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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세 가지의 관계 (고전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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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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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세 가지의 관계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성도는 세 가지의 관계를 잘 맺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첫째는 교회와의 관계를 잘 맺으며 살아야 되고, 두 번째는 성도와의 관계를 잘 맺으며 살아야 되고, 세 번째는 목자와의 관계를 잘 맺으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인간은 본래부터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게 바로 창조 때부터 그렇게 정해진 겁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을 만드셨을 때에... 아담 혼자 있는 것이 보시기에 좋지가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와를 만들어 주신 것을 성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18절 말씀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그랬습니다.
아담 혼자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안았다고 했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혼자 지내는 것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안되는 겁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을 지어 주신 겁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 것을 고집부리면 죄가 되는 것이죠.
신약성경에 보면, 독신의 은사로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혼자 지내는 것이 더 유익하고 또 혼자 지내는 것이 가능한 어떤 특별한 사람이 있다고 그랬습니다만, 본래는 혼자 지내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아요.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걸 해서는 안됩니다.
하다 못해... 부모님 보시기에 좋지 않은걸 자녀들은 하려고 하지 않죠.
사장님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걸 사원들은 하지 않습니다. 대통령이 보시기에 좋지 않은걸 장관들이 하려고 하겠습니까?...
하물며... 하나님 보시기에 혼자 지내는 것이 좋지 않다고 하시는데... 왜 혼자 지냅니까?... 같이 돕는 배필로써 지내야 되거든요.. 이게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가정에서 부부는 언제나 하나가 되고 함께 해야 합니다.
그런데 "아이구... 저 인간은 생전 도움이 안돼..." 흔히들 그러는데 성경적인 것 같습니다.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았는데 도움이 안되면 안되죠... 그걸 위반하면 죄가 되는 거예요.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성도에게도 역시 돕는 배필이 있어야 되는데 그걸 '믿음의 동역자'라 그럽니다. 우리는 믿음의 동역자들이 있어야 돼요. 이것을 관계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우리 모두가 서로 서로 관계성을 가지고 함께 신앙 생활하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133:1절 말씀에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그랬습니다.
서로 힘을 합치고 지혜를 모으고...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면서... 믿음의 상아탑을 쌓아 올려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은 성도가 맺어가야 할 세 가지의 관계에 대해서 살펴보므로 함께 은혜를 사모하고자 합니다.

1. 교회와의 관계
첫째는, 교회와의 관계입니다.

성도는 먼저 교회와의 관계를 잘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헨리 블랙가비'는 그런 말을 했습니다.
"당신과 교회와의 관계는 당신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변하는 것이다!" 그랬습니다.
교회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대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부르실 때, 한 개인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해 이루게 될 그룹으로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을 때는 아브라함 한 사람만 부르신 것이 아니예요.
아브라함을 통하여 구원받게 될 많은 영혼들...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은 수많은 영혼들을 바라보며...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신 겁니다.
창세기 12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장면이 나오죠.
"(1)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그랬습니다(창12:1-2).

성경에 나타난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하나님은 그들을 부르실 때 그 한 사람만 부르신게 아니예요. 여호수아, 삼손, 기드온, 다윗.... 다 마찬가지입니다.
서도 바울을 부르실 때에도... 바울 한 사람만 부르신게 아니거든요. 원래 이름은 사울인데 나중에 바울로 바꿨죠...
사도행전 9장에 보면 사울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장면이 나와요.
그때 9:15절에 보면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하나님은 사도 바울을 부르시면서... 그를 통하여 구원받게 될 수 많은 영혼들을 바라보며 그를 부르신 거예요.

오늘 여러분 한 사람만 교회 나오고... 여러분 한 사람만 예수 잘 믿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하나님은 여러분 한 사람을 통하여.... 수많은 영혼들이 구원받기를 원하십니다. 할렐루야!

