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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위기는 기회이다 (렘 2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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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기는 기회이다

(호와여 주께서 나를 권유하시므로 내가 그 권유를 받았사오며 주께서 나보다 강하사 이기셨으므로 내가 조롱거리가 되니 사람마다 종일토록 나를 조롱하나이다 내가 말 할 때마다 외치며 파멸과 멸망을 선포하므로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의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나는 무리의 비방과 사방이 두려워함을 들었나이다 그들이 이르기를 고소하라 하오며 내 친한 벗도 다 내가 실족하기를 기다리며 그가 혹시 유혹을 받게 되면 우리가 그를 이기어 우리 원수를 갚자 하나이다 그러하오나 여호와는 두려운 용사 같으시며 나와 함께 하시므로 나를 박해하는 자들이 넘어지고 이기지 못할 것이오며 그들은 지혜롭게 행하지 못하므로 큰 치욕을 당하오리니 그 치욕은 길이 잊지 못할 것이니이다 의인을 시험하사 그 폐부와 심장을 보시는 만군의 여호와여 나의 사정을 주께 아뢰었사온즉 주께서 그들에게 보복하심을 나에게 보게 하옵소서)(예레미야 20:7-12)

한평생 살아가면서 사람은 몇 번의 위기를 당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위기가 경제적 위기일 수도 있고, 건강상의 위기일 수도 있고, 사업상의 위기일 수도 있습니다.
특별히 우리 나라와 같이 아직도 사회 전반에 안정되지 못한 나라일수록 위기의 폭은 심하게 일어납니다.

하룻밤 사이에 아파트 값이 2억 이상이 출렁거리고, 몇 년 전만 해도 버려졌던 땅이 몇 개월 사이에 금싸라기 같이 값이 오르는 이런 사회에서는 매 순간순간이 위기일 수 있습니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터질지 모르는 상태에서 그 날 그 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바라보고 사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에게도 위기는 언제나 당하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럴때 대부분의 경우에는 낙심하기 쉽습니다.
우리가 분명히 깨달아야 할 것은 신앙생활에서 위기는 매우 중요한 기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을 <위기> 속에서 부르시고, 건지시고, 인도해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하여 이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1. 위기는 최선의 기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레미야 선지를 일컬어 일명 눈물의 선지자라는 별명이 따릅니다.
그의 예언하던 시대는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최대의 위기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면, 솔로몬 왕이 죽은 후 부터 남북으로 갈라져 오늘 우리처럼 같은 민족이면서도 서로 다른 두 나라가 형성되어 왔습니다.
예레미야는 남쪽 유다 왕국에서 예언한 선지자였습니다.
남쪽 유다왕들 중, 제 16대왕 <요시아>는 하나님 앞에 정직히 행한 왕이었습니다. <요시아>왕은 개혁을 단행한 왕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선왕들이 범한 우상들을 다 제거해 버리고 일대 개혁을 단행하였습니다. 언제나 개혁이란 본래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결국 요시야 왕이 죽은 후 유대왕국은 다시 악한 왕들이 등장하면서 나라는 사향 길로 들어서기 시작하였습니다.
<여호아하스>, <여호야김>, <여호야긴>, <시드기야> 왕까지 급격히 몰락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결국 시드기야왕은 두 눈을 뽑히고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참흑한 최후의 왕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레미야 당시 백성들은 두 구릅으로 갈라졌습니다.
애굽을 의지하여 바벨론과 싸워야 한다고 하는 측과, 아예 바벨론과 화친하는 일이 좋을 것이라는 측으로 갈라졌습니다.
이런 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은 작정되었으니 애굽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이런 예레미야의 말을 당시 사람들이 들을리 만무하였습니다.

아마 요즘 우리의 상황에서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6자 회담도 기대하지 말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바라보라고 하면, 여러분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더욱이 하나님은 남쪽의 죄악을 징치하시기로 작정되었으니, 북쪽을 대항하여 싸우지 말라고 한다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그래서 날마다 그는 조롱거리가 되었고, 비웃음과 손가락질을 당해야 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으로 말미암아 내가 종일토록 치욕과 모욕거리가 됨이니이다”(8절)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위기를 만난 예레미야를 생각해 보게 됩니다.
이것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려다가 당하는 위기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려 하다가 당하는 조롱과, 비난과, 박해는 지금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도 바르게 믿음생활 하면서 살아보려고 하는데, 현실은 그런 생활을 용납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오늘 우리에게 문제가 있다면, 이와같은 고민이 정말로 있느냐? 하는 것부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인한 위기라기 보다는, 세상적 방법대로 살다가 당하는 위기일 경우가 더 많을 것입니다. 오늘의 우상이 무엇을 의미하겠습니까?
오늘의 기독교인들이 섬기는 우상이 옛날처럼 목상을 세워놓고 거기에 절하지 않는다고 우상이 없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 보다 더 공경하고, 의지하고, 힘 있게 여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오늘의 우리의 우상입니다.
그것이 자식일 수도 있고,
그것이 돈일 수도 있고,
그것이 세상적 웰빙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을 뺏기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러나 오늘도 예레미야 처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한 고난과 조롱과 위기를 만났다면, 그런 위기는 좋은 기회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2. <말씀>으로 인한 위기는 기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위기를 한자로 보면 ‘위험할 危와 기회 機’자 입니다.
풀이하면 ‘위험하지만 기회’란 뜻입니다.
그래서 <위기(危機)> 입니다.
위기를 당하면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보통 사람들은 낙심부터 합니다.
물론 사람인고로 갑자기 닥치는 위기 앞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순간 우리 믿음의 사람들이라면, 생각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위기는 ‘위험하지만 기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이것을 볼 수 있은 것이 믿음의 <눈>과 <귀>입니다.
위기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은 들려지고,
하나님의 손길을 체험하게 됩니다.
보통 때는 숨어계시던 하나님이지만, 위기 때는 나타납니다.

