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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주는 자 (창 2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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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주는 자          창22:1-19

지혜의 왕 솔로몬은(잠25:13) {충성된 사자는 그를 보낸 이에게 마치 추수하는 날에 얼음 냉수 같아서 능히 그 주인의 마음을 시원케 하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종이 상전의 마음을 알아 줄 때에 그 기쁨의 표현입니다. 그것은 마치 가려운 곳을 글어주는 것과 같으며, 아픈 곳에 만져(치료)주는 자와 같은 것입니다.
말을 탄 자들이 동서남북으로 다니면서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그 뜻을 다 행하였을 때에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하였다(슥6:8-그가 외쳐 내게 일러 가로되 북방으로 나간 자들이 북방에서 내 마음을 시원케 하였느니라 하더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고전16:18)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보내면서 스데바나 아가야 등 복음의 여러 동역자들을 가리켜 {저희가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케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자들을 알아 주라}고 하였습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이 땅에 과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줄 자들이 얼마나 될까요?-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을 알고 다윗과 솔로몬과 같이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케 해 드릴 수 있는 자들이 몇이나 되겠는지요!
고전2:16-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드리는 것이 얼마나 귀한가를 보여주시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그야말로 믿음의 조상이며, 히브리민족의 시조이며, 선민의 조상입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복의 근원이 되었으며, 그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고 그를 저주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저주하시므로 가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얼굴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중요하고도 크신 사실이 하나있습니다. 그것은 본문에 나타난 아브라함을 시험하신 일입니다. 그것은 그의 사랑하는 독자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 번제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토록 무섭고도 잔인하리만큼 <백세에 주셨던 애지중지하는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내어놓으라고 하신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떤 인생도 알 수가 없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달라는 큰 의미가 있음을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아들에 관한한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유일하게 아브라함이었다】 는 사실입니다. 함께 저 모리아산에 올라가 하나님의 마음을 읽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언약의 아들인 이삭에 관한 한은 하나님의 특별하게 역사하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가 75였습니다. 그리고 가나안 땅에서 25년을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사람이 다 있어야 할 아들이 아브라함에게는 없었습니다. 그 일 때문에 아브라함과 사라는 참으로 인생으로서는 참담한 마음으로 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백세에 아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아들에 관한한 기이한 사건이 아닐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일반 사람들과 다른 아들 이삭에 관하여 살펴보기로 합니다.
1)자연적인 생산의 능력이 떨어질 때까지 아들이 없었으므로 아들에 관하여 포기하기로 하였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몇 살에 결혼을 하였는지는 알수 없으나... 중동지방의 결혼 년령는 낮았던 것이 사실입니다. 일찍이 결혼을 하였을 것인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때까지 75가 되어도 아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제는 나이도 많고 사라는 경수가 끊어졌기에 그 육체적으로 아기를 낳을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은 없어졌습니다.

2)하나님께서 상급을 주시려고 할 때에 그의 종인 엘리에셀을 상속자(양자)로 허락하기를 청하였습니다.
창세기 15장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조카 롯과 그의 가족을 다섯 동맹군에게 포로가 되었을 때에 집에서 길리운 사병(私兵) 318명을 거느리고 야습(夜襲)을 하여 구출하여 오게 되었으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생명의 상급을 주시려고 하셨습니다. 그때에 아브라함은 자신과 사라로 통하여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육체적인 조건은 전혀 불가능하므로 그의 종인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허락하여 주시기를 청하였습니다. 이 말은 아들에 관하여는 이제는 포기하였다는 뜻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3)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아들을 낳게 될 것이라고 하셨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조차 비웃었습니다.
그만큼 사라는 자신이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은 차라리 하늘의 별을 따는 일이 쉬울 것으로 여겼습니다.

4)아브라함이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을 들었던 사라는 그의 여종인 하갈로 아기를 낳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라 자신은 아기에 관하여서는 전혀 불가능하다는 절대적 관념이 깊었기 때문에 자신은 낳을 수 없으니 그의 종으로 아기를 낳게 하여 자신의 아들로 키우기를 원하였다는 뜻입니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아브라함 자신도, 또한 그의 아내인 사라 자신도... 그들이 아기를 낳을 수 있다는 말은 어떤 것으로도 설명할 수가 없으며, 전혀 믿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아기에 관하여서는 절대적 불임의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은 철저하고도 확실한 믿음(?)입니다. 절대로 아기는 낳을 수 없다는 믿음이라는 말입니다. 혹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고 하더라도【90세된 할머니 사라가 아기를 잉태하거나 낳기 전에는 아기는 낳을 수 없다는 믿음은 확실한 믿음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절대적 불임의 믿음입니다.

