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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활주일] 부활을 믿지 못하고 꾸물대다가 (막 16: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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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금성 목사

현대 과학의 눈부신 발달로 인간의 수명이 150 까지 늘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캐나다 오타와 심장연구소장 봅 로버츠 박사가 그런 전망을 내 놓았습니다. 그는 북미지역의 최고의 심장병 전문의사입니다.

실제로 1900년 인간의 평균수명은 36살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100 년 후 2000년에는 80살로 2배 이상 늘어났습니다. 그와 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인간의 수명은 더 늘어나게 될 것입니다.

더욱이 인간 게놈 프로젝트 연구 성과로 2050년이면 평균수명이 150살로 늘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인간의 꿈은 오래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누구나 죽기를 싫어합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이유는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기 때문에 영생의 비결을 모릅니다.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는 부활도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영생하려고 합니다.

그들이 의지하는 것은 과학의 힘입니다. 과학의 힘으로 인간의 수명이 연장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장수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의 여지가 있는 주제입니다. 장밋빛 전망과는 달리 비관적인 이론도 있습니다. 현재 인간의 안고 있는 암과 에이즈 같은 난제가 극복된다고 해도 새로운 문제가 등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무신론자들도 죽지 않고 영생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 그들이 영생할 방법은 없습니다.

기독교는 부활의 종교입니다. 기독교에는 영생의 비결이 있습니다. 그것은 죽지만 다시 부활하는 것입니다.

부활은 인류의 역사상 딱 한번뿐이었습니다. 예수님 외에 어느 누구도 부활한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믿는 모든 이들에게 부활의 소망이 됩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요11:25-26>

부활의 주님을 믿는 자들도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영원히 죽지 않습니다. 할렐루야!~ 부활의 주님을 찬양합시다. 생명이신 하나님 살아계신 하나님을 찬양합시다.

우리 옆 사람, 앞 뒤 사람과 부활 인사를 나누겠습니다. “주님의 부활로 우린 영생을 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 사건을 의심하지 않고 믿으십니까?
부활을 믿는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믿을 수 없는 일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제자들도 선뜻 믿지를 못합니다. 엄청나게 꾸물대고 있습니다. 결국 주님께 꾸지람을 들을 정도로 믿지 않고 버티고 있습니다.

마가는 제자들이 계속해서 믿지 않고 꾸물대고 있는 모습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본문 11 절에 “그들은 예수의 살으셨다는 것과 마리아에게 보이셨다는 것을 듣고도 믿지 아니하니라.”
본문 13 절에 “두 사람이 가서 남은 제자들에게 고하였으되 역시 믿지 아니하니라.”
본문 14 절에 “그 후에 열한 제자가 음식 먹을 때에 예수께서 저희에게 나타나사 저희의 믿음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을 꾸짖으시니 이는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일러라.”

제자들은 부활 소식을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또 다른 증인의 이야기를 듣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부활하여 나타나신 주님을 직접 보고도 믿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 마음이 완악한 것을 보시고 꾸짖은 것입니다.

믿음이란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증거를 보여주고 설득한다고 믿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마음의 결정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본문의 제자들은 주님의 부활을 생생하게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믿기가 어려웠습니다. 더구나 우리는 부활의 주님을 직접 볼 기회가 없습니다. 어떻게 쉽게 믿어지겠습니까?

그러나 본문의 제자들처럼 끝까지 믿지 않고 버틴다면 어찌될까요? 믿지 않았기 때문에 구원받지 못합니다.

부활은 세상 질서에 맞지 않은 일입니다. 이성적인 생각으로도 감정으로도 받아들이기 힘듭니다.

8 절에 부활에 대한 여인들의 반응이 나와 있습니다. “여자들이 심히 놀라 떨며 나와 무덤에서 도망하고 무서워하여 아무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하더라.”

처음에는 여인들도 부활을 믿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을 직접 만나보고 나서 달라졌습니다. 불신앙이 신앙으로 변했습니다. 부활이 두려움이 아니라 감격과 환희로 변했습니다. 달려 나가 부활을 전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여전히 꾸물댔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부활이 현실의 삶과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머리로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부활의 증인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주님은 마음이 완악하여 믿지 못하는 제자들을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면 이들이 결국 예수님의 부활을 믿게 된 것은 언제일까요? 그것은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하던 중 성령을 받고 나서부터입니다.

머리로 부활을 이해하려고 했던 제자들이, 가슴에 성령의 불을 받고 달라졌습니다. 그제야 부활을 이해했습니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해야 주님처럼 신령한 몸을 입고 영생하는 줄 깨닫게 되었습니다. 부활을 통해서 십자가는 패배가 아니라 승리인 것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 부활을 전하는 것이 바로 복음인 것을 알았습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의 첫 증인입니다. 마리아는 어떻게 그렇게 빨리 주님의 부활을 믿을 수 있었을까요? 막달라 마리아는 체험이 있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처음 만나기 전에 일곱 귀신 들렸던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그 일곱 귀신을 쫓아 주셨습니다. 귀신 들린 그녀는 사람의 삶을 살지 못했습니다. 귀신에게 삶을 빼앗겼습니다. 그것은 바로 죽음에 가장 가까운 삶입니다.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을 통해서 죽음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습니다. 죽었다 살아나는 것이 무엇인지 체험을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막달라 마리아는 부활하신 주님을 믿는데 반나절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그녀 앞에 나타나셨을 때, 마리아는 동산지기인 줄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시신을 어디로 옮겼는지 아냐고 물었습니다. 그 때 마리아의 등 뒤에서 주님은 그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마리아야” 그 음성은 아주 익숙한 음성이었습니다. 주님의 음성이었던 것입니다. 그 때 마리아는 “선생님”하면서 몸을 돌이켰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마리아와의 만남을 더 자세히 적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시거늘 마리아가 돌이켜 히브리 말로 랍오니여 하니 (이는 선생님이라)”
“마리아야”하는 이 주님의 음성이 그리움에 가득 찬 마리아의 영안을 열어 주었습니다.

마리아는 부활의 주님을 만난 즉시 부활을 이해했습니다. 부활을 믿었습니다.

여러분! 마리아처럼 즉각 주님의 부활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을 즉시 믿는 사람도 있고, 제자들처럼 더디 믿는 사람이 있습니다.
더디 믿어도 괜찮습니다. 부활 사건을 조목조목 따져보시기 바랍니다. 이해되지 않아 고개를 갸우뚱해도 좋습니다. 믿어지지 않아도 사실입니다. 부활은 속임수가 아닙니다.

부활을 믿지 못하던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믿었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연약한 믿음을 위해서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부활을 이성으로 판단하는 사람에게 성령이 임하시기를 바랍니다.

부활은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령은 증거하는 현장에 역사하십니다. 왜냐하면 부활을 믿는 순간 그 영혼이 구원받기 때문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여러분!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죽음에서 죽음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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