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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소망이 고프면 죽는다 (요 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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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으로 폐허가 된 보스니아의 어린 아들이 유니세프에 보낸 편지가 있습니다.
전쟁으로 지고 나니 물도 없고, 전기도 없고, 먹을 것도 없는 곳이 되었습니다. 한 달에 5kg 정도의 밀가루로 대식구가 살아야 하는 식량난이 계속 되었습니다.
이 때에 나온 일기가 <안네의 일기>입니다. 나는 안네가 숨서서 살던 방을 가보았습니다. 안네의 일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이 때 학교에 공부하러 온 아이들은 배가 고파서 시들시들하고 졸기만 하였습니다. 굶어 죽는 아이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어떤 반에는 굶어 죽는 아이들이 많고 어떤 반은 굶어 죽는 아이들이 적었습니다. 아무리 배고픈 배를 움켜 쥐고 학교에 와도 배가 고픈 데 공부가 될 리가 없었습니다. 굶어 죽는 아이들이 적은 반은 왜 그런가 이유를 조사하여 보았습니다. 선생님은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배고파서 죽는 것이 아니라 소망이 없어서 죽는 것이다>
이렇게 소망을 불어 넣어 준 반 아이들은 죽는 수가 적었습니다.
그 때 안네는 갇혀 살면서 이가 득실득실한 데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잡아도 잡아도 이투성이였습니다. 옷을 입으면 온통 이투성이가 되어 이들이 피를 빨아 먹는 데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발가벗고 살았습니다. 담뇨를 털어서 그 것만 뒤집어 쓰고 살았습니다. 그 때 안네의 말을 들어보면 기가 막힙니다.
<내 피는 빨아 먹어도 내 소망만은 빨아 먹지 못 할걸....>
안네 일기에 나오는 말이 바로 오늘 제목입니다.

<소망이 고프면 죽는다>

오늘 본문은 이상한 신비의 장소인 베데스다 연못 이야기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못이 있었습니다. 거기 행각 다섯이 있었습니다. 행각이란 우리나라 말로 정자입니다. 지붕이 있는 정자입니다. 지금 그 곳을 발굴하여 보니 행각 터가 선명하게 남아 있었습니다.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절뚝발이 혈기 마른 자들이 누워 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연못에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었습니다.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부글부글 끓게 하는 데 그 때 제일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곳을 방문하셨습니다. 그 때 38년된 병자가 누워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 병자가 대답하였습니다.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38년 된 병자가 나았습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신비한 장소였습니다. 우리나라에도 그런 장소가 있습니다. 용문산에 갔더니 1500년 된 은행나무가 있었습니다. 그 나무 둘레를 돌고 있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이상하여 왜 그런지 물어 보았습니다.
<옛날부터 이 나무 주변을 세바퀴 돌면 죽을 때 고생 안 하고 산뜻하게 죽는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노인들이 그렇게 돌고 있었습니다.
로마에 가면 물이 흐르는 천이 있습니다. 그 곳에 동전을 하나 던지면 애인이 생기고 두 번 던지면 소원이 이루어지고 세 번 던지면 로마를 다시 찾게 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천에는 동전들이 수북히 쌓여 있습니다.
이스라엘 통곡의 벽속에 동굴이 있습니다. 동굴을 들어 서면 지성소 옆자리에 50m, 600 톤 되는 바위가 있습니다. 그 앞에서 기도하면 기도가 응답된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가장 기도하고 싶어하는 자리입니다.
베데스다 연못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마디로 베데스다 연못은 소망을 가진 불치병 환자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천사가 내려와서 물을 동하게 하는 데 제일 먼저 빠져 들어간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낫는다고 하는 전설이었습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베데스다입니다.
무엇이 소망입니까?

1. 포기하지 않는 것이 소망입니다.
무엇이 소망입니까?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소망입니다. 불치병에 걸렸을 때 고치기를 포기한 사람은 베데스다 연못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베데스다 연못으로 나온 사람은 모두 소망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포기하고 오지 않은 이들은 다 죽었을 것입니다.

