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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한 가족사랑 (출 12: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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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황영복 목사

“모세가 이스라엘 모든 장로를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고, 너희는 우슬초 묶음을 취하여 그릇에 담은 피에 적시어서 그 피를 문 인방과 좌우 설주에 뿌리고 아침까지 한 사람도 자기 집 문밖에 나가지 말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러 두루 다니실 때에 문 인방과 좌우 설주의 피를 보시면 그 문을 넘으시고 멸하는 자로 너희 집에 들어가서 너희를 치지 못하게 하실 것임이니라. 너희는 이 일을 규례로 삼아 너희와 너희 자손이 영원히 지킬 것이니, 너희는 여호와께서 허락하신 대로 너희에게 주시는 땅에 이를 때에 이 예식을 지킬 것이라. 이 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물러가서 그대로 행하되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명하신 대로 행하니라.”

저는 예수님을 믿고 보이는 가족을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가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자라는 말씀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습니다. 요한일서 4장 20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그리고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것은 요한 일서 3장 16절에 “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고 하였는데 가족을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목숨을 걸고 해야 될 일이 무엇인가 고민하였는데

요한 일서 5장 12절에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영혼을 구원하지 아니하는 것은 온천하를 준다고 하여도 진정한 사랑이 아님을 알게해 주셨습니다. 유월절 어린양이 희생시켜 죽이심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함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어 주심은 저와 우리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요한 일서 5장 16절“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한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러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저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그러므로 영생을 얻도록 전도하여 구원 얻도록 하는 것이 가장 큰 사랑이라는 비밀을 깨닫게 되었습니다.구원의 길은 오직 좁은 길입니다. 그것은??예수그리스도가 구세주 되심을 믿는 방법으로 구원을 받는 방법이 하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예수 믿고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12을 보면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 뜻은 예는 구약의 성막문에서 보여주듯이 넓은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개인이 예수 믿고 구원받은 경우도 있고, 가족이 구원받은 경우도 있고, 민족이 구원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옛날 어느 임금이 현상금을 내걸고 그림그리기 대회를 열었습니다. 그림의 제목은 "가정화목"이었습니다. 경향각지에서 화가들이 모여들어 그림그리기 대회에 참가했습니다. 임금의 깊은 뜻은 모든 백성들의 가정이 화목하고 화락해야 된다는 것을 그림을 통해 계몽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최종심사 끝에 일등으로 뽑힌 그림은 깨끗한 초가집 마루아래 댓돌에 신발 두 켤레가 나란히 놓여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부부가 싸웠거나 뜻이 맞지 않는다면 댓돌에 두 사람의 신발이 나란히 놓여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말 역시 가족의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밀레가 그린 「만종」은 값을 정할 수 없는 명작입니다. 그 그림이 주는 교훈 역시 부부의 화목입니다. 함께 일하는 부부, 함께 기도하는 부부야말로 행복한 부부라는 것을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한 가정은 진정으로 서로 사랑하는 가정이요, 구원받은 가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가족관계에서 문제가 되는 것들(불행, 고통, 절망에 이르게 하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1) 신뢰하지 못 할 때 발생합입니다.

서로 믿지 못하고 의심하고 신뢰하지 못하면 가족관계가 깨트려지고 맙니다. 결혼이란 전혀 모르는 남남끼리 만나서 부부의 인연을 맺고 길고 먼 일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두 사람 사이에 사랑과 신뢰가 성립되지 못 하면 함께 살기가 어렵습니다.

밤이 되면 부부가 잠자리에 듭니다. 그것도 불까지 꺼버립니다. 옆에 누워있는 사람을 믿지 못 한다면 어떻게 눈을 감고 잠을 청할 수 있겠습니까? 내가 잠든 사이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아내가 남편을 위해 음식을 만들어 줍니다. 믿지 못한다면 어떻게 그 음식을 먹을 수 있겠습니까? 사랑과 신뢰의 기둥이 무너져 버린다면 부부도 가족도 원수나 마찬가지가 되고 말 것입니다.

