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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진정한 풍요와 만족(딤전 6: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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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

우리에게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근심, 두려움, 공포, 탐욕, 타인과의 경쟁의식 등등 우리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각종 원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감사의 조건을 찾아보면 만족해야 할 일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요즈음 우리는 경제적으로 과거에 비해 상당히 많은 것을 누리며, 소유하고 삽니다. 따라서 자녀들 역시 저희 세대에 어렸을 대와는 상관이 없이 풍요로운 시대에 혜택을 누리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학생이 되면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실정입니다. 먹을 것, 입을것, 가지고 놀 장난감 등 등....모든 것이 부족함이 없습니다. 집집마다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건강에 좋은 음식을 먹으라고 윽박을 지르고, 아이들은 필사적으로 몸에나븐 음식만 좋아하여 부모들이 권하는 음식을 안 먹으고 안간힘을 씁니다. 불과 20-30년전만 해도 도무지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어떤 엄마가 식사 시간만 되면 투정을 부리며 잘 먹지않는 아이를 둔아이에게 교훈을 주기위해 자신의 경험담을 이야기를 했답니다. "얘야! 엄마가 어렸을 때에는 쌀이 없어서 굶을 때가 많았단다."라고 했더니 아이가 바로 되 받아서 하는 말이, "엄마! 쌀이 없으면 라면 끊여먹지 그랬어요?"하면서 몹시 이상해 하더랍니다. "그때에는 라면이 없었단다."라고 하니까? "그럼 빵은 있었을텐데 빵을 사서 먹지 그랬어요?"하더라는 웃지 못할 이야기가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정말 어려운 시절, 없던 시대를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생활은 과거 그 어느 때 보다도 풍요합니다. 그럼에도 불수하고 감사하며, 만족하며 사느냐라고 하면 그렇지 못합니다. 30-40년전과 지금을 비교한다면 부자가 아닌 집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때에는 라디오 하나만 있어도 괜챦은 집이였으며, 텔리비젼이 있는 집은 정말 부자였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시절을 대구에서 살았었는데 저희 동네에는 낸장고는 생각할 수 없는 물건이어서 더운 여름철 수박을 한 통 사오면 시원하게 먹기 위해서 어름을 함께 사오곤 했습니다. 더군다나 텔레비젼을 가지고 있는 집은 보기 어려웠습니다. 그래서 가끔 권투 경기나 레슬링 등 운동 경기를 텔레비젼으로 보려면 만화가게에 가서 돈을 주고 보아야 했고, 그곳에 가보면 벌써 그 근처 동네 사람들이 다 모여 들어서 제대로 구경도 못하고 돌아오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그런데 지금은 라디오나 텔리비젼이 없는 집이 어디 있습니까? 냉장고는 집의 규모보다 대형으로 가지고 사용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정말로 우리는 풍부한 시대를, 부자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물질적으로는 부족함이 없는데, 사람들은 전보다 더 행복해 진 것이 아니라, 더 불행해지고 있음을 볼 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수 없습니다. "살만 하다, 살겠다."하는 사람들보다, 이런저런 이유로 인해, "죽겠다, 못 살겠다."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배고파 죽겠다는 것이 아니라, 남편(아내)때
문에, 자식때문에, 돈때문에 못살겠다는 사람들 뿐인 것 같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더 고독해지고 절망감과 허무감에 휩싸여 삶의 의욕을 잃어버린체 되는 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흥청망청 먹고 마시고, 흔드는 곳을 찾고, 쾌락적인 것에 관심이 생기게 되고, 그래서인지 대학가는 말할것도 없고, 조금 번화가에 나가보면 밤에 비치는 네온싸인이나 간판을 보면 울긋불긋한 유흥업소들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조금전에 봉독해 드린 성경본문 말씀은, 이런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인간의 삶에 있어서 그래서 오늘 이 시간에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내용 중 족한 줄로 여기라!는 밀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진정한 풍요와 만족>이 무엇인지를 깨우쳐 주고 있습니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진정한 만족과 풍요는 많은 재물을 소유하는 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사도 바울은, 따라합시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씀이 헬라어 원문에는, "모든 죄악들의 뿌리는 돈을 사랑하는 것이다."로 되어 있습니다.