2.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 놀랍게도 아기에 관한 절대적이며, 철저한 불임의 믿음을 가졌던 이들에게 백세에 아들을 그들의 품에 안겨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아기에 관한 한은 절대적이며 철저한 불임의 믿음을 가지고 있던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백세에 아들을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아들에 관하여서는 자타가 공인하는 <아브라함과 사라로서는 아기를 낳을 수 있는 조건과 여건과 가능성은 전혀 불가능하다>고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라는 자신으로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그의 여종인 하갈을 아브라함에게 동침케 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것은 사라가가 얼마나 자신의 육체로서는 전혀 아기를 낳을 수 없다는 철저하고도 확실한 불임(不姙)의 확신이 있었기에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를 남편의 품에 안기게 할 수가 있겠느냐는 말입니다.
차라리 메마른 높은 산에서 큰 고래를 잡을 수 있다고 한다면 오히려 그것을 믿을 수는 있어서 사라가 아기를 낳을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은 자신과 이웃까지도 그 일은 불가능함을 확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 여러분이여,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백세에 아들을 낳아 그들의 품에 안겨 주셨습니다. 할렐루야!
그들의 감격과 흥분과 환희와 즐거움은 인간으로서는 그 기쁨이 아들에 관한 한은 극치(極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떤 누구도 노년이 되고, 생산의 능력이 끊어져버렸던 노부부가 평생에 기다리고 사모하고 애타하던 아들을 낳게 되었으니... 이 기쁨을 표현할 수 있는 자는 없을 것입니다.
창21:5-7-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낳을 때에 백세라 사라는 너무나 감격하여 {하나님이 나로 웃게 하시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고 춤추고 환희하며 찬송을 드렸습니다.

3.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시는 독자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화목제물로 드리게 될 때에 오직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줄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 아브라함뿐이라는 사실입니다.
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왜 하나님께서 이토록 아브라함과 사라에게 도무지 인간의 힘과 능력과 방법과 수단으로 아기를 낳을 수 없었던 그들에게 백세에 아들을 주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목적과 뜻이 계신 것입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에게【백세에 아들을 주셨는가?】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들에 관하여서는 이 땅에 모든 인생들 중에 아들의 귀중성과 사랑함의 행복을 극대화(極大化) 시키신 후에 아들을 주시게 되셨다는 뜻입니다. 할렐루야!
오 친애하는 여러분이여, 하나님께서 아들에 관하여 기다리고 기다리고 기다리고 사모하고 사모하고 사모하게 한 후에 그 사모함과 기다림이 포기되었던 때까지 기다리신 하나님께서 그때에 아들을 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아들의 귀중함, 소중함, 그 기쁨이 절정을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여! 그토록 하나님께서 아들 이삭에 대한 사랑과 헌신과 기쁨을 절정으로, 그리고 극대화 시키신 후에... 이제 하나님께 본문에『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서 모리아 산으로 인도하셨으며, 그리고 제물인 아들과 그 아들을 잡아 제물로 드리기 위하여 칼을 가지고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의 고통과 참담함은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견딜 수 없었을 것입니다. 보통으로 낳아진 아들도 감히 자신의 칼로서 잡아 제물로 드릴 수 없다고 한다면... 백세에 낳은 그토록 소중한 아들을 번제로 드려야 한다고 여기고 제단이 있는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의 마음은 인간의 말로는 도무지 형언할 수가 없는【고통의 최정을 또 다시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여, 왜 하나님께서 아들을 그토록 사모하고 기다리고 포기하기 하였던 이들에게 아들을 주시므로 천하를 얻은 것 보다 더 크게 기쁘게 하여 놓으신 후에... 왜 이 사랑하는 아들 독자인 이삭을 모리아 산에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는지요!...여기에 하나님의 뜻이 계시다는 사실입니다.

