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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엡 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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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바울이 에베소서를 쓰실 때에는 로마 감옥에 갇혀있었습니다.
그래서 "주안에서 갇힌 나"라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면서도 시종일관 말씀하시는 것은 "너희가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면 그 어떤 형편 속에 있어도 하나님 자녀답게 살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 자녀답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2절을 보세요
"모든 겸손과 온유로하고 오래참음으로 사랑가운데서 서로 용납하라" 이것이 바로 하나님 자녀다운 모습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합니까?
"부조화와 불일치의 세상입니다"
"민족과 민족 사이의 갈등은 6·25 전쟁이 끝난지 벌써 50여 년이 흘렀는데도 그 골은 매어지질 않고 이제는 핵전쟁의 공포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의 불일치는 점입가경입니다"
"부모와 자식이 갈등하고 부부끼리도 믿을 수 없고 사제지간의 신뢰는 다 깨어졌고 선후배  간의 의리와 정도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심지어 나 자신과의 불일치로 얼마나 갈등이 심각합니까 "원하는바 선을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는 악한 나의 모습들!"
어떻게 해야 이런 갈등들이 다 사라지고 진정으로 말을 말 그대로 믿으면서 웃음 속에 웃을 수 있고 한숨 속에 같이 아파하면서 하나가 될 수 있을까요?

H.C. 뮬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만이 그 갈등과 분열의 찢어짐이 하나가 될 수 있게 한다 하였습니다.
예수만이 우리를 "하나되게 하는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빌립보서에서는 "주안에서 한 마음을 품으라" 하였습니다.
성경 3절에서는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하였습니다.
가령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사명이 있을 때에 반대하는 의견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다투고, 싸우고, 얼굴을 붉히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다른 의견을 같은 방향으로 모아야 합니다.
한, 두 사람의 다른 의견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사명이 기장을 초래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성경에서는 이렇게 교훈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가하나 다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다"
롬 14:19에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자"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신 줄을 믿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까?
2절을 보세요! 제일먼저
"모든 겸손과"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에서 제일먼저 가르치고 있는 최고의 덕이 바로 겸손입니다.
옛날 동양에서는 사람이 꼭 갖추어야 하는 세 가지 덕을 말하며 "지혜, 용기 그리고 어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서양에서는 여기에 절재를 더해서 "지혜, 용기, 어진 것 그리고 절제"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는 제일먼저 겸손의 덕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겸손의 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
신이신 예수님!
하나님 우편에 계시는 권능의 주님께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이 땅에 오셨다는 것 자체가 겸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해 잡히시던 전날 밤에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도 겸손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빌 2:5에서는 "너희 안에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으라"가르치시면서 그 말씀 그대로 종의 형체를 지니셨고, 자신을 낮추셨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겸손입니다.

왜 겸손해야 합니까?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겸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물리치신다.
잠 6:16에 보면
"여호와께서 미워하시는 것 곧 그 마음에 싫어하시는 것이 육,칠 가지니 곧 교만한 눈이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십니다. 그것뿐인지 아세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미워하십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하였습니다.
사람이 왜 교만해지는 줄 아세요?
·공부를 많이 했다고 교만합니다.
·어떤 사람은 돈 좀 있다고 교만합니다.
·심지어 어떤 부인은 얼굴이 되고 몸매가 된다고 교만합니다.
그러나 겸손한 사람을 보세요
소극적으로는 자기 자랑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고집을 부리지 않습니다.
어떤 일을 당해도 원망하지 아니 합니다.
적극적으로는 겸손한 사람은 말없이 봉사합니다. 범사에 그저 감사합니다. 그리고 겸손하면 마음에 언제나 평화가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이 편지를 쓰신 사도바울도 처음에는 교만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더니 신앙인이 됐더니 겸손한 예와 아멘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서는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사도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겸손해서
하나님의 축복을 많이 받을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서 문제가 해결되는 역사를 일으키시길 축원합니다.