마태복음 4:18절 이하에 보면, 예수님께서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베드로와 그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서 그물 던지는 것을 보셨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너희로' 라는 말씀은 단수가 아니라 복수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개인 개인만 부르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부르신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절 말씀에도 보면,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랬습니다.
여기서도 '너희는'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은 나 한 사람... 개인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신앙생활은 개인이 해서는 안된다는 거예요.
혼자 주일날 교회에 살며시 왔다가 살며시 가는... 하나님과 혼자서 관계를 맺는 신앙은 안된다는 겁니다.
인간은 혼자 지음을 받지 않았고, 개인을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교회를 '몸'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 몸에는 여러 기관들이 있습니다. 얼굴만 해도 눈이 있고, 코가 있고, 입이 있고, 귀가 있습니다.
그리고 팔이 있고, 다리가 있죠... 여러 지체들이 모여서 몸을 이루는 겁니다. 혼자서 몸을 이룰 수 없습니다. 서로 서로 하나를 이룰 때... 자기의 존재 가치가 빛나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오른팔 하나만 특별나게 건강하다고 생각해 보세요. 오른쪽 팔만 뽀빠이처럼 크게 발달했습니다. 그러면 온전한 사람입니까?... 오른쪽 팔만 엄청나게 큰 팔을 가진... 기형아... 혹은 병신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한쪽 발만 엄청나게 크고 건강하게 자랐다고 생각해 보세요. 반대로 다른 신체보다 이것만 유독 작다고 생각해 보세요... 역시 비정상적인 사람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병신이란 말은 병을 가신 신체를 말하는 거예요. 온전한 몸이 아니라는 것이죠.
온 몸의 모든 신체들이 골고루 발달하고 전체적인 균형이 잘 맞아야 건강한 몸이 되는 것이고, 이게 정상입니다.
정상적이고 건강한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몸이 건강하면 나도 따라서 건강한 것이고, 몸이 자라면 각 신체들은 따라서 자라는 것입니다. 혼자 잘되거나 잘못되면 안됩니다. 이게 바로 교회라는 거예요.
그래서 로마서 12: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고린도전서 12장은 이런 관계를 잘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눈이 손더러 너는 쓸데 없다고 말 하거나... 머리가 발더러 너는 쓸데 없다고 하지 못한다고 말씀합니다.
서로 서로가 다 관계성을 가지고 긴밀히 연결되고 하나가 되어서... 몸을 이루는 것임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머리가 아프면 얼굴은 인상을 쓰게 되죠... 양 손이 머리를 감싸쥐면서 맛사지를 해 줍니다. 그래도 안되면 약국에 가서 약을 사먹어야 됩니다.
약국을 가는데 머리만 갑니까?... 발이 동원이 되고 손과 발이 움직여서 약국을 가야 돼죠...
가서 가만히 서서 있습니까?... 입이 동원이 되어서... "머리 아픈데 먹는 약좀 주세요!" 하고 말을 해야 되는 겁니다.
그리고는 손이 주머니에 있는 돈을 끄집어 내서 지불을 합니다.
그런데 약국에 갈 때 눈은 가만히 있었나요?... 처음부터 눈이 다 길을 인도해 주고 가르쳐 줘서 다녀온 것입니다.
뭘 할 때마다... 몸의 각 신체 부분들은 전부 합동작전을 펼쳐서 하는 겁니다.
몸은 가만히 있는데 특별히 다리만 떨어져 나가서 독립작전을 펼치지는 않습니다. 아마 그런걸 본적이 없을 겁니다.
또 몸의 어떤 부분이 아프거나 정상적이지 않으면 다른 모든 지체들도 같이 아프고 고생합니다.
배가 고파서 뭘 먹고는 싶은데 속이 불편하면... 입맛은 땡겨도 먹지 못해요... 그럴 때... 입이 먹고 싶다고 먹었다가는 배탈이 나고 몇일 더 고생하게 되는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성경은 뭐라고 설명합니까?...
"뿐만 아니라 몸에서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몸의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주며 우리의 아름답지 못한 지체는 더욱 아름다운 것을 얻는다" 그랬습니다.

고린도전서 12:24절 이하의 말씀을 보면 참 신비한 비밀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24)우리의 아름다운 지체는 요구할 것이 없으니 오직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부족한 지체에게 존귀를 더하사 (25)몸 가운데서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하여 돌아보게 하셨으니 (26)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나니 (27)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27절 말씀을 다시 봅니다.
함께 읽어보죠.
고린도전서 12:27절 말씀....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아멘.

그러므로 관계를 맺지 않은 개인으로서는 신앙생활 할 수가 없습니다.
서로 서로 관계성을 맺어야 합니다. 관계를 든든히 하기 위해서 얼기설기 많이 맺으면 맺을수록 좋아요.
구역장도 하고, 성가대도 하고, 주일학교 교사도 하고 그러면서... 교회에 여러 가지 관계를 맺고 있다면 좋은 현상입니다.
그런데 어떤 기관이나 모임에 전혀 관계를 맺지 않고, 소속이 전혀 되어 있지 않고, 혼자서만 가끔 교회에 와서 예배만 드린다면.... 이건 심각한 겁니다.
절대로 신앙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지체는 지체인데 몸에서 떨어져 나간 지체가 된 겁니다. 그런 지체가 온전히 살 수 있겠습니까?... 결국은 죽고 마는 거예요.
그러므로 우리는...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하신 말씀을 명심하고... 몸된 교회에서 긴밀한 관계성을 맺으며 온전한 몸을 이루어 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도와의 관계
두 번째는, 성도와의 관계입니다.

