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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주일을 지키는 삶의 축복 (창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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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 5일 근무제 시대의 자세 >

얼마 전부터 주 5일 근무제가 되었습니다. 그 제도로 1년에 52일의 노는 날이 새로 생겼습니다. 노는 날은 필요하지만 너무 노는 날이 많은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경 데살로니가후서 3장 10절 말씀에는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쉽게 말하면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은 밥줄을 끊어버리라!”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노동을 저주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노동은 축복입니다. 에덴동산에도 노동은 있었습니다. 창세기 3장에는 타락 사건이 나옵니다. 그 결과 창세기 3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아담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땅은 너로 인해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해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죄의 벌이 종신토록 일해야 그 소산을 먹게 되는 벌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노동이 죄의 결과라고 오해하지만 사실 노동은 타락 전에도 있었습니다.

창세기 2장 15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이 구절에서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라는 말은 영어로 “to work it and take care of it.”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에덴동산을 일터로 삼고 관리하라!”는 뜻입니다. 그처럼 일은 에덴에서도 있었습니다. 일은 사람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이 주신 행복의 재료이고, 축복의 도구입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도 일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의 천지창조에서 하나님은 일하셨고, 예수님도 공생애 전에 목수로 일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고 하셨습니다(요 5:17).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하면 열심히 일해야 하고 항상 이런 질문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을 위해서 무슨 일을 해야 합니까? 제가 선교를 위해서 할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위해, 선교를 위해 할 일을 찾아보십시오. 세상에서는 40-50세만 되면 은퇴하라고 난리를 치지만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은퇴가 없어야 합니다.

마태복음 25장의 비유를 보면 일하지 않는 자는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해서 있는 것도 빼앗기게 하시고, 일하는 자는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해서 더 많은 것을 얻게 하십니다. 왜 다윗이 이새의 8명의 아들 중에 막내인데도 왕으로 선택되었습니까? 7명의 형은 축복 받겠다고 이새에게 갔지만 다윗은 형들에게 “다 가세요. 저는 이곳에서 양을 지킬게요!”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일하는 사람을 귀하게 보십니다.

우리는 주 5일 근무제가 정착되어도 너무 놀지 말아야 합니다. 일할 때에는 열심히 일하고 쉴 때는 화끈하게 쉬어야 합니다. 특별히 주일성수를 잘해야 합니다. 요새 각 교회마다 주 5일 근무제로 인해 주일 예배 인원수가 줄어들 것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서구에서는 주 5일 근무제가 교회를 죽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 5일 근무제를 더욱 주일을 잘 지키는 기회로 승화시켜야 합니다.

< 안식일은 어떤 날일까요? >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천지창조를 하시고 7일째 되는 날에 안식하셨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안식일이 어떤 날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안식일은 어떤 날일까요?

1. 지난 6일을 돌아보는 날

하나님은 6일 동안 창조를 다 마치시고 7일째에 안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쉬셨다는 말은 무슨 말일까요? 침대에 누워 주무셨다는 말이 아니라 6일간의 천지창조를 돌아보시면서 보좌에 앉으셔서 그 창조하신 작품을 바라보며 음미하셨다는 말입니다. 그처럼 안식일은 그 주간에 했던 일을 돌아보며,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날입니다.

저는 가끔 인터넷에 올려진 저의 말씀을 제가 클릭해서 볼 때가 있습니다. 특히 누군가 진한 감사 표현을 하면 너무 흐뭇해서 그 주간의 설교를 다시 클릭해서 봅니다. 그러면 몸과 마음의 피로가 씻기는 것을 느낍니다. 그처럼 과거에 했던 일을 흐뭇한 모습으로 바라보고, 그 일 중에 스며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손길을 생각하며 감사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출애굽기 20장 8절 말씀을 보면 십계명의 제 4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는 계명이 있습니다. 이 구절에서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말은 단순히 안식일을 기억하라는 말이 아니라 “지난날의 주님의 은혜와 사랑의 손길의 기억하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 쉼이 없으면 자기 일을 평가도 못하고, 자기 발전도 이루기 힘듭니다. 그러나 쉼을 통해 지난 일을 살피고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발견하는 사람에게는 내일의 은혜도 주어집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람에게 7일째의 안식일이 없는 것처럼 불행한 일은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8절에 보면 사탄의 수가 666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흔히 7에서 하나가 빠진 6은 인간의 수, 땅의 수, 불완전한 수로 여겨집니다. 그처럼 아무리 열심히 6일 동안 일해도 7일째의 안식일의 삶이 없으면 그 인생은 사단의 통제를 받는 666 인생으로 끝나버립니다. 그러나 6일 동안의 삶을 7일째 날에 돌아보고 예배를 통해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인생은 가장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2. 하나님 안에서 노는 날

