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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버이주일] 지상 최대의 축복을 얻는 길 (출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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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님은 천년손님입니다 >

저희 부부는 어렸을 때 서울 효자동 근처에서 살았습니다. 효자동이란 이름에는 이런 사연이 있었다고 합니다. 어느 날, 한 할아버지가 실수로 손자를 이불 밑에 깔아 죽였습니다. 할아버지는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습니다.

며느리는 시아버지가 그 사실을 알면 충격을 받으실까봐 몰래 죽은 아이를 안고 남편에게 왔습니다.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은 죽은 아이를 보고 “이 불효자식아! 할아버지의 마음을 그렇게 아프게 하느냐?”고 하면서 아이의 뺨을 호되게 때렸습니다. 그랬더니 죽은 아이가 그만 살아났습니다. 그때부터 그 동네 이름이 효자동이라 불렸다고 합니다.

요새 효자동이 점차 사라지고 있습니다. 자녀들 중에 부모님께 “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느냐?”고 섭섭해 하는 자녀는 많지만 부모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지 말아야 하겠다고 하는 자녀는 적습니다. 심지어 돈 문제로 부모님을 마음 아프게 하고 부모님을 버리는 자녀도 있습니다. 저는 ‘저주’라는 말을 잘 쓰고 싶지 않지만 은혜와 사랑을 배반하는 자식은 결국 저주받은 떠돌이 자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을 사람이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로 보십니다. 그 중요한 일을 멀리하면 저주받고, 그 중요한 일을 힘써 행하면 축복받습니다. 진정으로 축복받기를 원하면 부모님께 효도해야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지상 최대의 축복을 얻는 요소입니다.

요새는 효도에 대해 냉소하는 분위기입니다. 효도하는 사람을 마마보이로 몰아댑니다. 여자들은 효도하는 남편을 싫어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왜냐하면 많은 남편들이 마누라 등쳐서 ‘대리 효도’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효도까지 그런 식으로 나쁘게 몰아붙이면 그 자식은 잘될 수 없고, 나중에는 자기 자식으로부터 똑같이 당하게 됩니다.

효자는 효자를 낳고, 불효자는 불효자를 낳습니다. 자녀들은 지금 부모님이 노부모님에게 어떻게 하는지 다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대로 따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녀를 사랑하면 먼저 부모를 사랑해야 합니다. 자녀가 잘 되기를 원하면 부모에게 잘해야 합니다. 내리사랑보다 더 중요한 것이 올리사랑입니다. 사위는 백년손님이라고 하지만 부모님은 천년손님입니다. 부모님을 천년손님처럼 대할 때 자녀들도 보고 배워서 나중에 대접받게 될 것입니다.

< 부모님을 공경하는 방법 >

오늘 본문은 십계명의 일부분입니다. 십계명 중에서 4계명은 하나님 앞에서 지켜야 할 계명이고, 나머지 6계명은 사람 앞에서 지켜야 할 계명입니다. 사람 앞에서 지켜야 할 계명 중의 첫 번째 계명이 바로 제 5계명인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입니다. 그 말은 사람이 해야 할 가장 근본적이고 우선적인 일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부모님을 공격하지 말고, 힘써 부모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각자 나름대로 존경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분은 링컨을 존경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님을 링컨보다 더 존경해야 합니다. 어떤 분은 베드로를 존경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님을 베드로보다 더 존경해야 합니다.

20세기의 최대의 신학자인 칼 발트는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영이신 하나님을 잘 섬기도록 우리 곁에 부모님을 주셨다.” 그처럼 우리는 부모님을 하나님처럼 높여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부모님을 잘 섬기는 모습을 보고 우리의 믿음의 진정성도 평가하실 것입니다. 보이는 부모님을 잘 섬기지 못하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없습니다.

부모님이 믿지 않는 분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믿음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부모님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태도만은 잃지 말아야 합니다. 심지어는 부모님이 죄를 짓고 감옥에 갔어도 자신만은 부모님을 최대한 존경해야 합니다. 그처럼 부모님에게 수많은 허점이 있어도 우리는 부모님을 최대한 공경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일까요? 오늘은 부모님을 공경하는 실제적인 방법 2가지만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왜 부모님께 순종해야 합니까? 부모님이 우리에게 잘 해주었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부모님이라는 사실 때문에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님이 많이 알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님이 우리보다 몰라도 순종해야 합니다. 요새 대부분의 자녀가 부모님보다는 똑똑할 것입니다. 그러나 진짜 똑똑한 것은 “나는 부모님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순종하려고 하는 것이 진짜 똑똑한 것입니다.

