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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맥추감사절] 하나님께서 선히 여기시는대로 행하라 (삼하 10: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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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의 삶 속에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해서 가정과 기업과 여러분의 자녀와 여러분의 가정공동체가 복을 받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영국에 에드워드 왕자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왕자, 목사님도 왕자가 되어 봤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어요. 이 왕자가 아버지는 왕이 아니었고, 어머니가 여왕이었어요. 메리라고 하는 여왕, 아버지 사이에서 에드워드라는 왕자가 태어났어요.

그 왕자가 여행을 좋아해서 큰 세계를 여행을 하고 있었어요. 1차세계대전이 끝나고 나서 여행을 하는 동안에 이 왕자가 미국의 한 여성과 사랑에 빠졌어요. 이 에드워드 왕자가 미국을 여행하는 중에 사랑에 빠졌는데, 그 사랑에 빠진 여자 이름이 뭐냐 하면 윌리스 심프슨이라고 하는 부인이었어요. 부인이면 결혼을 했던 사람이예요. 처녀가 아니었어요. 두 번이나 결혼을 했던 사람이었어요. 지금은 남편이 없지만 결혼한 경험이 두 번이나 있던 사람이었어요.

근데 너무 여성을 만나면 재치가 있고 아름답고 마음이 끌리는 거예요. 에드워드왕자가 이 심프슨 부인에게 사랑을 빠졌어요. 그리고 미국에서 사랑에 빠져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어느 날 소식이 들렸습니다. 아버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왕은 아니었지만 어머니가 왕이었는데, 아버지가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조지 5세라고 하는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을 했어요.

어머니 메리여왕이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왕의 자리를 아들 에드워드에게 물려주게 되었어요. 그래서 왕이 떡 되었습니다. 왕관을 쓰고 왕이 되었습니다. 왕이 되고 나서 이 에드워드 왕은 제일 먼저 한 것이 뭐냐 하면 결혼식을 할려고, 내가 미국에서 사랑에 빠진 심프슨 여인과 결실을 맺으려고 결혼식을 준비했어요.

그랬더니 두 사람이 반대를 했어요. 첫째는 메리 여왕이 절대로 안 된다. 왜? 두 번이나 결혼한 경험이 있는데, 어떻게 왕비를 들이는데 두 번씩이나 결혼한 사람은 안 된다는 거예요. 어머니 메리여왕이 반대하고, 두 번째는 그 영국은 의원, 상원, 하원의원이 있는데, 그 사람들이 영국의 귀족들이거든요.

의회에서 절대로 안 됩니다. 어떻게 왕비가 두 번이나 결혼한 그것도 미국여자가 될 수 있습니까?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이 에드워드왕이 고민에 빠졌어요. 어떻게 할까? 고민에 빠지다가 어느 날 이 왕이 BBC라고 하는 영국의 국영방송, 우리나라로 말하면 KBS라고 하는 방송국에 이야기를 했어요. 몇월몇일에 중대발표를 할테니까 기자회견 준비를 해 주십시오.

BBC에서 기자회견 준비를 했습니다. 어느 날 에드워드 왕이 중대발표를 했습니다. 국민여러분, 저는 제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할 수 없다면 저는 왕으로써의 의무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왕의 자리를 떠나서 제가 사랑하는 심프슨여인과 결혼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왕의 자리를 내어놓았어요. 그리고 에드워드왕은 왕의 자리를 내어놓았으니까 공작이 되었어요. 귀족 중의 한 사람, 하지만 왕과 공작은 하늘과 땅처럼 차이가 나요. 그리고 프랑스 파리에서 조용하게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과 결혼을 하고, 조용히 일생을 보냈어요.
목사님이 그 글을 읽으면서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왕의 자리와 사랑하는 여인과의 사랑과 무엇이 더 중요할까? 그런데 이 에드워드 왕은 사랑을 선택한 거예요. 한 번 다같이 따라해 볼까요?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성경에 보면 아가서에 그렇게 말씀하고 있어요. 에드워드왕이 그 성경말씀을 생각을 한 것 같아요. 왕 되는 것보다 사랑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본문말씀에 보면 다윗왕이 이웃나라 암몬이라고 하는 나라에 왕이 죽었을 때 사신을 보냈습니다.

