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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오직 나의 신으로 (슥 4:1 -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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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선교의 개척자’로 불리는 ‘허드슨 테일러’선교사는 후배 선교사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하곤 했답니다.

“하나님이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먼저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의 방법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세속적인 방법과는 다른, 영적인 방법을 가리킵니다. 라이온스 클럽이니, 로터리 클럽이니 하는 단체들과 교회가 근본적으로 다르듯이 말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며, 성령의 공동체입니다. 교회의 출발은 성령강림으로 시작되는 것이며, 성령께서 간섭하시고, 인도하시고, 말씀하시는 공동체가 바로 교회입니다. 그렇기에 교회는 늘 성령을 의지해야 함이 당연합니다.

  우리가 종종 경험하게 되는 일 가운데 이런 일이 있습니다.
  일을 추진함에 있어 모든 조건이 완벽합니다. 시간도 충분하고, 인적 자원도 충분하고, 여건이나 물질까지도 풍족합니다. 당연히, 그 일은 꼭 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전혀 다른 변수가 나타나서 실패하게 되는 경우 말입니다. 모든 조건이 구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전혀 다른, 예상치 못한 상황에 의해서 그 일이 실패로 돌아가는 경우들을 종종 만나게 됩니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일은 추진할 때 어려움 투성이에다, 여건도 좋지 않고, 반대도 있고, 물질도, 시간도 부족하고, 인적 자원도 부족한 경우가 있습니다. 합리적,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이 일이 잘되기란 도저히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오로지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한 발 한 발 나갈 뿐이었습니다. 결국 그 일이 참 잘 되었습니다. 누가 한 일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성령의 역사라고 우리는 고백합니다. 

  믿음의 세계에는 세상의 기준으로는 발견할 수 없는 영적인 원리가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성령의 도우심입니다. 성령의 역사하심입니다.

  모세는 애굽 궁중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는 애굽의 학문을 다 배웠습니다. 그 말과 행세가 모두 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그의 뜻을 이루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었습니다. 그는 먼 훗날 호렙산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이 주신 지팡이, 그 능력의 지팡이를 잡을 때 바다를 가르고, 반석을 칠 때 샘이 터지는 기적을 체험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인간의 힘이나 인간의 능력으로 할 때에는 그는 늘 실패했지만, 하나님의 능력의 지팡이가 함께 할 때 그는 놀라운 기적의 사람이 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누가 하신 일이겠습니까? 

  오늘의 본문인 스가랴 4장 6절은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싸울 때에는 힘 센 사람이 최고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힘으로 안 되는 일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힘으로 안된다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능’이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권세와 권력’입니다. 권력 있는 자는 모든 것을 다 할 수 있는 것 같지만 못하는 일이 많습니다. 그러나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영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동행 하시다가 승천을 앞두고 제자들을 불러놓고 말씀하십니다. 누가복음 24장 49절에 보니‘너희들은 이제 이 성을 떠나지 말아라. 위로부터 너희에게 약속하신 능력을 입히울 때 까지 이 성에 유하라.’고 말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거동락하면서 뭔가 부족한 것이 없는 것 같습니다. 모든 것을 다 갖춘 듯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는 “너희는 아직 준비가 안됐다. 한 가지가 부족하다”는 것입니다. “성령의 세례가 임할 때까지 이 성을 떠나지 말아라. 성령이 임하면 너희가 가서 권능을 받고 내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인생에 불가능한 일들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성령의 도움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제자들에게도 성령의 역사가 필요했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을 때에 나아가서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며 기적과 이사를 일으키고 세상을 뒤흔들어 놓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 성령이 필요합니다. 

