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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새로운 삶을 살려면? (롬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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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정근두 목사

오늘은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내신 것을 기념하는 부활주일입니다. 주님의 부활로 우리의 모든 것도 변화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의 죽음이란 최악의 상황을 모든 믿는 자의 부활이란  최선으로 바꾸셨습니다. 죽음으로 죄를 용서하시고 부활로 새 생명을 허락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역사의 중심축이 되셨습니다. 새 역사는 그리스도 오시기 전과 그리스도 오신 후로서 나누어집니다. 주님의 부활은 역사의 가장 중요한 사건인 동시에 우리와 같은 개인의 삶을 변화시킵니다.

“우리가 그의 아들의 희생적인 죽음을 통해서 하나님과 친구가 되었다면 그의 부활의 생명을 통해서는 더 깊고 풍성한 삶을 회복하리라는 것은 더욱 확실한 일이 아니겠습니까?”(롬5:10, 메시지성경)

사실 부활절은 종교인들의 잔치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신앙이 별로 좋지 못해도, 전혀 신앙적인 배경이 없어도,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없어도, 아주 가끔 이와 같은 예배의 자리에 나오기만 해도 대환영을 받는 축제이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오늘은 여러분들을 위한 축제의 날입니다. 예수께서는 종교인을 위해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계명이나 의식보다는 하나님과 관계를 갖는 사람들에 관심을 갖습니다. “나는 종교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들을 위해서 왔다”고 선언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하신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좀 더 실감나게 풀이해서 번역한다면 “나는 이미 안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라, 바깥으로 도는 사람들을 초대하기 위해서 왔다. 그들을 변화된 삶으로 초대하기 위해서, 그리하여 안팎이 완전히 변화된 새 삶으로 초대하려고 왔다”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최대 명절인 부활절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초대의 날입니다. 무슨 초대입니까? 변화된 삶을 살도록 여러분을 초대하십니다.

여러분 중에서 운동을 좋아하는 분이라면 골프 선수 타이거 우즈를 아실 것입니다. 이 사람은 1997년에 프로 골퍼에 입문했습니다. 그 첫 한 해 동안 2억 달러의 상금과 60억 달러의 출연료를 거머쥐었습니다. 프로 첫 해에 62억 달러라는 적잖은 돈을 벌었던 선수입니다.

프로 선수 첫 해로서는 엄청난 수입입니다. 그 때 그는 다른 사람들이 일찍 들어보지도 못한 일을 했습니다. 대부분의 팬들이 알지도 못한 일을 시작한 것 입니다. 62억을 벌어들인 그 해 말에 자기 코치에게 말을 했습니다. “나는 골프 치는 방식을 바꾸려고 합니다. 그러면 분명히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입니다.”

타이거 우즈의 코치는 “그럴 수 있지요, 다만 시간이 걸리겠지요. 그리고 아주 피나는 노력을 해야지요.” 그래서 한 해에 62억 달러를 번 실력에 새로운 변화라는 엄청난 시도를 했습니다. 수천, 수만 개의 연습 공을 날렸을 것입니다. 새로운 스윙 연습에 주력하는 19개월 동안 단 한 게임밖에 승리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완벽한 연습을 끝낸 다음 해에는 14경기에서 10경기를 휩쓸었습니다. 최근의 어떤 해에는 프로 골프 역사상  가장 유명한 네 가지 우승컵을 모두 안기도 했습니다. 그쯤 되면 스윙 방법을 바꾸었던 것을 정말 잘 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스윙방법을 바꾸기 전에도 이미 그는 대단한 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왜 한 해에 62억 달러를 벌여 들인 스윙방법을 바꾸려고 했을까요? 바꾸면 더 잘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타이거 우즈 차례가 아니라 여러분의 차례입니다. 여러분도 지금 자신에 대해서 그런대로 괜찮은 삶을 산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유복한 가정생활에다가 직장에서 위치도 남부럽지 않고 게다가 사람도 좋다는 평판을 들을 수 있습니다. 저는 그런 평판에 대해 시비를 걸 생각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여러분이 앞으로 살 수 있는 새로운 삶과 비교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받은 무한한 가능성을 가지고 말하면 한 조각에도 지나지 않습니다.  그 무한한 자원의 표면만 긁다가 갈 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 모두는 지금 여러분보다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 지금도 괜찮습니다만 앞으로 여러분이 살 수 있는 새로운 삶과는  비교할 수 없습니다.