여러분, 우리나라 고려시대, 조선시대 사신 보내는 것 잘 알고 있지요? 사신을 보내는 것은 누가 가는 것과 같은 거예요? 왕이 가는 것과 같은 거예요. 사신을 보냈는데 정성을 다해서 보냈습니다. 그러니까 시시한 사람을 보내지 않았어요. 아프리카의 무슨 대통령이 죽으면 우리나라의 무슨 장관을 보내거나 국회의원 중에 한 명을 특사로 보냅니다. 그것도 아니면 아프리카에 있는 대사를 조문 사절로 보내요. 가서 나를 대신해서 조문해라.

그러는데 미국의 대통령이 돌아가셨다고 그러면 만약에 미국대사나 국회의원의 한 명을 조문대사로 보냈다고 그러면 아마 미국이 발칵 뒤집힐 거예요. 이것들이 나를 뭘로 알려고 그러나? 그러고 아마 분노할 거예요. 그래서 미국 대통령이 돌아가시면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아마 직접 갈 거예요.

다윗 임금이 자기 이웃나라의 암몬의 왕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그 전에 좋은 사이로 지냈기 때문에 정성을 다해서 사신을 보냈으니까 굉장히 중요하고 높은 사람들을 보냈을 것입니다. 근데 그 암몬의 새로된 왕의 신하들이 다윗의 신하들을 조문사절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느냐 하면 ‘어, 어쩌면 사신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우리나라를 정탐하러 온 지도 모르겠다. 쫘악 보고서 어쩌면 우리 나라를 쳐들어 올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을 한 거예요.

그래서 왕에게 건의하기를 왕이여, 이 조문사절은 조문사절로 온 것이 아니고 왕의 아버지를 존경해서 온 것이 아니라 정탐을 하러 온 지 모릅니다. 이 사람들을 그냥 보면 안 됩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그 자기의 주변의 참모들의 잘못된 건의에 따라 암몬왕이 잘 못 판단한 두가지를 우리는 기억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사신들의 수염이 이렇게 길은 사람들인데, 수염을 짤라버렸어요. 수염을 기르는 나라에서는 수염 기르는 자체가 권위를 상징하고, 체면을 상징하는 것인데 그것을 가위로 짤라버리니까 심각한 모욕인 줄 모릅니다.

또 하나는 옛날 중동의 사람들은 옷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통옷을 입었어요. 위에 점퍼를 입고, 위에 양복을 입고, 바지 입고 그런 것 아니고, 위에서 아래까지 통옷을 입었어요. 그런데 통옷을 입은 사람들이 안에 속옷을 입지 않았어요. 이상하지요?

옛날 사람들은 속옷이 없었어요. 창피하지요? 딱 한 사람만 속옷을 입었는데, 제사장만 속옷을 입었어요. 지금으로 말하면 목사님 같은 분들이예요. 사신들은 그 통옷을 입었는데 엉덩이 부분에 엉덩볼기를 칼로 짤라버린 거예요. 엉덩이가 보이지요.

사신의 엉덩이가 보이도록 옷을 짤라버렸으니까 얼마나 모욕을 당한 거예요. 수염을 짤라버리지요. 엉덩이가 보이도록 옷을 짤라버리지요. 그래가지고 내쫓았습니다. 그 소식을 다윗왕이 들었어요. 얼마나 다윗왕이 분노했겠습니까? 나는 사랑으로, 정성으로 조문사절을 보냈는데, 이 사람들은 내 선의를 왜곡해서 악의로 받아들인 거예요.

다윗왕이 돌아온 사신들이 자기 국경을 넘어가면서 이야기를 들었어요. 내용을 들었어요. 얼마나 모욕을 당하고, 얼마나 창피를 당하고, 얼마나 그 마음에 상처가 있을까? 그 국경을 넘자마자 여리고라는 도시가 있는데 너희들은 여리고에서 머물러라. 그러면서 거기서 옷도 갈아입고, 수염이 다시 자라도록 여리고에 머물러라. 그 수염이 다시 자라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

이 왕이 신하들에 대해서 체면을 세워주고, 깊은 배려를 해 주었어요. 근데 이 암몬의 새로된 왕이 자기가 그렇게 하고 나서 무엇을 알았느냐 하면 우리가 지금 다윗이 보낸 사신을 그렇게 모욕했으니까 분명히 다윗이 화가 나가지고 군대로 우리를 쳐들어올 것을 알고라고 성경에서 그랬어요.

