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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대상 2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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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세상 사람들은 돈이 되는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자신에게 이익이 돌아오는 쪽으로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인간의 삶에 있어서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대단히 크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래리 버켓은 그의 저서 「돈 잘 쓰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에서 신약 성경에서 “사랑” 다음으로 많이 다루어진 주제가 '돈'이라고 지적하였습니다. 그만큼 성도들의 삶에서도 돈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여러분과 함께 돈 즉 헌금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기독교회에서 헌금의 역사는 대단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가인과 아벨이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헌물을 드린 이후로 구약 제사에서는 사람들의 재산인 짐승 즉 소나 양 등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침으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를 표현하였습니다. 신앙이 살아있고 믿음이 뜨거울 때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물건 중에서 가장 좋은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쳤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종교가 형식화하고 타락하고 불 신앙에 빠질 때는 하나님께 제물 드림에 있어서 표가 났습니다.
  눈멀고 상한 것을 갔다가 제물로 바쳤습니다. 재물 즉 돈을 어떻게 쓰는가에 그들의 믿음의 모습이 드러났던 것입니다. 그들의 믿음의 상태에 따라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즉 물질이 차이가 났기 때문입니다.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세 가지의 회개가 필요하다. 머리의 회개, 가슴의 회개, 그리고 돈 지갑의 회개이다." 라고 했습니다. 지식으로 성경을 많이 알고 뜨겁게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하여도 막상 하나님과 그의 나라 확장을 위해 자신의 돈을 쓰는데 인색하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돈을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그의 믿음이 드러나고 그의 마음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도 마태복음 6장 21절에서 "네 보물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읽은 본문의 말씀은 성전 건축을 위해 헌금을 하였던 다윗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습니다.
  원래 다윗은 자신의 힘으로 성전을 건축하여 하나님께 드리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는 일에 대하여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윗이 성전을 짓겠다고 생각하고 나단 선지자와 의논한 그 날 하나님의 말씀이 나단 선지자를 통해서 다윗에게 나타났습니다. 대상 17:4절에 보면 “너는 나의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라고 하였습니다.
  왜 그랬을 까요?
  그 이유가 대상 22:8절에 나타나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너는 피를 심히 많이 흘렸고 크게 전쟁하였느니라 네가 내 앞에서 땅에 피를 많이 흘렸은 즉 내 이름을 위하여 전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다윗은 군인이었습니다. 수많은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승리했다는 것은 곧 적의 피를 흘리게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전쟁이 하나님께서 허락한 것이었다 할지라도 하나님은 수 많은 피를 흘린 다윗의 손으로 성전을 짓게 하고 싶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성전은 그 만큼 거룩한 곳이요 순결한 곳이라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아무나 성전을 건축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돈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무슨 권세가 있다고 그것으로 성전을 짓는 것이 아닙니다.
  다윗은 무엇이나 자신의 뜻대로 할 수 있는 권세가 있는 나라의 왕이었지만 성전 건축하는 일만은 자기 뜻대로 할 수 없었습니다.
  창고에 금은 보화가 가득한 왕이었지만 하나님은 다윗이 아닌 그의 아들 솔로몬을 통해서 성전 짓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이름으로 일컬어질 성전을 자신이 지목한 사람으로 하여금 건축하게 하시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입은 사람만이 성전을 지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소원을 못 이룬다고 할지라도 자신의 아들 솔로몬이 자신의 꿈을 이뤄주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솔로몬이 어려움 없이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하는 만반의 준비를 했습니다. 
 
  그것은 재정 및 자재를 준비하는 일이었습니다.
  자신의 손으로 시공은 못해도 성전을 건축할 수 있도록 모든 재정과 재료를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 최선을 다했습니다. 
  2절에 보면 “내가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힘을 다하여 예비 하였나니...” 라고 했고 3절에 보면 “내 마음에 하나님의 전을 사모함으로 나의 사유의 금,은으로 내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드렸노니... 라고 했습니다.

  그는 왕궁의 재산과 자신의 개인적인 재산을 다 성전 건축하는 일에 바쳤을 뿐 아니라 백성들에게 성전 건축을 위한 역사에 함께 동참하여줄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왜냐면 1절에 보면 이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분명 말씀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한 전입니다.

  우리가 빨리 봉헌을 해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배와 선교를 위해 그리고 성도를 교육하고 훈련하며 주안에서 성도의 교제를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저는 오늘 다윗의 심정을 가지고 우리 성도들에게 이 말씀을 드립니다.
  이 성전의 봉헌을 위해서 5절에 보면 “오늘날 누가 즐거이 손에 채워 여호와께 드리겠느냐” 라고 했습니다. 이 본문을 그대로 오늘 말씀의 제목으로 삼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누가 하나님의 성전 봉헌을 위해서 자신의 손에 가득 채워 즐거운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리겠습니까?
  본문에 나타난 성전 건축 헌금을 드리는 다윗과 백성들의 모습에서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되기를 바랍니다. 누가 즐거움으로 자신의 손에 가득 채워 하나님께 드릴 수 있겠습니까?
 
  ① 받은 은혜를 깨닫는 사람입니다. 
  성전 건축을 위한 헌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은혜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대상 29:14절에 보면 “나와 나의 백성이 무엇이관대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라고 했습니다.

  다윗은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이 모두 주님이 주신 것들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다윗은 드릴 수 있는 힘 자체가 주님이 주신 것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은혜입니다.

  사람들은 은혜는 받았어도 은혜에 대한 깨달음이 없는 사람은 그 무엇으로도 주님께 드리지 않습니다. 사랑은 받았어도 사랑에 대한 깨달음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 인색합니다. 그러나 즐거움으로 자신의 손에 가득히 주님께 드릴 수 있는 사람은 주님이 주신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아시기를 바랍니다.