서세원씨가 진행하는 노인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텔레비젼 프로에 출연한 노인부부끼리 낱말 알아맞추기 게임이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거기 출연하는 노인들은 대개 70이 지난 분들입니다. 남편이 부인에게 낱말의 뜻을 말로 설명하면 부인이 낱말을 맞춰야 합니다. 남편에게 주어진 낱말은 「천생연분」이었습니다. 천생연분이란 형이상학적 용어이기 때문에 결코 설명이 쉽지 않습니다. 이말 저말, 이소리 저소리 다 끌어다 설명해도 할머니가 맞추질 못 합니다.

다급해진 할아버지가 "이봐 그거 있잖어" "뭐 말인데유"

"아이 그거, 당신하고 나 사이말여" 이 말이 떨어지자마자

할머니가 진리를 깨달았다는 듯이 "응 그거 원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할아버지는 "아니 네 글자여"라고 말하자

할머니는 "평생원수"라고 대답해 웃음판을 벌린 일이 있었습니다. 서로 숨겨 놓은 죄, 의심, 부정은 가족관계를 깨트립니다.

가정은 하나님이 이루어주시는 선물입니다. 가정은 우리의 육신과 정신의 안식처입니다. 세 상의 보이는 어떤 조건과 환경이 아무리 좋다고 하더라도 가정이 행복할 때에만 그것이 축복 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은 사회의 기본단위입니다. 가정이 건전할 때 사회가 건전하게 되고 가정이 파괴될 때 사회는 그만큼 불안을 가져오게 되는 것입니다. 불화한 가정에서 나간 사람 이 자기가 일하는 데서 바로 책임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가정에서 자란 아이들이 대 개 사회에서 문제를 일으키게 마련입니다.

옛 글에 가화만사성(家和万事成)이란 말은 퍽 의미 깊은 말이라고 생각합니다. 집안이 화평헤야 무엇이든지 잘 이루어질 수가 있습니다. 잠언에도 비슷한 뜻을 가진 말씀이 있었습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 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 여간 채소를 먹으며 서로 사랑하는 것이 살진 소를 먹으며 서로 미워하는 것보다 나으니라. 가정은 화목의 상징입니다. 이 화목이 깨어질 때 가정에서 뜻하지 않은 불상사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기억하시는 대로 인류의 시조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께 범죄하여 에덴 동산 낙원에서 쫓겨난 후 제일 먼저 당한 것이 무엇입니까? 그의 아들 가인과 아벨 사이가 좋지 않아서 구체 적으로 말하면 가인이 동생 아벨을 미워하여 쳐죽였던 살인사건이였습니다.

부모로서 가슴에 못을 박는 고통과 쓰라림은 자식이 부모보다 세상을 떠나는 일입니다. 오죽하면 자식은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옛날부터 오래 사는 수(壽)가 오복(五 福) 가운데 첫째 복에 들지마는 수즉다욕(壽卽多辱)이란 말이 있는 것이 사람이 오래 살다 보면 자식을 앞세우는 욕을 당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식이 병들어 세상을 떠나는 것도 가슴 아픈 일인데 하물며 형이 동생을 미워하여 쳐 죽였으니 그 부모의 아픈마음을 무엇으로 표현할 수 있겠습니까? 부모에게 가장 즐거운 일은 자녀들이 서로 화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여기 젊은이들이 많이 나오셨는데 여러분이 부모에게 효를 다하는 것은 살아계실 때 잘하시기 바랍니다. 잘 대접하고 공경하는 것과부모님 앞에서 형제지간 화목하게 지내는 것이 가장 중요한 효도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진정한 화목과 신뢰는 신앙을 가진 가족간에 온전히 이루어지므로 행복한 가문을 위해서도 신앙의 가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2) 가족들이 가지고 있는 다른 신앙 때문에 발생합니다.

종교가 다르고 신앙이 다르면 가정화목도 어렵고 신앙생활도 제대로 되지 않습니다. 남편은 기독교, 부인은 불교일 경우 서로의 신앙이 다르고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화평을 이루는 것이 어렵습니다. 남편은 이 교회, 부인은 저 교회, 아이들은 그 교회로 헤어져 나가는 것도 바람직한 일이 아닙니다. 가족이 함께 나와 한 교회를 섬기고 같은 말씀으로 은혜를 받고 가족이 둘러앉으면 같은 교회이야기며 받은 은혜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신앙이 다르면 갈등이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3) 성숙되지 못한 신앙으로 살아갈 때 문제가 발생합니다.