부활절은 이 희망을 우리에게 심어주는 절기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더 나은 삶을 살 수 없는 확실한 방법은 열심히 노력만 하는 것입니다. 스스로 열심히 노력을 해서 더 나은 사람은 될 수 없습니다. 정말 열심히 노력하고 힘에 지나도록 하다가는 오히려 싫증을 느끼고 지치고 쓰러질 것 입니다.치열한 노력은 우리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지 않는 것은 확실합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한 세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집에 가면 거실에 러닝머신이 있는 것을 봅니다. 그런데 매일 하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바자회에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돈을 좀 투자한 모양입니다.

왜 거금을 들여서 운동기구를 사놓고 체력을 기르고 근육을 만들기 위해서 사용하지 않습니까? 텔레비전 선전을 보면 저거 하나만 있으면 건강관리는 끝내 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괜찮은 근육도 만들어 줄 것 같습니다. 그렇게 시작하면 거의가 다 실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외적인 데서 출발해서는 여러분을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내적인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변화하기 원하면 몸이 아니라 마음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생각이 바뀌어야 삶이 바뀝니다.

우리는 누구나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머리 손질을 하고, 봄옷으로 갈아입는다고 해서 우리의 안이 자동적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변화를 시도해서 삭발을 해도 크게 바뀌질 않습니다.

성을 바꾸고 이름을 간다고 해서 사람이 바뀌질 않습니다. 철학관을 찾고 작명소를 찾아서 이름을 바꾸어 사람이 바뀌고 운명이 바뀌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렇게 쉽게 사람이 바뀌면 누가 고민하겠습니까? 그렇게 쉽게 사람이 바뀔 수 있다면 왜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셨겠습니까? 외부의 변화는 여러분을 바꿀 수 없습니다.

내적인 변화가 있어야 사람은 변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부활절이 필요합니다. 부활절을 통해서 죽음에서부터 예수그리스도를 살려낸 그 능력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시하는 첫 번째 단계가 여기 있습니다. 정말 더 나은 삶을 살기 원하시면  . . .

1.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이 세상 사람들의 행동이나 관습을 본받지 마십시오. 그보다는 생각이나 행동으로 새로워져서 딴 사람이 되십시오. 여러분 스스로의 새로운 결심에 희망을 두지 마십시오. 하나님으로 하여금 여러분을 바꾸도록 하셔야 합니다. 신년 결심 오래가지 않습니다. 동양 사람들은 작심삼일 이라고 이야기 하고 서양 사람들은 결심 두주간이라고 그들은 좀 길게 말해 주더라고요.  인간의 의지력만으로는 결코 도움이 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시며, 하나님은 여러분을 사랑한다는 사실에 마음이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모든 것을 아시며 돌보신다는 사실에 마음을 여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이 겪는 어려움을 아시며 도울 수 있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지시고 여러분이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을 능히 하실 수 있습니다.

성격은 말합니다. 더 이상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을 따라서 살지 마십시오. 그들은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혼란에 빠져 있습니다. 그들은 마음을 닫고 깜깜한 어두움에 갇혀 지냅니다.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닫아 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생명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길을 깨닫지 못합니다.”(엡4:18, 현대어성경)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유는 그분께 대해서 마음을 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마음을 열기 전에는 여러분의 삶에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는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그러면 무엇이 하나님께 대해 마음을 닫게 만들었습니까? 거기엔 많은 사연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과거의 상처가 우리를 하나님께 대해서 마음을 닫게 합니다. 소위 예수 믿는 사람들로부터 받은 상처는 신앙생활에 거의 치명적인 적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로부터 상처를 받으면 더 이상 하나님을 떠올리려고 하지 않습니다.

