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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순종하라 양육하라 (엡 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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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이 거룩한 주일, 하나님께 예배하는 자리에 나오셨으니…
모든 염려와 근심, 두려움을 주님 앞에 다 풀어놓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를 "오라"고 부르셨습니다.
오셨으니 감사요, 맡겼으니 평안함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오늘이 무슨 날입니까?
☞ 하나님께 예배하는 주일입니다.
☞ 부모님을 기억하며 효도하자는 날, 어버이날입니다.
  꽃(카네이션)을 달아 드리는 날입니다.
 
지난 4월 28일에 제 여동생이 미국에서 왔는데,
제 작은 아들이 전해 달라는 봉투를 하나 들고 왔습니다.
그 봉투에는 "한국을 떠나기 직전에 우리 부모님께 전해 주세요.
이 봉투는 꼭 5월 8일에 보시라고 전해 주세요."라고 씌어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안에 뭐가 들어 있을까 궁금해서 견딜 수가 없어서
어젯 밤에 봉투를 뜯어 보았습니다.
열어 보니 편지 한 글자도 없고, 종이로 만든 카네이션 2개가 들어 있었습니다.
정성스럽게 직접 만든 것입니다.
그런데 큰아들은 아직까지 아무 소식이 없네요.
아무려면 그냥 지나가겠어요? 기다려 봐야지…
오늘이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까…  안 줘도 할 수 없지 뭐… 꼭 바라는 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두신 단체가 둘 있습니다.
하나는 [가정], 또 하나는 [교회]입니다.
우리들 모두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두신 두 단체
<가정/교회>에 속해 있으니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독교는 가정적인 종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믿음 생활도 '하나님의 가정' 안에서 하라고 명하셨습니다.
- 여러분, 가족과 얽히지 않고 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불행입니다.
  부모님이 누구인지 모르고 사는 것은 불행한 것입니다.
- 국가에 소속되지 않고 살 수도 있습니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지지 않고 불법체류자로 우리나라에 와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살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때 국가의 보호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에 적을 두지 않고 이 교회 저 교회 다니면서 예배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분은 하나님의 영적 질서를 모르는 목자 없는 양입니다.
  결정적일 때 기도 받지 못하고 목자의 지도를 받지 못합니다.
  잘 못하면 불쌍한 영혼이 되고 맙니다.
 
여러분 가운데 아직 교회에 적을 두지 않고 신앙생활 하는 분들이 계십니까?
교회에 등록하면 목사님이 만나자고 하고, 전도사님들이나 선교회원들이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는 것이 귀찮고 불편한 것 같지만… 
귀찮아도 가족과 연결되어야 되듯이, 귀찮아도 국가에 소속되어야 하듯이,
귀찮아도 교회에 적을 두고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어느 교회든지 등록하여 적을 두고 신앙생활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믿음 생활이고, 하나님의 원하심입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자격을 받았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1:12)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따라서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아무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식만, 자식된 사람만 부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을 [아버지 계신 곳]이라 하고,
교회는 [아버지의 집, 하나님의 집]이라 하고…
믿음으로 만나 교회에서 함께 신앙생활 하는 성도들 서로 서로는
믿음의 [형제], 믿음의 [자매], 주님 안에서 [형제], 주님 안에서 [자매]라고 말합니다.
찬송가 278장  "사랑하는 주님 앞에" 를 보면
"사랑하는 주님 앞에 형제자매 한 자리에 크신 은혜 생각하여 즐거운 찬송 부르네
  내주 예수 본을 받아 모든 사람 내 몸같이 환난근심 위로하고 진심으로 사랑하세"
 
가정 교회
 
그런데 그렇게 중요한 가정 이야기가 바울서신에 간단히… 몇 절… 나오고 끝입니다.
예를 들어서 에베소서 155절 중에 16절만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고
골로새서 95절 중에 4절만 가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로마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빌립보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등에는
가정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한 것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 하나님을 아버지로, 교회를 하나님의 집으로,
성도들을 형제와 자매로 가르치는 신약성경이
왜 가정에 대해 많이 언급하지 않았을까요?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은 회당(Synagogue)에 모여서 예배 드렸습니다.
  회당(Synagogue)
유대인들의 모임 장소를 말한다.
회당제도는 포로생활로 인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예배드릴 수 없게 되면서부터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신약시대에 와서는 유대인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회당이 세워졌다(행13:5).
유대인들은 안식일 외에도 회당에 자주 모였는데 남녀가 따로 떨어져 앉았다.
회당의 주된 용도는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다.
예배는 남자 10명이 모여야 이루어져졌다. 찬양으로 시작하여 기도를 드린 후
쉐마를 읽었다(신6:4~9). 쉐마를 교독한 후 다시 기도문을 암송하며
성경을 낭독하고 해석하며 축도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절기 때에는 제사장들이 손을 들고
민수기 6:24~26로 축도 함으로써 예배를 폐했다.
예수님은 여러 회당에 들어가셔서
예배도 드리시고 말씀을 전하셨으며(눅5:26)
병도 고치시고 귀신도 쫓아내셨다(막1:39).
특히 나사렛 회당에서는 이사야서를 통해
자신의 메시아 되심을 가르치셨지만 배척 받으셨다(눅4:16~30).
바울도 회당 예배에 참석하며 그곳에서 전도하였다(행19:8).
회당은 율법 교육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눅13:10)
법정의 용도로도 쓰였다(마10:17, 23:34, 막13:9).
- [두란노 비전성경사전]에서 인용 - 
 