그 중에 한가지 편애하는 것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삭은 에서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의 편애가 결국은 형제사이를 갈라놓은 불행의 원인이 된 것입니다. 가족간의 시기, 질투, 분쟁은 가정을 파괴하기에 이릅니다. 그리고 가족관계를 깨트려 버렸습니다. 신앙을 가지고도 성숙한 인격이 되는 것은 시간이 걸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앙의 결국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승리의 가정으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믿음은 결국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하나님의 간섭으로 행복한 결과를 주시기에 신앙은 반드시 우리 가족 전부가 선택해야만 합니다.

2. 건전한 가정,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1) 건전한 인격에 기초되어야 합니다.

건전한 인격에 의한 건전한 사고, 건전한 직업, 건전한 생활을 해야 행복해 질 수 있습니다. 「법학강의총서」 가운데 “형사정책”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 가운데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습니다.

미국 어느 교도소에 1874년 쥬크가의 가족 6명이 죄를 범하고 동시에 수감되어 있었는데 그 후손 709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알콜중독자 131명(18.5%), 매춘부 174명(24.5%), 정신병자 64명(8.6%), 중범죄자 77명(10.8%)으로 드러났습니다.

다른 연구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마아틴칼리마크」라는 병사가 전쟁 중 정신박약 여자와 성관계를 맺고 사생자 아들 하나를 낳았습니다. 그 후 제대하고 독실한 청교도신자인 기독교인과 정식결혼하여 여러 자녀를 낳았습니다. 문제는 그 후손을 상대로 실시한 조사 결과입니다. 이 조사는 지능측정학파의 개척자인 「곳다드」에 의한 것입니다. 사생자의 자손 488명 가운데 정박아 143명, 사생아 36명, 알콜중독자 24명, 간질병자 3명, 매춘업경영자 8명, 중범죄자 3명 등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과 결혼해 낳은 자손 496명 가운데 정신이상자 1명, 알콜중독자 2명이 있을뿐 모두가 정상인이었고, 의사, 변호사, 법관, 교육자 등으로 활동했다는 것입니다.

건전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려면 생각도, 생활도, 직업도 건전하고 건강해야 합니다. 당대를 위해서도 그렇고 후손을 위해서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었던 사울왕과 다윗왕은 그런 면에서 차별화 됩니다.

사울왕조는 당대로 끝나 버렸습니다. 그 아들이 왕 된 것도 아니고 그 후손이 성공하거나 출세한 일도 없습니다. 그러나 다윗왕은 존경과 사랑을 받으며 40년을 통치했고 그 후손이 대를 이어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손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했습니다.

범죄학에서는 멘델의 유전법칙을 따라 범죄가 유전된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후 예배에 우성의 법칙에 의한 진화론이 얼마나 모순되는 가를 자료를 통해 알려 드리겠습니다. 우리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나쁜 것을 물려주지 맙시다. 죄를 물려주지 맙시다. 믿음은 건전한 인격과 건전한 가정, 사랑하는 가정을 만들어 줍시다.

2) 서로 진심으로 사랑해야 합니다.

서론에서 진정한 사랑은 영혼의 구원이라고 알려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도 이웃과 가족을 내몸 같이 사랑해야만 합니다. 시어머니가 새 며느리에게 밥솥에 불을 때라고 했습니다. 밥 해본 일이 없는 새 며느리는 밥물이 넘치는 것도 모르고 계속 불을 때다가 밥은 다 타버리고 솥은 금이가 깨져버렸습니다. 놀라 어쩔 줄 모르고 주저앉아있는 며느리를 시어머니가 위로합니다. "아가야 내가 물을 너무 적게 부어서 그렇게 됐구나 걱정마라. 솥은 다시 사면되고 밥은 새로 하면 된다." 시아버지가 거듭니다. "내가 부엌에 나무를 너무 많이 들여놔서 네가 마음놓고 불을 땠구나 네 탓이 아니다 걱정마라." 새신랑이 한마디합니다. "다 제 탓입니다. 제가 너무 물을 적게 길어와 물이 모자랐습니다. 이 담엔 물을 넉넉하게 길어다 놓겠습니다." 행복한 가정이 되었습니다.