그 왕은 모르고 그런 것이 아니라 알고 그런 것입니다. 부랴부랴 그래서 사람들을 막 모았는데 주변에 있는 아람사람들을 모으고 돕사람도 모으고 주변에 있는 여러나라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사람을 부르는데 그냥은 도와달라고 그러니까 도와주지 않으니까 돈을 주었어요. 돈을 주고 군대를 모으는 것을 무슨 군인이라고 하는지 아세요? 용병이라고 그러지요. 지금도 용병이 있어요. 세계에서 제일 용맹스러운 용병이 바로 네팔 용병이예요. 영국군인중에 제일 용맹스러운 군인들이 네팔에서 뽑아간 용병이예요.

그런데 이 암몬왕이 용병들을 돈을 주고 군인들을 사왔는데 무려 3만3천명을 용병으로 세웠어요. 앞에서 뒤에서 예루살렘을 포위하려고 진을 쳤습니다. 그 소식을 듣고서 요압장군과 그의 동생 아비새에게 두 진영으로 나누어서 나가서 싸우도록 명령을 했습니다. 성경에 보니까 요압장군이 동생 아비새에게 두 진영으로 군대를 나누면서 이렇게 이야기 하고 있어요.

만약에 암몬을 내가 상대하는데, 암몬군대가 우리보다 강하면 너희들이 와서 도와주고, 니가 아람군인을 상대하는데, 아람군대가 강하면 내가 가서 너를 도와주겠다. 한번 따라해볼까요? 협력, 우정, 성경에서는 협력하는 모습을 말하는데, 시편에서 보면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랬습니다. 목숨을 걸고 서로 도와주려고 결심을 한 것입니다.

다윗과 요나단 같은 경우에도 요나단이 성경에 보면 다윗을 사랑하되 자기 생명처럼 사랑했다 그랬습니다. 우리 어린이 여러분들도 친구들을 사랑하는데 자기 생명처럼 사랑하는 그런 친구들을 한 명 이상 꼭 만들기를 바랍니다. 자기 생명처럼 친구가 있어야 돼요.

얼마 전에 전 세계에서 참 감동적인 친구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앙케이트를 조사를 했어요. 가장 친구라고 하는 말에 어울릴까를 조사했는데 1등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친구란 아무도 나에게 다가오지 않을 때, 내가 실수하거나, 내가 잘못하거나, 내가 실패하거나 그랬을 때 그래서 모든 사람들이 나를 떠나갔을 때 나를 찾아올 수 있는 사람, 그 사람이 친구라는 정의를 내린 문구가 1등을 했어요.

저는 그 글을 읽고서 생각을 해 봤어요. 내가 실패했을 때, 다 사람들이 떠나갔을 때 나를 찾아온 사람들이 누군가? 성공하면 누가복음 15장에 있는 탕자처럼 돈이 많고, 돈을 펑펑 쓰면 막 주변에 친구들이 몰려듭니다. 막 친구하자고 그래요. 그것은 진짜 친구가 아니지요.

여러분들이 출세하면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많이 몰려옵니다. 하지만 그 사람들은 진정한 친구가 아닙니다. 여러분의 지위를 보고 오고, 여러분들의 물질을 보고 오고, 성공의 어떤 부스러기를 위해서 몰려드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가 실패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떠나갔을 때, 그 때 나를 찾아올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친구라는 이야기지요.
지금 이 요압과 아비새는 형제간이었지만, 같은 다윗의 장수로써 목숨을 걸고 서로 도와주기로 약속을 했습니다. 이 형 요압이 동생 아비새에게 권하는 말씀이 오늘 마지막 요절과 같은 말씀입니다. 따라하십시다. 너는 담대하라.

그 말씀에 보면 우리라고 하는 말을 세 번 반복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과, 우리 백성들을 위하여... 그랬습니다. 형이 아우에게 권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도록 하셨다. 오늘 목사님 설교의 제목이예요.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도록 하자.