성도는 다른 성도와의 관계를 잘 맺으며 살아야 합니다.
성도와의 관계를 다른 말로 하자면 '믿음의 동역자' 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믿음의 동역자입니다.
사업을 하는데 몇 사람이 같이 동업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동업은 혼자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망해도 같이 망하고 성공해도 같이 성공하는 거예요.
두 사람이 동업을 했는데 한 사람은 크게 성공하고 한 사람은 망하는.... 그런 일은 없습니다.
동업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우리 성도는 믿음의 동역자예요.
서로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 관계라는 것입니다. 독불장군이 없어요. 이게 성경이 말씀해 주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면, 성도와의 관계는 어떤 관계를 이루어야 할까?...
성경에서 가장 모범된 친구와의 우정을 이룬 사람이 누굽니까?... 다윗과 요나단이죠.
성도와의 관계는 바로 다윗과 요나단과 같은 그런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어떤 관계인가 하면, 동일한 신앙고백으로 하나가 된 관계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런 사랑으로 인하여... 그들은 온전히 하나가 된 그런 관계가 됐습니다.
가족보다 더 가까운 사이가 됐어요.
심지어 성경은 두 사람의 관계를 뭐라고 표현하고 있는가 하면... 여인의 사랑보다 더 지극한 관계라고 했습니다.
사무엘하 1:26절 말씀입니다.
"내 형 요나단이여 내가 그대를 애통함은 그대는 내게 심히 아름다움이라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승하다는 말은 더 높다.... 더 지극하다 그런 말이죠...
"그대가 나를 사랑함이 기이하여... 여인의 사랑보다 승하였도다...." 그랬습니다.
얼마나 사랑하는 관계이면... 여인의 사랑보다 더 한... 그런 관계입니까?...
그것이 가능한 까닭은 동일한 신앙고백으로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나단은 아버지 사울왕을 거역하면서까지 "이 나라에 다음 왕은 다윗 너다!" 라고 그러지 않습니까?...
하나님 때문에... 동일한 신앙고백이 있기에... 죽기까지 책임지는 그런 관계가 된 것입니다.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면 하나님의 사람들과 친하게 되어 있습니다. 세상 친구들은 어느새 다 멀어집니다. 예수 믿기 전의 친구들은 더 이상의 의미가 없어지는 겁니다.

함석헌 씨의 시 중에서 '그대는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라는 시가 있습니다.
참 생각을 많이 하게 되는 시인데, 한번 들어보세요.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 다 나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저 마음이야'하고 믿어지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너 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다 죽여도 너희 세상 빛 위해
저만은 살려두거라' 일러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 때
'저 하나 있으니' 하며
빙긋이 웃고 눈을 감을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도
'아니'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여러분... 그런 사람을 가졌습니까?....
이 시에서 처음 부분을 보면, "만리 길 나서는 길... 처자를 내 맡기며 맘 놓고 갈만한 사람...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그랬는데... 정말 그런 친구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은 그런 사람 있습니까?...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 서로 서로... 그런 사이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에 제가 우리 부부가 해외 여행을 떠난다고 하면... 우리 애들을 누구한테 맡기나?... 생각해 보면, 우리 교인들이 맡아 주셔야 될 꺼 같아요.
식구들이 많긴 하지만 집이 머니... 애들 학교 보내기 어렵고... 그렇다고 애들 학교 때문에우리 집에 와서 지내는 것도 어렵고... 우리 성도들이 제일 좋을 꺼 같은데...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맡아 주시겠습니까?...
그런데, 밥 먹여 주고 빨래해 주고... 그러는 걸 얘기하는 게 아닙니다.
내 자식처럼... 내 가족처럼 그렇게 사랑하는 관계를 얘기하는 거예요.
심지어는 아내도 맡길 수 있는 친구... 그런 관계를 말하는 겁니다.

다윗과 요나단은 얼마나 진실하게 사랑했으면... 여인의 사랑보다도 더 뜨겁고 진한... 그런 사랑을 했습니까?..
우리 성도와의 관계가 그러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를 섬기는 한 자녀요 권속인 동시에... 한 몸을 이룬 지체이기에... 이런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3. 목자와 양과의 관계
세 번째는, 목자와 양과의 관계입니다.