  오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 스가랴 4장은 성전건축에 관한 내용입니다. 구약 성경 안의 학개서와 스가랴서의 주제는 성전건축입니다. 물론 느헤미야서도 무너진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관해, 에스라서도 성전건축에 관한 하나님의 예언들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오늘 말씀의 때를 봅시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70년 동안 종살이를 했습니다. 이윽고 페르시아 제국이 들어서고 고레스가 왕이 되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을 다 돌려보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고레스 칙령]이라고 부릅니다. 에스라 1장1절은 고레스 칙령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너희 이스라엘 민족들은 다 돌아가라. 너희 나라에 가서 살고 성전도 건축하고 자유롭게 농사짓고 살라”고 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그들이 돌아와서 처음 한 일이 무엇일까요? 하나님 앞에 예배드리기 위해서 성전을 건축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생각보다 그 일이 쉽지는 않았습니다. 물자도 부족했습니다. 인적자원도 부족했습니다. 주위의 방해도 많았습니다. 내부적으로도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솔로몬의 성전에 비하면 보잘 것 없는 이까짓 성전을 왜 짓느냐는 말들 이었습니다. 그들은 영광스러운 솔로몬 성전의 겉모습만 생각했지, 이제 이 성전을 통해 하나님이 역사하실 그 영광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두 번째로 시도한 이 성전이 바로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함께 귀환해서 총독이 되어 예루살렘 성전을 감독한 사람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었습니다.

  성전을 재건하는 일에 너무나 많은 반대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잠시 멈췄습니다. 일단 멈췄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얼마의 세월이 흘렀을까요? 무려 15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기초만 쌓아놓고 중단해버린 그들은 정말 물자가 부족하고,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해서 였겠습니까?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집은 황무한 채로 버려두고 자기네들의 집은 화려하게 꾸몄습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무관심하고 자기들의 일에는 너무나 발이 빨랐습니다. 세속적인 관심은 늘어났습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두고 보실 수 없었습니다. 학개 선지자를 통해서 스가랴를 통해서 말씀하십니다. 중단되었던 성전을 건축하라는 말씀이셨습니다. 학개서에 보면 “스룹바벨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 대제사장 여호수아야 스스로 굳세게 할 지어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스스로 굳세게 할지어다.”라고 말씀합니다. 다시 용기를 내어서 이 일을 감당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었습니다. “너희가 농사를 지어도 왜 수확이 없는 줄 아느냐? 너희가 나의 일에 무관심했기 때문이다. 너희가 씨를 뿌려도 왜 열매가 없는 줄 아느냐? 하나님의 성전을 방치해 두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부터 너희가 다시 성전을 건축하기 시작하면 내가 너희에게 복을 주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내가 너희를 폭풍으로 곰팡이를 우박으로 너희를 쳤다. 그러나 너희가 다시 이 일을 시작한다면 내가 이제 너희에게 복을 줄 것이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그 말씀에 힘을 얻었습니다.  그 책망에 회개합니다. 그리고 다시 일어나서 대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해서, 이 중단되었던 건축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바로 그 일로 어려워 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사람, 스가랴를 통해서 하나의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스가랴서 1장에서 6장 사이에는 8개의 환상이 소개되는데, 오늘의 본문이 바로 5번째 환상입니다.
  순금 등대와 두 감람나무가 소개됩니다. 이 등대라는 것은 오늘날로 말하면 교회를 의미합니다. 교회는 세상의 빛입니다. 이 등잔을 놓는 대가 등대입니다. 금으로 만든 등대는 변하지 않는 교회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그 시대로 보면 이것은 성전입니다. 이 성전을 건축하는 데 옆에 두 감람나무가 서 있고, 등잔에 기름이 감람나무로부터 흘러 내려오는 것입니다. 감람나무는 기름을 짜는 나무인데,  그럼 이 두 감람나무는 누구겠습니까? 바로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입니다. 이 두 사람이 이 일을 책임지고 주관해서 이루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반드시 이 일이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환상을 통해서 보여주는 것입니다.

  처음에 스가랴는 그것이 무슨 말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주여 이게 무슨 뜻이니이까? 하고 물었더니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스가랴 4장 6절 말씀입니다.

  함께 6절 말씀 읽겠습니다.

  “그가 내게 일러 가로되 여호와께서 스룹바벨에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아멘

  스룹바벨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제 두 감람나무의 역할을 맡아서 여호수아와 함께 그 일을 감당하는데, 너희의 힘으로는 안 된다.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된다. 그러나 내 영으로는 가능하다고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 일에 함께 해서 이제 너희로 하여금 이 성전 건축을 완공하게 할 것이라는 것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는 힘으로도 안 되고 능으로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권세와 권력으로도 안 되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할 때에 그 일이 가능한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경의 참 달디 단 말씀 가운데서도 참 좋아하는 구절이 이 4장 6절, 인간의 힘, 인간의 지혜를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의 성령을 의지하라는 말씀입니다.

