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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백성 선언 (수 8:3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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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수영 목사

  여리고전투와 아이전투에서 놀라운 승리와 어처구니없는 패배를 번갈아 경험한 이스라엘은 가나안 정복을 위한 새 전투를 준비하기 전에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한 가지 장엄한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완전히 섬멸한 여호수아는 아이에서 30여km 북쪽에 위치한 지역으로 백성을 이끌고 갔습니다.  그 지역은 북쪽으로는 에발산, 남쪽으로는 그리심산 사이에 자리 잡은 계곡과 같은 지역이었습니다.

  본문 33절에 보면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했습니다.  하반절에서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했는데 신27:11-13에 보면 실제로 모세는 백성에게 명령하기를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라" 했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그 말대로 온 백성을 두 무리로 나누어 언약궤를 중심으로 여섯지파의 백성은 그리심산쪽으로, 다른 여섯지파의 백성은 에발산쪽으로 모여 서게 한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에발 산에 올라가 하나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았습니다(30절).  왜 에발산입니까?  일찍이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라"(신27:4) 한 바 있기 때문입니다.  또 에발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는 세겜이 있었습니다.  세겜은 아브라함 때부터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확인하며 하나님께 제단을 쌓는 일과 관계가 깊은 도시였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하셔서 칠십오 세에 하란을 떠난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갔을 때에 하나님께 제단을 쌓은 곳이 바로 세겜 땅이었습니다(창12:1-7).  또 형 에서를 속이고 형이 무서워 멀리 외삼촌 라반에게로 도망가 살던 야곱이 자기 아내들과 자식들을 데리고 고향 가나안 땅으로 돌아와 밭을 사고 제단을 쌓은 곳도 세겜이었습니다(창33:18-20).  여호수아는 이 제단을 쌓는 전통이 있는 세겜지역으로 온 백성을 이끌고 와서 온 백성이 지켜보는 가운데 제단을 쌓은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에발산에 쌓은 제단은 모세가 명령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새 돌로 만든 제단이었습니다(31절).  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새 돌로 제단을 쌓았겠습니까?  아마도 쇠 연장을 가지고 사람의 손으로 깎아 우상을 만드는 행위와 유사하게 여겨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가 이방 가나안 족속들의 예배와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름을 가리키기 위한 것이었으리라는 말입니다.  출20:23-25에 보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고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네 양과 소로 네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모든 곳에서 네게 임하여 복을 주리라.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네가 정으로 그것을 쪼면 부정하게 함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너희는 나를 비겨서 은으로나 금으로나 너희를 위하여 신상을 만들지 말라" 하신 말씀과 "네가 내게 돌로 제단을 쌓거든 다듬은 돌로 쌓지 말라" 하신 말씀이 가까이 함께 주어졌음을 볼 때 오늘 본문의 이야기에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않은 새 돌로 제단을 만들라 말씀하신 뜻이 우상을 만들어 세우는 행위를 근원적으로 봉쇄하려는 데에 있음을 짐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약의 백성답게 오직 하나님만을 섬겨야 함을 천명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제단 위에 하나님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드렸습니다(31절).  번제는 제물로 바쳐진 동물을 완전히 태우는 제사로서 제사 드리는 사람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에발산에서 번제를 드린 것은 나라의 죄를 대속하기 위한 의식이었음을 말해줍니다.  즉 여리고에서의 아간의 범죄로 이스라엘 전체가 하나님께 지은 죄를 대속하는 제사를 드림으로써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 아래 있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만백성이 알게 한 국민적 의식이었던 것입니다.

  화목제는 바쳐진 제물을 일부는 하나님께 드려서 제사장들이 먹게 하고 일부는 제사 드리는 사람들이 가족이나 이웃들 사이에서 함께 나누어 먹는 제사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과의 화목, 사람들 사이의 화목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에발산에서 화목제를 드린 사실은 아간의 범죄로 말미암아 손상되었던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화목한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선언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화목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재천명하는 의미를 지닌 국민적 의식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두 산 중 에발산이 그리심산보다 높은 산입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 땅이 널리 내려다보이는 에발산 위에서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것은 가나안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선언하는 것입니다.  가나안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땅임을 밝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감사와 헌신을 다짐하고 하나님과 화목한 관계를 유지해야 그 땅에서 복될 수 있음을 공포한 상징성 큰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여호수아는 거기서 모세가 전해준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돌에 기록했습니다(32절).  오늘 본문에는 명시되지 않았으나 분명 돌 위에 석회를 바르고 그 위에다 기록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쇠 연장을 대서 다듬지 말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돌에 새겨 넣을 수 없었고 돌 위에 쓸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잘 보이게 하기 위해서는 흰 바탕에 써야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바로 모세가 이미 명령했던 바입니다.  신27:4-8을 봅니다: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돌 위에 율법의 말씀 쓰기를 마친 여호수아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했습니다(34절).  35절은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다"고 전합니다.