비슷한 말씀이 딤전 3:3절에 나오는데 임직의 기준이??"돈을 사랑치 아니하며"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교회의 감독이나 지도자가 되려면 돈을 사랑치 않아야 한다는 말씀인 것입니다. "돈을 사랑치 아니하며"라는 이 말씀은 물질을 대표하는 돈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라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 가는데는 모든 일에 돈이 필요합니다. 뿐만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는데도 돈은 필요한 것입니다. 실제로 마음은 그렇지 않지만 돈이 없어서 사람 구실 못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가 믿는 기독교는 가난을 장려하는 종교는 아닙니다. 오히려 축복의 종교입니다. 가난은 죄악은 아니며, 그렇다고 미덕도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 들은 성실히, 그리고 열심히 일해서 잘 살아야 합니다. 문제는 돈이란,<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기 위한 도구>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통하여 물질이 하나님의 뜻대로 선하게 사용되어지는 것이 하나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람들이 하나님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신뢰하는 것이 물질과 돈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이것을 간파하신 예수님께서는 마6:24절에서,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돈을 사랑하지 말고 있는 것을 족한 줄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나아가서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오늘 본문의 10절 말씀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는 말씀을 주경학자 벵겔은, "모든 선의 뿌리가 되는 믿음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첫눈에 돈을 사랑하는 것이 사치와 방종 등과 같은 많은 범죄를 일으킵니다."라고 그 이유를 지적했습니다.

J.Post는 돈과 재물에 대한 사랑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경계할 것에 대하여 말했습니다.

1) 돈에 대한 사랑은 영혼의 모든 행위와 열정을 오만하게 하고 편협하게 하며 돈에만 집착하게 한다.
2) 돈에 대한 사랑은 모든 것을 평가하는 기준을 천박하게 한다. 모든 것이 돈의 가치에 따라 평가되며 이익과 관련하여 평가한다.
3) 돈에 대한 사랑은 그 사람을 그의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과 이기적인 관계를 맺게 한다.
4) 돈에 대한 사랑은 사람의 성품을 완악하게 한다.
5) 돈에 대한 사랑은 판단력과 양심을 서서히 마비시킨다.고 경계할 것을 교훈했습니다.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에게 있어서 만족함을 주고, 풍요로운 삶을 살도록 하는 요인이 많은 재물이나 돈에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한 화려한 지위에 오름으로써 얻어지는 것도 아닌 것입니다.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인간들은 늘 권력을 지향해 왔으며, 이것이 진정한 행복과 만족을 가져다 준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권력 때문에 괴로움이나 죽음을 당한 사람은 많지만, 진정한 만족과 풍요로운 삶을 누렸던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았음을 역사가 증거해 주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도대체 우리가 무엇으로 만족함을 소유하며,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가 있습니까? 본문에서 봉독한 말씀은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라고 알려주고 있습니다.