  여러분은 지금까지 성령을 의지하며 살아오셨습니까?

  성령은 누구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삼위일체 하나님 중의 한 위격이 바로 성령 하나님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령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은 바로 인격입니다. 성령은 이상한 물질이 아닙니다. 하나님이시고 인격이 있습니다. 그 분은 지식이 있으시고 의지가 있으십니다. 그 분은 감정이 있으십니다. 그래서 때로 우리가 불순종하며 범죄의 길을 갈 때에 그 분은 탄식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또한 우리를 위해 대신 중보기도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너무 힘들어 기도할 수 없을 때, 성령은 우리를 위해서 기도하시는 분이십니다. 어떤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우리가 성령을 의지할 때에 우리는 승리하며 성공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성령은 우리를 도우시는 영입니다. 우리를 도와주시려고 늘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 도움을 거절하고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면 그 분은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로마서 8장 26절에 보면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라고 했습니다.

  성령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우리가 연약한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 분은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영이 바로 성령이십니다. 그래서 그 분은 우리의 카운슬러, 상담자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4장 이하에는 우리가 답답한 마음을 해결할 수 없을 때에 상담해 주시는 분에 대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령은 상담자가 되셔서 우리를 위로해 주시고 우리를 격려해 주십니다.

  성령은 또한 우리의 교사, Teacher가 되십니다. 우리가 깨닫지 못할 때 우리를 깨닫게 하시는 분이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또한 우리 인생의 인도자가 되십니다.
  내가 어떤 길을 가야할 지 몰라서 방황할 때에 성령님은 우리에게 갈 길을 직접 인도해주십니다.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령은 우리에게 힘을 공급하시는 분입니다. 이사야 40장 29절 이하에 보면, 성령은 피곤한 자에게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 힘을 더하시는 분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 소년이라도 피곤하며 곤비하리라. 장정이라도 넘어지고 자빠지되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곧 성령을 의지하는 자는 새 힘을 얻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앙망합니다. 성령을 의지하는 자는 독수리의 날개 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전혀 새로운 활력의 삶이 여러분에게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왜 우리 마음에 기쁨이 없습니까? 성령의 기쁨이 우리와 함께 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왜 내 마음이 불안하고 두렵습니까? 하나님의 성령의 평화가 우리에게 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사랑할 능력이 없고 자꾸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게 됩니까? 성령님이 우리의 삶을 온전히 주장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성령은 절망가운데서 우리를 희망으로 일으키시는 영이십니다. 우리에게 지혜를 주시고 우리의 길을 열어주시는 분입니다. 성령을 의지하는 삶이 인생에 승리하는 삶인 것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은 성령만을 의지할 때에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이루어가신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의지할 때 오는 결과가 있습니다.

  첫째는 큰 산이 평지가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7절 말씀 읽겠습니다. “큰 산아 네가 무엇이냐 네가 스룹바벨 앞에서 평지가 되리라. 그가 머릿돌을 내놓을 때에 무리가 외치기를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지어다 하리라 하셨고”아멘