  이 모든 의식은 결국 하나님과의 언약관계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설 때에 언약궤를 중심으로 그 좌우로 운집했다는 사실만 해도 이스라엘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백성임을 강조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임을 선언하는 이 의식은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위기의 때마다 중요하게 여겨졌습니다.  실로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함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할 것을 다짐하는 것은 흔들리고 흐트러진 백성의 마음을 추스르고 나라의위기를 극복하는 일에 대단히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는 가나안정복을 위한 다음 전투를 향해 출발하기 전에 아간의 범죄와 아이전투에서의 패배로 상하고 어지러웠던 백성들의 마음을 정돈하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을 다지기 위하여 이 장엄한 국민적 의식을 거행했던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31절),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33절),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34절) 라는 표현이 집중적으로 반복되고 있음은 주목할 만한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백성의 승리와 행복과 번영은 오로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며 사는 데에 달려 있음을 강조하는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의 계곡지대를 거쳐 온 백성을 이동시키는 것은 전술적으로는 무모하고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을 바로 뒤따르는 9:1-2에서는 "요단 서쪽 산지와 평지와 레바논 앞 대해 연안에 있는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이 이 일을 듣고 모여서 일심으로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 하더라" 전하고 있습니다.  가나안의 모든 족속들이 작정하고 연합군을 결성해서 포위, 매복, 기습공격을 감행한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독 안에 든 쥐처럼 섬멸 당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여호수아는 그 일을 감행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겠습니까?  여호수아에게는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성실한 순종이고 그 나머지는 하나님께서 다 책임지시고 해결하시리라고 믿는 믿음이었기 때문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본문 34절에 보면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다" 합니다.  사람들 가운데는 이에 대하여 의심하는 이가 있을 수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1~2백명도 아니고 1~2천명도 아닌 온 이스라엘민족이 다 운집한 곳에서 오늘날처럼 확성기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어떻게 여호수아 한 사람이 율법을 읽고 온 백성이 다 들을 수 있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선 이스라엘 백성이 이 의식을 거행하기 위하여 운집했던 에발산과 그리심산 사이의 그 장소는 음향이 뛰어난 곳이라는 연구결과가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두 산 사이의 계곡과 같은 지역을 택하여 백성이 모이게 한 이유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27:11 이하는 실제로 그 율법낭독이 어떻게 이루어졌을지 이해하게 하는 좋은 단서를 제공합니다.  먼저 11-15절을 봅니다: "모세가 그 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여기서 우리는 본문에서 여호수아가 낭독했다는 것은 실제로는 모세가 명령한 대로 여호수아가 지시하여 언약궤를 메는 레위사람 제사장들이 낭독한 것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다" 한 것으로 보아 모든 율법을 낭독한 것이 아니라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다"는 것으로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미 신27:15절에서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했고 모세의 저주명령은 계속됩니다: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16절) ...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18절).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19절) ... 그의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24절).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25절)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26절)."  이렇게 제사장들이 "무엇 무엇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때마다 에발산 쪽으로 선 백성들이 "아멘"으로 화답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레위사람 제사장들이 "무엇 무엇 하는 자는 복을 받을 것이라" 할 때마다 그리심산 쪽으로 선 백성들이 "아멘"으로 화답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신27:12-13에서 모세가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라" 한 뜻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앞서 신11:29에 보면 모세는 이미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으로 너를 인도하여 들이실 때에 너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 명한 바 있습니다.  무엇이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는 길이며 무엇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을 일인지를 바로 알고 서로 확인하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그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임을 우리는 여기서 배워야 할 것입니다.

  축복의 산과 저주의 산 사이에 다 함께 모여 그 땅의 주인이 하나님이시고 자신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선언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하나님으로부터 복 받는 삶의 길을 걸을 것을 한 목소리로 다짐한 이스라엘 백성의 함성이 이 땅에서도 들려지기를 기원합니다.  우리나라도 온 국민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복을 받는 백성의 길을 갈 것을 다 같이 선언할 수 있는 날이 임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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