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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무엇으로 알리이까 (창 15: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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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지난 시간에 우리가 보았던 말씀(창 15:1-6)에 이어서 계속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손에 대한 약속을 하신 후에(창15:1-6), 땅에 대하여 약속하시는 장면입니다.

1. 하나님께서는 일찍이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건지실 때에,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하셨습니다(창12:2-3). 이 말씀에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이 담겨 있는데, 이 약속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입성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 아래 이르렀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다시 찾아오셔서 확증해 주셨습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네가 서 있는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하셨습니다(창12:7). 

그러나 그로부터 상당한 시간이 흘렀으며 그 동안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성경의 증거에 따르면 아브라함은 애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왔으며(창12:10-20),  롯과 헤어지는 아픔도 겪었으며(13장), 롯이 북방의 엘람 왕국의 그돌라오멜에게 포로로 잡혔을 때에는 롯을 구해 내기 위하여 큰 전쟁을 치르기도 하였습니다(14장). 이것은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온 지 상당한 시간이 흐르는 기간 동안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온 지 상당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는 아무것도 현실적으로 나타난 것은 없었습니다. 전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던 자손도 없고 또한 땅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다가 아브라함은 큰 전쟁을 치른 후에 혹시나 그돌라오멜이 보복이나 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마저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러한 상황에 있었다는 사실은 아브라함이 분명히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약속이 자신에게 어떻게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인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음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처음 주셨던 약속을 다시 재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자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창 15:1-6). 하나님께서는 장차 아브라함의 뒤를 잇게 될 후사가 있을 것이며(15:4), 그 후손들은 하늘의 뭇 별과 같이 많을 것임도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창세기 12:2절에서 말씀하셨던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리라’는 말씀을 다시 확인시켜 주신 것입니다. 따라서 그 동안 아브라함은 세상의 여러 가지 삶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확신이 식어지고 있었을지라도,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의 약속을 잊지 않으셨으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후손을 분명히 주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곧 후손에 대하여 약속하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위로가 되었음은 분명합니다.

2.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단지 후손을 주어 대를 잇게 하시겠다는 것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후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궁극적이 이유가 어디에 있는지 말씀하십니다.  그러면 그 이유는 무엇인가? 이에 대하여 성경 창세기 15:7절에는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고 증거 합니다.  이 말씀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냈다는 사실과 함께,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이유가 무엇인지를 증거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에게 주어 업을 삼게 하시려고 하셨다는 것입니다. 사실 지금 이 약속을 받을 때에 아브라함에게는 땅 한 평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약속은 벌써 두 번째입니다. 첫째는 창세기 12:7절이며, 다음은 창세기 15장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땅을 주어 업을 삼게 하시려고 갈대아 우르에서 건지셨다는 사실은 아브라함에게 큰 소망을 주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안에서 얻게 될 비전이 되었습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은 자신이 하나님께로부터 얻게 될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알고 싶어 합니다. 즉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대하여 더욱더 분명한 표징을 얻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하나님께서 내게 이 땅을 주시겠다고 하시는데, 그러면 그것이 나의 업이 될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 하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대하여 이렇게 질문한 사실을 그가 믿음이 없어서였다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이미 창세기 15:6절에는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본문에서 아브라함의 이러한 질문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그 표징을 얻고자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더욱더 확고한 믿음을 위하여 요구하는 것입니다. 

