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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온유의 영성 (마 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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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열심히 일합니다. 수고의 대가로 아파트를 삽니다. 좀 더 넓은 아파트로 이사를 갑니다. 그러나, 새로운 아파트에 입주한 후, 얼마 동안은 참 좋다 라고 느끼지만, 얼마 안 있으면, 그런 느낌도 사라집니다. 이전과 같습니다. 행복한 삶을 위하여 집을 바꾸고, 가구를 바꾸고, 자가용을 바꿉니다. 심지어는 남편 때문에 내가 행복하지 못하다고 남편을 바꿉니다. 아내를 바꿉니다. 이혼하는 것이지요. 얼마 동안은 깨가 쏟아지는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예전과 같아집니다.
행복이 외부 환경에서 오는 줄 알고 외부 환경을 자꾸 바꾸지만, 행복은 결코 외부에서 오지 않습니다. 행복은 우리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아무리 집을 바꾸고, 차를 바꾸고, 가구를 바꾸어도 우리 마음이 바뀌지 않으면 결코 행복하지 않습니다. 천국은 환경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옵니다.

2. 예수님께서 산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산상 수훈의 말씀 중 여덟가지 복, 팔복은 천국에 이르는 여덟 계단이라고 봅니다. 천국에 이르기 위하여 우리가 지녀야 할 여덟가지 성품 혹은 여덟가지 영성입니다. 첫 번째는, 비움과 채움의 영성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다. 천국이 저희 것임이다. 이 말씀은 우리의 마음에 가득찬 세속적인 욕망을 비우고, 동시에 하나님의 것으로 채울 때, 우리는 천국을 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계단은 눈물의 영성입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다.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이다. 내 속에 있는 세속적인 욕망과 죄악을 눈물로 참회하고, 이웃의 연악함에 동참하며 눈물로 기도할 때,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오늘은 세 번째 계단입니다. 온유의 영성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다.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다. 이 세 번째 계단은 앞의 두 계단을 통과할 때, 이어지는 것입니다.

3. 온유한 사람이라 하면, 우리 머리에 어떤 이미지가 떠오릅니까?
성격이 온순한 사람, 마음이 유약한 사람, 남의 말을 잘 듣고, 하자는대로 따라가는 사람, 화가 나도 화를 내지 않고 속으로 삭이는 사람이 떠오릅니까? 그러나, 이런 사람을 온유하다고 하지 않습니다. 온유는 무슨 성격이 아닙니다. 후천적으로 만들어지는 성품입니다.
성경에서 사용된 온유란 단어의 헬라어는 "프라우스"입니다. 이 프라우스란 단어는 집에서 잘 길들여지는 동물을 묘사할 때, 사용합니다. 예를 들면, 사냥개가 주인에게 잘 길들여져서 주인의 명령을 잘 이해하고 복종하게 될 때, <프라우스>하다고 합니다. 이렇게보면, 온유란 힘이 없어서 유약한 사람을 가리키지는 않습니다. 온유란, 힘있는 사람, 강한 사람
에게 해당되는 말입니다. 힘이 있지만,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잘 조절할 수 있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힘과 부드러움이 잘 결합된 상태가 온유입니다. 달리 말한다면, 힘의 부드러움입니다. 통제된 힘, 잘 조절된 힘이 온유입니다.
헬라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온유는 격렬한 분노와 전혀 화를 내지 않는 것의 중간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극단에 치우치지 않는 중용의 도를 온유라고 설명했습니다. self-control, 자제력이 있는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자기 감정을 잘 다스리는 높은 수준의 EQ를 온유라고 합니다.

