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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물을 다시 파라 (창 26: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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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 성철 목사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으니 이는 아브라함이 죽은 후에 블레셋 사람이 그 우물을 메웠음이라"(창세기 26:18)

우리가 마시는 물은 가히 ‘생명의 대명사’라고 할만합니다. 우리 몸에 피의90%가 물로 되어 있고, 살의 75%와 뼈의 25%가 물로 되어있습니다. 물은 체온을 조절하고 비타민과 금속류를 운반하고 배설물을 처리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굶고서 여러 날 살수 있을 지 몰라도 물을 마시지 않고는 살지 못하고 곧 죽게 되는 것입니다.

1936년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피터 데바이(Pete Debye) 박사는 “인류는 100년 이상 물을 H2O라고 불러 왔지만 그 신비한 물에 대하여 지금 겨우 알기를 시작한 것뿐이다” 라고 했습니다. 물은 인간이 지금까지 알고 있는 그 이상의 것으로 인간의 생명에 있어 절대적인 것임을 말한 것입니다.
인간은 거의 물로 되어 있는 어머니의 배속에서 태어나 일생동안 약 6천5백 갤론의 물을 마시고 죽는 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물에서 태어나 물로 살다가 죽는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삭이 유목민으로서 블레셋 지역에 머물며 농사를 지음으로 크게 번창했습니다. 그것은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파놓은 우물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의 생존과 번영은 물을 주는 우물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이삭을 번영을 시기한 블레셋 사람들은 이삭의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 버렸습니다.
이삭은 우물을 얻기 위하여 그랄 평원으로 이동했습니다. 그곳에서도 아버지 때에 파놓았던 우물을 다시 파서 물을 얻었습니다. 그랄 사람들이 그 우물을 자기들의 것이라고 주장하며 문제를 일으키자 또 다른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습니다.
이삭이 살았던 팔레스틴 지역은 건조한 기후와 부족한 강우량으로 물을 얻기 힘든 지역입니다. 광야에서 우물은 생명유지와 함께 번영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것입니다. 어떻게 보면, 우물이 있으면 살고 우물을 가지지 못하면 죽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물의 문제는 곧 생존과 번영의 문제였습니다.
우리는 이삭에게서 우물과 물의 귀중함을 깨닫게 됩니다. 육신의 인간이 물 없이 살아갈 수 없듯이, 속 사람도 물 없이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광야와 같습니다. 이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영혼은 항상 목마름 속에 있습니다. 인간은 속 사람 곧, 영혼의 목마름을 해결하는 물을 필요로 합니다.
수가성 여인과의 대화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4:14)

세상이 주는 물은 쉽게 갈증을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주시는 물은 우리의 속 사람을 목마르지 않게 하는 물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은 이것을 생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우리에게 주시는 생수의 근원 자이십니다. 우리의 마음은 우물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마음은 생수의 근원에서 흘러나오는 생수를 퍼내는 우물과 같아야 합니다. 신앙은 이런 생수를 끊임없이 퍼 올리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목마른 심령으로 살아간다면 우리의 신앙이 잘못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생수를 퍼 올릴 수 없는 우물과 같다면, 그의 신앙은 심각한 문제를 가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는 목마르지 않는 신앙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항상 목마르지 않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흘러 넘치는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물을 파는 이삭의 모습입니다.