3. 아브라함의 요구에 대하여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이 언제,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알고 싶어 하는 아브라함에게 13절 이하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정녕히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게 하리니, 그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치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니라”고 증거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비록 현재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주시려는 땅에 들어와 살고는 있지만, 이 땅이 자신의 소유가 되기까지는 긴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가까운 시일 내에 아브라함에게 기업으로 주실 것이 아니고, 먼 훗날 그의 후손들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시는 까닭은 하나님 자신의 공의로우심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다고 해서 자신의 즉흥적인 감정이나 기분대로 자신의 능력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극히 선하시며, 가장 이성적이시며, 무한히 지혜로우시고 완전하게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러시기에 사람들의 죄악에 대해서 오래 참으십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은 지금 가나안 땅에는 아모리 족속이 살고 있지만, 그들을 심판을 하시기까지, 지금 죄가 관영해 있지 않으며, 또한 그들의 죄악에 대하여 하나님은 공의로우심을 오래 참으시며 기다리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들은 악하여 범죄 함에서 돌이키지 않을 것이며,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관영해 질 때까지 기다리시겠다는 것이며, 이는 결국 하나님의 공의 때문에 긴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16).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마음을 헤아려서 40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날 지에 대해 설명하십니다. 이것은 바꿔 말하자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자신이 앞으로 움직여 가실 역사에 대해 미리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주도면밀하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400년을 가리켜 사대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아브라함이 이삭을 100세에 출산할 것이므로 한 세대를 100년으로 삼고, 사 대라고 했던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업으로 삼게 될 땅의 구역을 정하여 주십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토지 대장을 발급해 주시듯 하신 것입니다.  장차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받게 될 땅의 범위는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입니다.  본장 18절 이하에는 “그 날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워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애굽 강에서부터 그 큰 강 유브라데까지 네 자손에게 주노니,  곧 겐 족속과 그니스 족속과 갓몬 족속과 헷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르바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여부스 족속의 땅”입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본문에서의 문제는 하나님의 약속이 확실하게 이루어질 줄 어떻게 아느냐! 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약속이 불확실하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못 믿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확실히 이루어진다는 보증서 같은 것을 보여 달라고 요구하였던 것입니다. 이 보증서는 하나님께서 단지 말씀만 그럴듯하게 하시는 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분명히 성취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증거 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확실하게 이루어질 것이라는 분명한 증표는 언약을 통하여 확실하게 보여주십니다.

그 언약의 과정을 성경은 다음과 같이 증거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질문을 받고 난 후에 한 가지 명령을 내립니다. “아브라함아! 너는 나를 위하여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수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취할지니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 궁금증을 자아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왜 아브라함에게 짐승을 취하라고 하셨는가? 그리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취하라고만 했을 뿐인데 왜 짐승을 쪼개어 놓았을 까? 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분명한 대답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짐승을 취하라고 하신 것은 곧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던 땅에 대한 약속을 더욱더 확증을 주시기 위하여 언약을 맺기 위함이었습니다.

옛날 두 나라의 왕들 간에 맺는 조약은 군신 관계를 규정하는 계약이었습니다. 두 나라가 전쟁을 치르고 나면 약한 나라는 부득불 강한 나라를 종주국으로 섬겨야 하는데, 그러면 상대편 왕은 주군이 되고,  이쪽 왕은 신하가 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입장을 확고히 하기 위하여, 주로 강자에 의해서 쌍방은 계약을 맺게 됩니다. 이것이 고대 근동에서 나라들 간에 있었던 조약이었습니다. 조약을 맺을 때는 의식을 치르는데, 이 방법 중에 하나가 짐승을 잡아 쪼개서 마주 놓고 그 사이를 당사자 쌍방이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만일 조약의 내용을 지키지 않을 경우에는 죽은 짐승처럼 자신도 죽거나 저주받을 것임을 다짐하는 상징적 행동이었습니다(렘 34:17-22).

그러나 하나님과 그의 백성 간에 세워진 관계는 조약이나 계약이라 말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언약이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비록 의식을 치르는 방법은 그 시대의 것을 빌려 온다 할지라도,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은 조약이나 계약과는 다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차이점은 고대 근동의 왕들 간의 조약은 한쪽의 강요가 있다 할지라도 쌍방의 합의에 의해 수립됩니다. 그러기에 조약 곧 계약이라 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 자신께서 단독으로 수립하십니다. 이 과정에서 언약의 계승자가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언약의 계승자와 계약을 맺지 않으십니다.  또 하나의 다른 점은 사실상 조약은 강자가 약자를 착취하는 내용을 골자로 삼고 있으나, 하나님의 언약은 하나님께서 상대에게 복을 베푸시려는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언약을 계약이라고 부르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어찌 되었든지 간에 아브라함은 고대 사회에서 이미 성행되고 있는 관습 때문에 하나님께서 짐승을 취하라고 명하신 의도를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짐승들을 가져와서 다음 지시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능숙한 행동으로 그 짐승을 죽여서 중간을 쪼개고 쪼갠 것을 마주 놓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새들은 쪼개지 아니합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이미 언약의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아브라함은 짐승을 보고서 쪼갤 것이 무엇인지 알아서 쪼개고, 또한 쪼개지 아니할 것은 쪼개지 아니하며, 또한 쪼갠 것들을 어떻게 배치해야 할지를 잘 알고 행한 것입니다(10).

