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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전한 인생 (마 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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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박영준 목사

지난 주간에 두 건의 장례식이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한 분은, 우리교회의 집사님 어머니입니다.
94세 되신 권사님께서, 은혜롭게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아 가셨습니다.
그 연세가 되도록, 사랑하는 따님을 위해서, 어머니의 역할을 하시다가, 몸을 상하여 몇 개월간 누워 계시면서 치료 받으시다가, 하나님 나라로 가셨습니다.
외할머니의 돌봄으로 자란, 외손녀들이 슬퍼하는 가운데, 어제 우리교회 식구들이 참례해서, 장례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리고 또 한분은, 김포 시청의, 54세 된 과장 한분이, 강화 대교에서 투신자살하여, 지난 금요일, 시청 마당에서 노제를 지내며, 장례식을 치렀습니다.
그분이 다니던, 교회의 목사님을 통해서 들은 이야기입니다만, 지난날 뇌졸중으로 인해, 수술한 이후로, 우울증세가 있었기 때문에, 그 일로 그런 것이 아닌가하는 추측도 있습니다만, 부부관계와 형제들과의 관계 때문에, 많은 고심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한 창 일할 나이에, 아내와 자녀들을 남겨두고, 자살해 죽어야 할만한 일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자살 율은, 세계적으로 상위권에 속합니다.
 
왜 이런 일들이, 곳곳에서 벌어지는 것일까요?
뭔가 부족하여, 그런 것이 아닐까요?
나 스스로 채울 수 없는, 그것 때문에 그런 것 아닐까요?

사람이 완전할 수 있습니까?
우리 주변에 완전한 사람이 있습니까?

******어느 사람이 완벽한 여성을 만나기 위해 세계여행을 했습니다. 
완벽하지 않은 여성과는 도저히 살 수 없다고 생각했기에 완벽한 여성을 찾기 위해 여행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온 세상을 헤매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완벽한 여성을 만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는 완벽한 여성을 만나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친구가 찾아와 물었습니다.
“자네, 결국 완벽한 여자를 찾는데 평생 허비했구먼. 그렇게 완벽한 여자가 단 한명도 없던가?”
“꼭 한명 있었다네. 우연히 정말 완벽한 여자를 하나 만났었지.”
친구가 깜짝 놀라 물었습니다.
“그래, 그래서 어찌 되었나?”
그러나 그는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습니다.
“어떻게 됐냐구?”
“그녀는 완벽한 남자를 찾고 있더군. 그래서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그런데 그 완전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학력과 지식, 직업과 돈, 지위와 명예, 외모, 성격, 가문.....
무엇이 완전한 조건입니까?
이 모든 것이 갖추어지면 되는 것입니까?
또 이런 사람이 있습니까?

[웨슬레]는 “이 지상에는 여하한 ‘절대적 완전’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지식이 있다 하더라도 그 지식은 불완전하고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전지와 무과오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세상에 완벽이란 없습니다.

자! 그런데,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완전 하라.”고 하십니다.
완전함이라고는 없는 이 세상에서 우리에게 완전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 하라”(48)고 하십니다.
‘온전 하라’는 말은 ‘완전 하라’는 말입니다.
‘퍼팩트’라는 말입니다.
    ‘온전 하라’ = ‘완전 하라’ ‘퍼팩트’
오늘 이 말씀뿐만 아닙니다.
이외에도 성경에 완전 하라는 말씀이 여러 차례 나옵니다.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완전하라고 하십니다.
“아브람의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 하라.”(창17:1)

[모세]도 동일한 말씀을 하십니다.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완전 하라”(신 18:13)

사도 [바울]도 교회를 향하여 온전케 하라고 합니다.
고린도후서의 마지막 당부의 말로 온전하기를 권면합니다.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형제들아 기뻐하라. 온전케 되며 위로를 받으며 마음을 같이하며 평안할 지어다. 또 사랑과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거룩하게 입맞춤으로 서로 문안하라.”(고후13:11)

성경의 인물 가운데도 하나님께서 온전하라고 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아]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6:9)
[욥]에 대해서도 그렇게 말씀하십니다.
“우스 땅에 욥이라 이름 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순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욥 1:1)

그렇다면 세상에서 ‘완전, 완벽한 사람은 없다, 완벽할 수 없다’라는 말은 잘못된 말입니다.
완전할 수 없다는 것은 인간의 변명입니다.
인간적인 기준으로는 완벽 이, 어느 정도인지 알 수 없습니다.
죄인이 죄인을 판단하기 때문에 그리고 욕심은 끝이 없기 때문에 완벽이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서 완전함은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완전하시면 그분의 형상을 닮은 우리 또한 그 완전함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분의 성품, 그분의 능력, 그분의 약속..... 모든 면에 하나님은 온전하신 분이십니다.
이 온전하신 하나님이 온전하라고 하면 온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 보세요.
‘온전하다’는 말은 ‘텔레이오스’라는 말입니다.