자녀들은 나이에 따라 아버지에 대한 의식구조라 달라진다고 합니다. 4살 때쯤에는 자기 아버지가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줄 압니다. 12살쯤 되면 아버지는 아는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합니다. 본격적인 사춘기에 들어서는 14살쯤 되면 아버지는 생각하는 것이 다 구식이라고 생각합니다. 21살쯤 되면 아버지는 골동품이고 미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사회생활을 1년쯤 하면 비로소 “아버지가 그때 그래서 그렇게 가르치셨구나!”라고 이해하게 됩니다. 35살쯤 되면 내 문제를 아버지와 상의하고 싶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자기 자녀가 사춘기에 접어들 무렵인 40살쯤 되면 비로소 아버지의 사랑을 깊이 이해하게 됩니다. 50살쯤 되면 돌아가신 아버지가 생각나면서 역시 내 아버지는 훌륭한 분이었다고 생각하게 되고, 60살쯤 되면 나는 아버지보다 너무 못하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런 성장과정 속에서 무엇이 가장 큰 문제입니까? 성년이 되어도 부모님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고 부모님 말씀에 “예!” 하지 못하는 것이 가장 큰 문제입니다. 우리는 부모님께 기쁨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님께 순종해서 못 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잘못되는 경우도 하나님께서 다 보상해주십니다. 그러므로 내 이치에 맞지 않는 말씀을 하셔도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미국 뉴저지의 한 한인 가정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날, 딸아이가 도서관에 가는데 엄마에게 섬뜩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얘야! 오늘은 집에서 공부해라!”고 했는데, 딸아이는 그 말을 무시하고 갔다가 납치되어 지옥 같은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항상 부모님의 말씀을 귀 기울여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부모님께 순종하는 자녀에게 축복의 문을 열어주실 것입니다.

2. 기쁨으로 희생해야 합니다.

가끔 보면 부모님을 마지못해 모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형식적인 신앙을 싫어하시듯이 형식적인 효도도 싫어하십니다. 나를 낳아주신 부모님이니까 어쩔 수 없이 모시고, 남들의 시선이 있으니까 모시고, 아무도 모실 사람이 없으니까 모시고, 부모님이 병들었으니까 할 수 없이 모시는 것은 마치 축복을 걷어차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부모님을 기쁨으로 모실 때 반드시 지상 최대의 축복을 허락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님은 축복을 불러오는 천사로 알고 기쁨으로 모셔야 합니다. 단순히 명절에 찾아뵙고, 가끔 전화를 드리고, 생일잔치를 해드리는 것 이상으로 부모님을 기쁘게 해드리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물질과 시간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모님은 자녀가 물질을 드리면 “돈도 없을 텐데 그러지 말라!”고 하시지만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그 물질에 자녀들의 마음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부모님은 자녀가 어렵게 찾아오면 “돈도 없고 시간도 없을 텐데 이렇게 멀리 왔느냐?”고 하시지만 속으로는 “언제 자녀들이 찾아와주나?” 하고 기다리십니다.

어르신 부모님이 자녀들보다 더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손자입니다. 그러므로 손자들을 많이 보여드리고 손자들과 많은 접촉과 대화를 하도록 기회를 만들어 드리는 것도 필요합니다. 그러면 “손자들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다!”고 말씀을 하시지만 얼마나 활력이 생기는지 모릅니다.

그처럼 손자들을 너무 좋아하기 때문에 노부모님께 손자들을 맡기면 버릇이 나빠진다고 손자들과 접촉을 금지시키는 부모도 있습니다. 정말 하나만 아는 무식한 모습입니다. 자녀가 버릇이 나빠지는 이유의 99%는 부모가 징계할 때 징계하지 못하고 본을 보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책임을 남에게 전가하는 모습 자체가 벌써 자녀의 버릇을 나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자녀들을 노부모님과 자주 접촉시키면 얻는 것이 훨씬 많습니다. 무엇보다 그 영혼이 사랑으로 풍성하게 됩니다. 그 일을 막는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 모습입니까? 결국 심은 대로 거둡니다.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든지 부모님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가끔 전화로 부모님께 말합니다. “어머님! 오늘 저녁에 같이 식사하세요. 저희가 한턱 쏠게요.” 그렇게 하면 “많이 바쁠 텐데 괜찮다!”라고 하지만 전화를 끊고 얼마나 흐뭇한지 모릅니다. 몸속에서 엔돌핀이 솟아오릅니다. 부모님이 고급 음식 먹어서 기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을 위해 자녀들이 시간과 물질을 들이는 모습을 통해서 그 마음을 받고 기쁘신 것입니다.

