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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바람과 비가 안보여도 (왕하 3:1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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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나이다
14. 엘리사가 가로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
16.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18.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과 모든 아름다운 성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20. 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이 유대 나라 여호사밧과 연합하여 모압을 치기 위한 전쟁에 나갔습니다. 여호람과 여호사밧이 에돔 왕을 앞세우고 군사들과 함께 다른 길로 둘러 행하다가 칠일 동안 물을 얻지 못하고 죽을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 때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물어보자고 하는 여호사밧의 제의에 따라 엘리사를 불러왔습니다. 엘리사는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어 그들에게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골짜기에 개천을 파라고 하였습니다. 메마른 사막을 헤매면서 마실 물을 얻지 못하고 지쳐 있는 그들에게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는 것이 하나님의 주문이었습니다.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축복으로 나타나졌습니다. 다음날 아침 그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사람과 짐승이 목마름을 해결하였습니다. 그뿐 아니라 적군이 모두 다 물러가 버림으로써 피 흘리지 않고 승리하는 전과를 거두었습니다.

I. 문제 해결의 순서를 일어줍니다.

신앙과 불신앙의 차이는 여러 형태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과 유다와 에돔 왕이 전쟁을 치르기 위하여 모압으로 가다가 길을 둘러 행하고 마실 물을 얻지 못해 고생하게 되었을 때 당황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때 신앙 없는 여호람 왕은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는도다”(10절)고 하며 그 책임을 하나님께 돌렸습니다.
그러나 여호사밧 왕은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11절)하고 하나님의 뜻을 물었습니다.

(1) 예측 못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전쟁에 나가는 군인은 일사불란한 지휘체계와 치밀한 작전계획에 따라 조금도 실수나 허점 없이 행동하여야 됩니다.
특히 여호람이 이끄는 모압 전쟁의 경우 세 나라 왕들이 연합하여 나가는 전쟁이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고 엄격하게 준비된 행군을 시도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주일 동안이나 길을 둘러 헤매었다는 것과 물을 얻지 못한 채 허우적거리게 되었다고 하였으니 여간 큰 낭패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것이 불완전한 인간 세상의 모습입니다. 야고보는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고 하였습니다(약 4:13-14).

(2)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성도의 특권은 어떤 문제가 있을 때 언제든지 하나님께 부르짖고 도움을 청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도 여호사밧 왕은 어려운 문제가 터졌을 때 즉각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하고 하나님의 선지자를 찾았습니다(왕하 3:11).
그러나 평소 아합의 길을 걸으며 하나님을 멀리 했던 여호람 왕은 그 생각을 못했습니다. 그는 항상 저희 부모가 찾았던 바알과 아세라의 선지자에게 나갔던 것 같습니다. 13절에 보면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백성이 방황하고 혼미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을 두고 다른 데로 길을 잘못 들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예레미야 18:15에 “대저 내 백성은 나를 잊고 허무한 것에게 분향하거니와 이러한 것들은 그들로 그 길 곧 그 옛길에서 넘어지게 하며 곁길 곧 닦지 아니한 길로 행케 한다”고 하였습니다.

(3)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여호람 왕은 유다 왕 여호사밧과 에돔 왕까지 대동하고 그 힘으로 단번에 모압을 섬멸하려고 나섰지만, 전쟁도 해보기 전에 길을 잃고 헤매거나 물을 찾지 못하여 기진맥진 해진 군사를 보며 탄식하기에 이르렀습니다. 13절에 보면 “…이스라엘 왕이 저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붙이려 하시나이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이 없는 인간의 능력은 아무런 힘이 없습니다. 다만 사람이 자기의 한계를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청하기만 하면 자비하신 하나님께서 긍휼의 손을 펴주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솔로몬 왕은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고 하였습니다(시 127:1). 그러므로 “너희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고 하였습니다(잠 16:3).

II. 문제해결의 방법을 제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 사람의 생각과 전혀 상반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며 그에게로 나아간 사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순종하여야 됩니다. 엘리사는 자기에게 찾아온 여호람 왕을 향하여 두 가지 주문을 하였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자기 앞에 있는 난제를 풀기 위한 방법을 일러주는 것입니다.

(1)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15절에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 오소서 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람의 입장에서는 당장 마실 물이 필요하여 선지자를 찾았습니다. 그의 생각으로는 선지자가 기도를 하든지 반석에서 샘이 솟아나는 이적이라도 행하여 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상황과는 맞지 않는 주문을 하며 거문고 탈 자를 불러와서 악기를 가지고 연주를 하게 하였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거문고나 비파나 수금 같은 악기를 가지고 하나님께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일을 하였습니다. 여기도 보면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께서 엘리사를 감동하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의 말대로 거문고를 가지고 와서 악사가 음악을 연주할 때 하나님의 신이 엘리사에게 감동해 준 것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다급하고 어렵더라도 먼저 하나님께 찬양 드리며 예배하는 일을 우선적으로 행하여야 합니다. 어느 때나 경건한 성도는 자기의 일을 하기 전에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일을 먼저 해야 된다는 사실을 깨우쳐 주는 것입니다(롬 12:1).

(2) 골짜기에 개천을 파라고 하였습니다.