목자와 양의 관계... 다시 말씀드리면 담임목사와 성도와의 관계를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이에 대해서도 모범적인 사람들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1) 바울과 디모데
먼저, 바울과 디모데의 관계입니다.
디모데후서 4:13절 말씀을 보면,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그랬습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어떤 관계냐 하면, 너무 너무 보고싶어하는 관계입니다.
저도 어딜 다녀오면... 가족들도 보고싶지만... 성도들이 그렇게 보고싶어요.
표현을 잘 안해서 그렇지... 궁금하기도 하고 보고싶기도 하고 그렇습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나 같은 맘인지 잘 몰라서... 망설여지는 사람이 있거든요... 이런 사람은 아직 덜 된 관계죠.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는 매우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세월이 지나면서 많이 좋아지긴 했습니다만, 아직 부족한 부분들이 많습니다.

디모데후서 4:21절에 보면, 바울은 디모데에게 부탁하기를.... 겨울이 되기 전에 너는 속히 오라고 당부합니다. 이 두 사람은 얼른 보고 싶어하는 관계... 너무 너무 보고싶어 하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네가 올 때에 드로아 가보의 집에 군 겉옷을 가져와라... 또 책은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 그랬는데... 어디에 뭐가 있고... 서로의 생활을 훤히 아는... 사생활 전부를 알고 있는 관계입니다.
여러분, 친하면 친할수록... 그 집에 수저가 몇 개이고... 그릇이 몇 개인지... 다 아는 사이가 되는 겁니다.

목사와 성도와의 관계는.. 이렇게 허물이 없는 관계... 사는 형편이나 사정을 훤히 아는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잠시 떨어져 있으면 보고싶어 하고... 빨리 만나고 싶어하는 그런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그런 관계였습니다.
끝까지 책임지는 사랑의 관계, 아낌없이 쏟아 붓는 사랑의 관계, 기다리고 용서하는 관계였습니다.
갈라디아 4:15절 말씀에 보면, 갈라디아 교회의 어떤 성도들은 바울이 눈이 나빠서 고생하는 걸 보고... 할 수만 있으면 눈이라도 빼어서 줄 정도로 그렇게 바울을 사랑했습니다.

우리 예수님도 목숨까지 바쳐서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목숨을 바치는데 예수님 편에서 남는게 뭐가 있습니까?... 아무것도 없죠... 그런데도 사랑하셨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사랑....' 이게 우리 성도들이 갖아야할 사랑의 태도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것은 십자가를 짊어지는 삶이예요.
부자가 되기 위해서... 복받기 위해서... 성공하고 출세하기 위해서 예수 믿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하나님을 잘 섬기다 보면 보너스로 그게 따라오는 거지... 그게 목적은 아니거든요.

오히려 반대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희생이 따라야 되고, 수고와 헌신이 따라야 되고... 십자가를 짊어지는 고통이 따라 옵니다.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의 사랑을 해야 되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누가 오른뺨을 치면 왼뺨을 돌려대라..." 그러십니다.
"억지로 오리를 가자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십리를 동행해 주고.... 속옷을 달라하면 겉옷까지 내어 주라!" 그러셨습니다(마5:39-41). 이게 예수 믿는 사람들의 삶인 것입니다.
특별히 바울과 디모데는 그런 관계를 갖았습니다. 목자와 양과의 관계를 잘 보여줍니다.

2) 나오미와 룻
성경에서 우리는 또 다른 모범적인 사람들을 볼 수 있는데, 나오미와 룻의 관계입니다.
룻기서 1:16-17절 말씀입니다.
"(16)룻이 가로되 나로 어머니를 떠나며 어머니를 따르지 말고 돌아가라 강권하지 마옵소서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유숙하시는 곳에서 나도 유숙하겠나이다 어머니의 백성이 나의 백성이 되고 어머니의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시리니 (17)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 장사될 것이라 만일 내가 죽는 일 외에 어머니와 떠나면 여호와께서 내게 벌을 내리시고 더 내리시기를 원하나이다"

나오미는 시어머니이고 룻은 며느리죠.
나오미 라는 여인이... 멀리 외국에 돈좀 벌겠다고 고향을 떠나왔는데... 남편이 죽고 두 아들도 다 죽었습니다.
졸지에 과부가 세 사람이 되었어요.
오르바 라는 며느리는 자기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룻이라는 며느리는 가라고 해도 절대 안갑니다.
"어머니가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어머니가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 되고... 어머니께서 죽으시는 곳에서 나도 죽어... 거기서 장사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서 끝까지 따라갑니다.
여기서 나오미는 좋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는 과부요 인생의 실패자입니다.
재산도 다 털어먹고 이제는 거지 신세가 되었거든요. 그런데도 룻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끝까지 따라 가겠다는 거예요.
영적인 관계 때문에... 하나님 때문에 목자를 붙좇는 관계입니다. 눈에 보이는 목자에게 먼저 섬기고 순종하는 관계예요.
결국... 룻은 하나님의 은혜와 복을 받아... 보아스라는 사람과 결혼을 하게 되고, 그의 후손을 통하여 다윗이 나오고... 예수의 족보에 오르는 여인이 되었지 않습니까?...