때로는 현재의 자만심이 하나님께 대해서 마음을 닫게 합니다. “내가 왜 하나님께 마음을 열어, 나는 내가 하나님노릇을 하고 싶어. 내 인생을 내가 움직이고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아야지, 하나님은 무슨 하나님이야. 내 인생의 주인은 나야 ”이런 자만심을 하나님께 마음을 닫게 만듭니다.

그런가 하면 미래의 두려움이 우리의 마음을 닫게 합니다. “하나님께 마음을 열면 텔레비전에 나오는 광신도들처럼 될까 싶어서 두렵습니다.” 시도 때도 없이 “할렐루야, 아멘”을 외치고 그 복잡한 지하철 입구에서 “예수 천당”을 외치는 그런 사람으로 만들어 버리면 어떻게 될까하는 불안감이 우리 안에 자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참으로 변화하기 원한다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바꾼다는 것은 쉽질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내가 이 성격을 좀 고쳐야 되는데 난 너무 성격이 급해’ 그렇게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은 ‘ 내가 말이 너무 많아 입에 반창고라고 붙여야 되겠어!’ 그것이 풀칠이 좀 약한 모양입니다. 실패합니다. 노력하지만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서 변하려고 하는 것은 마치 표범이 그 검은 점을  없애려고 드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시도입니다.

여러분이 정말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는 정말 ........ 을 하고 싶습니다.” 그렇게 표현을 해 보십시오. 사람마다 여기 밑줄 위에 쓰고 싶은 말이 다를 것입니다. 결혼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 이고 재혼이라도 해야겠다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취직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건강을 회복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상처 준 사람을 제발 이제는 잊고 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새로운 시작을 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꿈꾸던 것을 이루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다 그만두고 이제는 빚 걱정하지 않고 살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면 여러분의 삶에서 이런 많은 것들을 성취한다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이 마음대로 할 수 있었다면 왜 아직까지 그렇게 빚에 쪼들리고 있습니까?  시도해보았지만 바꿀 수 없었습니다. 해 봤지만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갖지 못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마음을 열면 전혀 불가능해 보이던 것도 가능해집니다. 하나님과 함께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여러분의 삶에 일어납니다. 여러분의 스윙하는 방법도 달라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전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변화시킵니다. 예, 여러분은 지금도 괜찮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눈을 지그시 감고 “나는 괜찮아!” 하고 지금 즐기는지 모릅니다. 어떻게 된 것인지 오늘 1부 예배에 나왔던 사람들 보다 더 12시에 나온 사람들이 잠이 모자라는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지금보다 훨씬 더 나은 삶을 살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에베소 성도를 위한 바울의 기도를 들어보십시오. “또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엡1:19)

바울은 자기가 전도하고 복음을 전했던 에베소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에게 주어진 새로운 신분으로 인해서 찬송의 노래를 한 다음에 그들이 이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백성을 만들어 가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셨다면 죽은 인격도 살릴 수 있습니다. 죽은 결혼도 살려낼 수 있습니다. 죽은 경력도 되살릴 수 있습니다. 실패한 사업도 살려낼 수가 있습니다. 죽어버린 꿈도 살려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는 불가능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위대한가를 깨달을 수 있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더 나은 삶, 새로운 삶을 살려면 하나님의 능력에 생각을 여는 것이 첫걸음입니다. 두 번째 걸음은  . . .

2. 하나님의 은혜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첫 째로 하나님의 능력에 생각을 열고, 둘째로 하나님의 은혜에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은혜란 무엇입니까?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풍성한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은혜란 여러분이 받아야 마땅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넘치도록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은혜는 잘못한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나는 네게 화를 내지 않고 있어, 집으로 돌아와”라고 말 하는 것입니다. 은혜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또 용서하고 또 용서하는 것을 말합니다.