4. 좀 더 구체적으로, 온유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봅시다. 두 가지 방향에서 생각해봅니다. 하나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다른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온유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먼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온유한 사람이란, 겸손하여 하나님의 뜻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성경 인물 중 대표적으로 온유한 사람이 욥입니다. 욥은 참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동방의 의인이요 갑부인 욥이 하루 아침에 열 자녀 다 잃어버리고, 재산을 다 빼앗기고 빈털털이가 되었습니다. 이런 재난을 당한 욥이 하나님께 뭐라고 말합니까?
"주신 자도 여호와시오,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욥1:21)
결코 하나님을 원망하거나 지금의 처한 환경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실히 믿었습니다. 재수가 없어서 그런 게 아닙니다. 팔자가 기구해서 그런 일이 생긴 것이 아닙니다. 다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일어난 일임을 믿고 순종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온유의 모범은 예수님이십니다. 마11:29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스스로 자신의 인품을 온유하고 겸손하다고 하셨습니다.
그 구체적인 예가 마태복음 26장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마지막 잡히시던 날 밤에, 겟세마네 동산에서 십자가를 앞에 두고 기도하실 때,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26:39) 자신의 앞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이 때 마음에 평안이 찾아옵니다. 십자가를 져야하나 말아야 하나, 큰 고민 가운데 죽게 되었는데,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손에 다 맡기고나니 마음에 평안이 찾아온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음 속에 말 못할 고민이 있습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골치 아픈 문제를 안고 계십니까? "하나님, 당신 뜻대로 알아서 해주십시오." 하나님께 맡겨버립시다. 그 순간부터 마음에 평안이 찾아올 것입니다. 시편37:1에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행악자를 인하여 불평하여 하지 말며, 불의를 행하는 자를 투기하지 말지어다."
왜요? 2절에 이어서 나옵니다.
"저희는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볼 것이며 푸른 채소같이 쇠잔할 것임이로다."
여러분, 불평하지 맙시다. 온유한 사람은 어떤 환경에서도 불평하지 않습니다. 그 환경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불평하는 사람은 정말 불행합니다. 늘 마음이 편치 못합니다. 속에 가시가 돋아나고 있으니 어찌 평안하겠습니까? 불평하는 성격을 이제 고치도록 합시다.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지 않습니다.
왜 불평합니까? 자기 뜻대로 되지 않으니까 불평합니다. 이것만큼 교만한 것이 어디 있습니까? 세상이 자기 뜻대로 다 됩니까? 결코 자기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됩니다. 그러므로, 불평하는 사람은 늘 불평합니다. 모든 게 자기 맘대로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데일 겔로웨이 목사님은 교인들에게 이런 기도를 가르쳤습니다.
"주여, 내가 고칠 수 없는 것은 받아들임으로 평온함을 주옵시고, 내가 고칠 수 있는 것은 고칠 수 있는 용기를 주옵시며, 내게 고칠 수 없는 것과 고칠 수 있는 것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우리가 고칠 수 없는 것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내 남편의 성격, 내가 고칠 수 없습니다. 내 아내의 습관, 내가 고칠 수 없습니다. 악한 자들이 잘 되는 것, 내가 고칠 수 없습니다. 날씨도 내가 고칠 수 없습니다. 그 외에도 얼마나 많습니까? 대부분의 내게 주어진 환경은 내가 고칠 수 없습니다. 고칠 수 없는 것들은 그냥 받아들입시다. 그래야 마음이 평안해집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주신 환경을 그대로 순종하고 받아들이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둘째,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관용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자신은 엄격하고 철저하게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이 있지만, 다른 사람에 대하여는 부드럽고 너그럽게 행동하는 사람을 가리켜 온유하다고 표현합니다. 자기에게 반란을 일으킨 사람에게 보복을 행사할 수 있으나, 그렇게 하지 않고 그들을 온정으로 다룬 왕을 온유하다고 합니다. 거인의 힘을 가지고, 그것을 거인처럼 사용하는 자는 독재자입니다. 힘이 있지만, 그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고 잘 조절할 줄 아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이 죽었다. 신은 죽었다.'고 한참 떠들면서 인기를 끌었던 철학자가 있습니다. 니체입니다.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땅을 차지한다.'는 말씀에 대하여 니체는 예수님이 말한 온유는 약자의 덕, 노예의 덕이지 강자의 덕은 아니라고 비웃었습니다. 그래서 니체는 초인의 힘을 들고 나왔습니다. 초인의 정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슈퍼맨의 정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슈퍼맨의 정신을 가져야 이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꼴은 어떻게 됐는지 아십니까? 나중에는 정신병에 걸려 어떻게 죽었는지도 모를 정도였습니다.
이 니체의 사상을 이어받은 사람이 히틀러입니다.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하려든 히틀러가 어떻게 죽었습니까? 지하 벙크에서 자기 권총으로 자살하지 않았습니까? 나폴레옹은 한 때 세상을 지배했지만, 결국 힘으로, 무력으로 세상을 제대로 지배하지 못했습니다. 세인트 헬레나 섬에 귀양가서 "나는 백만 대군으로 세계를 정복하려 했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나
사렛 예수는 한 명의 군사도 없이 사랑으로 세계를 정복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온유한 사람이 세상을 정복합니다. 온유한 사람이 땅을 차지합니다.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찔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자동차가 아니라 흉악한 무기입니다. 잘 조절되지 않는 힘, 관용하는 마음이 없이 함부로 휘두르는 힘은 브레이크가 파열된 자동차와 같이 위험합니다. 수많은 사람을 다치게 합니다.
온유하지 못한 남편은 아내를 다치게 하고, 온유하지 못한 아내는 남편의 잘못을 도무지 용납해주지 못합니다. 온유하지 못한 부모는 자녀들의 잘못에 쉬 분노를 터뜨림으로 아이들의 마음에 큰 상처를 남깁니다.
칼빈은 온유에 대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온유는 부드러운 태도로 말하며, 박해에 대하여 쉽게 노하지 않으며, 보복하지 아니하며, 원수에 대하여 길이 참는 것이다."