우리가 지난 6개월동안 어려움을 겪은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실패하신 분들도 있을 거예요. 우리가 감사주일, 맥추감사주일은 7월1째주이기 때문에, 전반기 6개월을 지나고 감사를 드리는, 우리가 감사를 생각하면 우리는 항상 그런 생각에 빠집니다. 지난 6개월 동안 내가 특별히 성공한 것이 없구나. 특별히 돈을 번 것이 없구나. 이번 달에는 보너스도 안 나왔는데, 그런 생각들이 우리의 생각을 지배합니다.

그러나 감사라고 하는 우리의 개념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교독문 하면서, 감사에 대한 교독문을 하면서 우리에게 거듭거듭 강조하는 두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에게 고난 가운데 감사하라고 하는 이야기지요. 내가 고난 가운데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고난 가운데 있느니라. 내가 고난 가운데 있는가? 질병 가운데 고난을 당하고, 사업의 실패 때문에 고난을 당하는구나.

너무나도 힘든 가운데서 지난 6개월을 보냈는데,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고난 중에 감사하라. 데살로니가 전서에 보면 범사에 감사하라고 그랬는데, 감사의 앞의 수식을 범사라는 말을 하셨잖아요. 범사가 무엇입니까? 언제나 어느 시간이든지....

두 번째 우리가 감사를 생각할 때 우리가 꼭 잊지 말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광야에서 너희를 인도하신 주님께 감사하라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광야에서 감사할 수 있느냐? 라고 하는 것입니다. 아마 지금 이 많은 성도들 가운데서 지금 이 형통한 가운데 있다는 것보다 지금 나는 고난 중에 있고, 광야에 지금 도중에 있습니다라고 하는 분을 손 들라고 하면 그 분들이 더 많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광야에서 감사하라는 것이지요. 저는 개척을 하면서 지금까지 오는 동안에 생각을 해 봅니다. 지금 2005년의 평안의교회를 생각해 보면 얼마나 감사한 지 알 수가 없어요. 저는 종종 그런 생각을 해 봅니다. 과거에 개척하는 동안에 인적, 물적, 환경적으로 겪었던 그 수많은 눈물의 시간들, 그런데 그 시간은 잊어버려야 좋을 만큼 우리에게 있어서 그저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는가? 아니라는 것이지요.

우리가 22년을 쭉 일직선에 놓고, 한 해 한 해를 생각해 보면 그 한 해, 한 해가 고난과 역경과 광야 속에 있었지만 그 한 해, 한 해가 우리가 빼앗길 수 없는 잊을 수 없는 감사의 시간이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군에 가 있는 형제들에게 늘 권면하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분, 이 24개월 동안에 내 인생에서 정말 필요없는, 잊어 버리면 좋은, 안 가면 좋은 시간인가?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이 2년 동안의 기간동안 여러분의 생애 최고의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 불편하고, 이 규칙적인 생활 속에서 여러분의 신앙이 일취월장이 되고, 여러분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나는 그런 기회로 여러분들이 선용할 수 있다면 여러분 생애 최고의 해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도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심이 우리 생활 속에서, 모든 성도들의 고백 속에서 아낌 없이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도우셨고,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주님 오 고백을 고난 속에서 환란 속에서 때로는 형통함 속에서 드리게 하옵소서. 진정한 감사가 이 맥추감사주일에 모든 평안의 성도들을 통해서 고백되어 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고마우신 하나님, 맥추감사주일을 맞이해서 어린이교회에서 장년에 이르기까지 연합으로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형식적이고, 그저 얼굴만 보이고, 그저 예배가 연합되어 진다는 부분만이 아니라 우리 어린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신앙의 모습을 드려지는, 지금까지 내 신앙의 성숙함을 표현하는 그런 은혜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이 자리를 축복하여 주시옵소서. 때때로 고난 속에서, 때때로 그 험한 길에서 몸부림 치는 성도들도 있음을 기억합니다. 그러나 광야 중에서도, 광야의 노정 중에서도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며 감사할 수 있는 진정한 감사의 절기가 될 수 있도록 하나님 저희들을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때때로 감사의 자리에서 한 사람도 소외되지 않는 진정한 공동체의 감사의 예배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황요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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