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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시 1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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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코틀랜드에 한 젊은 목사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사랑하는 아내를 병으로 잃게 되었습니다. 장례를 다 치른 후 주일 예배 시간에 그가 말씀을 전하게 되었습니다. 교인들은 그가 과연 뭐라고 설교할 것인가 매우 궁금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슬픔을 숨김없이 털어놓았습니다. 이제부터 아내 없이 혼자 살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지는 것처럼 아프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분명히 말했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잃고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까지 버리는 이유를 정말 모르겠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왜 믿음을 버립니까? 밝은 빛 가운데 사는 사람은 믿음을 선택적으로 가져도 좋을지 모르지만 저와 같이 슬픔의 그늘 아래 있는 사람은 반드시 믿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만약 믿음마저 없다면 남은 것이 정말 아무 것도 없기 때문에 하는 말입니다.”

  인생은 고해와 같습니다. 우리의 삶이란 것이 거친 풍랑이 몰아치고 있는 바다를 항해하는 작은 배와 같지 않습니까? 단 하루도 편한 날이 없는 것 같습니다. 때로는 지금까지 애쓰고 수고한 것들이 모두 다 헛것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지금도 크고 작은 어려운 문제들이 계속해서 우리를 괴롭히고 있지 않습니까? 자신이 범한 잘못 때문에 어려움을 겪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억울하게 수난을 당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불의와 불법과 폭력과 비리가 판을 치고 있는 이 사회에서 바르게 살려다가 당하는 고초는 참으로 견디기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오늘 봉독한 시를 쓴 시인도 매우 심한 고통을 겪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는 부당하게 수난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어려움을 피할 방도가 전혀 없다는 것이 더 큰 문제였던 것 같습니다. 사실 시인만 그런 어려움을 당한 것은 아닙니다. 오늘 우리도 끊임없이 수난과 고초를 당하고 있지 않습니까? 도대체 이유를 알 수 없는 어려운 문제들 때문에 낙심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시인은 견디기 어려운 수난을 당하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를 괴롭히는 원수들은 포악한 자들입니다. 그들은 짓밟고 빼앗는 자들이요 목숨까지 노리는 원수들입니다. 원수들의 모습은 마치 그 움킨 것을 찢으려는 사자 같고 은밀한 곳에 엎드린 젊은 사자와도 같습니다. 자칫 잘못하면 목숨까지도 빼앗길 수 있는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그리고 더욱 안타까운 것은 그 위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그에게 전혀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한 가지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밖에 그로서는 달리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습니다. 딱한 사정을 하나님께 호소하는 일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끊임없이 겪게 되는 어려운 문제들을 우리는 과연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어려운 문제들 때문에 우리가 실족하는 일이 있어서는 결코 아니 되겠기 때문에 묻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우리는 그 대답을 시인을 통해서 들으려고 합니다. 믿음으로 모든 어려움을 이기고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과 영광을 돌렸던 시인을 통해서 오늘 우리가 안고 있는 문제 해결의 길을 찾으려고 한다는 말입니다.

  먼저 시인은 기도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을 우리에게 권합니다. 그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 모든 사정을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때로는 사람의 도움을 구하는 것도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가 가장 먼저 구한 것은 하나님의 도우심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의 억울한 사정을 아뢰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절히 구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지름길입니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과 소통하는 전화선과도 같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문제가 무엇인지 압니까? 기도해도 아니 된다는 패배 의식에 깊이 빠져 있는 것입니다. 문제를 가지고 엎드려 기도하지 않는 것이 가장 심각한 문제입니다.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고 기도하는 일에 실패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있어서 가장 큰 문제라는 말입니다.

  이어서 시인은 믿음으로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을 우리에게 권합니다. 그는 어려움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도를 들으실 것을 확신하며 나아갔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게 응답하시겠으므로 내가 불렀사오니 내게 귀를 기울여 내 말을 들으소서!”(6절) 사람들은 귀를 기울이지 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실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문제가 아무리 어렵고 심각해도, 그리고 상황이 아무리 나빠져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의 마음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습니다.

  시인은 또한 성전에서 하나님 앞에 나아갈 것을 우리에게 권합니다. 그는 밤에 하나님의 집에 있었습니다. 그는 거기서 깰 때에 하나님의 모습을 뵙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는 형편과 처지가 좋다고 해서 기뻐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일이 순탄하게 풀린다고 해서 만족하는 사람도 아니었습니다. 또한 자신의 기대에 어긋난다고 해서 불평하거나 원망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으로 인해서 만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 보좌 앞으로 나아가 엎드려 기도했던 것입니다.