<소망이 고프면 죽는다>

베데스다 연못에 나와도 살 수 있는 확률은 바늘구멍입니다. 500;1의 경쟁률일지,1000;1의 경쟁률일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분명한 것은 한 명만 고침을 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천사가 물을 동하게 할 때 제일 먼저 뛰어 들어가는 사람만 고침을 받는 바늘구멍입니다. 그러나 그런 소망을 포기하지 않은 사람들만 모였습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소망입니다.
어느 죄수가 감옥에 갇혀 있었습니다. 비가 새서 물이 흘러 들어 왔습니다. 그런데 물이 어디론가 흐르는 것을 보고 중얼거렸습니다.

<분명 어디엔가 빠져 나갈 구멍이 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어느 인부는 공사하다가 20층에서 실수로 발을 헛디뎌 떨어졌습니다. 7층까지 떨어지면서도 소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내가 어디엔가 걸릴 것이다>

그런데 나무위에 걸려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어떤 사람은 주머니에 돈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도 중국집에 들어가서 짬뽕을 곱빼기로 시켜 먹었습니다.
<하나님이 짬뽕속에 있는 조개에서 진주가 나오게 할 것이다>
나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같이 결코 포기하지 않는 것이 소망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 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도곡 기도원에서 기도하는 데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이 들렸습니다.

<하나님은 소망의 그릇을 채워 주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의 역사를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고 나가는 사람에게는 결코 포기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고 달려드는 이의 믿음을 헛되게 하지 않습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람들만이 모이는 것이었습니다.

<소망이 고프면 죽는다>

2. 기적을 바라는 것이 소망입니다.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입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는 기적을 바라는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기독교는 신비의 종교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세가지 신비가 있었습니다.

(1) 물의 신비
이상한 신비의 물이었습니다. 물이 가끔 동하는 것이 신비였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 첫 번 들어간 자는 어떤 병이든지 다 낫는다는 것이 신비였습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는 물은 신비였습니다.
아프리카 반투족들은 강에는 귀신들이 살고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강을 건널 때에는 곡식이나 제물을 뿌려서 귀신을 달래고 건너갑니다. 누구든지 물에 빠져 죽으면 <귀신의 부름을 받았다>라고 말하면서 시체 찾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기록될 당시에 로마 장군 루쿨르스는 강을 건널 때에는 소 한 마리를 잡아서 제물로 물에 바치고 군사들을 건너게 하였습니다.
파샤 왕 크세르크스도 그렇습니다. 군사들과 함께 물을 건널 때에는 백마 한 마리를 제물로 잡아 강에 드리고 도강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베데스다 물도 신비였습니다.

  (2) 일등의 신비
물이 동할 때 들어가는 사람은 낫는 데 하필이면 일등으로 들어간 이만 낫는다는 것이 신비였습니다. 왜 두 번째로 들어간 이는 고침받지 못 할 가요? 이것이 신비란 말입니다. 일등만 인정하는 세대입니다. <2등은 기억되지 않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등만 사람이고 이등부터는 사람이 아닌 비극이 오늘 날 생존경쟁시대입니다. 일등만 통하는 신비가 베데스다 사회였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회는 살벌합니다. 네가 없어야 내게는 행운입니다. 너 때문에 나는 피해를 보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회가 베데스다 동네였습니다. 일등만의 신비가 있었습니다.

  (3) 5라는 수의 신비
베데스다에 솔로몬 행각이 5개가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5라는 수가 나오면 고통입니다. 다윗은 골리앗의 고통속에 물맷돌 5개를 집었습니다. 야곱은 극심한 가난속에 5년 남기고 애급으로 들어 갔습니다. 수가성 여인은 남편이 5명이었습니다. 그렇게 고통스러운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행각이 5개가 있었다는 것은 우연의 일치일까요? 신비입니다.