안식일은 예배하는 날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즐겁게 노는 날이기도 합니다. 안식일이라고 해서 항상 거룩한 모습으로 예배와 봉사만 하고, 웃고 즐기는 일은 전혀 하지 말아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안식일에 세상적인 오락을 삼가야 하지만 하나님 안에서 성도들끼리 즐겁게 노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닙니다.

저는 1984년에 하나님께 헌신하기로 다짐하면서 경건하게 살려고 애썼습니다. 그때에는 성도가 재미있게 놀면 안 되는 줄 알았습니다. 크게 소리 내어 웃으면 경건하지 못한 것 같아서 웃어도 약간 미소만 지었습니다. 그러다가 신학교에 들어갔습니다. “이제는 놀이와는 완전히 담을 쌓아야 되겠구나!”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목회자 세계에도 나름대로 놀이가 있고, 또한 놀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시편 23편 1-2절에는 우리가 잘 아는 아름다운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 도다.” 하나님은 우리가 푸른 초장에서 마음껏 뛰고 쉴만한 물가에서 쉬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우리는 건전한 놀이라면 노는 것을 정죄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건전한 놀이문화 속에 건전한 마음이 생기고, 공동체성과 인격성이 자라고, 창조성이 발달합니다. 하루에는 낮과 밤이 있는 것처럼 삶에도 땀과 놀이가 함께 있어야 건전한 삶이 됩니다. 그처럼 안식일은 예배하는 개념도 있지만 하나님 안에서 노는 개념도 있습니다.

지금부터 약 20년 전까지만 해도 볼링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사치스런 운동이었고, 주일에 교인들이 볼링을 치러 간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부터 목사님들 사이에 볼링 치는 것이 유행했습니다. 볼링은 원래 종교개혁을 일으킨 마틴 루터가 수도사들의 안식을 위해 고안한 놀이였다고 합니다. 그 사실이 알려지면서 볼링 치는 것이 목사님들의 중요한 놀이 문화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놀이에 대한 나쁜 고정관념을 깨야 합니다. 건전하고 적절한 놀이는 경직된 신앙을 막아주고 하나님의 통찰력을 얻게 하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저도 꼭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할 때만 말씀이 떠오르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놀 때 말씀이 더 잘 떠오릅니다. 때로는 운전을 할 때나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누워 있을 때에 말씀이 더 잘 떠오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주일성수에는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과 하나님 안에서 노는 것, 두 가지다 다 있어야 합니다. 예배만 드리고 바로 가는 것보다 예배 후에 성도들 간의 교제와 대화도 힘써 가져야 합니다. 주님은 마가복음 2장 27절에서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는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하나님 안에서 노는 것의 중요성을 잘 말해주는 말씀입니다. 성도는 일도 끝내주게 잘하고, 예배도 끝내주게 잘 드리고, 하나님 안에서 노는 것도 끝내주게 잘해야 합니다.

3. 새로운 6일을 준비하는 날

안식일은 이전의 6일의 삶을 돌아보는 의미도 있지만 새롭게 시작될 6일의 삶을 준비한다는 의미도 있습니다. 즉 내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에너지를 충전하는 날이 안식일입니다.

어떤 분은 성공하겠다고 쉬지 않고 일합니다. 그러면 일의 능률은 더 떨어지고, 결국은 일을 그르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떤 분은 잠을 줄이면서까지 일합니다. 그러나 수면 기간을 줄이는 것보다 차라리 자투리 시간을 줄이는 것이 좋습니다. 사람은 잘 쉬어야 잘 일할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일하는 시간도 중요하지만 쉬는 시간도 중요합니다.

