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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독교와 공산주의 (행 4:3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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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이 오면 어김없이 동족상잔의 상흔이 조국의 산하를 가득하게 합니다. 무슨 말이라도 할 수 있는 곳이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아닙니다. 지금 우리나라에서 공산주의를 운운한다는 것은 그 어떤 괴변으로도 민주시민의 건강한 지지를 기대하지 못할 것입니다.
지난 11일 새벽(미국시각 10일 오전) 미국 백악관에서 노무현 대통령과 부시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가졌습니다.
아무런 의전 행사도 없이 노무현 대통령이 미국 땅을 두 번 밟았습니다. 너무 친해서 그런지 아니면 의전 따위는 필요치 않았는지 모르나 국민들은 너무 축소된 약식 만남에 의아했을 것입니다.
두 시간이라는 시간에 철저히 통제를 받아야 되는 무슨 수능 시험장의 시간 같은 정상회담이었습니다.
너무 정형화되고 원론적인 회담결과에 한반도는 여전히 답답함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이번 회담에서도 한반도가 비핵화를 실현할 구체적 방안에 대해서 아무런 논의도 없었습니다. 철저히 외교적 용어일색인 정치적 선언을 되풀이한 회담이 되고만 것 같습니다.

북한이 6자 회담 복귀의사를 밝혔다고 합니다. 날짜까지 제시하지는 않았으나 중국 외교관계자가 "회담이 몇 주 안에 베이징에서 열릴 것"이라고까지 공언했으니 회담재개는 긍정적으로 보입니다. 회담이 진전되면 대북(對北) 제재라는 최악의 상황을 피할 수 있어서 우리에게는 희망적입니다.
하지만 성급한 기대는 금물입니다. 수없이 보아 온 북한의 행태로 미루어 보아 회담 형식과 의제를 놓고 힘든 줄다리기가 예상됩니다.
이틀 전 평양에서 정동영 통일부장관과 김정일 위원장의 전격적인 깜짝 만남이 있었습니다. 김정일 위원장의 말은 언제나 결론이 명쾌합니다. 그러나 그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을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봅니다.

1972년 미(美)·중(中)국교 정상화 직후 마오쩌둥(毛澤東)의 주치의가 마오에게 이렇게 물었다고 합니다. "하필이면 상대가 공화당 그것도 냉전의 악당(惡黨)인 닉슨 대통령인가요?" 마오의 대답이 의미심장합니다. "물론 악당은 악당이지 그래도 진보 운운하는 친구들처럼 왔다 갔다 하지는 않아. 못 믿을 친구보다는 믿을 수 있는 악당이 나아…"라고 했답니다.
이번 방문에 남북관계의 물꼬가 트인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기도하는 마음으로 지켜보아야 할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이 막스와 레닌을 완전 포기하지 않는 한 그들에게 어떠한 새로운 기대도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어떤 이들은 사도행전 2장 42-47절, 4장 32-37절의 본문을 인용하여 초대 교회가 공산사회가 실현된 것처럼 착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Ⅰ. 경제적인 유무상통에 대한 입장입니다.

본문 4장 32절에 『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 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재물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하나도 없더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인류생활의 모든 것이 경제적 요소로 발생되고 결정된다는 막스의 발언을 반대합니다. 칼 막스(Karl H. Marx)에 의하면 역사는 기계적으로 그 형태를 변하는 것인데 그것은 단순히 경제적 사정으로 인연한 일정한 작용에 의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제적 생활 형태에 따라서 인류의 생활 형태가 전적으로 좌우된다고 하는 것은 그들의 착각입니다. 그들은 자본주의 경제 체제를 노동가치설과 잉여가치론으로 설명하면서 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자멸되고 말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를 전복시켜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상품의 가치는 교환가치에 있고 교환가치는 상품 속에 들어있는 노동량으로 결정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도 자본가들은 상품 속에 들어 있는 노동량의 대가인 노동임금을 전부 노동자에게 지불하지 않고 있다고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를 착취하여 잉여가치를 발생케 한다고 했습니다. 이 잉여가치를 축적하여 부익부 빈익빈의 현상으로 계층간에 위화감을 조성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경제공황, 노사계급, 투쟁혁명으로 자본주의 사회는 필연적으로 붕괴되고 프롤레타리아 공산주의 사회가 꽃필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공산주의 사상문화에 부합되지 아니하는 것은 모두 다 죄악시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기존의 사회나 문물을 파괴하는 것이 선이요 진리요 해방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철저히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 버립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떠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더라도 기존질서를 파괴해 버리는 것을 지상과업으로 생각합니다.