백번이고 천 번이고 만 번이고 거듭거듭 새롭게 시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시는 것입니다. 은혜는 여러분 스스로 할 수 없는 삶을 변화시켜 주는 것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문제는 일반적으로 이런 은혜를 우리가 살면서 경험을 못해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은혜가 잘 느껴지지 않고 믿기가 힘든 것입니다. 은혜 사람들은 은혜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어떤 처신을 하느냐에 따라서 대우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그래서 정말 가장 으로서 구실을 못하고 건강이 좋지 않은데도 불구하고 게다가 인격까지도 파괴되어 있는 사람을 그래도 남편으로 섬기는 사람을 보면 천사같이 보입니다. 음행한 사람들은 가까운 친구관계도 그렇고 부부 관계조차도 어떤 때는 상대방이 나에게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거기 따라서 반응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저렇게 하는데 내가 어떻게 같이 살 수 있습니까? 이런 말을 서슴지 않고 하는 시대에 우리가 있습니다.

사람들로부터 은혜를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은혜 알기가 싶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루 24시간 동안 은혜를 나타내십니다. 여러분이 다음 숨을 쉬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 덕분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우리에게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무슨 그런 말씀하십니까? 나는 내 것을 가지고 먹고 살아요!’ 벌어먹고 사는 것은 여러분의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의 명석한 두뇌, 여러분의 건강, 힘센 팔의 근육이 여러분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이 가진 모든 것은 하나님이 은혜로 그냥 주신 것입니다. 그 명석한 두뇌를 여러분이 값을 주고 샀습니까? 그 단단한 신체를 여러분이 주문 제작을 하셨습니까? 모든 것이 은혜라는 것을 알지 못하면 사는 것이 고달프고 힘듭니다. 그러나 이것을 깨닫고 나면 살고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우리는 지금도 살아있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지금 살아있는 것이 건강 때문이 아니라 건강  관리를 잘 해서가 아니라 은혜 때문임을 알면 우리는 어떤 병도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암이 무서운 것이 아니라 더 무서운 것은 닫힌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닫아놓고 있는 마음 하나님의 은혜에 대해서 닫아 놓은 마음이 불신앙이 더 문제입니다.

은혜로 산다는 것을 알지 못하면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어렵고 힘들고 외로운 인생길입니다. 결코 사는 것이 황홀하다고 고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 보면 하나님은 그의 은혜를 우리에게 쏟아 부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풍성한 은혜를 넘치도록 쏟아 부으셨습니다.”(엡1:8, 리빙바이블) 왜냐하면 하나님은 우리를 이해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최선의 것이 무엇인지를 아십니다. 여러분 자신보다 더 여러분을 잘 아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친한 친구사이와 부부 사이에서도 때로는 속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랑으로 만나도 티격태격하게 되는 겁니다.

나쁜 동기도 모르고 좋은 속마음도 헤아리질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훤히 아십니다. 우리를 태중에서부터 아셨습니다. 태어나서 첫 숨을 들이키는 순간도 하나님은 보셨습니다. 그러기에 여러분의 생각, 모두를 아십니다. 좋은 생각, 나쁜 생각, 추한 생각을 모두 알고 계십니다.

모든 것을 아시고도 여전히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십니다. 그것을 일컬어 은혜라고 합니다.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 보면 예, 언젠가는 가야지요. 그런 사람들은 잘 안 나오는 사람들입니다. 언젠가는 가야지요. 그러면서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나가겠습니다. 그렇게 답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그렇게 자기가 자기 삶을 정돈할 수 있으면 교회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 정돈이 다되면 그대로 그냥 살아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게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와라!” 그래 엉망이 되어있는 그대로 오라는 겁니다. 누가 엉망을 해 놓고 돼지우리처럼 해 놓고 살고 싶어 합니까? 안되니까 그렇게 사는 거지요. 그래서 추한 것 부끄러운 것 그대로 가지고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행한 것을 몰라서 오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 사이에는 서로 모르기도 하고 오해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오해 할 것이 없습니다. 우리의 비밀을 비로소 깨닫고 깜짝 놀라실 일도 없습니다. 환히 알고 계십니다. 그런데도 여전히 “괜찮아 와!”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서는 하늘나라로 가는 다른 길을 보여주셨습니다. 이 길은 선한 사람이 된다든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그런 길이 아니라 새로운 길입니다.  .  .  .