그래서 위기는 위험하지만 기회입니다.
더욱이 하나님을 믿고 그의 말씀따라 살려고 하는 신앙인들에게 위기는 하나님을 더욱 가까이 만날 수 있는 좋은 기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119:71) 라고 하였습니다.
신앙의 사람들은 <고난>과 <위기> 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됩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람들은 모두 위기 속에서 기회를 만났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위기상황이라고들 합니다.
나라 안 밖에서 모두가 위기상황입니다.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위기를 당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3. 교만을 버리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겠습니다.
믿는 사람이 제일 조심해야 할 것은,
사람들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지 않아야 합니다.
왜 조롱거리가 되는 것입니까?
하나님으로 부터 비웃음의 대상이 되어질 때 그렇게 됩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비웃는다고 하였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비웃으시며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시나니...”(잠3:34)
교만한 자는 다른 사람과 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과 싸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과 싸워 이길 자가 없습니다. 
세상에서 교만해지는 이유는 두 가지기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는 자기의 능력이요, 다른 하나는 자기의 소유를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라도 자기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하나님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능력이 하나님 보다 위에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또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 즉 권력을 소유하거나, 건강을 소유하거나, 지식을 소유하거나, 물질을 소유하고 있을 때 사람들은 교만해 지기 쉽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대항하여 거만해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을 볼 때 하늘에서 비웃는다고 하였습니다.

참 신앙인은 위기가 올 때 더욱 더 하나님 앞에 겸손해지면 됩니다.
그것이 새로운 기회가 됨을 깨달아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겸손한 자들을 들어 쓰기 때문입니다.
무엇인가 내가 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한,
하나님은 침묵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기를 경외하고 믿는 자들이 위기 앞에서 몸을 낮추고 겸손하게 나아와 구하면, 하나님은 그에게 기회를 주십니다.
사도행전 27장에 보면, 바울이 탄 배는 유라굴로라고 하는 광풍을 만나서 14일 동안이나 풍랑 속에서 헤매야 했습니다. 24절에 그때 상황을 간단하게 말해주고 있는데, “여러 날 동안 해와 별이 보이지 아니하고 큰 풍랑이 그대로 있으매 구원의 여망이 다 없어졌더라”고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배에 탄 사람은 바울을 포함해서 276명이었는데 이들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절망 가운데 빠져서 죽은 목숨과 같았었습니다.
그들은 바다 한 가운데에서 14일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햇빛과 별빛을 보지못한 채 아무런 소망이 없는 가운데에서 죽음의 파도와 싸워야 했습니다. 한 마디로 ‘삶의 위기’를 당한 겁니다.
이런 위기 속에서 하나님은 바울에게 나타났습니다.
24절에 “바울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고 또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항해하는 자를 다 네게 주셨느니라” 고....
네가 가이사 앞에 서야 하겠기에 내가 너와 함께 한다는 말입니다.

사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 즉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위기 때 마다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여 기회를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만일 바울이 자기의 계획대로 로마까지 갈려면 그 당시 거의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죄인의 몸이 되어 호송되어가는 신세였지만, 그리고 항해하기 좋은 시즌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를 호송하던 백부장이 선장의 말을 듣지 않고 가다가 만난 위급한 상황이었지만, 그것이 도리어 가이사 앞에 서게 되는 기회를 만들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성도들에게 당하는 위기는 하나님이 동행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풍랑을 만나도 사명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두려워할 것이 없습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는 길에서 만나는 풍랑은 기회임을 알아야 합니다.
두려워 마시기 바랍니다.

아프리카 선교사였던 리빙스톤은 아프리카 정글에서 주의 일을 할 때에 사나운 맹수도 무서웠지만 아프리카 토인들이 더 무서웠습니다. 그때 그는 걱정해주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했다고 합니다.
“나는 내가 이 세상에서 살아야 하는 존재 이유가 다 할 때 까지, 나의 사명이 다 할 때 까지 죽지 않는다!”
무엇을 믿고 그런 말을 하였겠습니까?
그는 자신의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지금 여러분이 만난 삶의 위기를 생각해 보십시오.
말씀 안에서 만나는 위기라면, 반드시 하나님은 기회를 주실 것입니다.
반대로, 요나처럼 불순종하다가 만난 위기라면, 회개하면 됩니다.
회개하는 것을 원하시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돌아서기만 하면, 하나님은 풍랑을 잔잔케 하실 것입니다.
믿는 성도들에게 위기는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 기회를 잘 포착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김이봉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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