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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문 밖에서 두드리는 기적 (행 1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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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불을 품은 사람 <토미 테니> 목사의 글에
[ 야곱은 얍복강을 건너기 위하여 다리를 놓을 시간이 없었다
그러나 하나님을 갈망하며 길을 찾았다.
얍복 강가에서 씨름으로
그는 하나님을 만났고, 이름이 바뀌었고, 평생의 삶이 달라졌다
오늘 우리의 문제는
삶을 바꾸어 놓는 하나님과의 만남을 얼마나 갈망하느냐? 인 것이다 ]
기적을 앉고 문 밖에서 두드리는 주님을 갈망하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 나라의 원칙들이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교과서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행12장은 우리가 신앙과 삶의 딜레마에 빠졌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투옥 되었을 때
초대교회가 어떻게 신앙적으로 대처했는가? 의 모습을 통해
우리의 신앙의 삶의 능력과 지혜가 되는 말씀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럼 오늘 본문말씀이 시작되는
베드로가 옥에 갇힐 때의 주변 형편이 어떠한가?를 살펴보면

1,2절 [그때에 헤롯 왕이 손을 들어 교회 중 몇 사람을 해하려 하여]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칼로 죽이니]
그때가 언제입니까? 11장 마지막에 보면
바나바와 사울에 의해 안디옥 교회가 부흥하고 있는 반면에
예루살렘 교회에 핍박이 가해지고 있는 시점입니다.
당시 집권자 헤롯은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하여
1) 기독교가 점점 확대되는 것을 막아야 했고
2)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초대교회의 모체인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들을 핍박을 하게 됩니다.

그 본보기로서 요한의 형제 야고보 사도를 칼로 죽였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헤롯에 대해 먼저 살펴보면
헤롯이라는 이름은 신약 성경에 여러 번 나오는데
그들은 모두 교회의 반대세력으로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첫째 헤롯은 예수님 탄생시에 왕으로 있던 자로서
예수님을 죽일 목적으로 두 살 이하의 어린아이들을 살해합니다.
그 아들 헤롯 안티파스는 세례 요한의 목을 벤 자요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준 자입니다.
그리고 본문의 헤롯은 그의 조카로서 헤롯 아그립바인데
바로 야고보 사도를 죽인 자입니다.
헤롯은 가장 부정적인 측면의 전형적인 권력의 대명사로써
권력을 유지하는 일에만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기독교를 핍박하였고
야고보를 칼로 죽였던 것입니다.

헤롯은 아고보의 죽음으로 백성들이 기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이제 베드로까지 죽인다면 자신이 굉장히 인기를 얻을 것이라 생각하고
베드로까지 잡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3, 4절에 보면
때가 유월절 기간 중 무교절이기 때문에
절기 때에는 사람을 죽이지 않기 때문에
일단은 잡아 옥에 가두고 유월절이 지나면
백성들 앞에 끌어내어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베드로의 입장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집시법 위반으로 옥에 갇힌 것이 아닙니다.
사도 야고보는 목 베임을 당해 죽었습니다.
다음은 자신이 죽을 차례입니다.
상황은 자물쇠로 잠근 대문이 두 겹으로 막고 있고
군사 16명이 네 대로 나누어서 두 명은 베드로와 같이 사슬에 매여 있고
두 사람은 문 밖에서 옥을 지키고 있습니다.
베드로가 처한 상황이나 교회가 처한 상황이나
모두 설상가상으로 최악의 상태에 거의 소망이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습니까?
나는 이러한 상황을 당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떻게 합니까?
빽을 찾아 가지요. 아니면 돈 봇 따리를 들고 가겠지요.
아니면 육탄전으로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다 하고 데모를 하겠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뒤집기 방법은 그게 아니었습니다.
오늘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하고자 하는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 점입니다.
하나님의 뒤집기 방법입니다.
저는 말씀을 준비하다가 나도 모르게 하나님 감사합니다.
돈도 없고 빽도 없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왜? 빽 있으면 빽 찾아갑니다. 없으니 하나님께 의지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초대교회 성도들이 먼저 한 일이 무엇입니까?

