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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눅 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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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이수영 목사

  예수님께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말씀하시며 자신의 공생애를 시작하시기에(마4:17) 앞서 바로 그 말을 외치는 소리가 유대 광야에서 먼저 일어났습니다(마3:1-2).  세례 요한이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몇 절 앞인 2-3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요한이 요단강 부근 각처에 와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다고 알리고 있습니다.  이 세례 요한의 출현과 그가 외치는 소리는 곧 많은 반향을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마3:5-6은 "이 때에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요단강 사방에서 다 그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7절에 보면 요한은 자기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아오는 무리를 향하여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하며 강하게 비난했습니다.  요한이 그렇게 말한 것을 보면 그에게 세례 받으러 나아온 사람들 대부분이 진정한 회개는 하지 않고 그저 닥쳐올 하나님의 진노만을 피해보겠다는 심사였던 것 같습니다.  마3:7에 따르면 요한이 많은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이 세례 베푸는 데로 오는 것을 보고 그 말을 했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증언들에 의하면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자들로서 형식적인 율법준수자들이었고 사두개인들은 세속적인 타협주의자들이었습니다.  훗날 그들은 서로는 대립하면서도 모두 예수님께 적대적이었고 또한 모두 예수님으로부터 신랄한 비판과 엄한 책망을 받곤 한 것으로 보아 요한에게서 그런 험한 말을 들을 만 한 자들이었으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요한은 이어서 그들에게 말하기를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라"(8절) 한 것입니다.  회개는 말로만 하고 형식적으로만 해서는 진정한 회개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회개란 행동으로 옮겨지고 삶에서 열매 맺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또한 자기에게 세례 받으러 나아오던 사람들을 향해 말하기를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8절) 했습니다.  아마도 그들은 속으로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인데 설마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겠지. 그저 회개의 세례만 받으면 안전할거야"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요한은 "어림도 없는 소리. 꿈도 꾸지 말라"고 못 박으며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8절).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을 혈육상 조상으로 갖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그 족보 하나 가지고 하나님이 내리시는 진노와 심판과 멸망을 피하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삼고 그의 믿음을 본받으며 참으로 회개하고 그 열매를 맺는 삶을 살지 못하면 길가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는 인생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요한은 돌멩이보다 못하게 살아온 인생들, 좋은 열매 맺지 않는 나무 같은 인생들은 이제는 언제라도 닥칠 수 있는 하나님의 심판을 심각하고 시급한 일로 여기고 빨리 참되게 회개할 것을 촉구합니다.  9절을 봅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인생은 주님 다시 오실 그 때뿐 아니라 이미 이 땅에서의 삶 중에 하나님의 심판의 도끼를 맞을 수 있음을 경고하며 회개하라고 압박한 것입니다.

  요한의 이러한 무서운 경고를 들은 많은 사람이 당황하고 두려워하며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10절)  이에 대해 요한은 대답했습니다: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먹을 것이 있는 자도 그렇게 할 것이니라"(11절).  복음서의 이야기들을 들여다보면 이 당시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통치 아래에서 대부분 가난과 온갖 질병 가운데 지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헐벗고 굶주리는 사람들이 많았던 것같습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는 염려가 모든 사람에게 일상화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때에 옷 두 벌 있는 사람이 옷 없는 사람 생각하지 못하고, 먹을 것이 남아도는 사람이 먹을 것 없는 사람에게 관심 갖지 않는 것은 큰 죄가 아닐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 죄는 깨닫지 못하고 그저 물로 세례만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악하기 그지없는 생각이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자들은 요한에게서 뿐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도 "독사의 자식들아"라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대부분이 어려울 때에, 그래서 가진 자들의 관심과 나눔의 정신이 절실히 필요할 때에 "내가 남의 것 훔치거나 빼앗지 않았고 내 것 가지고 내 맘대로 하는데 무슨 잘못이냐?"라는 항변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한 마디로 독사의 자식일 뿐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 사회에 해롭기만 하고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을 사람들입니다.  소리 안 나게 숲이나 땅 속에 숨어서 먹이를 노리다가 불길이 지면에 번지면 스르르 기어 나와 재빨리 도망가는 독사처럼 이 사회에 항상 해로운 존재로 있다가 위기가 닥치면 혼자 살아남겠다고 제일 먼저 도망치는 이기주의자들과 개인주의자들은 다 독사의 자식들인 것입니다.  세례 요한뿐 아니라 예수님께서도 그러한 자들을 향해 준엄한 심판을 선고하셨습니다.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사회적 관심이 결여된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요한에게 세례 받고 하나님의 임박한 진노의 심판을 피해보겠다고 나아온 자들 가운데는 세리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세리들도 요한의 그 준엄한 경고에 겁이 난 모양입니다.  그래서 그들도 요한에게 물었습니다: "선생이여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12절)  이에 대한 요한의 대답은 "부과된 것 외에는 거두지 말라"(13절)는 것이었습니다.  당시의 세리들은 유대 백성으로부터 가장 미움과 경멸과 정죄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우선 침략국이며 지배국인 로마제국을 위하여 일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래서 매국노로 여겨지던 자들입니다.  그들은 로마정부를 위해서 바치도록 부과된 세금만 백성에게서 걷지 않고 자기들 자신의 치부를 위해서 상부에서 부과된 세액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걷어 횡령하고 착복하기를 일삼았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동족에게 고통을 주는 민족반역자들이었습니다.  탐욕의 노예가 되어 자신의 호의호식을 위해 일종의 사기행각과 강도질과 토색을 일삼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러기에 유대인에게서 세리는 언제나 죄인과 창기와 함께 나란히 언급되곤 했습니다.  요한은 그런 자들의 정직하지 못함을 질책하며 회개하라고 일갈한 것입니다. 