우물을 막는 역사입니다.
성경은 “블레셋 사람이 이삭을 시기하여 그 아비 아브라함 때에 그 아비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고 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우물을 막고 메운 것은 이삭의 부유함이 우물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의 축복은 우물에 있습니다. 이삭은 블레셋에 머무는 동안 이 우물을 가지고 있음으로 창대하고 왕성하여 거부가 되었습니다. 이러한 이삭을 시기하여 블레셋 사람들이 그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던 것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흙과 잡다한 쓰레기로 우물을 막고 메웠습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의 목마름의 원인은 삶의 환경이 아닙니다. 물을 퍼 올리는 우물이 막혔다는 것이고 그곳에 흙과 잡동사니로 채워져 있다는 것입니다.
우물을 막는 역사는 바로 사단의 역사입니다. 사단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을 시기하여, 우리의 마음에 흙과 각종 쓰레기를 채워, 주님이 주시는 생수가 흐르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단은 우리의 마음에 의심과 불 신앙적인 쓰레기를 넣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신앙생활을 부정적이게 만들어 생수가 흐르지 못하게 합니다. 부정적인 신앙은 불평과 원망을 만들어, 그것을 우물에 가득 채우게 하여 생수가 흐르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사단은 우리로 게으름과 나태함에 사로잡히게 하여 생수가 흐르지 못하게 합니다. 게으른 신앙은 영혼을 잠들게 하여 신앙의 삶에 생수를 흐르지 못하게 합니다. 사단은 때로는 갈등을 조성하여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생수가 흐르지 못하게 합니다. 갈등을 통하여 미움과 분노와 아픔과 절망의 쓰레기, 각종 상처의 쓰레기를 넣어 생수가 흐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이 쓰레기로 채워져 있으면 생수가 흐르지 못하는 것입니다. 생수가 흐르지 못하면 목마른 신앙인이 됩니다. 목마른 신앙인은 사건과 문제를 만들어 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는 중, 여호와의 명령대로 신 광야를 지나 르비딤에 이르러 장막을 치고 그곳에 머물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는 물이 없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어 목이 마르자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하며 불평과 함께 지도자인 모세와 대항했습니다.(출17:1-7)
생수가 흘러나지 못하는 마음은 목마름 자체입니다. 목마른 자는 부정적입니다. 원망과 불평의 사람으로 증오와 다툼의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런 모든 이유는 생수를 퍼 올릴 수 없는 막혀버린 우물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물을 다시 파야 합니다.
블레셋 사람이 처넣은 쓰레기를 파내야 합니다. 이삭은 블레셋 사람이 메운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는 다른 방법을 택한 것이 아니라, 물의 근원지를 다시 판 것이다. 아브라함 때에 팠던 우물을 다시 판 것입니다.
물이 말라 메마른 심령이 되었다면 다른 곳으로 향하기 이전에, 메운 우물을 다시 파서 물의 근원지를 찾는 일에 집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이렇게 책망하셨습니다.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처음사랑을 회복하듯 생수가 흘러 넘치는 마음이 되도록 다시 파야 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메말랐을 때, 생명의 근원이신 주님께로 다가가야 합니다. 생수의 공급자요 근원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나와의 관계를 회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내신 성령 없이 살았던 나의 삶에서 성령과 함께 하는 삶으로 바뀌어야 하는 것이다.
메마름의 역사보다 메마름을 해결하기 위하여 다시 우물을 파는 이삭의 모습이 우리에게 더욱 중요합니다. 무엇이 우리의 심령을 메마르게 했습니까? 우리의 마음에서 생수가 흐르지 못하도록 사단이 채워놓은 각종 쓰레기를 깨끗이 치워야 합니다.
마음의 우물을 막은 것이 무엇입니까? 생수가 흐르도록 파낼 것을 파낼 수 있는 신앙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럼 어떻게 파야 합니까?
끝까지 인내하며 파야 합니다. 이삭은 우물을 다시 팠을 뿐만 아니라, 어느 곳을 가나 수원지를 개발하고자 끊임없이 새로운 우물을 파서 물이 부족하지 않게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 블레셋 사람의 계속되는 방해에도 끊임없이 인내하며 우물을 팠습니다.
본문에 보면 ‘다시 팟다’는 말과 ‘다른 우물을 팟다’ 는 말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우물을 파는 일에 열심을 다하고 인내하는 이삭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생수가 흐르는 신앙의 삶을 위해 끝까지 인내하며 파야 합니다.
예수님은 “너희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눅21:19)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고보 저자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약1:4)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마음의 우물이 생수를 퍼낼 수 있도록, 인내로서 파내야 할 것을 파내는 신앙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인내와 함께 열심을 가지고 파야 합니다. 기도와 찬양과 말씀의 연장으로 열심히 파내야 합니다. 사단이 채워 놓은 우리 마음의 우물의 쓰레기는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찬양의 도구로 파내야 합니다.
사라에게 쫓겨난 사라의 여종 하갈은 브엘세바 들판에서 물이 떨어짐으로 죽어 가는 자신의 아들 이스마엘을 떨기나무 아래에 눕히고 통곡하며 울며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시고 하갈의 눈을 밝게 하셔서 샘물을 보게 하셨습니다.(창21:15-19)
예수님은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요”(마5:4)라고 하셨습니다. 눈물의 기도가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 의지하는 기도와 함께 그 능력으로 파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찬양은 마치 펌프의 물을 끌어올리는 것과 같습니다. 펌프에 물을 부어 물을 끌어올리듯 말씀을 읽고 찬양할 때에 우리의 마음은 생수를 가득 채운 우물이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함께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부르는 찬양은 우리 마음의 우물을 생수로 가득 채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찬양을 통하여 목마르지 않는 신앙의 삶을 경험한 시편기자는 “내 평생에 주를 송축하며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내 손을 들리이다”고 고백했습니다.
메마른 우물에 생수가 흘러 넘치게 하고 생수를 가득 채우는 것은 다른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파는 역사입니다. 사탄은 우리의 환경과 주어진 조건들을 최대로 이용하여 우리의 심령의 우물을 막으려고 합니다. 그 역사를 깨뜨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말씀에 다시 서십시오. 찬양하는 성도가 되십시오. 그리고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께 의지하시고 그분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또한 순종하며 파야 합니다. 물의 근원지인 예수를 바라보며 순종해야 합니다. 시원한 생수는 그리스도 예수께 겸손히 순종하는 데서 흘러 넘치는 것입니다. 겸손히 순종하는 사람이 끝까지 인내하며 기다리면서 열심히 파는 것입니다
고급 호텔이나 공항 세면대는 수도꼭지가 없이 센서에 의해서 자동으로 물이 나옵니다. 수도꼭지 밑에 겸손히 손을 내밀어 기다릴 때, 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순종하는 믿음으로 손을 내밀 듯, 주님께 순종하고자 하십시오. 그리고 포기하지 말고 인내하며 열심히, 주님의 말씀과 기도와 찬양의 연장을 가지고 파십시오. 생수가 넘쳐나는 신앙의 삶을 이룰 줄 믿습니다.
우물의 역사는 이삭으로 하여금 풍요함과 번영의 역사를 이루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메마르고 목마른 신앙의 삶을 살고 있다면 우물을 다시 파야 합니다. 우물을 메운 쓰레기를 치우고 생수가 넘쳐흐르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목마를 수 없는 우물을 가지고 사시는 신앙생활을 이루십시오.
우리에게 목마르지 않는 물을 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수의 시원함과 풍요를 누리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생수가 넘치는 우물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성도의 삶을 이르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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