이렇게 아브라함은 모든 준비를 마치고 하나님의 응답을 기다랍니다. 기다리면서 멀리 하늘  높이에서는 육식을 하는 큰 새들이 쪼개 놓은 짐승의 사체 위에 선회하여 내리는 것을 보고 쫓아냅니다. 아브라함이 새들과의 실랑이하는 가운데 어느덧 해는 져서 어두워지기 시작합니다.  하루 종일 짐승을 쫓아내느라 피곤한 아브라함은 어두워지자 피곤함에 못 이겨 깊은 잠에 빠집니다. 그런데 그 때에 “연기 나는 풀무가 보이며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십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언약을 통하여 아브라함의 질문(8절)에 대해 확실한 답을 주신 것입니다.

5. 그러면 언약이라는 의식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인가?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이 땅으로 업을 삼을 줄을 무엇으로 알리이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하나님은 분명한 땅에 대한 약속을 지금 당장 이루어질 일이 아니라 장차 후손들에게 이루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언약의 결정적 단계에서 하나님의 횃불은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셨습니다. 그리고 언약 의식은 끝이 납니다(17). 하나님께서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신 것은 고대 사회에서는 언약의 당사자들이 모두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야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아브라함에게 세우신 하나님의 언약에는 독특한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은 쪼갠 고기들 사이로 지나가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만 그리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언약인 것입니다.

그러면 언약의 당사자인 아브라함은 제쳐 놓고 하나님만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가신 이유는 무엇인가?  이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상방 간에 합의에 의해서 진행된 계약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것을 하나님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루시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 자신께서 직접 이루실 일입니다. 그래서 하나님만이 지나가신 것입니다.  이것을 인간적인 표현으로 말한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 여호와가 네게(아브라함) 말한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나 여호와가 죽음을 당하거나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맹세를 한 것입니다.  물론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죽으실 수 없는 분이십니다. 또한 그분은 공의로우시고, 의로우신 분이시기 때문에 저주를 받지 않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자신의 목숨을 담보물로서 내 놓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것을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아브라함에게 알리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원래 영이시기에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으신 분이시지만, 아브라함이 분명하게 눈으로 볼 수 있도록 횃불을 사용하신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약속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만큼 확실한 대답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명예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약속이야 말로 확실한 대답인 것입니다. 이 말씀이 바로 아브라함을 평안하게 하였으며, 그 평안함을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신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입니다. 

6.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약속하셨던 것을 그 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 땅에 종 되었던 곳에서 건지시고 주심으로 이루셨습니다. 비록 아브라함이 사는 날 동안에 약속이 이루어지지는 안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약속을 잊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께서 먼저 아브라함의 후손들에게 그 땅을 주심으로 이루셨을 뿐 아니라, 급기야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모든 것을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진정한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신실하심이 이스라엘의 역사 속에서 구원으로 나타났으며, 또한 오늘 우리에게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구원을 주셨으며, 또한 영원히 함께 하십니다.

이러한 사실 때문에 히브리서의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은 그 약속이 이루질 것을 믿음으로 살았으며, 그는 이미 받은 것으로 여기고 살았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걸고 자신의 명예와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약속하신 바를 반드시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시고 또한 그 일을 이루신 하나님을 변함없이 신뢰하며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바로 믿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믿습니까? 그러면 무엇을 믿습니까? 신실하신 여호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까? 옳습니다. 그분을 믿으십시오.  자신의 목숨을 걸고 약속을 이루시겠다고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으며,  또한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우리에게 아브라함의 복에 참여하게 하신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시고, 그 분 안에 살고자 하십시오.  그것만이 여러분을 진정한 평안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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