건너 집은 술집이었습니다. 시어머니가 새댁더러 밥솥에 불을 때라고 했습니다. 마음놓고 때다보니 밥은 다 타버리고 솥은 깨졌습니다. 화가 난 시어머니가 소리를 지르며 야단을 쳤습니다. 참다못한 며느리가 "제가 일부러 태웠습니까"라고 한마디하자 곁에 있던 시아버지가 "어디서 배운 버르장머리냐 어디라고 어른한테 턱 치켜들고 덤비느냐"고 호통을 칩니다. "왜 저만 야단치느냐"고 며느리가 한마디하자 신랑이 나서더니 "어디서 시부모에게 말대꾸냐"며 귓방맹이(뺨)를 쳤습니다. 얻어맞은 신부는 "죽여라 살려라"며 악을 쓰면고 덤비게 되었습니다.

뭐가 다릅니까? 무엇이 이토록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 냅니까? 그것은 이해와 사랑의 방정식 때문입니다. 사랑의 눈으로 보면 남편도 아내도 사랑스럽고 며느리도 사위도 예뻐보입니다. 그러나 미움의 안경을 끼면 모두가 다 원수로 보입니다.

고부간에 갈등이 있다고 하지만 시어머니가??"아가야 사랑한다" 라고 해보시기 바랍니다. 모두 일곱 글자입니다만 며누리가 그렇게 기뻐하고 좋아한답니다.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 글자 수로 네 글자가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킵니다. 가정을 낙원으로 만듭니다. 그러나 다듬지 않은 말 한 마디가 가족의 마음에 비수를 꽂,고 형제의 가슴을 쓰라리게 만들고, 가정과 교회를 파괴시킵니다.

요한1서 3:11에서 사도요한은 "서로 사랑하라"고 했고, 15절에서는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바라"고 했습니다. 신앙으로 서로 사랑하는 가정을 만들고 교회를 만듭시다.

3) 구원받아야 합니다.

창세기 6장에 보면 하나님을 만드신 세상이 처음 만드실 때에는 아주 좋았는데 시간이 흐름에 따라서 점점 나빠졌습니다. 처음에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였고 만물을 다 지으시고 나중에 인간을 지으신 다음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던 인간이 그만 타락하고 나아가서는 하나님을 반역하게 되 어 세상은 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무엇이고 자기의 본분을 다할 때는 아름답고 좋으나 그 본분을 다하지 못할 때 더러워지고 마는 것입니다. 꽃이 아름다우나 꽃이 피어 아름답고 향기를 발할 때 좋은 것이지 꽃이 지면 썩어지고 냄새를 내는 것입니다. 짐승도 살아서 움직일 때 요긴하고 귀엽지 병들고 죽어지면 썩은 냄새 밖에 날 것이 없습니다. 만물의 영장인 인간은 더욱 그러합니다. 살았을 때 아름답지 병들고 죽으면 세상에서 제일 더러운 것이 사람입니다. 제일 무서운 것이 시체입 니다. 그래서 멀리 묘지에 깊이깊이 묻어버리고 맙니다. 짐승이 죽은 것은 거름이라도 하지만 사람이 죽은 것은 아무데도 쓸 수가 없습니다.

육체 뿐만 아닙니다. 영혼이 있기에 사람은 귀한 것인데 이 심령이 살아 있을 때에야 사람답게 살고 사람으로서 의 고귀한 가치를 발휘하게 되는데 그 심령이 죽어 놓으면 세상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입니 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에 인간의 심령이 타락해 놓으니까 만물이 탄식할 정도로 악해졌습니 다. 창세기 6장 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 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하 였습니다.