  ‘온전하다(텔레이오스)
  1. 목적, 목표
  2. 흠이 없다. 분할되지 않고 성숙되다.

이 말은 두 가지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목적’ ‘목표’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흠이 없다’ ‘분할되지 않고 성숙되다’는 뜻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온전함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막연히 추상적이고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렇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임을 알게 됩니다.
이 뜻을 통해서 보십시다.

1. 목적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먼저, 우리가 완전하게 되는 것은 우리를 지으시고 우리를 부르시고 세우신 하나님의 계획, 뜻에 합당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목적’ ‘목표’라는 말은, 어떠한 것이 만들어진 목적을 완전히 이룰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지으셨습니다.
나에게 재능과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이 세상에 보내셨는데 그 보내신 목적을 알고, 그 분의 뜻을 온전히 이루는 것입니다.
크고 작은 차원이 아닙니다.
많고 적음의 차이가 아닙니다.
내게 주신 일, 나를 보내신 목적을 그분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그래서 [맥도널드]라는 사람은,
“우리는 어떤 물건이 계획된 대로의 목적에 이바지하게 될 때 그 물건을 완전한 것이라고 말하게 된다. 그 물건을 고안한 사람이 목적한 대로의 일을 하게 된다면 그런 의미에서 그 물건은 완전한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과 힘을 공급받아, 우리를 지으신 목적,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을 향하여 바로 나아갈 때, 우리는 완전한 삶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붙이신 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내 마음에 합한 자”입니다.
사도행전 13:22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사울을 “폐하시고 다윗을 왕으로 세우시고 증거 하여 가라사대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시더니”

사랑하는 여러분!
[다윗]이 관연 하나님의 마음에 쏙 들도록 완전한 자요, 완벽한 자였을까요?
[다윗]의 면면을 돌아보면 다윗 안에는 부족한 점이 많았습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여러 차례 범죄 했습니다.
[밧세바]와의 간음, 인구조사, 그리고 그 아들들의 범죄와 반역....
이러한 다윗임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온전히 행했다’고 하시면서 ‘내 마음에 합한 자’라고 하십니다.

[다윗]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향한 뜻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왕으로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한 사람으로, 하나님께 부름 받은 한 사람으로서 그는 진실하게 하나님 뜻에 순종하면서 갔던 것입니다.

인간적인 잣대로 보면 그도 불완전한 자입니다
부족한 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마음과 자세와 태도를 보시고 온전하다, 내 마음에 합하다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부족함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모자람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나를 향하신 그 목적과 뜻을 향하여 진실하게 나아가다 보면 우리를 온전하다 하시는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의 마음으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의 의미를 깊이 알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하나님의 그 뜻으로 살아갈 때 이것은 또 하나의 완전한 삶의 내용입니다. 
우리가 처음부터 완전하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나를 부르시고 세우신 목적과 뜻을 알고 나아가면서 그분의 말씀 안에서 또한 더 깊은 삶이 되도록 힘쓰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의 내용들을  보십시오.
예수님께서 율법을 새롭게 해석하시는 말씀이 앞에 있습니다.
인과응보의 원리에 대해 오히려,
‘오른 뺨을 치면 왼편을 돌려대고 누가 송사해서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주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오리를 가자고 하면 십리를 가라’고 하십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원수를 미워하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오히려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십니다.
바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정신입니다.
이러한 정신, 이러한 마음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성숙되어져 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다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온전 하라’고 하시는 것은 우리가 생각하는 그러한 완벽 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우리에게 주어진 목적의 삶을 바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부름에 따라 순종하며 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곧 하나님이 사랑하시기에 우리도 사랑의 정신으로 사랑 그 자체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하게 사는 방법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이 완성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
롬 13:10절에서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 이니라”(롬13:10)
이러한 삶을 살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적인 기준과 다릅니다.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사랑, 은혜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율법 안에서 인간의 규범 안에서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인간적인 잣대로 갈 때, 율법의 잣대로 갈 때는 더더욱 힘들어질 뿐입니다.
완전 이 아니라 더욱 불완전으로 나아가게 됩니다.
왜요?
율법의 잣대 안에서는 더 죄인 됨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 제게 흰 와이셔츠가 몇 개 있습니다.
긴 팔과 짧은 팔들인데 몇 년 된 것들입니다.
무늬나 색상의 진하기의 차이는 조금씩  있지만, 별 문제없이 잘 입었습니다.
다 깨끗하다고 생각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얼마 전 새 와이셔츠를 한 벌 사서 다른 옷들과 함께 걸어 놨는데  비교가 되었습니다.
이건 완전히 아닌 것입니다.
1년 2년 된 것들이 있는데 색이 다 변질되고 옷들도 허물허물한게... 영 아닙니다.
도대체 입고 싶은 마음이 들지가 않는 것입니다.
너무나도 낡아 버렸습니다.