제가 이번 주에 한 가지 마음이 기쁜 일이 있었습니다. 요새 제 차가 돈 먹는 기계입니다. 몇 달 전에는 몇 가지 고치는데 28만원이 들었습니다. 그 뒤 한달 여 만에 또 몇 가지 고치는데 23만원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지난 토요일에는 엔진이 과열된 표시가 나서 카센터에 갔더니 엔진 헤드에 금이 가서 엔진으로 냉각수가 조금씩 흘러들어가 냉각수가 없어지니까 과열이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장거리는 뛰지 말고 1주일에 한번씩 냉각수를 채우면서 동네만 다니라고 했습니다.

어떻게 동네만 다닙니까? 그래서 고치는데 얼마냐고 물었더니 45만원이 든다고 했습니다. 고민이 되었습니다. 자동차가 이제 만 8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자꾸만 고장이 나니까 고민이 되고, 재정부 보기에도 미안했습니다.

그렇게 며칠간 고민하다가 할 수 없이 지난 화요일 저녁에 카센터에서 재정부 집사님에게 전화를 드렸습니다. “집사님! 차의 엔진 헤드가 고장 났는데 이번에는 45만원이 든다고 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미안하니까 그냥 물어본 소리이지 어떻게 합니까? 당연히 고쳐야지요. 그런데 집사님이 고민하다가 말했습니다. “목사님! 이제 차 바꿔야 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한번 할부로 알아보세요.”

그 말을 듣고 얼마나 들떴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날 저녁 열심히 새 차를 알아보았습니다. 2001년에 성도가 모는 소나타를 한번 타보고 고속도로를 달린 후에 너무 좋다고 느낀 후에 그때부터 “나도 언젠가 소나타를 타볼 수 있을까?”하고 생각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열심히 궁리해 보았습니다. “소나타를 알아볼까? 아니, 너무 비싸다. 라세티라면 어떨까?”

그렇게 2시간이 꿈같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저녁 9시쯤 교회에 와서 찬찬히 그 일을 묵상하는데 그 좋았던 기분이 점차 마음에 부담감으로 작용했습니다. 교회가 재정이 넉넉하지 않은 상태에서 교회에 지나친 부담을 지우는 것 같아서 미안했고, 그 돈이 있으면 선교를 더 해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기도하면서 마음에 평안과 확신이 생겼습니다.

다음날 집사님에게 말했습니다. “집사님! 우리가 선교를 많이 못하고 있는데 그 돈으로 차라리 선교를 조금 더 합시다. 앞으로 교회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삽시다.”

그 말을 하고 난 뒤에 얼마나 마음이 편했는지 모릅니다. 무엇인가 짐이 하나 없어지고 상쾌해졌습니다. 그리고 더 기쁜 것이 있었습니다. 재정부 집사님이 어려운 형편임에도 불구하고 “차 한번 알아보세요.”라고 한 말이 그렇게 고마웠습니다. “집사님이 이렇게 생각해주시는구나!”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결국 차는 못 샀지만 마음은 참 흐뭇했습니다.