그렇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할 인간이 하 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아니할 때 그때에는 하나님에게 큰 근심이 되고 무거운 짐이 되는 것입 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이 가는 길이란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반역하는 일입니다. 아무 리 그 지혜가 비상하고 문화를 발전시킨다고 하더라도 결국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길로 걸어가 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 땅 위에서 모든 인간과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에 나는 새들까지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것이 소위 물의 심판이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노아 때 홍수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세상이 악해서 하나님에게 근심이 될 지경이요,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후회 할 지경에 이르렀지마는 전부가 다 그런 것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창세기 6장 9절에 노아는 의인이요 세상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하였습니다. 악인들이 세상 을 잡고 흔드는 세상이었지만 의인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거역하는 사람이 땅에 가득 했으나 그래도 그런 중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노아였습니다. 이 얼 마나 귀한 일입니까? 성경이 말하는 대로 노아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은 사람 이었습니다.

그래서 노아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혈육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하시면서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 주를 만들되 그 안에는 칸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하시고 그 방주의 규격까지 그 모양을 자세히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은 노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노아의 믿음이 아닙니까?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처럼 믿었습니다. 노아가 500살이 되었을 때인데 이제 이 땅을 홍수로 멸하시겠다고 하시니 생각해보면 과거 수 천년 동안 이런 일이 없었는데, 더구나 내가 500년을 살 때까지 이런 일이 없었는데 하며 이 치를 따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니 그대로 믿은 것 뿐입니다.

믿을 뿐만 아닙니다. 그대로 행했습니다. 큰 배를 지었습니다. 산에서 잣나무를 가져다가 짓는 큰 공사였습니다. 그것도 1년, 2년 정도의 공사가 아니었습니다. 120년이란 기간이 걸렸 습니다. 더구나 그렇게 큰 방주를 바닷가에서 짓는다면 몰라도 바다와는 먼 육지에 배를 짓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노아가 하는 일에 함께 시키는 대로 일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것 은 하루에 얼마씩 품값을 받기 위해서 일한 것 뿐이고 그들에게 믿음이 있어서 노아처럼 하나 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일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마 우리 짐작이지만 노아의 지시에 의해서 품삯을 받고 일을 하면서도 노아가 잠시 떠나 기만 하면 자기들끼리 모여 앉아 노아를 흉보았을 것입니다. 흔히 젊은 사람들이 나이 많은 사람들이 하는 일에 대하여 마음에 들지 않을 때 하는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저 영감님 망 령이셔, 저 할머니 노망이셔 합니다.

아마 노아와 같이 일하는 사람들이 모여만 앉으면 노아는 듣지 못하게 저희들끼리 저 영감 이 아마 이젠 정신이 좀 이상해진 것 같아 그까짓 것 우리는 일하는 자리가 생겼으니 상관할 것 없지마는 아니 이런 큰 배는 무엇하러 이렇게 만들지? 더구나 이런 배를 어떻게 바다에 끌고 가지? 뭐 이제 얼마 있으면 그 영감님 말대로 하면 큰 홍수가 난다고 하는데 홍수나면 산 으로 올라가면 될테지 무엇 때문에 이런 물질과 시간의 낭비를 하는가 말이야.

아 그러기에 망령이라잖아. 우리야 굿이나 보다 떡이나 먹으면 될 것 아니야,

글쎄 그건 그렇고, 저 노아 영감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을 믿으라 하는데 우리가 어쨌다는 거야. 아 그러면 우리도 자기처 럼 이런 미친 노릇하며 살라는 건가? 이런 대화 끊이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왜요? 이건 제가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성경에 보면 노아의 날에, 노아가 방주를 예비 하는 날에 오래 참고 기다렸으나 순종치 아니하다가 멸망하였다고 했습니다. 노아는 그들에게 열심히 전도하였습니다. 그들을 위해서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들은 척도 하 지 아니하였습니다. 망령으로만 여겼습니다. 노아와 그 당시의 사람의 차이가 무엇입니까? 노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 하나님을 잊었습니다. 노아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보이는 분처럼 섬기며 살 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보이는 것만 위해 살았습니다. 노아는 120년 동안을 애써서 하나님 을 위해 일했으나 그의 여덟 가족 외에는 모두가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았습니다.