그런데 기독교의 박해로 인해 회당에서 예배드리지 못하게 되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정에 모여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에 <가정교회> 이야기를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로마서 16:3~5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동역자들인 브리스가와 아굴라에게 문안하라
  저희는 내 목숨을 위하여 자기의 목이라도 내어 놓았나니
  나 뿐아니라 이방인의 모든 교회도 저희에게 감사하느니라
  또 저의 교회에게도 문안하라 나의 사랑하는 에배네도에게 문안하라
  저는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니라"
> 고린도전서 16:19
  "아시아의 교회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아굴라와 브리스가와 및
  그 집에 있는 교회가 주 안에서 너희에게 간절히 문안하고"
> 골로새서 4:1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마가의 다락방에서 출발한 초대교회는 가정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확산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성경에 기록된 교회에 대한 말씀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임인 각 가정을 향해 주신 말씀이기도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가정에 대한 말씀이면서 교회에 대한 가르침이고
교회에 대한 가르침이면서 가정에 대한 가르침으로 주신 대표적인 말씀이
에베소서 5장 22~25절과 에베소서 6장 1~4절입니다.
에베소서 5장 22~25절에 보면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엡5:22)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엡5:23)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찌니라" (엡5:24)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 같이 하라" (엡5:25) 했습니다.
 
여러분, 여자들이 해야 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남자들이 해야 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남편들은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심 같이… 죽도록 해야 합니다.
 
이밖에 오늘 본문 1절에 보면
자녀들은 주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하라 했고,
아비들은 자녀를 노엽게(마음을 상하게) 하지말고
주님의 교양(敎養 : 가르칠 교, 기를 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했습니다.
 
이 가정에 대한 교훈에서 이해해야 할 것은
"복종", "순종", "공경", "양육"이라는 말들이
어느 특정한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종은 꼭 아내만 하고, 사랑은 남편만 하고, 자녀들은 순종만 하고,
양육은 부모들만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축소판으로서 가정에서는 남편에게도 복종이, 아내에게도 사랑이,
자녀에게도 양육이, 부모에게도 순종이… 필요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에베소서 6장 1~4절에 보면
성경은 일방적인 가르침이나 지시, 일방적인 명령만 하지 않았습니다.
인간관계는 일방통행일 수 없는 것입니다.
1~3절은 자녀들에게 주는 말씀이고, 4절은 부모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쉽게 번역한 성경 <아가페 [쉬운 성경]>으로 읽어보면
>>1절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옳게 행하는 일입니다." (엡6:1)
>> 2절
  "십계명에도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약속이 보장된 첫 계명입니다." (엡6:2)
>> 3절
  "그 약속은 '네가 하는 일이 다 잘되고
  이 땅에서 장수할 것이다'라는 것입니다." (엡6:3)
>> 4절
  "아버지는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거나, 화를 돋우지 말고,
  주님의 훈계와 가르침으로 잘 키우십시오." (엡6:4)
 
잘 보면 자녀가 할 일이 있고, 부모가 할 일도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고, 계명대로 공경해야 하고
아비는 자녀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말고 자기의 의지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가르쳐야 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부모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기르지 않고
자기의 뜻대로 기르려고 합니다.
온 가족이 함께 노력하지 않으면 화목과 행복을 얻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화목하고 행복한 가정이 되기 위해 기도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공경하라
 