인생은 짧지만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사명을 충분히 이룰 수 있는 정도의 시간은 됩니다. 그러므로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면 하나님이 간섭하실 틈조차 없고, 될 일도 안 됩니다. 겉으로는 일이 잘 되는 것 같아도 부실공사입니다. 언젠가는 무너집니다. 낙심도 누가 잘합니까? 너무 조급하게 서두르면서 쉬지 않고 일하는 사람이 낙심도 잘합니다.

열왕기상 19장을 보면 왜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고 싶다고 했습니까? 심신이 너무 지쳤기 때문입니다. 몸이 너무 피곤하니까 그 전날까지 갈멜산에서 하늘의 불을 내리게 하고, 큰 비를 내리게 했던 능력의 선지자가 이세벨의 죽이겠다는 말 한 마디에 믿음을 잃고 광야로 도망가서 죽고 싶다고 한 것입니다.

그때 엘리야가 어떻게 다시 일어섰습니까? 열왕기상 19장 5-8절 말씀을 보면 먼저 누워 잤습니다. 그 다음에 천사의 손길에 깨서 떡과 물을 먹고 마셨습니다. 그리고 난 다음에 또 누워 잤습니다. 그러자 천사가 또 와서 그를 먹고 마시게 했습니다. 그렇게 몇 번 먹고 자니까 다시 힘이 생겼습니다. 그 힘으로 40일 동안 전진해서 호렙산 굴에 도착한 뒤에 그곳에서 다시 사명을 받고 일어선 것을 보게 됩니다. 그처럼 내일의 성공적인 사역을 원하면 먼저 안식할 줄 알아야 합니다.

지난 금요일에는 말씀 묵상도 잘 안 되고 말씀 준비하는 것이 싫었습니다. 가끔 그런 때가 있습니다. 생각으로는 “신선한 밥상을 차려 새벽에 찾아오는 성도들에게 잘 대접하고, 주일에 성도들에게 잘 대접해야 되는데...”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그렇게 마음이 지쳐 말씀 준비하기 싫은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말씀 준비를 그치고 집에 들어가 쉬었습니다. 한숨 자고 새벽 3시에 교회에 나와 말씀 앞에 섰습니다. 전날 저녁과는 딴판으로 말씀 묵상이 잘 되었습니다. 그때 잠의 신비함에 감탄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잠을 주신 하나님! 감사합니다.”

잠은 신비한 힘을 가진 보약입니다. 그래서 저는 휴가 가면 가장 많이 하는 일이 잠자는 일입니다. 휴가 중에는 아침에 일어날 때마다 가장 많이 하는 말이 “허리 아프다!”라는 말입니다. 평소에는 한꺼번에 7-8시간을 내리 자본 적이 없으니까 허리가 놀란 것입니다.

사실 잠자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핸드폰 약이 다 소모되면 다시 충전시킵니다. 그처럼 잠은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시간입니다. 흔히 잠을 줄이는 사람이 성공한다고 오해하지만 진짜 성공하는 사람은 잠을 적절히 자고 자투리 시간을 줄이는 사람입니다.

사람은 평균적으로 일생의 3분의 1을 잡니다. 그 말은 삶에서 잠처럼 중요한 것은 없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3일만 잠을 못 자도 반쯤 미칩니다. 가장 무서운 고문은 잠을 안 재우는 고문입니다. 그처럼 잠자는 시간은 낭비하는 시간이 아니라 꼭 있어야 하는 시간입니다.

잠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표입니다. 시편 127편 2절에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왜 사람의 생각이 복잡해집니까? 잠을 자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처럼 잠을 자지 못하고 생각이 복잡한 사람을 통해서 세상도 복잡해집니다. 그러나 잠도 잘 자고 열심이 일하면, 다시 잠도 잘 오고, 생각은 단순해지고, 일에 대한 열정은 늘어나게 됩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세상도 맑고 환하게 됩니다. 그처럼 안식은 내일의 창조적인 일을 위해서 꼭 필요한 것입니다.

가끔 어떤 사람들은 이런 삶의 공식을 생각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6일 동안 창조의 일을 마치시고 7일째에 안식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6일 동안 열심히 일하고 7일째에 쉰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의 공식이지 사람의 공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스스로 계신 분이기에 먼저 6일 동안 일을 하시고 7일째에 안식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은 먼저 6일 동안 일할 수 있는 자체 에너지가 없기 때문에 먼저 안식일에 하나님으로부터 에너지를 받아야 합니다.