그 길은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들여 무죄 선고라고 선언하시는 길입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그의 과거가 어떻든지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기만 하면 우리는 모두 구원을 받습니다.”(롬3:21-22, 현대인성경)

예, 그렇습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과거가 어떠해도 믿기만 하면 무죄선고를 하십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일컬어 은혜라고 우리는 말합니다. 하나님이 그런 은혜로 우리를 구원하기로 작정하지 아니했다면 우리 중 아무도 구원받을 자가 없었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잘 오셨습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어떤 종교적 배경을 가졌는지 하나님은 묻지 않습니다. 누구며 무슨 일을 했는지도 묻지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잘못을 한 사람들입니다. 자기 스스로 생각을 해 봐도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이 우리 자신이라고 하면 하나님의 그 완벽한 척도를 가지고 재면 여기서 합격해서 나올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래서 하나님은 은혜로 그냥 우리가 누군지 생각지 않고 당신의 자비로움에 근거해서 받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모든 잘못을 깨끗이 지우겠다는 것입니다. 우리 죄를 동이 서에서 먼 것처럼 멀리 하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허물을 망각의 바다에 던져 버리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삶을 살고 있습니까? 여러분 열심히 살려고 했는데 마음대로 되지 않을 수가 있습니까? 우리 부모가 보아도 흡족하지 못한 답답한 삶을 살수도 있잖아요. 어떤 사람은 자기 아버지가 아주 뛰어난 목공기술을 가진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들은 영 아니었습니다. 탁자를 하나 만들었지만 네 다리로는 제대로 서지 않는 작품이었습니다.

아버지가 들어와서 보더니 “아들아 괜찮아, 다시 만들면 돼. 이번에는 내가 도와줄게.” 물론 보통 우리 울산 아버지는 그런 반응을 보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임마, 네가 내 아들 맞나? 어디 가서 내 아들이라고 입 밖에도 내지 마라” 조금 더 심하면 족보와 혈통까지도 다 들고 나옵니다. “어이구 제  에미 닮아서. . .쯧 쯧 . . ”하며

“상관없어 다시 시작해 봐, 이번에는 내가 도와줄게”라고 말하는 것이 바로 은혜의 하나님을 닮은 말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다시 시작하기에 너무 늦었다고 느끼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보질 않습니다. 시작하기 너무 늦었다고 말하는 대신 이번에는 내가 너를 도와주마고 말 하십니다.

그러면 어떻게 이 은혜를 얻습니까?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 받은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조차도 여러분의 자발적인 의지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입니다.”(엡2:8)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독창적인 생각이요 하나님의 독자적인 업적입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사역을 수행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맡기는 것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여러분이 누구라도 결코 하나님의 은혜받기에 합당한 자가 아닙니다. 여러분이 어떻게 살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만큼 요구할 만큼 착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결코 하나님의 은혜를 돈 주고 살 수 없습니다.

은혜는 선물입니다. 사랑의 선물입니다. 용서의 선물입니다. 재시도의 선물입니다. 여러분이 해야 하는 모든 것은 겸손히 그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 .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러분 안에 그 분의 뜻을 이루도록 하십시오. 하나님께 조용히 ”예“ 라고 하십시오. 언제나 하나님은 거기에 계실 것입니다.”(약4:6-8, 메시지성경)

여러분 모두가 이제 “예” 라고 대답하길 바랍니다. “예, 하나님. 하나님의 능력에 생각을 열고 하나님의 은혜에 마음을 엽니다.” 라고 속으로 고백하면 여러분은 더 이상 이전처럼 살게 되지 않습니다. 상상도 못한 변화가 여러분의 삶에 찾아올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것을 바꾸기에 여러분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차이가 만들어 질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뀌길 원하십니까? 달라지길 바라십니까? 더 나은 삶을 살고 싶습니까? 예, 여러분은 지금도 괜찮다고 자부할지 모르지만 분명히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제발 하나님의 능력에 생각을 여십시오.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마음을 여십시오. 여기 더 나은 삶을 위한 세 번째 단계가 있습니다.

3. 하나님의 사랑에 여러분의 삶을 여십시오.