오늘 말씀, 특별히 지금부터 전하는 말씀은…
사실 저 자신에게 하는 설교이기도 합니다.
모든 성도들이 오늘 말씀에 겸손히 "아멘"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노인들에게 아부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젊은이에게 부담을 주기 위한 말씀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엄숙한 명령을 대언하는 말씀으로 받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인생은 예외 없이 모두 다 늙어 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에게 한 번 죽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정해진 것입니다.(히9:27)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오래 사는 것이 복(福)'이라고 말씀하셨으며
친히 장수하게 해 주셨습니다(출20:12).
뿐만 아니라 레위기 19장 32절에는
  "백발 된 자 앞에 일어서며 노인을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요즘은 백발이 되었는데도 감추려고 애쓰고, 주사를 맞아가며 주름을 펴기도 합니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노인이 누구인지 잘 모르겠다고 합니다.
그러니 공경 받지 못하는 책임이 늙은 자신을 감추는 어른들에게도 있습니다.
아무튼 나이 드신 어른을 공경하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예수 믿고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는 사람이면
당연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이 세상 누구도 늙지 않을 사람이 없습니다.
 
저는 27~8년 전에 군대에서 제대하고 한 때 옛 시조를 외워 읊어 대며
폼 잡았던 시절이 있었습니다.(그때 가지고 다니던 '시조집'은 지금도 가지고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잊었지만 그래도 기억나는 것 중에
늙는 인생을 노래한 것이 있어 소개합니다.
  청구영언(靑丘永言) (六堂本)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한 손에 가시를 들고 또 한 손에 막대 들고
    늙는 길 가시로 막고 오는 백발 막대로 치려터니
    백발이 제 먼저 알고 지름길로 오더라.)
----------------------------------------------------------------------------
  청구영언(靑丘永言) (珍本)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백발을 남도 준 일 없고 받은 일도 없건마는
  원수의 백발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고.
  백발이 공평하고 바름이 없구나. 나를 먼저 늙게 하는구나.)

 
신약성경 야고보서 4장 14절에는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약4:14) 했습니다.
 
우리 모두 늙는다는 것은 거부할 수 없고, 부정할 수도 없는 진리입니다.
제가 어릴 때는 50대 어른들을 보면 너무 늙은 것 같아
'다 살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50대가 되고 보니, 50… 너무 어립니다. 아직 어린애 같습니다.
 
사회가 변하며 핵가족 제도가 되고 도시화, 산업화됨으로
노인을 경시하는 풍조가 생겼습니다만
어느 시대, 어느 나라고 어른을 우습게 여기던 시대와 나라는 망했습니다.
 
열왕기상 12장 6절 이후에 보면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노인의 의견을 무시하고
함께 자란 또래 친구들의 이야기만 듣다가
나라가 둘이 되는 비극을 가져왔음을 볼 수 있습니다.
 
인류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끊임없는 대화입니다.
어제를 모르면서 오늘을 말하기 어렵고
어제를 모르면서 내일을 예측하기가 더욱 어려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은 역사를 배워야 하는 것이고 
먼저 사신 어른들을 귀히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 공경" 너무도 당연한 말씀이고,
천 번 들어도 만 번 전해도 당연한 말씀입니다. 그러나 결코 쉽지 않은 명령입니다. 
 
돌아보지 아니하면
 
제가 해마다 5월이 되어 가정에 대한, 부모에 대한 말씀을 전할 때면
늘 같은 이야기 하나를 전합니다. 그런데 늘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갈등하게 됩니다.
 
[사실 이미, 세상을 떠난 어른들(부모들)을 추모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사람은 돌아가신 부모에게 불효자는 없습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하며 눈물 흘리지 않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돌아가신 부모님에게는 다 효자입니다. 문제는 살아계신 부모님입니다.
왜냐하면, 돌아가신 분들과는 더 이상 감정적으로 얽힐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하면 그립고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살아 계신 부모님에 대해서 미묘한 이중 감정에 얽혀 시달립니다.
  살아계신 부모님들과는
감정적으로 얽힐 수 있는 가능성이 많기 때문에 어려운 것입니다.
'부모는 끝없이 파고들고 싶고, 끝없이 찾고 싶은 고향 같은 존재입니다.
그런가하면 부모는 어떻게 하면 멀어질 수 없을까 하고 생각하는
'질곡(桎梏: 차꼬와 수갑) 과 같은 존재이기도 합니다.
부모에 대한 <파고들고 싶기도 하고, 벗어나고 싶기도 한 감정>을
함께 갖고 있음을 아니라고 부인할 자식들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들이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 (딤전 5:8) 했습니다.
 