  큰 산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우리의 인생이나, 우리의 사업에 산이 가로막고 있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방해세력, 반대세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걸림돌이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도 엄청나게 큰 산이 가로 막고 있습니다.
  그 산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적극적인 반대입니다. 그 지역 족속들이 다 반대 했습니다. 이들이 성벽을 쌓고 성전을 건축해 힘을 기르면 자기들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같은 동족 이었지만 바벨론 포로 이후에 사마리아 인들은 그들을 미워하고 대적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유프라테스 강 서편에 주둔하고 있는 바사 총독인 닷드내와 스달보스내에게 “이들이 지금 성전을 지어서 힘을 기르고 페르시아 다리오 왕에게 대적하려 하는데, 이들을 그냥 두시렵니까? 이들을 막아야 합니다. 건축을 못 하게 해야 합니다”란 내용의 고발장을 보냈습니다.
  총독들이 와서 왜 건축하는지 조사할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것은 우리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올 때 고레스 왕이 이미 우리에게 허락한 것입니다.”라고 했지만, 총독들은 건축을 보류하게 하고, 페르시아 제국의 다리오 왕에게 “지금 이러한 일이 있는데, 고레스 왕께서 허락하신 일인지, 공문이 있는지 왕께서 찾으시옵소서.”란 내용의 공문을 보냈습니다.
에스라 6장 17절에 “이제 왕이 선히 여기시거든 바벨론에서 왕의 국고에 조사하사 과연 고레스 왕이 조서를 내려 하나님의 이 전을 예루살렘에 건축 하라 하셨는지 보시고 왕은 이 일에 대하여 왕의 기쁘신 뜻을 우리에게 보이소서 하였더라”란 내용처럼 총독들이 공문을 보냈습니다.
에스라 6장에 보면 다리오 왕이 신하들을 불러서 국고를 다 조사하고 있습니다. 찾다가 그곳에서 고레스 왕이 내린 칙령을 발견했습니다. 그 칙령을 보니 성전 건축을 허락했고 마음대로 편안하고 자유롭게 살라고 다 허락해 주었던 것이 적혀있었습니다.

다리오왕은 부왕의 뜻을 받들어서 에스라 6장 6절 이하의 공문을 총독들에게 내리게 됩니다.
첫째!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절대 방해하지 마라.
둘째! 그들이 뭔가 필요한 물자가 있으면 얼마든지 공급하고 지원해 주라. 더 필요하면 네 왕의 재정에서까지 모두 공급해 주라.”
셋째! 제사장의 소청을 들어서 그들이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 필요한 모든 재물들을 다 공급해 주어 제사장들로 하여금 하늘의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을 드릴 때 왕과 왕자들의 생명을 위해서 기도하게 하라. 나를 위해서 그들로 하여금 기도하도록 모든 물질을 다 제공해 주라. 
넷째! 누구든지 이 명령을 거역하는 자는 그 집에서 들보를 빼어내고 저를 그 위에 매어달게 하고 그 집은 거름더미가 되게 하라.
마지막! 나 다리오 왕이 조서를 내리노니 신속히 행할 지니라.