예를 들어, 자동차가 6일 동안 열심히 돌아다닌 다음에 7일째에 “자동차야! 지난 6일 동안 수고했다!”하고 그 자동차에 연료를 넣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연료를 넣어 준 다음에야 자동차가 달릴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은 먼저 안식일에 하나님의 은혜를 입고서야 6일 동안 세상에 나가서 열심히 일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안식일은 7일의 마지막 날이 되어도 괜찮지만 인간에게 안식일은 7일의 첫째 날이 되어야 합니다.

창조사역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6일째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 다음날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에게 안식일은 7일째 날이었지만 6일째 창조된 인간에게 그 안식일은 첫째 날입니다. 그 사실은 사람은 먼저 하늘로서 신령한 은혜를 받아야 세상에 나가서 6일 동안 열심히 일을 할 수 있는 참된 에너지가 생긴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것처럼 사람에게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사람에게 가장 우선적인 일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일입니다. 사람은 일을 한 후에 피곤해서 쉬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 안에서 쉬고 힘을 얻어서 일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창조의 목적에 가장 합당한 모습으로 행복하게 살려면 주일을 지키는 삶을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어야 합니다.

4. 복된 삶을 위해 구별된 날

오늘 본문 3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창세기 1장을 보면 첫째 날부터 여섯째 날까지는 그런 말씀이 없었는데 유독 일곱째 날을 복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께서 안식일을 사람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 특별히 구별하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진짜 복을 원하면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고 복 받는 길은 없다고 믿어야 합니다.

주일을 사람에게 가장 복된 날이고 찬란한 빛으로 가득한 날입니다. 창세기 1장을 보십시오. 창세기 1장에는 6일간의 하나님의 창조사역이 나타나 있습니다. 그런데 하루하루의 사역이 끝나면 어떤 구절이 반복됩니까? 1장 5절을 보십시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 그 말이 1장 8절, 13절, 19절, 23절, 31절에서 계속해서 반복해 나옵니다.

그러면 관례상 오늘 본문 다음에도 이런 말이 나와야 합니다.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 이는 일곱째 날이니라.” 그러나 일곱 번째 안식일 날에는 그런 구절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일곱 번째 날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거룩한 날로서 오직 찬란한 빛만 있고 저녁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만약 타락이 않았다면 그 일곱째 날은 영원히 지속되며 이 땅에는 빛과 평화가 넘치는 세상이 되었을 것입니다.

에덴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빛 가운데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며 사는 삶의 현장이 에덴입니다. 그러나 타락 사건으로 아담과 하와는 에덴에서 추방되었고 에덴에서 추방된 그들에게 처음 다가온 가장 무서운 현실은 저녁이 다가오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창조된 후 처음 맞이하는 저녁을 보면서 아담과 하와는 그때서야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고 참된 안식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실감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안식일은 영적인 의미에서 밤이 없는 날이고, 오직 찬란한 빛과 평화만이 존재하는 날입니다. 요한계시록 21장 25절 말씀을 보면 천국에는 밤이 없습니다. 그처럼 밤이 없는 에덴이 임시적으로 이 땅에 회복되는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의 안식일, 신약시대의 주일은 우리 믿는 성도에게 있어서 가장 복되고 좋은 날입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계명은 성도에게 힘든 의무로 주어진 계명이 아니라 성도에게 천국의 맛을 보여주기 위한 하나님의 배려로 주어진 계명입니다. 그 계명을 따라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날을 우리도 힘써 구별해서 지킬 때 우리는 천국의 평안을 얻게 될 것이고, 이 땅에서 잠시나마 진짜 천국의 맛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주일을 지키는 삶의 축복 >

이 세상에 주일처럼 복된 날은 없고, 주일을 지키는 삶처럼 복된 일은 없습니다. 안식일은 사람의 영혼과 축복을 수호하는 날입니다. 출애굽기 31장 15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면 그 길은 사는 길 같지만 죽는 길이고, 안식일을 지키면 그 길이 죽는 길 같지만 사는 길이라는 말입니다.

