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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절제하며 삽시다 (고전 9:2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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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의 생활 가운데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를 깊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건드려야 설교가 제대로 될 것 같아서 입니다. 저는 나름대로 현대인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절제라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현대인의 특징은 방종, 무절제, 무한한 쾌략 향유일 것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특징도 마찬가지입니다. 훈련, 연단, 권징이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무엇보다도 절제가 강조되어야 하는 시대이며 세상입니다. 
  절제하지 않는 심보는 도둑심보입니다. 내가 쓸 수 있는 분량보다, 써도 되는 분수보다 앞당겨 쓰거나 넘게 쓰면 이는 다 도둑질입니다. 이 도욱질은 우리와 우리 자손들을 빈궁하게 만듭니다.
                             
  바울사도는 성도들을 때때로 좋은 농부나 좋은 군사나 좋은 경기자로 비유를 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좋은 농부나 군사나 경기자는 한결같이 모든 일에 절제한다는 사실을 말해주었습니다. 믿음생활은 절제를 훈련하고 연습하고 절제의 능력을 키우는 것입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절제할 줄 모르면 잘못되기 쉬운 것입니다.
  절제는 믿음을 가진 사람들뿐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있어서 인간다운 인간이 되어가는 과정에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절제가 안되는 인간은 인격자가 아닙니다. 절제라는 것은 자기 통제, 즉 자기를 억제하고 조정하고 다스리는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절제의 능력이 뛰어난 사람일수록 좋은 사람이 되고 인격자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의 경우 여러분의 자동차가 통제가 안 된다고 생각을 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그것은 사고뭉치가 될 수밖에 없습니다. 무슨 힘이든지 통제가 되고 조정이 될 때 그것이 유익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통제를 못해서 후회막급한 인생들이 많습니다.
노름으로 집을 날린 사람이 "아, 내가 처음 몇푼 잃었을 때 털고 일어났더라고 하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것과 같습니다.

  베드로후서 1:5~6에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더하라"고 했습니다.
  "믿음과 덕과 지식에 절제를 더하라"고 했습니다. 세상에는 절제하지 못해서 망하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물질에 대한 지나친 욕심을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망하는 사람, 먹을 것을 절제하지 못해서 병을 앓고 사는 사람, 성을 절제하지 못해서 성범죄인이 되는 사람, 일을 절제하지 못해서 과로로 쓰러져 죽는 사람 등등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절제의 미학을 지키지 못해서 망합니다.

  사람이 화가 날 때도 그것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정신 신체 의학연구 개척자인 월터 캐논박사는 "화의 구름"이 있음을 발견하고 이 구름이 뇌신경에 모이면 눈에 핏발이 서고 얼굴이 붉게 상기되며 말을 더듬게 되는 증세가 생긴다고 분석했습니다. 캐논박사는 화의 해악성에 대해 이렇게 구체적으로 말합니다.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박동이 불규칙해지며 피가 위와 장기에서 심장 중추신경계근육 등으로 역류한다. 소화기관의 기능이 중지되고 간에 저장되어 있던 당분이 유출되며, 아드레날린이 분비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늘 믿음생활에도 절제가 필요하다고 성도 여러분들에게 가르쳐 왔습니다. 교회생활이 중요하기는 하나 가정이 위험에 처하도록 교회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생활이 중요하기는 하나 부부간에 금이가도록 기도생활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기의 몸을 망치도록 과도하게 교회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봉사활동이 중요하기는 하나 삶은 봉사로만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생활이 있어야 합니다. 이런 하나님의 일에도 절제가 필요한 것입니다.

  아무리 큰 믿음의 사람들일지라도 베드로후서는 절제를 더하지 아니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아무리 믿음이 좋아도 그 믿음에 절제를 지키지 아니하면 믿음이 있고서도 망하는 것입니다. 절제는 자신을 다스리는 것입니다. 모든 탐욕은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자신을 다스림이 성을 정복함보다 나은 것이고,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면 방종과 무절제로 생활하게 됩니다.

  세상에 가장 의로운 노아도 방주에서 나와 포도주의 취하여 자신의 아들을 저주에 빠뜨리는 일을 했습니다.
  에서는 팥죽 한그릇에 대한 절제를 못하고 장자의 명분을 팔았습니다.
  천하장사 삼손도 스스로를 절제하지 못했을 때, 두 눈이 뽑히고 연자맷돌을 돌리는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이런 예를 들라면 시간이 너무 모자랍니다. 누구나 자신을 쓰러뜨려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고린도 전서  9:25절에도 "모든 일에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절제한다" 했습니다. 가령,  운동 경기를 하는 선수가  그냥 되는 게  아닙니다. 절제를 합니다. 먹고 싶은 것 마음대로 먹고, 가고 싶은  곳 마음대로 가고, 하고 싶은 것 마음대로  하고 그러면 좋은 운동선수가 되질 못합니다. 절제를  하여 훈련을 받아야 좋은 운동선수가 됩니다. 썩을 세상에 면류관을 얻게  위해서도 이렇게 훈련을 하고 절제를 해야 하는데 하물며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으려는 사람이 어떻게 절제하지 않을 수가 있겠느냐 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권면입니다.

  그러나 자기가 스스로 자기를 절제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5장에서는 절제를 성령의 열매에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성령 충만이 곧 절제의 삶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사실입니다. 절제는 금욕주의로만 되는 것도 아닙니다. 고행주의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따라 인생을 지극히 행복하고 긍정적으로 살아가는 삶의 열매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절제는 수도원주의에서 얻는것이 아니라, 생활가운데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최고치 복된 삶인 것입니다. (설교 : 송기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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