우리가 부모님께 해드릴 것은 우리의 마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부모님을 위해 우리의 물질과 시간을 기꺼이 낸다면 부모님도 크게 기뻐하실 것입니다.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마음도 얻게 될 것입니다. 믿는 사람들은 시간의 칠일조 생활을 하고, 물질의 십일조 생활을 합니다. 저는 부모님을 대할 때에도 시간의 칠일조와 물질의 십일조를 구별해서 드리는 삶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시간 다 쓰고, 자기 일정 다 소화하고 시간이 남을 때에야 비로소 “부모님께 한번 가볼까? 전화를 한번 드려볼까? 부모님과 한번 식사를 할까?”라고 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바쁜 중에서 부모님을 위해 시간을 내고, 돈이 없는 중에서 부모님을 위해 호주머니를 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사실 이제까지 우리 부모님은 힘든 중에서도 우리를 위해 시간을 내셨고 물질을 쓰셨습니다. 그 생각을 하면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조금 내는 것에 무슨 큰 고민이 있겠습니까? 아무리 많은 것을 드려도 여전히 부족할 뿐입니다. 부모님이 우리에게 해준 것의 10분의 1만 하려고 해도 우리는 지상 최대의 효자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그 말은 우리가 그만큼 안 하다는 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녀를 위해서는 참 잘합니다. 그처럼 자녀들에게 쏟는 정성의 10분의 1만 부모님께 쏟아도 아마 부모님들은 크게 감격하실 것입니다. 이제는 형식적인 효도를 그쳐야 합니다. 평소에는 관심도 두지 않다가 환갑잔치와 칠순 잔치에만 뻑적지근하게 효도하는 이벤트성 효도도 그쳐야 합니다.

인천에서 목회할 때 한분의 칠순 잔치에 참석했습니다. 밴드를 불러 한 손녀가 남행열차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 노래에 맞춰 한 자녀가 노모를 업고 춤추다가 노모의 갈비뼈 두 대를 부러뜨렸습니다. 그런 이벤트 효도를 한번 하고 1년, 10년 동안 불효자로 지내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어떤 분은 평소에는 부모님 마음을 많이 아프게 했다가 돌아가시기만 하면 열심히 제사를 지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제는 돌아가신 후에 효도하겠다고 하기 전에 이 땅에서 최대한 효도를 해드려야 합니다. 우리들은 부모님들을 위해 기쁘게 십자가를 지는 심정으로 최선을 다해 물질과 시간과 관심과 마음을 드려야 합니다.

< 효자의 축복 >

하나님은 효자를 어느 누구보다 좋아하십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효자에게 많은 축복을 약속하고 있습니다. 효자에게는 어떤 축복이 약속되어 있을까요? 에베소서 6장 2-3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1. 효자는 잘 됩니다.

왜 일이 잘 풀리지 않습니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부모님께 효도하지 않은 것이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불효는 모든 축복을 막습니다. 역사상 불효자가 잘 된 예가 없습니다. 반대로 역사상 효자가 못된 예도 없습니다.

창세기 22장을 보면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이 청년이 된 이삭을 번제로 드리려고 할 때 이삭은 아무 반항 없이 자기의 목숨을 아버지께 맡겼습니다. 그런 모습이 있었기에 이삭은 정착해서 파는 곳마다 우물이 터졌던 것을 보게 됩니다. 고대에 우물은 가장 큰 재산 중의 하나였습니다. 또한 농사할 때 100배의 소출을 주셔서 거부가 되게 하셨습니다(창 26:12-13)

이 땅에서 성공하고 싶으면 효자가 되어야 합니다. 부자관계는 모든 관계의 기초입니다. 그 기초 관계가 부실한 상태에서 다른 축복을 아무리 많이 쌓아도 그 축복은 모래 위에 지은 성처럼 금방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부자관계가 잘 되면 사업도 잘 되고, 인간관계도 잘 되고, 조만간 물질문제도 풀리게 될 것입니다.

2. 효자는 장수합니다.

효자가 장수한다는 말씀은 오래 산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말씀에는 자녀들이 잘된다는 뜻도 들어있고, 그의 영향력이 장수한다는 뜻도 들어있고, 그의 축복이 장수한다는 뜻도 들어있습니다. 아무리 축복을 받아도 그 축복이 일시적으로 끝나면 진짜 축복이 아닙니다. 축복이 오래가고 축복의 영향력이 오래 가는 것이 결국 잘되는 것입니다. 효자는 축복도 받지만 그 받은 축복도 오래 갑니다.