새 와이셔츠가 바로 율법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항상 새 와이셔츠가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낡고 둔감해 집니다.
우리는 점점 죄로 인해 오염됩니다.
그래서 율법 앞에서 인간의 기준 앞에서는 완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흔히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 자기와 가까이 하는 사람, 자기에게 유익을 주는 사람만을 사랑하게 됩니다.
물론 이런 자들을 사랑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른 믿지 않는 자들도 이런 사랑은 다 할 줄 안다고 하시며 사랑에 있어 더욱 성숙하고 온전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도들이라면 반쪽만이 아니라 온전한 사랑을 줄줄 알아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차츰차츰 나와 가깝지 않은 사람일지라도 나에게 유익을 주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비록 손해를 주었던 사람일지라도 사랑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도록 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비를 내리시기를 의로운 자나 불의한 자에게나 똑같이 내리신 것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완전할 수가 없기에, 우리가 율법을 행한다고 해서 완전할 수 없기에, 우리를 위하여 자기를 내어 주셨습니다.
그 사랑 안에 있게 하십니다.
그 십자가 안에 있게 하십니다.
그 십자가 안에서 우리는 완전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의 사랑과 은혜 안에서 우리는 정결하게 되고 거룩함으로 나아가며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아무리 우리가 낡았어도 은혜 안에서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새로운 사람입니다.
새로운 사람으로서 우리의 낡은 것을 버리기 위해 힘쓸 때 우리는 완전함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그 사랑을 알고 그 은혜 안에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 은혜 안에서 보고, 그 은혜 안에서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하다 하십니다.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우리는 온전할 수 있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온전할 수 있습니다.
사실 우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데 ‘이건 할 수 없어, 이건 안돼’라고 스스로에게 거절 했던 일들을 가만히 한번 생각해 보십시다.
정말 할 수 없는 일이었는지요?
자신이 없어서 용기가 없어서, 아니면 다른 욕심 때문에 하지 않은 것이지, 정말 할 수 없던 일인가 하면 아닙니다.
막상 시간이 지나고 나서 보면 다 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리석게도 피곤하다. 힘들다. 스스로에게 변명하고 포기하고, 또 게을러서, 다른 욕심 때문에 할 수 없다고 했고, 하지 못했던 것들입니다.
그러나 막상 지나고 나서 보면 할 수 있었던 것들입니다.
정말 할 수 없었던 것들이 얼마나 되던가요?

온전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지금 내가 할 수 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에 내가 그 분을 배우고 내가 그 분 안에 있으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믿음이 이깁니다.

*** 믿음이 이기네. 믿음이 이기네.
  주 예수를 믿음이 온 세상 이기네.

우리는 온전함을 위하여 겸손히 나아가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부족한 것은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루하루 목적에 따라 살아가고 그분의 마음을 가지고 나아가고 닮아갈 때 그 온전함을 이룰 수가 있습니다.
나는 어느 정도인지 모르지만 내가 그러한 마음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나를 기뻐하시고 ‘온전하다’ 하실 줄 믿습니다.
하루하루 조금씩 가는 것입니다.

***** 일전에 [미켈란젤로]를 방문했던 한 친구가 다시 작업실을 찾아갔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조각품을 만들고 있는 것을 보고 “내가 전번에 들렀을 때 이후로 작품이 별로 진척된 것이 없군.”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조각품을 가리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부분을 다시 손질했고, 그것을 좀 닦아 내고, 부드럽게 만들고 근육을 세우고 입술에 액선트를 조금 주었지. 그리고 손 말에 더 힘을 주었다네.”
“그건 뭐 하찮은 것 아닌가?”
그러나 [미켈란젤로]가 대답했습니다.
“그럴지도 모르지, 그러나 하찮은 것들이 모여 완전함을 이루는 법이라네. 완전에는 결코 하찮은 것이 있을 수 없다네”

그는 아주 작은 것도 온 힘을 기울여 만들 줄 알았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세상에서의 역할들이 각각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 역할들을 온전히 감당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맡겨진 역할들을 충실히 감당하고 있으며 온전히 이어가고 있습니까?
이것은 바로 온전한 성도가 되는 튼튼한 발판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혹시 여러분은 지금 낙망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온전하고자 노력해 보았지만 조금 지나면 실패하고 또 실패하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말입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실망하지 마십시오.
그런 실패는 주님이 다시 오실 때 완성될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낙담하지 말고 모든 일에 온전하도록 경주해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오직 그날이 올 때까지 변함없이 꾸준히 온전함에 이르도록 노력하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루하루 내가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간다는 의식으로 살아가십시오.
하루하루 내가 더 성숙되고 내가 더 온전한 삶으로 나아간다는 믿음으로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리한 우리의 삶을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받으십니다.
그러한 우리를 ‘이는 내 마음에 합한 지요, 온전한 자라’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이런 성도들에게 분명 상급을 주실 줄로 믿습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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