이런 신비가 있었지만 베데스다에서 가장 큰 신비는 예수님의 신비입니다.
바클레이란 주석가는 이 이야기를 이렇게 해석하고 있습니다. 38년된 병자는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솔로몬 행각 5개는 모세 오경 즉 율법입니다. 38년은 광야에서 방황하던 기간입니다. 신명기 2장 14절에 그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 팔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대로 진 중에서 다 멸절되었나니>(신2;14)

율법은 우리를 구원시킬 수 없습니다. 물의 동함이란 세례를 의미합니다. 초대교회에는 침상을 메고 세례를 받으러 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율법이 우리를 구원시키는 것이 아니라 복음 즉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시키는 것이라는 강한 의미를 본문은 우리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알레고리적 해석입니다.그렇게 해석할 것없이 본문 그대로 보면 됩니다. 어느 곳에도 구원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만 생명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만 건강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만 문제 해결이 있습니다. 오직 예수님에게만 능력이 있었습니다. 그 분의 말 한 마디에 38년의 고통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이것보다 더 큰 신비가 없었습니다.
38년 기다린 기적은 예수님에게서 나타났습니다. 한 마디로 말합니다. 예수님만이 신비요 기족입니다. 38년 기다려도 예수를 만나지 못 하면 기적이 없습니다.
예수님! 그 분이 해답입니다.
결코 포기하지 않고 기적을 바라는 것이 소망입니다. 오늘의 주인공은 38년 된 병자입니다. 그의 병은 38년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제 보호자도 다 떠나 버렸습니다. 일등하여야만 낫는 데 일등 할 가망성이 전혀 없는 데도 결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마지막 붙잡은 것은 예수님이었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세 가지가 없었습니다.

(1) 건강이 없었습니다.
이제 38년 병으로 지칠 대로 지친 몸이었습니다. 더 이상 자기가 자기를 다스릴 수 없는 몸이었습니다. 20년도 아니고 30년도 아니고 38년입니다. 그의 나이가 50이라면 12살부터 아팠던 것입니다. 40이었다면 태어나면서부터 아팠던 것입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에서 집회를 인도하신 차 영근 목사님은 원없이 아팠었다고 하면서 22년간 병원 생활을 하였다고 고백하였습니다. 그런데 이 병자는 38년이었습니다. 건강이 없었습니다. 이 병자의 가장 큰 소원은 건강이었을 것이 틀림없습니다.

(2) 돈이 없었습니다.
38년 병치닥거리에 이제는 치료비조차 없어 베데스다에 의지할 수 밖에 없는 마지막 장소였습니다. 병 치료에 모두를 탕진하였을 것입니다. 이제는 자기 몸 하나 누울 자리가 전 재산이었습니다.

(3) 사람이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 38년된 병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주여 물이 동할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38년된 병자에게는 그를 살려 주려고 도와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도 양보하여 주지 않았습니다.
38년 된 병자가 “사람이 없나이다”라고 한 말에는 사람은 많아도 자기를 살려주려는 사람이 없다는 고백입니다. 그래서 한탄하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3가지가 없는 38년된 병자였지만 그는 예수를 만났습니다.
나에게 지금 건강이 없고, 돈도 없고, 사람이 없다고 할 지라도 오늘 예수님을 만나면 신히한 기적이 일어납니다. 38년 된 병자는 예수를 알고 나서부터 그에게는 신비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가 자기를 베데스다 연못에 넣어줄 사람이 없다고 고백하므로 낫고자함을 알려 드렸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그는 고침받았습니다. 포기하지 않고 소망을 가진 그에게 소망이 이루어졌습니다.

<소망이 고프면 죽는다>

반대로 말할 수 있습니다.