  “아직도 가야할 길”의 저자이며 유명한 정신과 의사인 스캇 펙이 수도원으로 휴가를 갔습니다. 그 수도원에서 영적 가이드 역할을 할 사람을 만났습니다. 가이드가 그에게 기도 생활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기도 생활은 잘 하고 있습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나는 걸을 때에도 기도하고, 밤에 잘 때에도 기도하며, 환자의 말을 들을 때에도 기도하고, 어떤 일을 해야 할지를 모를 때에도 기도한답니다.” 그러자 가이드가 또 다시 물었습니다. “구체적이고 특별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합니까?” 그가 대답했습니다. “특별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는 것은 다소 어색하고 또 별로 자연스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 대답을 들은 후 가이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마 그렇겠지요. 하지만 당신이 말하는 것을 들으면 당신은 좋을 때, 그리고 편할 때에만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은 다소 일방적인 것처럼 제게 들립니다. 당신 편한 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규정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만약 당신이 말하는 대로 하나님을 정말 사랑한다고 하면 시간을 정해 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요? 어떤 시간은 당신의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요?”

  시간을 정해 놓고 정해진 장소로 나아가 기도하는 것은 꼭 절박할 때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삶의 모든 순간에 가져야 할 바람직한 태도입니다. 하나님께 시간을 드린다는 것은 요즘처럼 바쁜 세상에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입니다. 어려운 문제가 눈앞에 닥쳤을 때에는 더욱 그렇게 느껴질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에 붙잡혀 있다고 해서 그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할 길이 없을 때, 어찌할 바를 모를 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할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 길을 열어 주십니다. 홍해 가운데 길을 내 주십니다.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십니다.

  1618년부터 30년 동안이나 계속되면서 유럽을 황폐하게 만들었던 무서운 전쟁이 있었습니다. 말 그대로 고통의 시기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었습니다. 불평과 원망, 그리고 좌절과 절망 속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 같은 시기였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와 같은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은혜로운 찬송들이 엄청나게 많이 쏟아져 나왔다는 사실입니다. 17세기 말 어떤 음악가가 30년 동안 성도들의 입을 통하여 불려진 찬송가들을 수집해 봤더니 32,712곡이나 되었습니다. 몇 년 후 웨첼이라는 음악가가 다시 수집, 정리해 본 결과 55,500곡으로 늘어났습니다. 그토록 무서운 전쟁 중에 그들은 어떻게 찬송할 수 있었을까요? 평화로울 때 부르지 못했던 찬송이 성도들의 입을 통하여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할까요? 하나님의 은혜와 그 하나님의 임재를 깊이 체험했기 때문에 도저히 침묵할 수 없었던 것 아닐까요?

  하나님 외에는 의지할 대상이 없고,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일 외에는 길이 없음을 믿는 것이 진짜 영성입니다. 살다 보면 내 힘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죽고 싶어도 죽을 수 없고 그만 두고 싶어도 그만 둘 수 없을 때가 있습니다. 문을 열어 보니 낭떠러지라는 말과 같이 진퇴양난일 때가 분명히 있습니다. 문제는 점점 꼬이고 해결책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런 때에 사람들은 방법을 찾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찾으십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는 출애굽한 히브리 노예들을 위하여 홍해 속에 길을 예비해 놓으셨습니다. 길은 하나님께서 만드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기도로 그 길을 발견할 뿐입니다. 성경은 특별히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이 바로 생명의 길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그 주님을 떠나서는 결코 살 수 없습니다. 때문에 우리는 악한 세상과 타협하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험한 세상으로부터 도피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오직 기도로 돌파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많은 아픔과 많은 슬픔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특히 예수를 구주로 믿고 따르는 제자의 삶에는 환난과 핍박이 반드시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결코 좌절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기도할 수 있는 특권이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해 주실 것입니다. 확신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항상 기도로 모든 것을 믿고 맡기는 삶을 살면서 받은 바 은혜와 복 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기도를 들어 응답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만족하여 그 옛날 다윗이 노래했던 것처럼 “내 잔이 넘치나이다!” 감격스럽게 고백하는 참으로 복된 여러분 모두가 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강 석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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