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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어르신 공경 (레 19:30-34, 엡 6:1-3, 눅 22:42-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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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오동 목사

1. 오늘 어버이 주일을 맞이하여 우리 가정의 부모님을 위시하여 우리 교회의 어른신들, 이 땅의 모든 어르신들에게 하나님의 은총과 위로가 넘치기를 기원합니다. 3요2 말씀처럼 “영혼이 잘 되고 범사가 잘되고 강건하기를”, 그리고 특히 슬하의 자여손(子與孫)들이 부모님들과 어르신들의 기도를 통하여 형통하게 되기를 소원합니다.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나이는 단지 숫자일 뿐이라”고 했습니다. 그 숫자에 지나치게 얽매이지 말고 믿음 안에서 일신 우 일신(日新 又 日新)하여 독수리가 날개 치듯이 걸어가도, 달려가도 피곤치 않도록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연세가 드실수록, 비록 세상일에서 멀어지더라도 하나님과 하늘나라에 대한 믿음은 더 든든해지고 소망의 등불이 더 밝아지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효를 매우 중시하는 유교 권에 태어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카톨릭이 이 땅에 처음 들어와서 박해를 받은 이유가 바로 효와 관계된 일이었습니다. 지금은 카톨릭이 많이 달라졌지만 당시에는 조상에게 제사를 드리지 않고 조상의 위패를 불태웠다고 해서 무군무부(無君無父)의 패역무도한 무리들이라고 박해를 했습니다. 그리고 아직도 예수 믿으면 불효자가 된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것은 성경도 기독교도 알지 못하는데서 나온 큰 오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 한국교회의 지나친 “오직 믿음” 주장이 마치 유대인들의 고르반 주의자들 같이 부모님마저 소홀히 여기게 되는 일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아름다운 전통인 장유유서(長幼有序)의 질서를 파괴하게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흔히 “예수 믿는 사람은 버릇이 없다”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므로 어버이 주일에 우리가 다시 한번 일깨워야 할 것이 부모님께 대한 효와 함께 우리 사회의 원로들, 어른들을 공경하는 일입니다.

우리가 잘 알듯이 기독교의 핵심 메시지는 십자가입니다. 거기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 우리 주님이 가르쳐 주셨던 큰 계명이 계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땀 흐르는 기도를 하시면서 “아버지여,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신 것은 하나님을 향한 절대 순종의 신앙과 함께 아버지 하나님께 대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절대 효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주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것을 통하여 그것을 확증해 주셨습니다. 우리가 신앙의 대상을 찾을 때도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하며, 윤리적 실천을 말할 때도 역시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삶은 전적으로 다른 사람을 위하여 자신 주신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다른 사람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버리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웃 사랑을 말할 때 주께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 있는 십계명에서 인간을 향한 계명 가운데 첫 계명이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입니다. 유가(儒家)에서 “효는 백행의 근본이라”는 말이 이에서 더 나아갈 것이 어디 있습니까? 부모 공경을 거치지 않는 이웃 사랑은 없다는 말씀입니다. 심지어 이 계명이 상향하는 신앙적 계명의 맨 밑에 위치하고 있는 것은 부모님을 거치지 않고는 신앙 운운할 수도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을 “보본반시(報本反始)”라고 합니다. 즉 근본으로 돌아가서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신앙의 근본이시요, 부모님은 우리 육신의 근본이시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 태어나서 살다가 한번 죽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60세 이상의 고령인구가 점점 늘어나서 소위 고령사회로 접어들게 되면서 심각한 “노인문제”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 사회에서 모든 연령층의 사람들이 함께 어울려서 행복하게 살아 갈수 있는 말씀을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어른을 공경하라”는 말씀입니다.

2. 그러면 “어른 공경”은 무엇입니까?

(1) 어른 공경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람의 도리입니다.

성경에서 “공경하라”는 말이 명령어로 사용될 때 그 공경의 대상은 하나님과 부모님을 포함한 어른들입니다. 오늘 레위기 본문 32절을 보십시오. “너는 센 머리 앞에서 일어서고 노인의 얼굴을 공경하며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고 했습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하는 일입니다. 한걸음 더 나아가서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의 증거라고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섬김”과 “어른 공경”을 따로 떼어서 생각할 수 없습니다.

십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부모”를 넓게 보면 이웃의 어른까지 포함이 됩니다. 벧전2:17에 “뭇 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왕을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른을 공경할 때 좋아하시고 그런 사람에게 복을 주십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엡6:1-3)고 했습니다. 이것은 어른 공경의 말씀이 하나님의 축복을 보장하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효의 길”은 바른 인간이 되는 “사람의 길”입니다. 예로부터 부모를 제대로 돌보지 않고 어른에게 제대로 예의를 갖추지 못하는 사람은 짐승만도 못하다고 까지 했습니다. 잠23:22에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고 했으며 딤전5:8에는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신을 성도라고 생각하기 전에 하나님 앞에 올바른 도리를 다하는 참 인간이 되어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믿음과 생활을 따로 생각할 수 없듯이 하나님을 믿는 것과 어른을 공경하는 일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2) 어른 공경이야말로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길입니다.