<소망이 배부른 사람은 산다>

로마 장군 타이터스가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였습니다. 모두가 소망을 잃어버리고 슬퍼하였습니다. 모든 유대인들이 모두를 잃은 슬픔에 절망하고 포기하고 있었습니다. 그 후 슬픔을 이기지 못 하여 바리새인들은 이런 결정을 하였습니다.
<이렇게 슬프니 고기와 포도주를 입에 대지 말라>
이 때 여호수아 랍비가 물었습니다.
<왜 그렇지요?>
바리새인들은 대답하였습니다.
<성전에 제사용으로 고기를 드리고 제사용으로 포도주를 드렸는 데 성전이 파괴되었는 데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지도 못 하면서 먹을 수 있소?>
<그렇다면 빵도 먹지 마시요>
<왜요?>
<하나님께 소재로 밀가루, 보리가루를 드렸는 데 지금은 드릴 수 없는 데 어떻게 우리가 그런 것으로 만든 빵을 먹을 수 있겠소? 그리고 과일도 먹지 말아야 하오>
<왜요?>
<첫 열매는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데 첫 열매도 드릴 수 없는 데 어떻게 우리가 먼저 먹겠소? 그리고 물도 마시지 말아야 하오>
<왜요?>
<물두멍에, 바다에 물을 떠놓을 수 없는 데 하나님도 사용 못 하시는 데 우리가 어떻게 사용할 수 있겠소?>
바리새인들은 입이 벌어졌습니다. 이제 제 정신이 든 것을 안 여호수아 랍비가 말했습니다.
<우리에게 가혹한 운명이 닥쳤소. 그러나 이럴 때 일수록 더 많이 먹고 힘내어 더 열심히 일하는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길이요>
민족에게 성전 파괴후 바른 길을 여호수아 랍비가 제시하였습니다. 소망차게 살아가자고 역설하였습니다. 여호수아가 민족에게 소망을 불어 넣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일어나 살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소망이 고프면 죽는다>

행복한 사람의 특징을 조사하여 보니 다음 세 가지였습니다.
1. 일을 할 것.
2. 사람을 사랑할 것.
3. 소망을 가질 것등 이 세가지였습니다. 소망을 가진 사람은 살아납니다.

마지막으로 이런 이야기 하나 드리고 마치려고 합니다.
나는 지난 주간에도 탈무드를 열심히 읽었습니다. 끝까지 절망하지 않고 소망을 가지고 살다가 축복받은 거지 이야기를 발견하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드림으로 마치려고 합니다.
두 거지가 있었습니다. 한 거지는 평생 아파본 적이 없는 건강한 거인 거지였습니다. 다른 거지는 평생 다리를 저는 절름발이 거지였습니다. 거인 거지는 절름발이 거지를 항상 멸시하고 놀렸습니다. 그러나 절름발이 거지는 실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항상 지켜 주실 것을 믿고 이렇게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나를 조롱하는 사람을 데려가 주세요. 자존심 상하잖아요>
그리고 기도하고 구한 것은 받은 줄로 믿었습니다.
두 거지가 왕이 살고 있는 수도로 구걸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왕궁에서 마침 두 명이 죽었습니다. 하나는 왕 경호원이고 다른 한 명은 왕 주치의사였습니다. 그래서 두 명을 다시 뽑았습니다.
한 명은 그 나라에서 가장 힘이 센 장수였습니다. 의사는 그 나라에서 가장 명의였습니다. 왕은 두 사람의 능력을 테스트하고 싶어서 말했습니다.
<어떻게 너희들 능력을 시험할 수 있을가?>
장수가 말했습니다.
<이 나라에서 가장 힘센 사람을 데리고 오십시오. 한 방에 죽이겠습니다>
의사가 말했습니다.
<절름발이를 대리고 오십시오. 고치겠습니다>
마침 두 거지가 돌아 다니고 있기에 데리고 왔습니다.
장수는 거인 거지를 한 방에 죽였습니다. 의사는 절름발이를 고쳤습니다. 절름발이는 소망을 이루었습니다.
(강 문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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