목사가 부족하고 별 볼일 없는거 같아도... 하나님이 세우신 사자요, 목자이니... 끝까지 따라 가겠다는.. 그런 룻과 같은 마음으로 나아 갈 때... 하나님께서 그의 앞길에 복을 내리시고 은혜로 더해 주실 줄 믿습니다.

3) 엘리야와 엘리사
계속해서 우리는... 목자와 양과의 관계에서 모범적인 사람들로서... 엘리야와 엘리사를 볼 수 있습니다.
열왕기상 19:19-2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19)엘리야가 거기서 떠나 사밧의 아들 엘리사를 만나니 저가 열두 겨리 소를 앞세우고 밭을 가는데 자기는 열두째 겨리와 함께 있더라 엘리야가 그리로 건너가서 겉옷을 그의 위에 던졌더니 (20)저가 소를 버리고 엘리야에게로 달려가서 이르되 청컨대 나로 내 부모와 입맞추게 하소서 그리한 후에 내가 당신을 따르리이다 엘리야가 저에게 이르되 돌아가라 내가 네게 어떻게 행하였느냐 하니라 (21)엘리사가 저를 떠나 돌아가서 소 한 겨리를 취하여 잡고 소의 기구를 불살라 그 고기를 삶아 백성에게 주어 먹게 하고 일어나 가서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더라"
이 말씀은 엘리야가 엘리사를 부르는 장면입니다.
여기서 '겨리 소'라는 것은 두 마리가 한 멍에를 메고 끄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1:29-30절에서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하셨는데... 여기서 말씀하신 멍에가 바로 겨리 소를 말씀하는 겁니다.

그런데 엘리사는 열 두 겨리 소를 가진 부자였습니다.
당시로서는 아주 부자였죠. 그런데 멍에를 불살랐습니다. 다시는 농사를 짓지 않겠다는 겁니다.
그리고는 그 고기를 삶아 백성들에게 주어 먹게 하고.. 엘리야를 좇으며 수종들었다고 했습니다.
무엇을 말씀합니까?...
엘리야와 엘리사의 관계도 역시... 절대 신뢰적인 관계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엘리야를 따랐습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엘리야가 하나님의 사람이었기에 그렇게 했던 것처럼... 목자가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영적 아비의 말에 절대 순종하는 관계...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고... 하라면 하는 관계인 것입니다.

마태복음 28:18-20절의 말씀은 지상 최대의 명령이라 불리워 지는 말씀입니다.
"(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은 지상 최대의 명령인 동시에 우리 주님의 소원이기도 합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우리 주님의 소원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하는 것입니다.
'제자 삼기'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제자로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들로 하여금 봉사하고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도록 만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제자들은 다시 또 다른 사람들을 제자 삼는 사역을 해야 되고... 그 제자들은 또 제자들을 만들고.. 제자는 또 제자를 만들고.... 이게 우리가 해야할 사명입니다.

그런데, 제자는 누구를 따릅니까?... 스승을 따르죠. 스승의 모든 것을 그대로 다 배우고 전수하는 사람이 제자인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는 스승의 모든 명령대로 순종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결국은 모든 성도로 하여금... 몸된 교회를 세워가도록 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2절 말씀에 보면,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그랬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놀라운 말씀을 발견합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랬는데... 여기서 '봉사의 일'이란, 영어로 말하자면 ministry입니다. 목회예요.
다시 말슴드리면, 모든 성도들이 목회를 하는 것이지... 목사만 목회하는게 아니라는 거예요.
"봉사의 일... '목회'를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 '교회'를 세우려 하심이라" 그랬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모두가 이제 목회 제대로 하시기 바랍니다. 목사나 전도사만 목회 하는 게 아니에요.... 모든 성도들이 목회를 하는 거예요. 이걸 알아야 합니다.

오늘은 세 가지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 자리에 함께 하신 모든 권속들은... 1)교회와의 관계 2)성도와의 관계 3)목자와의 관계를 잘 맺으므로... 승리롭고 복된 신앙생활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박기완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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