이런 면에서 모세는 온유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방여인인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했습니다. 모세의 형 아론과 누나 미리암이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한 모세의 잘못된 행동을 지적하고 모세의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네가 어찌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할 수 있느냐? 모세 너만 지도자냐? 하나님이 너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에게도 말씀하셨다."하면서 모세의 지도력에 브레이크를 걸었습니다. 모세는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았습니다. 속으로는 기분이 상하고 마음이 아팠을 것입니다. '형이 그럴 수 있나? 누나가 동생을 이렇게 힘들게 할 수 있나?' 모세는 이스라엘을 이끌어가는 지도자로서 지도자의 지도력에 반기를 든 형과 누나에 대하여 충분히 징계를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참았습니다. 그의 힘을 함부로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민수기12:3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모세에 대하여 평가하셨습니다. <모세는 세상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다.> 온유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충고를 하거나 조언을 할 때, 잘 받아들입니다. 특별히 모세는 지도자로서 자기의 지도력 아래 있는 형과 누나의 지적에 대하여 묵묵히 참고
지도력에 반기를 들었으나 자기가 잘못하여 생긴 일이므로 달게 받아들였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아랫 사람의 조언이나 지적을 달게 받아들입니다. 무슨 말로 헐뜯더라도 같이 싸우지 않습니다. 대응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를 너그럽게 용납하고 용서해줍니다.
온유한 사람은 이렇게 수용성(receptivity)이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을 열고 남의 말을 잘 들어주고, 남에게서 뭔가 배우려고 하는 사람, 이런 수용성있는 사람을 가리켜 온유하다고 합니다.

예수님은 자기에게 빰을 치고, 침을 뱉고, 욕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길이 참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온순하셔서 참은 것이 아닙니다. 무능하여 힘이 없어서 그냥 참은 것이 아닙니다. 천군천사를 동원하여 자기를 욕하는 사람들을 다 잡아 죽일 수도 있는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힘을 함부로 쓰지 않았습니다. 이 고난의 길이 하나님이 준비하신 길임을,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고 있음을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피를 흘리시면서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요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원수를 용서하신 주님의 모습입니다. 원수에까지 수용성을 보이신 분이십니다.

노자가 죽으면서 중대한 교훈을 남겼다고 합니다. 노자는 죽을 때, 제자들을 앉혀놓고 입을 벌리고는 "내 입에 뭐가 있지." 라고 물었습니다. 제자들은 "아무 것도 안 보이고 물렁물렁한 혀만 보입니다." 그 때, 노자는 "그렇지. 내 치아는 다 빠졌어. 젊은 날, 내 치아는 참 좋았는데, 이 치아가 사나워지고 혀를 물어뜯고 아주 교만하게 굴더니 다 빠져 버렸어. 물어 뜯기우고 상처를 입으면서도 참고 살아온 혀만 남아있을 뿐이야."라고 하면서 단단한 것은 죽음이요 온유한 것만이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단단한 사람, 딱딱한 사람, 강팍한 사람은 오래 가지 못합니다. 온유한 사람이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입니다.

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가 받을 복은 땅을 받는 것입니다. 여기의 땅은 부동산이 아닙니다. 땅은 소유권을 의미합니다. 온유한 남편은 아내를 온유한 아내로 만들 수 있습니다. 온유한 아내는 포악한 남편을 온유한 남편으로 받습니다. 온유한 부모는 자녀들을 온유한 자녀로 받습니다. 온유한 사장은 사원들을 온유한 사원으로 받습니다. 이렇게 온유한 사람은 그의
주권의 영역이 넓어집니다. 남편, 자녀들, 직장 동료들, 친인척들, 동네 주민들, 이들이 모두 나의 것으로 나의 영역 안으로 들어옵니다. 그들과 함께 천국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도 천국같은 삶을 누리며 살기를 간절히 원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천국의 삶을 누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 온유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원래 하나님께 전적으로 순종하지 못하는 교만한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해주지 못하고 정죄하고 헐뜯기를 잘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결코 온유한 사람이 아닙니다. 딱딱한 사람, 굳은 사람입니다.
겨울이 되면, 우리 피부가 딱딱해지고 거칠어집니다. 나무도 풀도, 삼라만상이 굳어집니다. 그러나, 봄이 오면 피부도 부드러워지고, 나무도 부드러워집니다. 거기에서 순이 나오고 잎이 나오고 꽃이 피고 열매가 맺힙니다. 태양을 가까이 하면 이렇게 부드러워집니다. 태양을 멀리하면 딱딱해지고 거칠어집니다.
의의 태양이신 하나님을 가까이하면 우리의 굳은 심령이 부드러워지고 온유해집니다. 반대로 성령 하나님을 멀리하면 우리의 마음이 거칠어지고 강팍해집니다.

우리의 마음이 지금 굳어 있습니까? 거칠어져 있습니까?
빛이신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오십시오.
우리의 심령이 부드러워질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5:22에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라고 했습니다. 우리 힘으로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온유는 성령의 열매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올 때, 성령의 은혜로 온유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온유한 사람이 되어서 우리 가정이 온유한 사람들로 변화된 천국이 되고, 우리 교회가 온유한 사람들이 모인 천국이 되고, 우리 나라가 온유한 사람들로 가득 찬 천국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설교자: 오재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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