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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어머니의 사랑 (마 15: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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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설교 : 김이봉 목사
 
□ 어머니의 사랑 

(예수께서 거기서 나가사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 가나안 여자 하나가 그 지경에서 나와서 소리 질
러 이르되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 하되 예수는 한 말씀
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제자들이 와서 청하여 말하되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그를 보내소서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 여자가 와서 예수께 절하며 이르되 주여 저를 도우소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
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여자가 이르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
기를 먹나이다 하니 이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 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 (마태복음 15장 21절-28절)
 
지금부터 약 100년 전에 미국 어느 시골마을에 가난한 과부와 아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 과부 어머니는 낮에는 양계를 하고, 밤에는 삯바느질을 해서 하나밖에 없는 아들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습
니다.
아들도 어머님의 은혜에 보답하는 심정으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그렇게 하여 고등학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들의 졸업식을 앞두고 고민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졸업식에 입고 갈 변변한 옷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누추한 모습 때문에 아들이 얼마나 민망해 할지, 그것을 생각하니까 괴로웠습니다.
그래서 아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야, 내가 너의 졸업식에 가기는 가야겠지만 급한 일이 생겨서 가지 못 하겠구나, 네가 이해 하렴”
그러자 아들은 울면서 말하였습니다.
“어머니! 어머니 없는 졸업식이 제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만사를 다 제쳐 놓고서라도 어머니가 졸업식에 꼭 참석해야 됩니다”울며 매달리는 아들을 뿌리칠 수 없어서
어머니는 가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드디어 졸업식이 시작되었습니다.
아들은 전 학생들을 대표하여 멋진 연설을 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의 이름이 새겨진 금메달을 목에 걸게 되었습니다.
많은 박수를 받으며 그는 단상에서 내려왔습니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 되었습니다.
그는 한쪽 구석에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듯 앉아있는 그의 어머니에게로 달려갔습니다.
그는 자기 목에 걸려있는 금메달을 벗어 어머니 목에 걸어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아니셨으면 제가 어떻게 오늘의 이 영광을 누릴 수 있었겠습니까?”
그러면서 모든 공을 어머니에게 돌렸습니다.

이 아들은 후에 열심히 공부하여 미국 제 28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바로 윌슨 대통령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재임하던 1914년 그는 국회위원들의 마음을 움직이었습니다.
그리하여 5월 둘째 주일을 거국적으로 어머니날로 제정하였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 지금도 전 세계의 교회가 5월 둘째 주일은 어머니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아버지까지 포함하여 어버이 주일로 지키게 되었습니다.

1. 어머니를 통하여 우리는 사랑이 무엇인지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다’이것을 깨닫게 된 것은 어머니를 통해서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을 어머니를 통하여 알게 해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머니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모형입니다.
이 세상에서 어머니의 사랑을 능가할 사랑은 없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사랑은 자식과 생명을 함께 나눈 사랑입니다.
해산의 아픔과 고통을 통하여 우리는 이 세상에 탄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어머니의 사랑은 생명을 나눈 사랑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자식을 위하여 모든 것을 다주었고, 자식을 위한 것 이라면 생명까지도 내 놓을 수 있는 분이
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더 큰 사랑이 세상에서 또 있겠습니까!
그래서 어머니의 사랑은 하늘보다 높다고 하였고, 바다보다 깊다고 하였습니다.
만일 어머니의 사랑이 없었다면 하나님의 사랑도 모를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도 “보이는 부모를 공경치 않는 자들이 어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할 수 있겠는가?”고 하였
습니다.

유교에서는 효(孝)가 인생의 근본이라고 하였습니다.
효를 모르는 자식들이 정치를 하고, 교육을 하고, 사업을 한다면,
그 정치, 그 교육, 그 사업이 잘될 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공자도 학(學)편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치기를,
“너희가 집안에서는 부모에게 효도하고, 집밖에 나가서는 신용 있게 행하고, 모든 사람을 대하여는 어질게 대
하라, 그리고도 남는 힘이 있을 때 공부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부모에게 효를 강조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다함이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도 십자가상에서 운명 하시면서도 육신의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지극
한 효의 모범입니까?
그런데 예수를 주라고 고백하면서 믿는 사람들 중에서 부모를 공경하지 못한다면 그의 믿음은 모두 헛것이란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전도지를 가지고 나가 전도한들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그의 전도를 받겠습니까? 먼저 부
모에게 효를 해야 합니다.

2. 성경에는 위대한 어머니의 사랑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① 모세의 어머니와 ② 사무엘의 어머니와 ③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름모를 가나안 여인의 사랑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모세의 어머니는 민족혼을 불어 넣어준 위대한 어머니입니다.
만일 모세의 어머니의 이러한 사랑의 교육이  아니었던들 모세가 출애굽의 위대한 역사를 감당했을까? 의심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모세야말로 요즘 젊은이들이 본 받아야 할 청년이었습니다.
자기 혼자의 안일을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바로의 궁궐에서 호의호식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어머니로부터의 교육으로 태양과 같은 민족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는 그를 나실인으로 키워 하나님의 전에서 제사장의 직무를 하게 하였습니다.
사무엘이 그러한 어머니의 교육이 아니었다면 그냥 한 평범한 사람으로 이름 없이 살았을 것입니다.
한나는 아들을 주면 내가 하나님께 바치겠다고 서원하였고, 그 서원한대로 실행하였습니다.
이 얼마나 위대한 어머니입니까?
이 두 어머니의 공통점은 자녀들을 육정으로만 키우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키웠습니다.
자신의 애틋한 육정보다는 원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키웠습니다.