유대 랍비의 교훈에,"부자란 자기의 운명에 만족하고 있는 자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인간들의 욕망은 끝이 없고, 더욱 더 많은 것을 소유하려는 탐욕으로 항상 가득차 있습니다. 남들은 집 한채는 커녕 전세거리도 변변치 않은 사람들이 아직도 많은데, 집을 두 채이상 가진 사람들이 부정한 방법으로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가 구속되었다는 사건, 지금도 다른 사람에 비하면 넉넉하게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 많은 물질을 얻으려고, 뇌물을 주어 더 많은 불법을 행하려고 매수하거나 부정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으려고 사기를 치거나 피해를 주었다가 구속된었다는 기사는 신문에서 자주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제헌절인데 해마다 국회에서는 더 많은 법들이 통과되고 잇습니다. 삼일전 국회에서 국가 조찬기도회와 헌정위원회, 국회조찬기도회가 연합하여 제헌절 기도회를 가졌고, 김원기 국회의장께서는 제 17대 국회는 과거 국회가 약 3분의 2를 정부가 주도하여 법을 제정하도록 법안을 직접내거나 그 나머지??3분의 1도 정부의 요청으로 법안을 내었지만 이제는 국회 자체가 대부분의 법안을 만들고, 통과 되고 있으며, 과거 국회 처럼 여야의 충돌이 없는 상생의 정치를 한다고 자랑하였고 홍보를 부탁했습니다. 매년 국회가 더 많은 법안을 내고, 통과시켜 제정된 법으로 죄가 줄어듭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더욱 크고, 강력한 범죄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16:19-31절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볼 때 부자의 잘못은 자신의 욕망를 채우려는데 있었음을 보게 됩니다. 즉, 타인에게 무관심하고, 이기적인 생활태도로 일관혀 살아온 그는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게 만들었고, 결국 지옥으로 가게 됩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야고보서 1:5절의 말씀처럼,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어리석은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자족할 줄 아는 마음과 생활태도가 필요합니다. 오히려 우리들에게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주며 만족함을 얻게 된다고 교훈다하고 있습니다.

자!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풍요로롭고 만족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까?(본문 이해: Meaning & Significance).


1. 가진 것으로 족한 줄 알아야 합니다.

재산이 많으면 만족할 것입니까? 그러나 그렇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을 통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아무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라."고 말입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라고 했는데, 먹을 것은 음식을 말하며, 입을 것은 몸가리게나 피신처, 또는 의복을 뜻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 그어느 누구도 자신의 것을 무덤 너머까지 가지고 갈자는 없습니다. 만일,이 사실을 잊어버린다면 우리는 무엇인가를 모으는 일에만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우리는 하나님의 뜻과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께 영광돌려야 하는 삶을 상실하게 되고, 우리가 창조된 목적과 거리가 멀어지고 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고 살았습니다. 그들은 의복을 위하여 길쌈도 아니하였고 양식을 위하여 씨앗도 뿌리지 아니하였음에도 하나님은 그들에게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살기를 원하셨으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것으로 자족하기를 원하셨음니다만은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것으로 만족을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들은 불평을 합니다. 우리가 차라리 종살이를 하였더라면, 애굽에 있을 때에는 고기와 채소와 마늘과 양파를 마음껏 먹었을 텐데라며 불평과 원망과 또 다른 양식을 찾았습니다.

우리에게 의복과 거처만 있다면 족한줄로 알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8절) 그러나 우리가 현실에 족하지 않고 유행의 물결에 휩쓸린다든지, 소비에 대하여 관심을 갖는다면 만족은 영영 우리와 상관이 없어지고 맙니다.

더 좋은 것을 원하는 마음이나,욕구 자체가 우리를 악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러한 욕구가 탐욕스러운 충동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현 상태가 어떠한 것이든,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없이 만족할 수 있다면 우리는 참된 만족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진정한 행복은 더욱 더 많은 것을 얻기위해 몸부림치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적은 것이라도 기쁘고 감사하게 여길줄 아는데 있는 것입니다. 즉, [감사와 기쁨]은 하나님의 복주심에 대한 인간의 응답이 있을 때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내가 쓰임 받을 때 나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지는 것 이것이 기독교적인 축복개념의 핵심적 요소인 것입니다.

히브리서 13:5에는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라고 말씀합니다. 즉, 현재가 충분하다는 말입니다. “아르케오마미”의 뜻은 그러니 그것으로 됐다는 것입니다. 오직 자족하는 사람, 가진 것을 족한 줄로 여기는 사람만이 진정한 감사와 기쁨으로 만족과 풍요로운 삶을 누리게 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 진정한 풍요와 만족은 성령의 도구로 쓰임받을 때 이루어 집니다.