또한 효자가 장수한다는 말은 실질적으로 오래 산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왜 사람이 장수합니까? 장수의 최대의 요소는 절제에 있습니다. 누가 절제할 줄 압니까? 대개 부모님의 말을 잔소리로 듣지 않고 묵묵히 듣는 사람이 절제할 줄 압니다. 그래서 효자는 장수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효도는 축복의 근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부모님의 은혜를 잊지 마십시오 >

우리는 부모님의 은혜를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한때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가장 효성이 있는 민족이라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고종 황제의 밀사였던 미국인 헐버트는 “조선은 세계에서 가장 경로사상이 완벽한 나라다!”라고 했습니다. 최초의 선교 의사인 알렌도 “조선은 노인 천국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런 경노사상 때문에 동방예의지국이란 소리도 들었습니다.

그런 우리나라가 지금은 효심을 많이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우리 믿는 사람들이 다시 효의 바람을 일으켜야 합니다. 신앙이 좋으면 반드시 효심도 좋아야 합니다. 효도하지 않는 사람이 신앙이 좋을 수 없습니다. 효도가 없어도 신앙이 좋다는 것은 거짓이고,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중요한 것을 놓치는 것입니다.

성도의 삶과 인격은 어르신을 잘 대해드리는 태도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축복받기 때문에 효도하는 것이 아니라 효도를 자연스런 삶의 일부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사실 부모님의 은혜를 생각하면 효도라고 내세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앞으로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더 이상 효도할 기회가 없습니다.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얼마나 부모님이 귀하게 느껴지는지 모릅니다. 그때는 부모님께 더 효도하지 못한 것이 얼마나 아쉬운지 모릅니다. 그처럼 가장 좋은 것을 놓치고 때늦은 후회를 하지 말고 이제 효도할 방법을 구하고, 무엇보다 효도할 마음이 풍성하기를 구해야 합니다.

사실 부모님의 사랑이 얼마나 큽니까? 어떤 목사님이 딸을 결혼시키기 전까지는 양가의 부모님에게 모두 “축하합니다. 기쁘시죠?”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본인이 직접 딸을 시집보내고 나서부터는 신부 아버지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결혼식을 마치고 나면 신부 아버지의 손을 꼭 잡아 준다고 합니다. 그것은 “제가 당신의 마음을 압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런 부모의 하늘같은 사랑을 배반하고 어떻게 하늘을 알고 하나님을 알겠습니까?

가끔 제가 집 문을 열면 아이들이 후다닥 소리를 내며 급히 숨습니다. 그러면 벌써 어디에 숨었는지 다 압니다. 그렇지만 집에 들어와서 “은혜야! 어디 있니? 한나야! 어디 있니?”라고 하면서 열심히 찾습니다. 침대 밑에 숨은 것을 알지만 문 뒤를 쳐다보고, 화장실에 가보고, 옷장 안을 뒤지는 척 합니다. 아이들은 아빠의 그런 모습이 우습다고 자기들끼리 좋아서 숨을 죽이고 킬킬거립니다.

그 아빠의 우스운 모습 속에 자녀를 향한 애틋한 사랑이 있는 것을 나중에 자녀도 부모가 되어서야 알게 됩니다. 그처럼 부모님은 우리를 사랑으로 키워주셨습니다. 그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솔직히 인간의 가장 기본 도리를 모르는 것입니다. 특별히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 부모를 무시한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사람을 사귈 때 불효자는 결코 사귀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사람과 가까이 하면 같이 다치는 수가 있습니다. 반대로 효자들을 가까이 하십시오. 가까이 하는 것만으로도 얻는 떡고물이 참 많습니다. 더 나아가 효자가 되기를 힘쓰십시오. 하나님께서 반드시 지상 최대의 축복으로 우리의 삶과 미래를 책임져주실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그 현장에 없었던 도마는 자기가 직접 눈으로 주님의 상처를 확인하지 않으면 믿지 못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때 주님께서 그에게 찾아와 손과 옆구리의 상처를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 상처는 주님의 사랑의 흔적이었습니다. 그 상처를 보고 도마는 “주님은 나의 주님이시고 나의 하나님이십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마찬가지로 부모님의 주름살과 흰머리도 우리를 위한 부모님의 사랑의 흔적입니다. 그 주름살과 흰머리를 보고 우리는 속으로 “부모님! 부모님은 저의 영원한 뿌리이고 마음의 고향입니다. 이제 앞으로는 부모님께 더욱 잘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해야 합니다. 이제 부모님을 최대한 기쁘게 함으로 하나님을 최대한 기쁘게 하고 지상 최대의 축복을 얻는 길로 들어서는 복된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설교 / 이한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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