잠13:1에 “지혜로운 아들은 아비의 훈계를 들으나 거만한 자는 꾸지람을 즐겨 듣지 아니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실패하여 나라가 남북으로 분열된 원인은 어른들을 무시한데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른을 무시하는 인생은 어리석은 인생이요 어른을 공경하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에릭슨이라는 사람은 말하기를 “노인은 옛 지혜의 일차적 운반자요 수호자라”고 했습니다. 세상을 오래 사신 분들에게는 지혜가 있습니다. 욥이 고난 중에 자기 친구들에게 시달리면서 한 말이 있습니다. “늙은 자에게 지혜가 있고 장수하는 자에게는 명철이 있느니라(욥12;12)”. 오늘 레위기 본문에서 말하는 “센 머리”는 삶의 경륜과 지혜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른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겸손하게 배워야 합니다. 그럴 때 인생을 지혜롭게 살 수 있고,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지식은 수평적인 것이요 지혜는 수직적인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지혜는 하나님이 주십니다. 그런데 이 지혜가 우리 영혼에 생수를 공급합니다. 아무리 잘나고 똑똑해도 지혜롭지 못한 사람은 결코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경에는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부귀가 내게 있고 장구한 재물과 의도 그러하니라”(잠8:17-18)고 했습니다.

어른들은 늘 옛날을 회고하면서 과거지사를 이야기 합니다. 거기에는 성공담도 있고 실패담도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른들은 자녀들과 젊은이들에게 늘 바른 교훈을 남겨줍니다. 그러므로 어려서부터 어른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람이 그 지혜로 인생을 승리해 나가는데 큰 도움을 얻게 됩니다.

그래서 시37:25-26에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 저는 종일토록 은혜를 베풀고 꾸어주니 그 자손이 복을 받는도다”라고 했습니다.

(3) 어른 공경은 마음으로, 손과 발로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혜로운 교훈을 배웠어도 그것을 적용하지 못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 가운데 어른 공경에 대하여 알지 못하는 사람이 누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a. 어른을 공경하기 위하여 먼저 마음으로 깨달아 감사하는 심정이 되어야 합니다. “지은보은(知恩報恩)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고마움을 알아야 보답할 줄도 알게 된다는 뜻입니다. 즉 마음이 감동되고 뜨거워져야 행함이 따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못할 때는 무엇을 해도 단지 형식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른을 공경하려면 먼저 어른 공경에 관한 말씀을 반복해서, 마음이 뜨거워질 때까지 새겨야 합니다.

b. 마음이 뜨거워 졌으면 손의 정성으로 섬기는 수고가 따르게 마련입니다. 우리 신앙도 그렇듯이 어른 공경도 입술만의 공경뿐이고 손이 움직이지  아니하면 거기에는 마음이 없다는 증거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어른들에게 대한 착각중의 한 가지는 자식들이 이것저것 챙겨드리기 때문에 어른들에게는 돈이 필요 없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연세 드실수록 용돈이 절실합니다. 자녀들은 부자로 살면서 부모들은 가난뱅이로 버려두어 남에게 천대 받도록 하는 것은 옳은 도리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어른들의 필요를 채워드리기 위해서 부모님의 형편을 잘 살필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잠23:4에 “의인의 아비는 크게 즐거울 것이요 지혜로운 자식을 낳은 자는 그를 인하여 즐거울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c. 우리는 발로 직접 찾아가서 공경하는 태도를 보여 드려야 합니다. 지금은 핵가족시대이기 때문에 부모님들과 함께 사는 사람들이 그리 많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자주 찾아가 뵈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른들을 찾아 뵐 때 겸손한 자세와 배우는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딤전5:1-에 “늙은이를 꾸짖지 말고 권하되 아비에게 하듯 하며...늙은 여자를 어미에게 하듯 하라...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세상의 그 누구보다도 섬겨야 할 분은 하나님 아버지이십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났지만 감리교의 윤성범 박사님은 말하기를 “동양인의 관점에서 보면 예수님이야말로 지상에서 가장 완벽한 효자였다”고 했습니다. 저 골고다에서 의 고뇌에 찬 기도 끝에 마침내 아버지의 뜻에 자신의 모든 것을 내 맡기는 모습이나, 십자가 위에서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모든 것을 봉헌하는 모습은 참된 신앙이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효와 밀접하다는 것을 보여주었다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성경의 교훈은 고사하고 우리전래의 미풍양속까지 다 잃어버린 각박한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하겠습니다.

어른 공경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복을 받는 길입니다. 어른을 공경하는 사람에게 지혜가 있습니다. 그것이 인생을 승리하게 하는 힘이 됩니다.

부모님과 어른들의 은혜를 마음으로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손과 발로 행하시기 바랍니다. 그럴 때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에게 약속한 축복을 주실 줄 믿습니다. “네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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