바울은 결코 부자를 정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몇가지에 대하여 경고하고 있으며, "부하려 하는 자들"에 대하여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부자에 대한 말이 아니라 부라는 목표를 향하여 달리고 있는 사람들에 대
하여 말하고 있는 내용을 분석해 보면

물질에 대한 그릇된 태도를 버리라는 뜻이요, 부하려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9)는 뜻입니다.

돈을 사랑함에 대한 결론은 "멸망"입니다. 돈을 사랑한다면 그것은 곧 일만악의 뿌리가 됩니다. 만일 우리가 돈을 버는 것이 생의 목표가 된다면, 돈은 우리의 우상이 될 것이고, 돈을 버는 방법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즉, 어떻게든 돈만 벌면 최고라는 식이 되고 맙니다. 만일 여기에 빠지게 되면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믿음에서 떠나(영적재난)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고??개인적재난이 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진정한 풍요와 만족은 성령께서 함께 하시고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쓰입 받을 때 이루어 집니다. 요엘 선지자 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메뚜기떼와 가뭄으로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형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슴을 치며 철저히 회개하고, 하나님을 찾았을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물질적인 축복입니다.

메뚜기 떼를 소멸시키시고,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래서 마당에 밀가루가 가득하고, 독에는 포도주가 가득케 한다고 하셨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영적인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신, 즉 성령을 부어 주신다는 것이며,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축복인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있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되고, 다른 이가 없는 줄을 너희가 알 것이다. 내 백성이 영영히 수치를 당치 아니 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렇습니다! 인간에게 진정한 행복과 풍요로운 삶을 가져다 주는 것은 <감사와 기쁨> 가운데서 자족하며 살아가는 삶인 것입니다. 나아가서, <하나님의 영으로 충만한 삶>이 진정으로 복되고 풍요로운 삶인 것입니다.

그 삶은 하나님의 선한 도구로 살아가는 삶입니다. 본문은 가난한자 부자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보다 부한 사람을 부러워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신 만족을 잃어버리고 맙니다. 나눠주기 보다는 모으는 것을 목표로 한다면, 만족과 상관없 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 20:35절 말씀에서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되다”하신 말씀을 실천한다면 달라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것에 대하여 감사하고 우리가 버는 것으로 만족하면서, 어려운 주위의 사람들을 잘 돕는다면 우리는 큰 만족을 누릴 것입니다.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말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은 자기가 모은 것을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잃어버릴 수 있는 가능성이??있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돌고 도는 것을 돈이라고 하겟습니까? 이 땅에 영원한 나의 것은 없습니다. 언젠가는 하나님께 빈손을로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을 둬야할 대상은 "돈"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뿐입니다.

모쪼록 이 자리에나오신 모든 성도님들은 춥고 배고팠던 지난 날들을 회상하면서 현재 있는 것으로 기뻐하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아 가시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나아가서 자족하는 생활, 즉 현재의 생활을 족한 줄로 여길 줄 아는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적극적으로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야 합니다. 그렇다면 나에게 기회가 있는대로 "선한 일을 행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청지기의 역할을 다하고, 하나님의 선한 사업에 최선을 다하여 동참하고, 그리스도의 짐을 지고 물질을 가지고 헌신하여 드릴 뿐아니라 다른 사람을 주님을 돕는 자세로 도와야 합니다.

"선한 사업에 부요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나눠 주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가 청지기인 종의 마음을 가지고 우리의 수입을 사용한다면 우리는 더 나은 미래와 만족과 평안이 넘쳐나는 삶을 보장받게 될 것입니다. 진장한 풍요와 만족은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진정한 행복과 풍요로운 삶을 베풀어 주실 줄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 끝날까지 영육간에 강건하며, 기쁨과 감격이 충만한 나날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실 줄로 굳게 믿습니다. (황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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