두 번째로> 신앙인은 온유해야 합니다.
온유는 문자 그대로 "부드럽다"의 뜻입니다. 
왜 불평 없이 순종을 못하십니까?
왜?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불만스럽게 생각하면서 하나님이 너무하신다고 하나님이 그러실 수 있냐고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이해가 되질 않는다고
이거 왜 그래요?
우리의 마음이 온유하질 못하기 때문입니다.
잠언서에 보면 "온유한 사람은 격노를 그치게 한다" 하였습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것보다 낫다" 하였습니다.
심지어
잠언서에서는 "새끼 빼앗긴 암곰을 만날지언정 미련한 일을 행하는 자는 만나지 말 것이니라"
본래 곰이 화가 나면 세상에 덤빌 동물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곰이 새끼를 빼앗겼으니 그 무서움이 어떻겠어요?
성질을 잘 내는 사람은 이런 곰과 같다는 말입니다.
온유해야 합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서에 보면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이요"하였습니다.
더군다나 교회에서 생활하면서 이 온유의 덕이 얼마나 소중한지 모릅니다.
옛말에 "탁"해서 다르고 "툭"해서 다르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형편에서, 어떤 사람을 만났든지 분위기를 싸늘하게 무슨 초상집처럼 만드는 일만 골라하는 사람이 있어요!

이번에 우즈베키스탄과 축구시합하면서 골키퍼에게 백 패스하는 공이 잘못되어 첫 골을 내주었더군요. 참 분위기 살벌하더구만요.
그런 주인공이 되실래요?
그런 주인공 P모씨와 같이 두고두고 욕먹는 사람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고
      ·용기를 더해주고
      ·소망을 심어주고
      ·부드러운 평화의 씨를 뿌리시는 복된 사람!
히딩크처럼 어퍼컷을 칠 수 있는 기쁨을 주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멋있는 사람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세 번째로는> 인내입니다.
얼마 전에 돌아가신 기독교연합회 회장님이 한 교회에서만 25년을 시무하셨다기에 와! 어떻게 그럴 수 있나 와! 그러고 나서 "나는 어떤가?"하며 보니까? 저도 만 22년을 한 교회에서만 그것도 개척을 해서 지금까지 섬겼으니 하나님의 주신 축복이 참으로 큰 것 같습니다.
신앙인들은 오래참는 인내가 있어야 합니다.
어려운 일이 있어도 참아내는 성품.
좀 분하고, 억울한 일이 있어도 참아주는 성품.
그 누가 내게 상처를 입혀도, 그래서 내 마음이 아프고 괴로워도 참아내는 그 성품이 그리스도의 성품입니다.
왜 인내해야 합니까?
히 12:3에 보면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신앙인의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윷놀이까지도 금하셨던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식사 때면 언제나 돌아가면서 기도해야 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기도대로 산다는 것이 너무 힘들었기 때문입니다.
가정예배를 인도하시는 아버지의 모습이 너무 멋있어 보였습니다.
신앙의 가정에서 자랐기 때문에 학교도 미션스쿨에 다니면서 언제나 활동은 종교부에서 활동했습니다.
군대에 가서도 군종병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전 험악한 모습들! 2중 언어를 사용하면서 교활을 떠는 것을 잘 이해하지 못합니다.
제 아내가 그런 말을 합니다.
아마! 당신이 목회를 안하고 사업을 했다면 언제나 잘 속아 망했을 거라구요!
그래서 전 성도들에게 철야기도 꼭 합시다 해서 예! 하면 그대로 믿습니다.
철야하는 저녁이 되어야 아! 속았구나!
근데 아멘! 이라는 말이 항상 좋아요!
성도들이 아멘하면 너무 좋아요.
또 신앙인이라는 사람들이 막 성질내고, 모사를 부리면 잘 이해를 못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우리 목사님 말이야 아! 신식인 것 같으면서도 어느 때보면 너무 꽉 막히신 것 같아"

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아야 합니까? 그 누가 뭐라 그래도 좌로나 우로나 흔들리지 않으려면 인내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많이 모일수록 인내는 더욱 더 필요합니다.
하고 싶은 행동을 다 하고
하고 싶은 말 다하고
그러면 평화로울 수 있겠습니까?

왜 인내해야 합니까?
히 10:36을 보세요.
"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으려면 인내해야 합니다.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도 인내로서 경주할 때 이루어질 수 있다 하였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참으셨습니까?
·고전 13장에 "사랑은 오래 참는다" 하였습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도 하였습니다.
·"인내로서 너희가 너희 영혼을 보존할 수 있다" 하셨습니다.
·야고보서에서는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너희로 온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하였습니다.
고생이 되시죠?
힘드시죠?
중상 모략 때문에 상처를 받으셨죠
괴롭고, 외로우시죠?
그럴 때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약 1:12절을 꼭 기억하세요.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게 하리라"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기도하면서 주님이 주시는 능력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 박세종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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