그들은 기독교를 이용하여 마치 성경이 공산주의와 일치하는 것처럼 선전합니다. 그들은 사도행전에 기록된 성도들의 재산이 유무상통한 것을 공산주의와 일치한 것처럼 말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성도들이 재산을 유무상통한 것은 폭력에 의한 공산주의 정치제도와 같은 강제적 회수와 획일적인 분배방법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그때 그 교회의 자유로운 은혜생활의 한 국면이었습니다. 은혜는 강제와 통제수단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은혜는 아무런 대가 없이 그저 주어지는 공짜라는 것을 뜻합니다.

이 당시의 경제적인 유무상통은 은혜 받은 신자들의 자발적인 행동으로 되어졌습니다. 어떤 규범이나 통제된 제도에 의해서 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은총과 주님의 은혜를 충만히 받은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여 자신의 재산을 헌물 하였습니다. 결코 사유재산을 강제로 몰수하여 개인생활을 파괴시킨 것은 절대 아닙니다.
본문 4장 35-37절에 『사도들의 발 앞에 두매 저희가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눠줌이러라 구부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그가 밭이 있으매 팔아 값을 가지고 사도들의 발 앞에 두니라』고 했습니다.
성경에는 물론 가난한 사람들을 위로하고 부자들을 책망한 것이 있습니다(약 5:56). 그러나 가난한 자들에 대한 위로는 택한 백성들이 핍박을 받아서 본의 아니게 가난해진 사람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것처럼 사유 재산제도를 부정해서는 안 됩니다. 가난한 자들은 무조건 보호대상이 되고 부자는 무조건 압수당해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성경이 부자들을 꾸짖는 것은 그 부로 인하여 하나님을 모르는 자리에 깊이 빠졌다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부를 이용하여 가난한 자들을 착취하고 그들 스스로가 교만하기 때문에 부자들이 책망의 대상이 된 것입니다.
기독교 신자들은 자기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라고 해도 자기의 공로라고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재물을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은혜 받은 성도들은 자기의 것을 어떤 작은 한 부분일지라도 자기의 소유라고 결코 주장하지 아니합니다.

Ⅱ. 인간의 행복과 구원에 대한 입장입니다.

1) 공산주의의 주장
공산주의자들은 인간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인 육체로만 구성되었다는 일원론을 주장합니다. 인간을 하등동물에서 진화된 고상한 선진동물에 국한시켰습니다. 따라서 인간의 개인적인 인격은 무시되고 철저히 한 사회에 속해 있는 사회의 구성요소로서의 가치만이 인정되고 있습니다. 기계로 말하자면 부속품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인류의 불행은 오직 물질의 궁핍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노동자의 계급이 자본가 계급을 타도하여 그들이 말하는 프로레타리아 독재사회가 이루어질 때 물질은 풍성해지고 자유의 세계가 도래한다는 것입니다.

2) 기독교의 주장
로마서 3장 10절에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라고 했습니다. 로마서 3장 23절에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로서 육체와 영혼으로 구성되었다는 이원론을 주장합니다. 기독교는 인류의 불행의 원인을 죄에서 찾습니다. 그래서 죄의 삯은 사망입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죄와 사망에서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4장 12절에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Ⅲ. 종말에 대한 입장입니다.