점쟁이들에게 가면 특별히 좋은 날이 있다고 해서 택일을 해줍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미 복되고 좋은 날을 택일해 주셨습니다. 그 복된 날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 안식일의 축복을 누가 제일 잘 압니까? 바로 사단입니다. 그래서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주일을 못 지키게 온갖 노력을 다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을 지키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을 과감하게 잘라버리고, 최선을 다해 주일을 지켜야 합니다.

안식일을 잘 지키면 몸도 최상의 몸이 됩니다. 사람에게는 일과 휴식이 6대 1의 비율로 구성될 때 가장 좋은 생체 리듬이 유지된다는 과학적 연구도 있다고 합니다. 실제로 프랑스 혁명을 주도했던 사람들은 기독교의 잔재를 깨겠다고 9일 일하고 하루 쉬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그러자 일의 효율이 극도로 나빠지고, 사람들의 정신세계가 황폐하게 되고, 수많은 사람들이 과로로 죽는 일이 벌어지면서 곧 그 제도를 포기했다고 합니다.

주일을 지키지 않고 일하면 더 잘할 것 같고, 더 많이 얻을 것 같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광야 생활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40년 동안 만나를 매일 주셨지만 안식일에는 만나를 주시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안식일 전날에 2일분의 만나를 주셨습니다. 안식일에 일하지 않고도 먹고사는 일에 지장이 없도록 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욕심 많고 내일에 대해 불안해했던 일부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식일에 만나를 거두러 갔습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얻지 못했습니다. 그처럼 더 얻겠다고 하고, 일하지 않으면 망할 것 같다고 해서 주일에 일을 하면 결국 나중에는 아무 것도 남지 않게 됩니다. 물론 일시적으로는 저축이 되는 것 같지만 결코 저축되는 것이 아니고, 언젠가 가슴 아픈 일과 함께 그 모았던 돈이 다 달아나게 될 것입니다.

지금 경제가 어려워서 사람들마다 먹고살기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주일에 일을 하는 성도들이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주일을 지키려고 최선을 다하면 하나님께서 주일을 지킬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을 허락하시고, 더 나아가 그의 영혼과 가정과 삶에 풍성한 축복으로 함께 하실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삶은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신앙고백입니다. 주일성수는 “저는 하나님이 없으면 살 수 없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겠습니다.”라는 고백을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처럼 우리가 주일을 힘써 지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삶과 가정과 미래를 힘써 지켜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말도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안식을 지킨 것이 아니라 안식일이 유대인을 지켜주었다!”

1967년, 이스라엘과 중동 연합군 간에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때 이스라엘의 모세 다얀 국방상은 최첨단 컴퓨터로 전쟁 시뮬레이션을 했습니다. 여러 각도에서 여러 정황을 유리하게 입력해서 아무리 시뮬레이션을 해도 그 전쟁에서는 이스라엘이 절대로 이기지 못한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는 곧 컴퓨터를 내동댕이치고 “우리는 과학이 아닌 믿음으로 싸운다!”고 선언하고 안식일 다음날 전쟁을 개시했습니다.

그때 전쟁을 하면서 모든 병사들에게 공통적인 관심사가 있었습니다. “돌아오는 안식일을 지킬 수 있을까? 그래 지켜보자! 아니, 꼭 지켜야 한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번 안식일을 지키려고 사력을 다해 싸웠습니다. 결국 6일 만에 아랍 연합군의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그것이 현재 전쟁사에 도저히 있을 수 없는 기적의 전쟁으로 기록되는 ‘6일 전쟁’입니다. 무엇이 승리의 열쇠였습니까? 안식일을 지키려는 군인들의 열심이 전쟁 승리의 열쇠였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전쟁을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 전쟁에서 이기려면 주일을 지키는 삶이 필수적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키면 주일을 지키는 삶이 우리의 삶과 영혼을 지켜줄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가정과 사업과 자녀도 지켜줄 것입니다. 주일성수는 어떤 사단의 공격에서도 승리하게 하고, 어떤 역경도 물리치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항상 주일을 최선을 다해 지킴으로 영혼을 지키고 하나님이 주신 축복과 은혜를 지켜나가는 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한 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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