예나 지금이 나 신앙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소수입니다. 작은 무리(minority)입니다. 노아는 그 수많은 사람이 하나님을 모르고 살아 장차 멸망당할 것을 바라보면서 얼마나 불 쌍히 여겼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오히려 많은 사람들은노아의 가정을 동정하였습니다. 그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노아의 말을 헛소리로 들었습니다. 그저 늙은이의 망령으로 여겼습니다.

악한 세대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진리의 말씀을 귓등으로 듣습니다. 왜요? 이치에 맞지 않으니까요, 비과학적이라고 생각하니까요. 그러나 오후 예배 서교의 제목 그대로 성경은 가장 과학적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에 소돔성에 있던 롯의 가정을 하나님의 사자가 건져낼 때 네 식구 그러니까 롯의 처와 두 딸 그리고 정혼한 두 사위를 빨리 데리고 소알까지 피하라고 하였으며 이제 곧 하늘에서 불이 내려 이 소돔성이 망하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이 사실을 롯이 자기 사위감 될 사람 들에게 말했더니 그 사위들의 반응이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 19장 14절에 롯이 나가서 그 딸들 과 정혼한 사위들에게 고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 성을 멸하실터이니 너희는 일어나 이곳에 서 떠나라 하되 그 사위들이 농담으로 여겼더라 고 하였습니다. 진리를 말하나 농담으로 여기는 세대는 악한 세대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어떻 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농담으로 여기지 않습니까? 롯의 경고를 농담으로 여기던 두 사위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불의 심판을 받고 말았습니다.

출애굽기 12장은 유월절을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탈출하던 날 밤 애굽전역에 장자 죽이는 재앙이 임했습니다. 장자를 죽이는 사자가 집집마다 찾아가 장자는 무조건 죽였습니다. 그런데 양을 잡고 그 피를 문인방과 좌우 문설주에 바르고 뿌린 집은 천사가 그냥 넘어갔습니다.

중요한 것은 본문 12장 21절입니다. "너희는 나가서 너희 가족대로 어린 양을 택하여 유월절 양으로 잡으라"고 했습니다. "가족대로"라는 말을 주목해야 합니다. 가족대로 믿고 순종해야 구원 받는다는 것입니다. 아무도 믿지 않고 어머니 혼자 믿는다고 가족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누가복음 16:28을 보면 지옥간 부자의 호소가 나옵니다. "내 형제 다섯이 있사오니... 이 고통받는 곳에 오지 않게 하소서"... 그는 지옥 불 속에서 가족구원을 하소연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절당했습니다. 이유는 살아서 믿어야 하고 전도자의 전도를 받고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사도행전 10:2을 보면 고넬료라는 로마군 장교는 "온 집으로 더불어 하나님을 경외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가족을 구원해야 합니다. 함께 예수 믿고 함께 교회나오고 함께 기도하고 영원한 나라의 상급과 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교회생활에 열심을 내야할 뿐만아니라 섬기며, 봉사해야 합니다. 그래야 당대도 후대도, 그리고 오늘도 내일도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했습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먼저 복음을 받은 이유를 성경이 말씀하는 것입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는 이 말씀을 받고 자신이 구원받을 뿐 아니라 온 가족이 세례를 받고 예수 믿어서 빌립보 교회의 창립멤버가 되었습니다.