돌볼 가족이 있고, 돌보아 주어야 할 사람이 있는 것은
복인 줄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자신이 신경 써야 하고, 돌봐야 하고, 속썩여 골치 아픈… 가족이 있다는 것도
하나님께서 지게 하신, 지고 가야 할 짐입니다.
물론 우리 주변에는 도저히 부모라고 받아들일 수 없는…
사람 같지 않은 어른도 있습니다.
자기 자식을 아파트에서 내던지는 부모도 있습니다.
우리 주변에는 파렴치하고 더러운 부모로부터 받은
마음의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에게
  "악(惡)을 악(惡)으로 갚지 말라고… 선(善)으로 악(惡)을 이기라…" 고 가르칩니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롬12:17)
했습니다.
선을 악으로 갚지 않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승리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어느 교회 어버이 주일에 유치부 성경암송 발표가 있었습니다.
성도들 앞에서 유치부 어린이들이 성경 구절을 한 절씩 암송하는데,
한 아이의 순서가 됐습니다. 그 어린이가 외울 성경말씀은
에베소서 6장 1~3절 부분이었습니다.
  '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그런데 '공경하라'는 말의 뜻을 잘 모르는 채 암송하던 아이는 잘 나가다가
중간에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격하라…"
- 2005년 [월간목회] 5월호 p.149에서 인용 -
 
아마 아이가 전쟁 만화영화를 많이 보았던 모양입니다.
여러분, 아버지와 어머니는 공격할 대상이 아닙니다.
 
부모님께 잘 하는 것, 어른들께 잘 하는 것 힘들고 어렵습니다.
가족이란 짐이 무겁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으시고… 그 짐을 기꺼이 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이고, 그 수고를 하나님께서 기억해 주실 것입니다.
  성경은 자녀들이 그들의 부모에 대해 취해야 할 태도와
행위에 대해서 두 곳에서 교훈하고 있습니다(엡6:1~3, 골3:20).
여기서 "자녀"란 말은 어린 아이들만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헬라 말로 자녀를 가리키는 '테크논'이라는 말은
종종 일반적인 자녀를 지칭하는데 쓰였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장성한 자녀까지 포함된 의미이기도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해야 할 이유는 무엇이겠습니까?
무엇보다 부모에 대한 불순종은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출21:17, 신21:18~21)
그것이 옳은 일이고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엡6:1).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는 복을 받기 때문입니다(엡6:3).
혹 여러분 가운데 '부모에게 공경해야 장수하는 복을 누린다'는 말씀을 듣고
주변 사람들 가운데 부모에게 잘 못하는데도 오래 사는 사람을 보며
의아해 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칼빈(Calvin)은
  "우리가 다 이해하지 못해서 모순같이 보이지만,
  하나님 나라에 올라가면 다 이해하게 된다.
  부모 공경을 하지 않았는데도 오래 사는 것은
  그 사는 자체가 하나님의 벌이다" - John Calvin -  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에게 공경할 부모님이 아직 생존해 계십니까?
하나님께 감사하고 살아 계실 때에 정성으로 공경하시기 바랍니다.
부모님 중 한 분밖에 계시지 않습니까?
남은 분에게 후회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제 방에 찾아 오셔서 물으셨습니다.
"목사님, 제가 금년에 환갑이라 애들이 자꾸 환갑 잔치를 해 준다는데…
난 싫은데 어떻게 하지요?"
그래서 저는 "하지 마세요. 옛날이나 잔치했지. 요즘은 환갑잔치 잘 안합니다.
그냥 용돈 달라고 하세요." 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분의 아들을 만났습니다.
그 아들이 "우리 어머님 환갑잔치를 해 드리려고 하는데 자꾸 하지 말라시네요"하기에
제가 "아무 소리 말고 해 드려. 뭐라고 해도 해드려요." 라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회갑 안하신다는 어른들 대부분이 칠순 때 하자고 하십니다.
그런데 칠순을 누가 보장합니까!
제 돌아가신 어머님도 회갑 때 잔치하지 말라고 하시며,
'칠순 때 잘 해달라'고 하셔서 저도 못 이기는 척 하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런데 65세에 돌아가셨습니다. 저는 생각할 때마다 얼마나 후회되는 지 모릅니다.
자녀분들 잘 들으세요. "차려 드리세요."
나이 드신 분들 "하지 마세요."
이기는 쪽의 의견대로 하세요.
 
부모님이 이미 다 돌아가셨습니까?
이웃이나 교회, 친지 가운데 윗어른을 부모님 대하듯 귀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부끄럼 없이 가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순종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자신을 위한 일이며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이고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 일입니다.
 
자식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잘 공경하고
부모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잘 양육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며 사는 참된 승리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좋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라 이 땅에 사는 우리들
하나님 기뻐하시는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믿음의 승리자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 거룩한 주일, 말씀을 듣고 돌아가는 저들
가정이 화목하고 평안하기 위해 애쓰는 믿음의 가족들 되게 하심을 감사합니다.
범사에 승리할 줄로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2005년  5월  8일 주일낮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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