본문 4장 33절에 『사도들이 큰 권능으로 주 예수의 부활을 증거하니 무리가 큰 은혜를 얻어』라고 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는 내세라고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인간도 동물이나 식물처럼 이 땅에서의 죽음이 바로 완전한 종말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반하여 사도들이 전하는 복음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었습니다.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증거하는 것이 그들의 사명이었습니다. 사도들이 전하는 부활신앙은 기독교 복음의 진수였습니다. 사람은 죽었다가 다시 부활하여 예수를 믿는 의인은 천국으로 가고 예수를 믿지 아니한 죄인은 지옥으로 갈 수밖에 없습니다.
인간은 공산주의자들이 말하는 죽음으로써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음으로부터 모든 것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예외 없이 인간에게 주어지는 영생과 영벌입니다. 이것은 직선사관이며 일원론적 사관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땅에 복음이 들어온 후에 얼마 되지 않아 일제강점기를 맞이했습니다. 그때 한국교회는 우상숭배로 인하여 복음의 순결성을 보존하지 못했습니다. 해방 후 한국 교회 내에 갈등은 더욱 심하여 져갔습니다. 이때 하나님은 6.25라고 하는 끓는 가마를 가지고 진노하셨습니다.
공산주의는 적그리스도의 권세입니다(계 13:7). 저들의 주장은 종교적 교제(Communion)에서 공동체(Community)가 나오고 공동체(Community)에서 공산주의(Communism)가 나왔다고 말합니다.
공산주의자들은 말하기를 기독교인들이 공산주의 선전에 잘 흡수된다고 합니다. 칼 막스의 아버지는 독일인이지만 어머니는 유대인으로 주일학교 출신이었습니다. 레닌도 "막스주의와 성 바울"이란 주제로 강연을 할 수 있는 신자였습니다. 스탈린은 신학교 3학년 중퇴자였습니다. 후르시초프는 교회 성가대원이었습니다. 다윈은 캠브리지 대학 신학부 출신이었습니다.

북한 인민공화국 서기장이었던 김양욱 목사는 평양 장로회 신학교 출신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택자가 아니면 신학교가 무슨 소용이 있으며 목사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가룟 유다는 예수님의 12제자 중의 한 사람이었고 기적도 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판 자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끝까지 회개하지 못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습니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고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여도 믿지 아니하니 불법을 행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과 상관이 없다고 했습니다(마 7:21-23).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으나 택함을 받은 자는 적다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귀에 익숙한 세계 기독교협의회(W.C.C), 국가 기독교협의회(N.C.C) 역시 현 체제를 부정하고 무신론자들의 조종을 받으며 기성교회 목사들을 포섭하고 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 스스로 인민대중의 역사라고 외치면서도 일당 독재주의 노선을 지향하며 모든 것은 공산당원의 것입니다. 옛날에는 공산당을 '마적대'라고도 했고 떼거리 강도단이라고도 했습니다.

공산당의 조부 레닌은 말하기를 "아내는 3일에 하나씩 바꾸어도 가하니라."했고 "아이를 낳으면 6개월 키워서 나라에 바쳐야 된다." 고 했습니다. 이러한 사상은 인간도 하나의 물건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공산당은 기독교의 적입니다. 반대로 공산주의자들의 무서운 적은 기독교입니다. 그들은 온갖 감언이설로 기독교 박멸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주장은 종교는 스스로 자멸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왜 종교를 핍박하는가? 종교가 망한다는 것은 그들의 막연한 이론 일뿐입니다. 종교가 긴 역사와 전통 속에서 인민들의 마음 깊숙한 곳에 뿌리박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종교를 없애야 한다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과제입니다. 따라서 공산사회 체제하에서는 교회들이 핍박을 당하고 성직자는 죽임을 당하는 것입니다. 본질상 공산당들에게는 교회가 있을 수 없으며 있다고 하는 것은 허수아비 어용단체입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이 일어났을 때 희랍 천주교 신부 4만 명이 죽었고 평신도 50만 명이 숙청당했습니다. 이것은 전쟁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공산주의자들은 그들의 당원 등을 위하여 강제로 모으고 약탈하지만 성령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은혜에 감사해서 자신의 재산을 팔아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북한은 공산체제를 굳게 견지하고 있습니다. 현재 북한의 체제에 대하여 평화를 사랑하는 자유민주주의 진영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저들의 동맹국까지도 달갑지 않게 여기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북한은 우리의 우방이 아니라 동족입니다. 불행하게도 최악의 인권 유린 국가이자 실패한 체제의 국가입니다.