16절에 “저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명령입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엘리사는 자기 스스로 하는 말이 아니라 여호와의 신에 감동되어 하는 말입니다. 곧 성령께서 나타내시는 계시의 말씀입니다. 골짜기에 개천을 파게 되면 먼저 거기 쌓여 있는 각종 오물이나 찌꺼기들을 다 파내어야만 됩니다. 골짜기에는 사방에서 밀려 내려오는 온갖 더러운 것들이 적체되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의 그 마음속에도 죄와 더러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향해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고 하였습니다(마 23:27).
골짜기를 깊이 파고 개천을 크게 막은 것만큼 거기에 물이 가득 차이게 됩니다. 인간이 마음속에 있는 죄를 회개하고 깨끗이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여 주십니다(행 2:38).

(3) 하나님께서 일을 하게 하십니다.

거문고를 타며 찬양하는 것이나 하나님의 분부에 따라서 골짜기에 개천을 파는 일 등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렇지만 그 골짜기에 물이 흘러와 개천에 물이 가득 차게 하는 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특히 바람이나 구름이 보이지 않고 비가 올 징조가 전혀 없는데도 아침에 그 골짜기가 물로 충만히 된 것은 분명히 이적입니다.
이와 같은 이적은 오직 하나님만이 하시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바로 이런 이적을 행하시는 것이 아니라 먼저 그들에게 하나님의 요구를 따라서 순종할 것을 명령하였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받들고 거기에 부응하는 일을 하기만 하면 그 다음 문제는 하나님께서 이루어 내시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3:2-3에 “일을 행하는 여호와, 그것을 지어 성취하는 여호와, 그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자가 이같이 이르노라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고 하였습니다.

III. 신앙세계의 신비로운 결과를 보여줍니다.

17절에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육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고 하였습니다. 18절에 “이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오히려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붙이시리니”라고 하였습니다. 20절에는 “아침에 미쳐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편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고 했습니다.
바람과 비를 보지 못하였으나 하나님의 명령대로 개천을 팠을 때 물을 얻게 된 것은 물론이고, 그보다 모압 군사들을 완전히 섬멸하여 승리를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사람에게는 이처럼 꿈같은 신비를 체험하게 됩니다.

(1) 순종하는 자에게 주는 복입니다.

바람과 비가 안보여도 이 골자기에 개천을 파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여부를 시험하는 것입니다. 특히 상식적으로도 이해가 안 되고,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 되어도 신앙은 말씀에 의지하여 실천하는 행위를 가집니다(눅 5:5).
요한복음 2:1-11에는 예수님께서 갈릴리 가나 혼인집에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이적을 소개하였습니다. 그곳에 함께 갔던 마리아는 그 집 하인들에게 예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순종할 것을 당부하였습니다(5절). 그 집 하인들도 물을 길어다 돌항아리에 채우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에 묵묵히 순종하였습니다. 잠시 후 저희들이 길어온 물을 연회장에게 가져다주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도 말없이 순종하였습니다. 하인들이 연회장에게 가져다 준 물은 어느새 질 좋은 포도주로 변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신비로운 이적에 대하여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고 하였습니다(요 2:9). 하나님의 말씀이 여과 없이 시행되는 곳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고 말없이 순종하는 사람만이 신비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2) 더 주시는 은혜입니다.

사도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로 통하여 전달되는 축복의 특징을 “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더라”고 하였습니다(요 1:16). 하나님의 역사는 언제나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분량만큼 나타나곤 합니다.
옛날 솔로몬이 왕 위에 즉위하고 기브온 산당에서 일천 번제를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왕상 3:4-15). 그 때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에게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고 하였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로운 마음을 종에게 주사 주의 백성을 재판하여 선악을 분별하게 하옵소서”라고 하였습니다. 이 기도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을 기특하게 여기시고 그의 기도를 들어주셨을 뿐 아니라 그가 구하지 아니한 것까지도 주셔서 장수와 부귀와 모든 영광을 다 누리게 하였습니다(왕상 3:12-13).
여기도 여호람 왕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였을 때 그들의 소원대로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였을 뿐 아니라 생각지도 않은 일 곧 전쟁에서의 승리까지 안겨주었습니다. 21-27절에 보면 모압 군사들이 골짜기에 가득한 물과 거기에 햇빛이 비췬 모습을 보고 착각하여 저희 군사끼리 치고 죽이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렇게 되자 이스라엘 군사들이 전혀 힘들지 않게 도망가는 적을 죽이고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3) 신앙과 불신앙의 결과를 보여줍니다.

여기 나오는 유대 왕 여호사밧과 이스라엘 왕 여호람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양상은 전혀 달랐습니다. 여호사밧 왕은 조상 다윗의 길을 따르며 우상 숭배를 타파하고 전심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였습니다(대하 17:3-6). 그러나 여호람은 그 부친 아합과 모친 이세벨의 길을 따라 바알과 아세라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께 배도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엘리사가 여호람의 부름을 받았을 때 왕을 향하여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하며 외면하였습니다(13절). 그러면서도 엘리사는 “내가 만일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 아니면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고 하였습니다(14절).
하나님께서는 평소 경건한 믿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아끼시고 그의 기도에 손을 써주십니다. 그러나 형통할 때 하나님을 외면하다가 다급하면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하는 사람은 쉽게 들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에 보면 복있는 사람은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며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만사가 형통케 되는 자입니다. 그러나 악인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서 멸망하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손 상 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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