5절 [이에 베드로는 옥에 갇혔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초대교회는 지도자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에 나타난 초대교회는
지금까지 성령의 강력한 역사하심으로 만들어진 공동체였지만
아직 세상에 든든히 뿌리내리지 못한 허술한 조직이었습니다.
지도자가 없으면 오합지졸이 될 수밖에 없는 그런 조직입니다.
이제 곧 교회는 해체될 수밖에 없는 위기에 처한 것입니다.
지도자를 잃은 초대교회는 어떻게 했습니까?
위기를 당한 교회가 어떻게 대치했습니까?
간절히 하나님께 빌었습니다. 모여서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단순한 구절 같지만 아주 중요한 구절입니다.
저들은 빽을 동원하거나, 뇌물로 구워 삼으려고 하거나
연명날인 하여 진정하거나, 연좌농성을 벌이지 아니했습니다.
그들은 간절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피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탄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야 합니다.

기도에는 여러 가지 기도가 있습니다.
은혜에 감격하여 감사의 기도가 있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간구가 있고
형제를 위한 중보기도가 있읍니다만
그러나 마치 응급환자가 병원 응급실에 실려 가면 비상이 걸리듯이
비상기도가 있습니다. 절대기도가 있습니다.
표현은 [ 교회는 그를 위하여 간절히 하나님께 빌더라 ] 고 하지만
이 말씀 속에는 비상한 각오의 절대기도를 했다는 말입니다.
초대교회는 비상이 걸렸습니다.
이때는 생명 걸고 기도해야 합니다.
죽느냐 사느냐 하는데 언제 절차 다 밟을 시간 있습니까?
이때는 쭈~여 ! 살려 주시옵소서 ! 하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5절의 기도가 바로 이런 기도였습니다.

절대 기도에는 절대 응답이 있습니다. 믿습니까?
초대교회는 세상적인 방법에는 미숙했지만
하나님의 뒤집기 방법에 눈이 뜨여졌던 것입니다.
이탈리아 속담에
[ 하나님은 문을 닫으시되 창문은 반드시 열어 두신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닫힌 문만 바라보며 절망하지 말고 열린 창문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초대교회 성도들이 비상 기도를 할 때
비상 기도의 응답이 어떻게 이뤄집니까?