우리는 민족공조의 환상에 빠져서 국제사회의 냉엄한 현실을 볼 수 없으면 자멸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쉬지 않고 지향해야 하는 과제를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저에게 표현의 자유가 어디까지인지는 모르나 좀 거친 표현을 할까 합니다.
정치인들과 기업인들은 자신들의 개인 재산이 안 든다고 해서 국가재산을 숫자놀이 하듯 화폐단위를 쉽게 취급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국가재산 수십조 원을 마음대로 건네주고 마음대로 써버리는 풍토에서 정경유착이란 말도 이제는 미명이 되었습니다.
우리나라 재산은 그 어떤 나라와 비교할 수 없는 사연이 많은 국가 재산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모은 재산입니까? 많은 것을 버리고 번 돈입니다. 위험한 곡예를 하면서 번 돈입니다. 피를 팔아서 번 돈입니다. 고향산천의 아름다운 정서를 묻어버리고 번 돈입니다.
중금속이 다른 나라보다 몇 배가 많은 물을 마셔가면서 모은 재산입니다. 그래도 조금이라도 우등한 자를 가려 보자고 다른 나라 아이들은 잘 먹고 잘 놀 때 내 아이들은 시험공부 때문에 코피가 나고 잠을 못 자게 하면서 서로서로 경쟁을 붙여 인적자원을 만들어서 번 돈입니다.
한창 잠을 자야 할 나이에 4당 5락 심지어 3당 4락이란 말은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상식이 되었습니다.

아름다운 산하 문전옥답을 매연을 뿜는 공장과 맞바꾸고 번 돈입니다. 아무 대책 없이 현실을 타도하는 것은 삼가야 합니다.
주한 미군이 1950년 휴전협정 때 32만 5000명이던 것이 1971년에는 4만 3000명으로, 1977년에는 4만 2000명으로, 2004년 6월까지 3만 7000명으로 줄었습니다.
이와 같은 급격한 변화는 우리 체제에서 얻는 것보다 잃는 것이 많습니다.
조선일보 김창기 편집국장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다음과 같이 기고했습니다.
"부시 대통령은 4년 전 김대중 당시 대통령과 통화하면서 햇볕정책에 관한 설명을 듣다가 말고 '이 사람(DJ)은 자신이 누구라 생각하는 거야' 라고 측근에게 말했다는 이야기가 최근 공개됐다. 노 대통령은 한·미 관계를 걱정하는 국내 인사들에 대해 '미국인들보다 더 미국적인…'이라고 말했지만 부시야말로 노대통령과 회담하면서 이 사람 한국 대통령 맞아? 라고 생각하는 상황이 생기지 않기를 간절히 바랄 뿐이다. 두 정상이 이제는 어떤 의미로든 새 국면에서 북핵 문제를 풀 실질적 방안을 논의하기 바란다."고 했습니다.

만약에 북한이 핵을 포기한다고 해도 우리는 냉정해야 합니다. 흥분한 나머지 민족공조란 미명아래 무분별 경제지원이나 봇물 터지듯한 교류는 삼가야 합니다.
현재보다 오히려 더 진지하고 엄격해야 할 것입니다. 똑같이 나누고 똑같이 성장하는 역사는 기독교의 역사가 아닙니다.
누구나 잘 사는 것이 우리의 희망입니다. 그러나 누구나 잘 살도록 하는 것을 분배법칙에다 두고 이것을 분배정의라고 규정하는 것은 비성경적입니다.
분배법칙에 의한 성장구조의 사회체제는 비성경적입니다. 가진 자의 것을 어떤 명목으로든지 환수하자는 정책은 더 큰 구조적 모순을 가져올 뿐입니다. 우리는 자기가 수고한대로 받는 건전한 노동원리, 부의 원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아 멘 -  (강구원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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