아무도 여러분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자는 없습니다. 여러분의 부모도 여러분의 아내도 여러분의 자신도 하나님은 무조건적으로 여러분을 사랑합니다. 결코 여러분이 행한 것에 기초하지 않습니다. 그가 여러분을 만드셨기에 사랑하십니다. 아니 사랑하려고 여러분을 창조하셨습니다. 여러분을 창조하신 것을 여러분이 하나님을 알고 사랑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것이 바로 여러분을 창조한 이유입니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진리입니다.

여러분이 생각도 하기 전에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예수님은 상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러기에 사도바울은 기도합니다.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러하듯이 여러분도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얼마나 한없고 넓으며, 얼마나 깊고 높은가를 깨닫기를 기도합니다.

방탕한 아들이 마침내 돌이키기로 결심을 하고 편지를 보냅니다. “아버지 내가 돌아가는데 내가 타고 가는 기차가 우리 마을을 지나갈 때 내가 우리 집을 보면 그 감나무에 노란 손수건 하나 달아 주시면 아버지가 나를 용서해 주심을 믿겠습니다.” 동네가 가까워지면 얼마나 긴장이 되겠습니까? 자기 집이 가까워질 때 마음 졸이고 창밖을 내다보는데 큰 감나무에 온통 노란 손수건으로 뒤덮여 있었다는 것입니다. 행여 자식이 보지 못하고 지나갈 까봐 한 개 달아 놓으면 기차가 빨리 지나가면 못 보게 될까봐 그냥 온 나무를 노란 손수건으로 가득 채워 놓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보다 수천 배 수만 배 여러분을 사랑하시고 용서하십니다. 나무에 단 손수건이 아니라 십자가에 자기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달았습니다. 거기에 하나님은 여러분이 돌아오면 천군천사들과 함께 팡파르를 울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향해 우리의 문들을 활짝 열면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의 문을 우리를 위해 활짝 열어두신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롬5:1-2, 메시지성경) 

사랑하는 이웃 여러분, 여러분이 오늘 설교를 모두 다 기억하지 못해도 좋습니다. 다만 다음 말은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만드셨고 하나님을 위해서 만드셨습니다. 이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여러분의 삶은 의미를 찾지 못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학교에 가고 직장을 얻고 돈다발을 만지다가 그것을 쓰고 은퇴를 하고 죽어 사라지도록 여러분을 만들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위해 공간을 차지하고 자원을 사용하고 공기를 마시다가 죽어 없어지도록 이 세상에 여러분을 보내지 아니했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영원한 관계를 맺고 살도록, 풍성한 삶, 의미 있는 삶, 산다는 사실이 순간마다 황홀하게 느끼며 살도록 하나님은 여러분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여러분의 문을 열면 바로 그 순간 하나님께서는 이미 여러분을 향해서 당신의 문을 활짝 열어두신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인생을 다 보내고 노년에 돌아와서 말해도 하나님은 반깁니다. 사람하고 다른 것 같아요. 70평생 애먹이고 마지막 가서 힘 다 없애고 미안하다고 돌아오려고 하는 남편을 받아 주는 아내는 잘 없더라고요

하나님은 70, 80이 되어서 돌아와도 젊은 날 돌아서는 자식을 영접하는 것처럼 양팔을 벌리고 달려 나가시는 분입니다. 정말 하나님이 여러분 개인에게 그런 관심을 가지실까요? 하나님이 관심을 갖았기에 여러분이 오늘 이 자리에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이 관심을 가지고 있기에 이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다시 시작해봐, 이번에는 내가 도와줄게.” 부디 여러분 마음에 하시는 은혜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부활절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로 시작할 용기를 주시는 절기입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사흘 만에 예수님을 살린 동일한 능력이 여러분을 새롭게 만들 것입니다. 새롭게 살아갈 용기와 힘을 공급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변화될 수 있고 달라질 수 있습니다. 주님을 다시 살린 전능의 능력을 기억하면 여러분의 모든 문제는 사라질 수 있습니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원하시는 분들 그리고 주를 위해 살기로 이미 결단하신 분들, 주님이 배설한 은혜의 식탁에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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