6절 보시기 바랍니다.
[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는 그 전날 밤에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서 두 쇠사슬에 메여 누워 자는데
파수꾼들이 문밖에서 옥을 지키더니 ]
언제 입니까? 헤롯이 잡아내려고 하던 전날 밤이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여한 사실 한 가지를 또 배웁니다.
기도는 전날 밤에 다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왜? 하나님은 전날 밤까지 기다리게 했습니까?
왜 절기 일주일 동안이나 기도하게 했습니까?
인간의 가능성이 배제될 때가 바로 하나님이 역사하실 때라는 사실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기도의 응답이 어떤 형편에서 나타났는가 하면
베드로가 두 군사 틈에 사슬에 묶여 자고 있을 때입니다.
이 사실도 인간의 가능성이 전혀 없다는 표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나타내시기 위해
인간의 가능성을 포기할 때까지
그리고 사면초가의 장벽으로 둘러싸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내 시간에 안 맞는다고, 불가능한 장벽에 둘러싸여 있다고
불평하거나 낙담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되려 위기가 호기라는 사실을 알고 비상기도 절대기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여기서 기도에 관한 귀중한 교훈을 배워야 합니다.
기도는 맨 나중에 하는 것이 아니라 맨처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교인들이
이리저리 구명 운동하다가 안되니 기도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즉시로 기도했습니다. 우리는 그렇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문제가 생기면 해 볼대로 다 해 보고 안 되면 기도합니다.
그러지 마십시오. 처음부터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인터넷에서 펴온 글입니다.
한 믿음 좋은 부인이 식료품 가게에 와서
저녁에 아이들을 먹을 수 있을 만큼만 식료품을 달라고 했습니다. 가게 주인이 돈이 얼마나 있느냐고 물으니
남편이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아서 가진 것이 없다고 하면서
주여 주실 줄 믿습니다. 하면서 기도를 합니다.
주인이 밉기도 하고 딱하기도 해서
[ 당신의 기도를 종이에 써주십시요. 그러면 그 무게만큼 식료품을 주겠소 ] 놀랍게도 부인은 접혀진 노트장을 주머니에서 꺼내 주인에게 건내주면서
[우리 애가 아파서 옆에서 병간호를 하며 기도를 적어 두었지요 ] 합니다.
읽어 보지도 않은 채 주인은 구식 저울의 추를 놓은 곳에
기도가 적힌 종이를 놓고는
[ 자 이 기도가 얼마치의 식료품무게가 되는지 달아봅시다 ] 하고 중얼거렸습니다.
그런데 빵 한덩어리를 놓았는데도 저울은 꼼짝을 안했습니다.
우유와 치즈와 과일을 얹어도 저울이 꿈쩍을 않습니다.
그러니 주인이 하는 말이
[ 나는 바쁘니 당신이 마음대로 봉지에 담아가시오 ] 하고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그 부인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며 식료품을 가득담아 나왔습니다.
부인이 나간 후
이상하다 싶어 저울을 보니 저울이 고장나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저울 위에 놓인 종이에 쓰인 기도문을 보니
[ 주여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 였습니다.
저는 이 이야기가 픽션인지 난픽션인지 모르겠습니다만
예화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기도가 우선이 될 때
하나님은 저울도 고장 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시는지 봅시다.
7-8절을 봅시다
[홀연히 주의 사자가 곁에 서매 옥중에 광채가 조요하며
또 베드로의 옆구리를 쳐 깨워 가로되 급히 일어나라 하니
쇠사슬이 그 손에서 벗어지더라 ]
[천사가 가로되 띠를 띠고 신을 들메라 하거늘 베드로가 그대로 하니
천사가 또 가로되 겉옷을 입고 따라오라 한대]
하나님이 기도에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천사를 보내어 응답하십니다.
천사는 실존합니다. 성경에도 가브리엘 미가엘 천사가 나옵니다.
천사는 하나님이 부리는 영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천사가 돕더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임종시에도 주님은 천사를 보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비상기도에는 하나님이 천사를 보냅니다.
천사가 나타날 때 광채가 났습니다.
기도하는 우리 마음에도 이 광채가 비춰질 줄 믿습니다.
저는 찬365장 좋아합니다.
그 중에서도 5절 마지막 가사 - 저 천사 내려 보내사 날 영접하소서.
신앙은 실제입니다. 신앙은 관념이 아닙니다.
신앙은 사상도 아닙니다. 철학도 아닙니다. 실제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어 면서도 신앙의 깊은 체험을 하지 못하는 것은
신앙을 하나의 이론이나 사상이나 정신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기독교 신앙이란?
쇠사슬에 메여 있던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을 받아 풀려 나오듯이
메였던 것에서 풀려나는 것이 신앙입니다.
신앙을 하나의 장식품으로 여기고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교회 나가면 좋은 말씀도 듣고 교제도 할 수 있으니
안 나가는 것 보다 나가는 것이 낫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신앙입니까?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은 백년 믿어도 그 자리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예수님은 그림의 떡입니다.
시뮬레이션 예수는 내게 생명과 변화를 안겨다 줄 수 없습니다.
이런 분들은 두려울 때 용기 주시고
절망할 때 소망 주시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할 수 없습니다.
신앙은 실제적입니다. 구체적입니다.
분명 쇠고랑을 찼던 손과 발이 풀인 것처럼 신앙은 구체적인 체험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이런 체험을 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금 이 땅에 울.도.죽 먹고 싶은 사람들이 많다고 합니다.
또 울.도.죽이 뭐꼬?
울고싶고, 도망가고 싶고, 죽고 싶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15장에 보면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들어가 사흘 길을 행했으나
물을 얻지 못하고 마라에서 그것도 써서 먹지도 못하는 물을 보고는
바로 울도죽 먹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러니 백성들은 불평과 한숨만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출15:25절에
[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한 나무를 지시하시니
그가 물에 던지매 물이 달아졌더라 ] 고 합니다.
기도하면 울.도.죽이 부족을 채워주는 2%로 바뀌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기도하니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어 손보라고 하니
9절에 보면
[ 베드로가 나와서 따라갈 쌔 천사의 하는 것이 참인 줄 알지 못하고
환상을 보는가 하니라 ]
베드로 자신도 일을 당하면서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꿈구는 것 같았습니다. 환상을 보는가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 일어난 일입니다.
10절에 <7>
파수꾼이 서 있는 파수대를 통과하고 쇠로된 성문도 절로 열려졌습니다.
베드로가 한 거리에 나오니 천사가 떠났습니다.
11절에 그제야 베드로가 정신이 들어 아하~ 주께서 그의 천사를 보내어
나를 헤롯의 손에서 벗어나게 했구나 ~ 하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사랑하는 내일 가족 여러분 !
예수 믿고 고난 받을 때 받더라도 신나게 믿읍시다.
기도하면 천사가 동원되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울.도.죽 먹고 싶은 심정이라도 기도하면 상황이 달라질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신나게 믿으려면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문제가 쉽거나 어렵거나 똑 같다는 사실입니다.
베드로는 세 번 투옥된 적이 있습니다.
1) 4:3절에 앉은뱅이 고친 사건으로 하룻밤 투옥되었습니다.
2) 5:18절 대제사장과 사두개인들이 시기하여 옥에 가두었습니다.
이때도 천사의 도움으로 나오게 됩니다.
3) 그러나 세 번째는 상황이 다릅니다.
쇠사슬에 묶여 있는 가운데 군사들이 겹겹이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적은 어려운 상황이 문제가 되지 아니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천후 3927 로밍 하늘폰을 주셨습니다.
그러니 어떤 상황에 처했을지라도 급하면 단축 다이얼 누르세요.
하나님 단축 다이얼이 몇 번인데요. 따라 합시다. 주여 ~!