여러분, 얼마나 놀라운 일입니까? 그들 앞에 큰 산이 놓였지만 그 산이 오히려 평지가 되고, 전화위복의 축복이 되고야 말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7절에 보니까 “이것이 은총 은총이 그에게 있을 지어다”란 말씀이 있습니다.  지나고 보니 다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내 앞에 이런 시련이 있고, 이런 방해가 있고, 이런 대적이 있었는데, 그것이 오히려 하나님이 내게 축복을 주기 위해서 준비해 놓으신 것이었다는 것입니다.
  때로는 시련과 고난이 ‘변장된 축복’이 됩니다. 우리 앞에 어떤 시련과 고난이 올 때에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그 건너편에 더 아름다운 축복을 숨기고 계신 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큰 산이 평지가 되었고, 축복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로마서 8장 24절에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떤 방해와 시련 앞에서도 주저앉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성령을 의지하면 그것은 축복의 기회가 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의지하면 큰 산이 평지가 될 것이며, 너희가 성령을 의지할 때 그 사역을 성공적으로 마칠 것이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둘째로, 성령을 의지하면 이 성전건축을 마치게 할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9절엔 “스룹바벨의 손이 이 성전의 기초를 놓았은즉 그의 손이 또한 그 일을 마치리라 하셨나니 만군의 여호와께서 나를 너희에게 보내신 줄을 네가 알리라 하셨느니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은 여호와의 말씀이 스가랴에게 또 임했는데, 시작도 하나님이 스룹바벨의 손을 통해 하셨고, 그것을 마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마친다는 말을 다른 말로 끝낸다고 합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하나님은 끝내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시작 하셨습니까? 걱정하기 마세요. 하나님이 끝내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는 분이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서 1장 6절에 보면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르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란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 속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그 분이 이 모든 일을 완성하실 것을 우리가 확신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영신교회에 이렇게 아름다운 성전건축을 시작하게 하셨는데, 시작하게 하신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간섭하시고, 이루어주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루살렘 성전 건축은 순조롭게 진행 됩니다. 에스라 6장 13절에 보면 “유다 사람의 장로들이 선지자 학개와 잇도의 손자 스가랴의 권면함으로 인하여 전 건축할 일이 형통한지라 이스라엘 하나님의 명령과 바사 왕 고레스와 다리오와 아닥사스다의 조서를 좇아 전을 건축하며 필역하되”라 했습니다. 필역이란 공사를 다 마쳤다는 것입니다.
에스라 6장 16절에 보면 “즐거이 하나님의 전 봉헌식을 행하니”라 했습니다. 그 성전을 이제 하나님 앞에 봉헌하는 것입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 영신교회 성전 같이 아름답게 봉헌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령을 의지하면 성령께서 이 모든 일을 이루어 가십니다. 스룹바벨의 그 기초를 놓았던 손을 통해서 이것을 끝내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확신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한다면 걱정하지 말라는 것!,  하나님이 책임지실 것이라는 확신! 말입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하나님의 지원이 결코 결핍될 수 없을 것이다.”란 말을 했습니다. 이 허드슨 선교사가 함께 일하던 선교회가 그 후에 OMF로 바뀌었습니다. OMF선교회는 동아시아 지역에 진정토록 복음을 전하는 선교 단체입니다.
  OMF선교회의 원리가 있는데, 절대 개인에게나 교회에 가서 손 벌리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령에 감동된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보내고 있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일이기 때문에 손 벌리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다 채워 주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허드슨 테일러의 선교 원리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이라면 하나님의 지원이 결코 결핍되지 않을 것이다.” 여러분 우리 교회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이 다 채워주실 것입니다.

오늘 말씀 10절에도 어떤 이들은 하나님의 성전 건축을 비방하거나 멸시하는 자가 있었습니다. 그것을 작은 일의 날이라고 멸시하는 자가 있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다 기억하셨습니다. 필요한 것을 다 공급해 주셔서 완공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을 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 모든 일을 다 끝내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 가지 유의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령을 의지한다는 것은 인간이 손을 놓아두고 뒷 짐지고 구경하며 방관자의 자세로 있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일에 성령으로써 주도적으로 행하시지만 동시에 우리의 협력을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일을 신실한 종들을 통해서 하고 계십니다. 바로 대 제사장 여호수아와 총독 스룹바벨을 통해서 그 일을 이루어 나가고 계신 것입니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종들을 찾고 계십니다. 또한 우리의 헌신과 협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 우리는 돈도 없어요. 시간도 없어요. 인력도 없어요. 어떻게 합니까?”라고 핑계를 댔습니다.
학개서 1장 8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너희는 산에 올라가서 나무를 가져다가 전을 건축하라 그리하면 내가 그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영광을 얻으리라.”라고 하셨습니다. 나무가 없다고 재료가 없다고 불평하지 말고 산에 가서 베어다가 성전을 건축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너희 스스로 최선을 다하라 그리하면 내가 모든 것을 이룰 것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교회도 70~80억에 이르는 큰 건축을 하다보니, 내가 몇 천원, 몇 만원 헌금해서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바닷물에 물거품 하나생겼다고 무슨 도움이 되겠냐고 아예 동참할 엄두를 못 내는 분들도 계실줄로 압니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셔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성령을 의지하며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과부의 엽전 한 닢을 칭찬하셨습니다. 부자의 많은 헌금보다 그 과부의 최선을 다한 엽전 한 닢을 더 기특하게 여기시고, 가치 있게 칭찬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정성과 최선을 원하십니다.
  백성들이 광야에서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저녁때가 되어 굶주려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 5천명의 무리를 어떻게 먹이십니까? 한 소년이 집에서 싸온 도시락의 말라빠진 떡 다섯 덩이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축복하시니 5천명이 먹고도 12광주리가 남는 기적을 행하시지 않았습니까? 우리의 작은 것이라도 하나님이 하실 일을 기대하며, 최선을 다해 드릴 때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 놀라운 기적과 이적을 만들어 가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듯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되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스가랴 6장 15절에 보면 “너희가 만일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할진대 이같이 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 성전건축을 다 책임지실 것입니다.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이방의 다리오 왕을 통해 필요한 것을 제공하게 하셨듯이, 먼 곳에서 찾아오는 이방인들을 통해서 이 건축을 완성시켜 가듯이 하나님은 오늘 누군가의 손길을 통해서 이일을 이루어갈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성령을 의지하느냐일 뿐입니다.