  요한에게 나아온 자들 가운데는 군인들도 있었습니다.  여기서 군인들은 로마병정들이 아니라 유대인병사들이었습니다.  로마제국의 지배 아래 있던 유대인들이 자체의 군대를 갖고 있었을 리가 없었기에 사실 그들은 군인이라기보다는 일종의 경찰이었다고 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세리들이 세금 징수하는 일을 도우며 그들을 보호하는 일을 주로 하는 경찰들이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세금을 내기 힘든 사람에게서 억지로 세금을 걷는 일을 맡아 해주거나 부당한 과세에 저항하든가 세리에게 분풀이 하려는 사람들을 공권력으로 제압하거나 관가에 끌고 가는 일들을 했을 것입니다.  또 그들은 그들이 받는 급료에 만족하지 않고 재물을 모으기 위해 세리들과 밀착하여 백성을 착취하는 일을 거들었거나 단독으로 재물을 갈취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이런 군인들도 요한의 준엄한 경고를 듣고는 요한에게 "우리는 무엇을 하리이까" 물은 것입니다(14절).  이에 요한은 답하기를 "사람에게서 강탈하지 말며 거짓으로 고발하지 말고 받는 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14절) 했습니다.  자신의 개인적 탐욕을 채우기 위해 남에게 폭력을 행사하거나 공권력을 이용하여 남에게 피해를 주는 죄를 지적하며 회개하라고 촉구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오늘 이 나라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과 교회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세례 요한이 외친 말들이 모두 우리의 귓전을 때리고 우리의 가슴을 치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들려져야 할 것입니다.  그가 던졌던 한 마디 한 마디 말이 다 오늘날 하나님께서 우리를 가리켜 하시는 말씀은 아닌지 곰곰이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나와 한국교회가 바로 독사의 자식은 아닌지?
  나와 한국교회는 진정한 회개는 하지 않고 재앙과 고난만 피하려 하고 있지는 않는지?
  나는 세례 받고 교회 다니며 제직이 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진노를 면하게 해주는 보증수표로 착각하고 있지는 않는지?
  하나님의 부르심과 말씀에 개인적인 결단과 응답은 하지 않고 "우리 부모의 신앙이 좋았는데, 우리 가문이 몇 대째 모태신앙인데, 한국교회가 이렇게 기도 많이 하고 힘 있는 교회인데" 하는 헛된 자만심에 가득 차 있는 돌멩이 같은 인생은 아닌지?
  나와 한국교회는 발등에 놓인 도끼를 보지 못하는 어리석고 불쌍한 존재들은 아닌지?
  우리를 멸할 불이 준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위기를 의식하지 못하는 지적, 영적 가사상태에 빠져있는 나와 한국교회는 아닌지?
  우리의 죄가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하는 의식도 없어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질문조차 안 하고 지내는 나와 한국교회는 아닌지?
  두 벌 옷을 갖고도 한 벌 옷조차 없는 이웃을 외면하고 지내는 나와 한국교회는 아닌지?
  먹을 것이 남아돌면서도 주위의 굶주리는 형제를 모른 체하고 사는 나와 한국교회는 아닌지?

  물질욕에 사로잡혀 부정하게 재산을 긁어모으며 이웃과 나라의 이익을 도둑질하고 사회에 피해를 주는 나는 아닌지?
  힘과 공권력과 지위를 이용하여 사리사욕을 채우고 불의를 일삼으며 국민과 나라에 고통을 주는 나는 아닌지?

  이러한 질문들을 스스로에게 던지며 우리는 두려운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회개해야 한다 해도 회개하지 않는다면 더 이상 희망이 없는 나라와 교회일 것입니다.  지금은 위기의 때입니다.  이때에 우리는 마땅히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 하나님께 여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물음은 "내가 잘못한 것이 무엇인가? 내게 부족한 것이 무엇인가?" 하는 냉철하고 진솔한 자기 성찰로부터 와야 할 것입니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예비하는 사명을 받은 이였습니다.  그의 메시지는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과 그의 구원을 갈망하는 이들에게 먼저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보다 앞에 있는 2절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이 빈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했습니다.  그가 전한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말씀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들어야 합니다.  지금은 여러 가지로 어려운 때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정치가 안정되지 못하고 경제가 어려우며 사회가 혼란할수록 사람들이 더 악해지고 이기적이게 되며 부정부패가 난무하고 불의가 기승을 부리는 법입니다.  지금은 우리 모두와 모든 교회가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만을 필요로 하고 그만을 붙들어야 하는 때입니다.  그를 영접해야 할 우리에게 요구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세례 요한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요한이 그에게 나아오는 이들에게 격한 어조로 호소하며 촉구한 것은 이웃사랑과 정직과 정의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이웃사랑과 정직과 정의를 회복하는 것을 오늘날 한국교회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을 향한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웃사랑이 미약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정직하지 못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정의를 실현하는 일에 게을렀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헐벗고 굶주리는 이들에게 관심이 부족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나눔과 섬김의 정신이 약했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회개가 항상 말로만 그치고 일과성 행사에 지나지 않았음을 회개해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의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회개는 그저 후회하는 마음이 아니라 돌아서는 행동입니다.  죄로부터 돌아서고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돌아설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돌아서계심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돌아서고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설 때에 이 나라 이 민족이 교회를 향해 돌아서는 역사를 목격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돌아서고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설 때에 오늘의 위기가 새로운 기회로 돌아서있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죄로부터 돌아서고 하나님을 향하여 돌아설 때에 지금 우리의 근심과 불안이 기쁨과 평강으로 돌아서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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