이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역사에 빛나는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공통적으로 공의와 사랑을 실천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자신을 버리는 희생적 용기를 발휘한 인물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누구나 다 이와 같이 자식을 키울 수는 없습니다.

여기 한 어머니의 사랑은 바로 우리들을 대변하고 있는 사랑입니다.
그것이 가나안 여인의 사랑입니다.
이 가나안 여인의 사랑은 우리 모든 어머님의 사랑의 대변자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이런 어머니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3.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버렸습니다.
예수님은 처음 이 여인의 믿음을 보기 위하여 자존심의 상처를 주었습니다.
‘자녀의 손에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줄 수 없다’고 이방인의 대한 경멸하는 말을 했습니다.
이런 말을 들었을 때 보통 요즘 엄마들 같았으면‘별꼴이야’라고 돌아섰을지 모릅니다.
자기를 개에다 비유하는 말을 들었어도 참았습니다.
그런 말을 들었을 때 이 어머니는‘옳습니다,
마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지 않습니까’라고 했습니다.
이 말에 우리 주님이 할 말을 잃었습니다.
결국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었습니다.

딸의 병을 고치기 위해서라면 무슨 욕인들, 어떤 멸시든지, 다 참아낼 수 있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입니다.
우리의 육신의 부모들이 우리를 키울 때, 모두 이런 마음을 가지고 키웠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된 나라에서 굶주림에 시달릴 때, 어머니들의 피눈물 나는 자기희생은 지금의 시대의 사람들
에게 필설로 다 들어낼 수 없었습니다.
특히 우리 한국 민족의 걸어온 수난의 길에서 지금 70대 이상의 부모님들에게 우리는 고개 숙여 경의를 표하
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런 희생으로 우리를 키웠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거늘 우리들은 지금 어떤 자세로 저들을 대하고 있는가? 깊
이 반성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미국에서 심장병 전문의로 일하는 정동근 씨가 쓴‘제 3일의 약속’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의 내용인즉 6.25 피난시절 어머님과 헤어지면서 3일후 만나기로 한 약속을 30년 만에 북한의 고향을
방문하여 어머니 무덤 앞에서 목 놓아 울었다는 내용입니다.

저도 이분과 꼭 같은 환경에서 어머님과 대동강변에서 3일의 약속을 했던 사람입니다.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남편들은 먼저 나가고 어린이들과 부녀자들만 남아 있었던 교회에서, 교인들을 이끌고 120리 길을 5일 동안
걸어서 대동강에 도착했습니다.
벌써 중공군들은 평양성에 입성했고, 낮 동안 치열한 폭격으로 대동강 다리는 다 끊어져 밤이 된 대동강은 너
무나 춥고 조용했습니다.
아무래도 아침이 되면 공산군 손안에 들어갈 것을 뻔히 안 아버님은 우리 가족만 따로 떼어 나올 수 없어 남자
들만 3일 동안 대동강을 건너갔다가 다시 국군이 진격해 들어올 때 만나자고 잠시 동안 피해 있겠다고 하여 어
머님과 작별하게 되었습니다.

그때 10대의 중학생이었던 나는 어머님의 손을 잡고 헤어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기도해 줘요” 이것이 어머님에게 지상에서 내가 한 마지막 말이 될 줄이야....
그때 어머님은 “그럼 나야 이제 기도로만 살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정동근 씨는 3일간의 약속을 30년 만에 어머님 무덤 앞에서라도 눈물을 지었다지만, 저는 55년의 세월이 지
났어도 아직도 소식조차 모르고 있으니 이 어찌 비극이 아닐 수 있겠습니까?
정동근 씨는 후에 북한에 어머님과 함께 남았던 누님으로 들은 이야기를 이렇게 했습니다. 
어머니는 남쪽으로 간 아들을 생각하며 하루도 빠짐없이 식사 때마다 밥상에 아들을 위한 숟가락과 젓가락을
올려놓았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저의 어머님도 마지막 숨을 거두신 그 순간까지 아들을 생각하며 기도로만 사시다 간 어머니였다는 사실은 틀
림없는 사실일 것입니다.
그 어머님의 기도였기에 이제 이 아들도 한평생의 목회 생활에서 명예로운 은퇴를 하게 되었다고 확신하는 바
입니다.
이것이 어찌 저의 어머니일 뿐이겠습니까!
지구상의 모든 어머님의 공통적인 사랑일 것입니다.

자녀들을 위해 눈물 흘리는 어머니들, 지금도  자녀들 때문에 목숨을 부지하며 갖은 고초를 이겨내는 어머니
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어머니는 자녀들을 위해 주고 또 주고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준 사랑입니다.
그 어머님의 사랑을 통하여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 보이는 부모님을 공경함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공경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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