이런 기적을 체험한 베드로는 가야할 곳이 생각났습니다.
12절 [깨닫고 마가라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에 가니
여러 사람이 모여 기도하더라]
이것이 살아있는 교회의 특징입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살아있는 교회를 통해서 역사를 나타내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문제에 부딪히게 되면
대부분의 교회는 모여서 대책을 간구하는 회의를 하든지
아니면 잘잘못의 진위를 먼저 캐려고 합니다. 그러나 초대교회는 기도했습니다. 언제와도 기도 소리가 그치지 않고 찬송소리가 그치지 않는 교회
바로 살아있는 교회인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합심기도 즉 중보기도의 위력을 실감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풀려나고 초대교회가 활력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중보기도의 위력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지금도 우리가 마음을 같이 하여 초대교회와 같이 전혀 기도에 힘쓴다면
기적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기도라면 우리는 우리 자신만의 문제를 생각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뒤집어 놓는 기도는 함께 모여 기도하는 기도입니다.
마18:19절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에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 ]
우리가 개인적인 기도제목을 넘어서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가
우리는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있는 위치에 우리 자신을 밀어 넣는 것입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자기만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결코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없다는 것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베드로가 천사의 인도를 받아 출옥하여 마리아의 집에 찾아갔을 때
그곳에 모여있던 성도들의 반응이 어떠했습니까?

13-15절까지 보면
베드로가 마리아의 집의 대문을 두르리니
로데라는 계집아이가 영접하거 나왔다가 베드로의 음성인 줄 알고
너무 기뻐서 문 열어줄 생각도 하지않고 달려 들어가
베드로가 대문 밖에 섰더라 하니 기도하던 사람들도 계집아이에게 미쳤다 합니다.
그러나 계집아이는 참 말이라 하니, 아니야 그러면 그의 천사겠지 합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베드로가 감옥에 들어갔을 때
얼마나 간절히 기도했겠습니까?
그런데 막상 베드로가 대문을 두르리고
로데라는 계집아이가 베드로의 음성을 들었다고 했을 때
성도들은 설마했습니다.
무엇을 말합니까?
하나님이 응답하실려고 하니 이렇게 쉽게 응답할 줄 몰랐던 거지요.
저들이 베드로가 꼭 풀려날 것을 확신했다면
대문 두드리는 소리만 나도 베드로가 아닌가 했을텐데
설마 한 걸 보았을 때,
기도해 놓고도 안 믿었다거나
기도의 응답이 너무나 쉽게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은 우리에게도 자주 일어납니다.
기도할 때는 지긋지긋한 것 같고, 죽을 것 같고, 응답이 없는 것 같지만
그러나 때가 되면 너무나 쉽게
그것도 믿을 수 없을 만큼 쉽게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니 낙심하지 말고 의심하지 말고 끝까지 믿고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바란다면
우리가 위대하고 위대해하지 않고는 상관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위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믿고 따르기만 하면 됩니다.
중요한 것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무엇을 믿고 따르라는 것입니까?
믿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일을 위해서는 기도가 필요할 따름입니다.
사실 기도하는 것 어려운 일이 아니잖습니까?
학점을 따라합니까? 숙제를 해오라 합니까?
보증을 세워라 합니까? 보증금을 걸어라 합니까?
그냥 눈감고 기도하면 됩니다. 밥 먹는 것하고 똑 같습니다.
그런데 왜 어렵습니까?
그런데 밥 먹는 것도 귀찮은 사람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입니까? 몸이 병든 사람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한다면
기도하는 것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병들어 있기 때문에 기도하기가 싫은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기도가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마귀가 방해를 하고 있거나,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의 요지는 베드로가 옥에 갇혔을 때
교회가 모여서 기도하니 사슬이 풀리고 옥문이 열려지는 것을 보지 않느냐?
너희도 절망적인 상황에서 기도하면
이런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 믿으라는 말씀입니다.

