀가 하와를 유혹하여 범죄하게 하였습니다. 다윗이 군중들과 고립되어 혼자 옥상에서 거닐다가 유혹을 받아 결국 간음죄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여기 도마가 고립되어 있다다 부활하신 주님을 의심하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교회로부터 홀로 고립되어 믿음 생활하지 마십시오. 무인도처럼 떨어져서 힘들게 신앙생활하지 마십시오. 믿음의 사람들일수록 함께 서로 교제하고 하나될때 은혜가 있는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조차도 이 세상에 오셔서 12명의 제자를 선택하여 함께 계셨습니다. 바울조차도 혼자 전도하거나 사역하지 않고 꼭 믿음의 동역자들과 함께 사역하고 생활하였습니다.
그래서 믿음의 사람들은 믿음을 키우는 일 은혜받는 기회는 할수만 있는대로 자꾸 갖기를 바랍니다. 그 기회를 자꾸 만들어가시기 바랍니다. 장작불이 모일때에 잘 타는 것처럼 우리는 신앙도 잘 모일때 더 끓고 더 뜨겁습니다. 혼자있고 고립되면될수록 냉냉해지고 사랑이 식고 생각도 식고 의심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을 의심하게 하는 고립으로부 돌아서기 바랍니다.

둘째는 합리성만을 앞세울때 의심하게 됩니다.
죽었던 사람이 살아난다는 것은 합리적인 이성과 일반적인 상식으로 볼때에 의심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한번도 도마의 경험으로는 부활의 일을 경험한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의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마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겟노라”고 합니다. 여기 도마는 자기의 경험 자기의 이성을 앞세웠습니다.
여러분 이것이 도마만의 문제입니까? 나는 지금 내가 경험한 것을 근거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보고 듣고 알고 있는 근거로 우리 주님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과 주님의 나라는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자연적인 눈과 귀와 손과 발로만 다 아는 나라가 아닙니다. 성령으로 알 수 있는 신비가 있습니다. 성령으로 깨달 수 있는 지혜가 있습니다. 결코 나의 이성과 경험으로는 알 수 없는 세계가 있습니다.

셋째 기질적인 약점에서 오는 의심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의심하지만 특히 더 도마와 같이 의심하는 사람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타고난 바탕의 기질과 관계가 깊습니다. 더 꼼꼼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일 수록 매사에 완전하지 않고는 넘어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만 틈이 있어도 먼저 부정하고 의심하고 믿지를 못합니다. 이런 사람들의 경우에 항상 모든 것을 의심하고 생각하고 출발하기 때문에 의심의 타입으로 마음이 굳어져 있는 사람입니다.그런데 이런 사람들의 경우에 실수가 적을 수는 있지만 그 기질로 인하여 믿음의 진보가 더디 나타날 확률도 많습니다.
오늘 본문의 도마는 부활하신 주님을 의심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 중에도 부활을 의심하고 우리 주님을 의심하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의심하게 되면 우리 삶에 어떤 문제가 있을까요? 우리가 의심하면서 삶을 살 때 우리의 삶은 불안하고 마음에 평강이 없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실때마다 하신 가장 핵심적인 말씀이 평강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없는 제자들은 마음에 주님에 대한 확신이 없었고 그런 가운데 마음이 두렵고 불안했습니다. 도마를 찾아오실때에도 우리 주님은 평안의 인사를 하십니다.
  "너희에게 평안이 있을찌어다"
  우리가 흔히 쓰는 '안녕하십니까?'하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만날 때, 헤어질 때 같은 말을  씁니다.  '샬롬',  '평안하십니까?', '평안하십시요'하는 뜻입니다.  그런데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그들 가운데 서서 주신 이 말씀은 단순히 인사만이 아니라 좀 더 깊은 뜻이 있습니다.
  평화는 우리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또 가장 갈급히 채는 것이 평화입니다.  그런데 평화가 없습니다.  그러면 이 평화는 어디서  오는 것입니까? 주님은  평화의  왕이십니다. 그러므로 어제나 오늘이나 주님을 믿고 영접하는 사람에게는 참  평안이  있습니다.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결국 주님으로 인하여 “평안”의 축복이 주어졌음을 확인시켜주는 것이요 누릴 것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주신 고별  설교 말씀 중에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평안과 같지 아니합니다.  참되고  영원한 평안입니다.  의심을 버리고 평안에 거하시는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믿음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십시오.
의심하는 제자 도마에게 나타나신 우리 주님이 도마에게 주는 메시지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믿음의 메시지입니다.
27절에 믿음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여기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는 자가 되라” 주님은 믿음을 결단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이시간 마음에 의심하고 있는 우리들을 향해서 주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바로 ‘믿는 자가 되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주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는 믿음으로 우리들의 선배가 세상을 이겼습니다. 마귀를 이겼습니다. 모든 죄와 싸워 이겼습니다. 믿음이 의심을 극복합니다. 믿음이 세상을 이깁니다. 믿음이 마귀를 이깁니다.

이시간 주님께서는 우리가 믿음을 갖기를 원하십니다.그런데 주님이 인정하시고 갖기를 원하시는 믿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입니다.
2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하고 하십니다.
21세기 종말의 시대에 우리가 믿음 생활할 때 정말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보는 것을 좇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표적과 이적을 구하는 것입니다.주님은  말세가 가까울수록 사람들은 이적과 기적을 좇을 것을 우리에게 경계하셨습니다. 마24:24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눈에 보이는 것들을 좇지 말라고 주님께서 경계하실까요? 악한 영도 우리를 눈에 보이는 것들로 미혹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귀신도 능력을 행하고 마귀가 이적을 나타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지금 여기에서 우리가 갖아야 할 것은 바른 믿음입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믿음은 바로 말씀의 믿음입니다.
본문에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더 복되도다라고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직접 눈으로 보지 않고도 보는것이상믿을 수 있도록 우리에게 믿을 수 있도록 주신 귀한 선물이 바로 말씀입니다.
31절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고 합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직접 나타나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중에 직접 눈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본 사람이 없습니다. 직접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도 없습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어떻게 이시간 나타나십니까? 이시간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나타내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이시간 부활하신 주님을 말씀을 통하여 함께 대하였습니다. 여러분 중요한 것은 믿는 것입니다. 이시간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신 하나님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그대로 믿으시면 아멘 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믿음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사람은 부활이요 생명이신 우리 주님의 생명이 그 속에 있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31절 하반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요”
주님을 믿는 자는 주님의 생명을 얻습니다.주님을 믿는 자는 주님과 같이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는 영의 소유자가 된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주님의 영을 소유하게 된 자의 삶은 주님을 나의 주로 나의 하나님으로 높이면서 영광을 이루는 삶을 살게 되는 줄로 믿습니다. 오늘 본문의 도마가 3년동안이나 주님의 제자로 훈련받았지만 부활의 주님을 확신하기까지 많은 회의와 의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부활하신 예수님을 그는 만났습니다. 의심하는 도마를 찾아오신 주님의 은혜와 함께 도마가 믿음으로 영접할 때 주님은 도마에게 역사하셨습니다. 나중에 이 도마는 인도라는 나라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자신의 목숨을 바쳤다고 합니다.
의심하지 말고 부활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주님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주님이 주시는 생명과 평안이 넘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남은 생애 생명의 주인이시오 부활의 주님의 주님을 널리 증거하시는 삶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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