성도 여러분이여, 하나님께서는 아들을 제물로 내어놓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줄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 사랑하는 독자 아들 이삭을 모리아산에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아들을 제물로 내어놓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드리는 사람이 필요하셨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칠 수가 있겠는지요! 그 사람은 곧 아브라함이라는 사실입니다. 다른 어떤 사람도... 아들이 그토록 귀중하고 소중하고 사랑스러워【자신의 생명보더 훨씬 더 크고 귀종한 것이 아들이라】는 사실을 증거할 수 있는 자는 아브라함이라는 사실입니다.
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인류역사에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내어놓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 고통을 만에 하나라도 이해하고 아는 자를 하나님께서 한 사람이 필요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아브라함에게 100세가 되기까지 아들을 주시지 아니하셨으며, 그리고 백세가 되었을 때에 아들 이삭을 주셨는데... 그 아들의 귀중함과 아름다움과 사랑함과 예쁨과 귀여움과 좋음과 행복과 만족함은 극치에 달하게 되었으며, 너무나 소종하므로 자신의 목숨 백개와도 바꿀 수 있는 귀중한 아들로 만들어 놓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천하에 어떤 것과도 비교도 되지 아니하며, 바꿀 수는 더욱 없으며, 어떤 경우에도 아들을 상하게 하며 다치게 하는 일은 아브라함의 자신의 생명과 바꾸는 일이 있을지라도 해(害)되게 할 수는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귀중함을 극대화 시켜 놓으신 후에 그 사랑하는 아들 독자 이삭을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을 때에 비록 하나님의 거룩하신 요구하시지만 감히 가납(嘉納)할 수가 없는 일이었으며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 일을 믿음으로 하나님께 순종하며 헌신하여 제물로 드렸던 것입니다.(히11:17)
아브라함은 순종은 하면서도 아들로 인한 고통은 하늘에 담아도 그 아픔과 고통은 결코 채울 수가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하나님께서 아셨던 것이며, 그 마음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고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것이 곧 아들을 내어놓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오 친애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우리는 지금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것은【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는지를 그때에는 알지를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아들을 제물로 받지도 아니하시면서【왜 하나님께서 백세에 주셨던 사랑하는 독자인 아들 이삭을 제물로 내어놓으라고 하셨는지를 그때에는 전혀 알지를 못하였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약1900년 후에【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하는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저 십자가에 화목제물로 내어놓으시며, 못 박혀 죽게 하시게 될 것인데... 그 때에 사랑하는 독자 아들을 내어놓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이해하고 깨달아, 그 아픔과 고통과 참담함의 극치를 이해할 수 있는 한 사람이 필요하셨다】는 사실입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이여!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사랑하는 처녀와 같은 시온인 선민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며, 이방신을 좇으므로 아내를 잃은 남편의 마음과 같은 참담함의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주는 호세아 선지자가 필요하셨습니다. 그리고 가장 무거운 하나님의 마음이신... 사랑하는 독자를 내어놓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줄 사람이 필요하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100세에 독자를 주시며, 사랑하게 하셨다가 그를 제물로 내어놓게 하셨으며... 그 일로 독생자를 내어놓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줄 자를 찾으신 것입니다. 이것이 이삭을 제물로 받지 아니하시면서도... 아들을 제물로 드리므로 아버지의 아픔과 고통을 체험하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였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아브라함은 <고난을 당하시고 시험을 당할 때에는 그 일이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며 고통만 당하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1900년이 지난 때에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마음을 능히 이해할 수 있었으며, 지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아들을 잃어버리고 제물로 내어놓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인간들에게 대변할 수 있게 되어진 것입니다.
오 여러분이여!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 주님을 가르치며,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 하나님의 마음을 가르칠 수 있겠는지요?-그는 실로 고난을 당한 자이며, 그리고 그 시험을 힘들고 어렵고 심장이 멈추는 아픔을 당하여 본 자만이 하나님의 크신 마음을 이해할 수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믿기를 바랍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여, 지금의 우리가 당하는 크고 작은 고난을 통하여...【감히도 지존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마음과 뜻과 아픔과 고통과 하나님의 슬픔을 만분의 일이라도 깨달아 알게 되어진다면 인생으로서는 그보다 더 큰 영광과 기쁨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진정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것이며, 그 진리의 영광을 깨닫는 자이며, 바울과 같은 어린아이가 아닌 장성한 자(고급스러운)의 신앙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빌3:7-9)『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고 기뻐하였습니다. 이것이 고상한 신앙 인격입니다. 고난을 통하여서만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속에 성령님이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마음을 부으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령의 기름부으심입니다. 할렐루야! 지금도 내 안에 임재하신 성령님께 우리의 마음의 문을 열고 영접하므로 다윗과 같이 성령의 충만을 입으며, 바울과 같이 매일 성령의 부은 바를 받는 영의 성도들이 되기를 축복하고 축복합니다. 할렐루야!

                            2005/ 4/ 17/        벧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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