16-17절 봅시다.
베드로가 계속 문을 두드리니 저희가 문을 열어 베드로를 보고 놀랍니다.
베드로가 손짓하여 조용히 하라 하고
주께서 자기를 이끌어 옥에서 나오게 하던 일을 말하고
야고보와 형제들에게 이 말을 전하라 하고는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저는 오늘 이 말씀을 전하게 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마리아의 집에 모여서 간절히 기도할 때에
베드로가 풀려서 나왔습니다.
그러나 모여 있던 교인들은 베드로가 풀려난 줄 몰랐습니다.
하나님이 응답하신 줄 몰랐습니다.
기적이 일어난 줄 몰랐습니다.
저들이 기도할 때에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바로 기적의 노크였던 것입니다.
저는 이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기도하면 기적은 문밖에서 두드린다. 믿으시면 아멘!
한번 따라합시다 - 우리가 기도하면 기적은 문밖에서 두드린다.

헤롯이 베드로를 찾았지마는 못 찾으니 유대를 떠나 가이사랴로 갔습니다.
그러나 성도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은
진노의 천사를 예루살렘에 남겨 두어 뒷마무리 하게 한 것입니다.
문제 해결도 하나님이 하시지만 뒷마무리도 하나님이 하십니다.
내가 원수 갚고 복수하겠다고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적은 또 다른 기적을 낳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초두에 외관상 전능한 것 같은 헤롯이
교회의 대재앙을 일으키고 있는 장면을 봤습니다.
헤롯은 칼과 감옥의 위협을 자기편에 갖고 있었습니다.
교회는 무엇을 갖고 있었습니까? 아무 것도 갖고 있는 것이 없습니다.
단지 있다면 기도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사용했습니다.
우리에게 아무 것이 없어도 우리에게는 기도의 무기가 있습니다.
기도하는 곳에 있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헤롯은 23절에 여호와의 사자가 치니 충이 먹어 죽었고
24절에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합니다.
야고보를 죽이고 베드로를 가둘때
헤롯이 승리한 것처럼 보였고 교회엔 최대의 위기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는 것은
복음은 승리했고 승리자처럼 보였던 헤롯은 패배자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패배는 없습니다.
안 된다, 틀렸다, 이제 끝났다는 말은 사단이 가장 좋아하는 말이요
우리 주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말입니다.
현재 아무리 힘들어도 결론은 부흥이요 축복이요 승리입니다.
단 그 일을 이루기 위해서는 한가지가 필요합니다.
기도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합심 기도와 중보기도를 통해서
복음이 날마다 확장되는 역사가 우리 교회 위에 나타나길 소망합니다.
우리는 여기서 꼭 마음에 세겨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초대교회에 일어났던 종류의 기도가
바로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종류의 기도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도 이렇게 기도한다면 기적은 문밖에서 두드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도 소리가 불길같이 일어나
기적이 문들 두드리는 교회가 되시기 바랍니다.
(김 성덕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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