여호수아 2장8-14절을 읽어보면 라합은 자신이 믿음으로 구원을 얻지만 자신만 구원 얻기를 원하지 않고 자기의 부모 형제, 나아가서 자기 친족을 다 구원하여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여호수아 6장에 보면 라합의 요청대로 여호수아가 들어주므로 그 가족이 다 구원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들을 통하여 우리 가정을 복음화 시키기로 작정 하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올해는 여기서 더 나아가서 우리 가정 뿐 아니라 우리 가문에까지 복음을 전해 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통하여 우리 가문까지도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기생라합은 자신만 아니라 자기 부모 형제 또 나아가서 자기 친족까지 구원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세상에 무엇을 욕심내어 살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먼저 나와 상관된 사람들을 나를 통해서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말한대로 여러분들을 예수 믿게 하신 것이 이 때를 위함인줄 누가 알겠습니까? 자기 가족 구원에 욕심을 내는 것은 성령의 소욕입니다. 만일에 내가 가문의 여러 친족 가운데 먼저 복음을 받고 구원을 얻었습니까? 그러면 우리 가문에서 신앙생활하는 데는 여러 어려움도 있을 것이지만, 우리 가문을 내게 붙이신 것으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기생라합도 자신은 먼저 믿고 구원을 받았지만 자기가 믿는 믿음을 가족들과 또 친족에게까지 전하여 줄 때는 어려움이 많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신분이 기생이라 집안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했을 것이라 짐작되는데 이런 여인이 이스라엘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면 구원을 얻는다는 말을 했을 때에 배신자로 생각도 했을 것이고 그로 인하여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0장 34절에는 주님께서 말씀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비와, 딸이 어미와, 며느리가 시어미와 불화하게 하려함이라"했습니다. 아직도 믿지 않는 가문에 복음을 받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숨어서 가만히 하기도 어려운데, 예수 믿으라고 복음까지 전하면 어떻게 핍박이 없겠습니까?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화평을 주려고 온 줄로 생각지 말라 먼저는 검을 주려고 오셨다는 것입니다. 불화가 있어야 복음이 전파된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 가정에 전쟁과 불화가 있습니까? 평안한 집안에 내가 예수님을 믿는 것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불화가 있는 것을 겁을 내면 안됩니다.

어느 단체든지 나라든지 왕이 둘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 집안이 하나님을 섬기지 않으면 마귀를 섬기는 것인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시작하려하면 마귀가 발악을 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 때에 화평케 되는 것은 두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불화가 일어나고 전쟁이 일어나니 내가 신앙을 양보하고 마귀의 역사에 눌려서 항복을 하면 전쟁이 그치고 화평이 옵니다. 그러나 그 화평은 귀신이 왕되어서 싸움이 없는 거짓된 화평입니다. 불목이 있고, 전쟁이 일어나도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 나라가 우리 가정과 가문에 세워져서 왕이 하나님이 되었을 때에는 참된 화평이 있게 됩니다. 이 때까지는 검과 불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볼화를 일부러 일으키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지혜롭게 전도해서 구원할 수도 있습니다.

이번 달에는 우리 가문을 복음화하는데 까지 힘을 써봅시다. 이를 위해서 나를 우리 가문에 전도자, 선교사로 세우신 줄을 믿으십니까?  대대로 믿어오는 가문입니까?  우리 사촌이나 조카들이나 신앙생활을 포기하고 세상으로 나간 사람들이 많지 않은지 살펴봅니다. 이 분들을 위해서 기도합니다. 처가에는 이단에 빠진 형제들도 있는데 이들도 위해서 기도합니다. 기도로 준비하고 편지를 새삼스럽게 쓰든지 새삼스럽게 전화를 하든지 새삼스럽게 방문을 하든지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 전합시다. 어쩌면 우리 부모형제 친척이 내게는 땅끝이 될 수있습니다.

선교헌금도 하고 이웃에게는 복음을 전하면서 아직도 내 남편, 내 자녀들에게는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내 남편이 구원받지 못했다면 그들이 예수님이 말한 전도해야 할 선교지의 명령지 땅끝이 됩니다. 나의 가족들과 이웃들과 동료들에게 복음을 전합시다. 라합은 직업이 사람들로 부터 인정받지 못했으나 그들의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었기에 자기 가족을 모두 구원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요!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기도하십시요!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주 예수를 믿으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하지 않았습니까? "우리 부모 형제를 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줄 믿습니다. 구원하여주옵소서"라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전도해야합니다.

라합의 믿음은 자기가 먼저 시작한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전도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전도하기를 기다릴 수 없습니다. 야고보서 2:26절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내 가족은 내 가문의 여러 친척들은 내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명을 받았습니다.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는 말씀을 믿음으로 기도하시고 믿음으로 전하셔서 귀한 열매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 16:31)는 말씀은 하나님의 놀라운 약속입니다. 동시에 가족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므로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여 가족들을 사랑하시기를 바라며, 하나님께서 우리 가정에 구원의 약속을 주신 것임을 믿고 신앙의 가문을 이루는데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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