  성령을 의지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먼저 성령의 뜻에 예민한 것입니다. 여러분이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내게 말씀하고 계심을 믿고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세워진 설교자의 메시지를 통해서 오늘 성령님이 내 마음속의 문을 두드리고 말씀하고 계시니, 그 말씀에 순종 하시고, 저항하지 말아야 합니다.

  성령을 의지하는 두 번째 태도는 성령께 도움을 요청하는 것입니다.

  성령을 인정하고, 성령을 환영하고, 성령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에 성령이 늘 함께 하는 것을 확인하십시오. 어떻게 할 수 있습니까? 바로 기도입니다.

  지금이 우리 교회를 건축하는 가장 중요한 시기일 것입니다.
  이럴 때 우리가 할 일은 규칙적으로 하나님 앞에 매달리고, 성령께 의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성령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예레미야 33:3)라고 말씀하십니다.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했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영신의 온 성도들이 새벽을 깨워 하나님 앞에 나와, 성전건축을 위해서 성령을 사모하며 기도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바로 이것이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는 힘입니다. 물질이 성전을 짓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의 정성스런 기도, 성령을 의지하는 그 열성이 하나님의 성전을 세워가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는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하면서도 열등감에 빠져있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 같은 것을 어떻게 쓰실까? 가진 것도 없고, 배운 것도 없고 볼품없는 인생, 실패한 인생인 나같은 것을 어떻게 쓰실까?”하고 좌절감과 열등감에 빠져있는 분들이 있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소개된 위대한 인물들은 다 인격적으로 훌륭했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부족한 사람들을 들어서 능력을 부어주시고, 그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노아는 술 취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너무 늙고 노쇠해서 하나님이 쓰시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누구보다 귀하게 사용하셨습니다. 이삭은 공상가였지만 백배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야곱은 거짓말쟁이였지만 축복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레아는 못생겨서 남편에게 환영받지 못 했지만 예수님의 계보를 잇는 어머니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형제들에게 학대당했고, 모세는 말이 우둔했습니다. 기드온은 두려움이 많아서 두 번씩이나 하나님을 시험했습니다. 삼손은 긴 머리에 바람둥이였습니다. 라합은 기생이었고, 다윗은 간음죄와 살인죄를 범한 사람이었습니다. 엘리아는 심한 우울증환자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피해 도망하다가 붙잡혀 온 사람이었습니다. 나오미는 과부였고, 욥은 파산당한 사람이었고, 세례요한은 벌레를 먹고 사는 길거리 걸인과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제자들은 기도하다가 다 잠들어버린 사람들이었습니다. 마르다는 모든 일에 근심과 염려가 많았고, 막달라 마리아는 귀신들렸던 여인이었고, 사마리아 여인은 일곱 번씩 결혼했지만 다 실패했고, 삭개오는 너무 키가 작아서 볼품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너무 딱딱하고 냉정한 성품의 소유자였고, 디모데는 위궤양이 심해서 바울이 편지할 때 마다 그에게 포도주를 먹으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부족하고 별 볼일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능력을 부어주실 때 그들이 위대한 사람들이 되었었던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와 여러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능력이 임하면, 성령의 손에 붙들리면 우리는 누구보다도 위대하게 쓰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5장 17절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라 말씀하고 계십니다.
  과거의 실패가 우리의 발목을 잡지 못하는 것입니다. 과거의 흠이나 오류가 우리를 방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에 붙잡힌 인생이 된다면 여러분은 지금과 전혀 다른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성령에 붙들리고, 성령을 의지하고, 성령의 도움을 날마다 구하심으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영무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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