  ②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의 사람만이 즐거운 마음으로 헌금합니다.
  본문에서 다윗의 헌금이 믿음에서 출발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있습니다.
  대상 29:3절에 보면 “성전을 위하여 예비한 이 모든 것 외에도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하므로 나의 사유의 금, 은으로 내 하나님의 전을 위하여 드렸노니....” 라고 했습니다.
  내 마음에 내 하나님의 전을 사모함으로 ....
  이 말은 그가 하나님의 성전을 향한 사랑과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집을 짓는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성전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지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장소입니다. 성도들이 모여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고 찬양하고 예배하는 거룩한 장소입니다. 그러기에 성전을 건축하는 일은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전을 짓는 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양계장을 운영하는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녀는 교회출석은 열심이었으나 도무지 헌금을 드릴 줄 물랐습니다. 하루는 담임목사가 조용히 여인을 불러 타일렀습니다.
  󰡒우리가 가진 재물의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수입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신자의 의무입니다󰡓
  여인은 진지한 표정으로 목사의 설명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목사님, 이제부터 주일에 낳은 달걀을 모두 십일조로 드리겠습니다”
  여인은 그때부터 매주 수 백개의 달걀을 십일조로 드렸습니다. 그런데 날이 갈수록 주일날 십일조로 드리는 달걀의 수가 점점 줄어들더니 나중에는 단 하나의 달걀도 가져오지 않았습니다.
  담임 목사는 다시 여인에게 성실한 십일조를 부탁했습니다. 그러자 여인이 대답했다. “우리 닭들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기 때문에 주일은 알을 낳지 않습니다”
  예화지만 시사 하는 바가 큰 이야기입니다.
  성도가 몸으로 봉사를 하든 물질로 헌금을 하든 어떤 동기에 의해서 하느냐 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무엇이든지 믿음의 동기에서 출발하지 않으면 시험에 들거나 자기 올무에 걸려 바치고도 복을 받지 못합니다. 믿음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는 일이라고 믿는 다면 자신에게 있는 것을 드림에 있어서 즐거움으로 드리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③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는 마음입니다.   
  원래 다윗이 성전 건축에 대한 꿈을 가지게 된 것은 자신의 왕궁을 백향목으로 호화롭게 건축하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대상 17:1절에 보면 “다윗이 그 궁실에 거할 때에 선지자 나단에게 이르되 나는 백향목 궁에 거하거늘 여호와의 언약궤는 휘장 밑에 있도다” 라고 하였는데 자신이 살고 있는 왕궁에 비교하여 하나님의 법괘는 초라한 천막으로 만든 휘장 안에 있는 것에 대하여 양심에 소리에서 출발하였습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가진 마음을 언제나 하나님을 생각하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오늘날 주님이 원하시는 마음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기꺼이 하나님을 위해 자신의 것을 희생합니다.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는 신앙은 어떤 댓가를 바라지 않고 자신의 모든 것을 나누어줍니다. 자신이 드릴 수 있는 그 자체를 보람으로 알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입니다.
 
  오래 전 미국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어느 교회 한 부자 장로가 담임 목사를 찾아가 건의했습니다.
  "목사님, 우리 교회 여집사님 한 분이 혼자 살면서 어린아이 다섯을 키우느라 무척 어렵게 삽니다. 남의 집 빨래를 하는 등 고생이 말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분이 주일날이 되면 꼭꼭 5달러의 헌금을 합니다. 큰 액수는 아니겠지만 그 여집사에게는 적지 않은 액수입니다. 그 여집사의 몫까지 제가 대신할테니 그 여집사를 불러서 헌금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을 전해주십시오!"
  목사는 고맙게 생각하고 그 여집사를 불러 "우리 장로님이 당신 사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을 알고 매주 헌금하는 것을 대신 내주겠다고 하니 다음 주일부터는 헌금을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이게 웬일입니까?  여집사는 그 자리에서 목을 놓아 우는 것이었습니다.
  "왜 우십니까?" 하고 목사님이 묻자 그 여집사는 대답했습니다.
  "제가 비록 남의 집 빨래를 해가며 고생스럽게 살지만 하나님께 한 주에 5달러씩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저에게는 하나님께 받는 사랑에 비교하면 너무 부족할 뿐입니다. 그리고 주님께 예물을 드리는 것이 저에게는 더할 수 없이 기쁜 시간입니다. 그런데 그 기쁨을 왜 빼앗으려 하십니까?"
 
  그 여 집사의 신앙 앞에 그것을 제안한 장로도, 이 뜻을 전한 목사도 큰 감동을 받고 회개를 하게 만들었고 그 교회의 부흥 운동을 일으키게 하였다고 합니다.
  우리가 신앙 생활을 하면서 작은 예물일지라도 하나님 앞에 드리는 행위 그 자체를 즐기지 못한다면 그 신앙은 결코 성숙한 신앙이라 할 수 없습니다. 기쁨이 없는 억지나 체면 때문에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 앞에도 기쁨이 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먼저 생각하는 신앙은 헌금을 드리고 반대급부를 생각하지 않습니다. 복을 생각하고 복 받을 욕심으로 헌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드리는 그 자체를 즐거워하는 마음이 헌신된 마음입니다. 하나님께 바칠 수 있다는 것 때문에 즐거운 마음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21일 금식을 무사히 마쳤습니다. 내가 했다는 것 보다 하나님이 하게하셨고 할 수 있는 힘을 주셔셔 감당했습니다. 솔직히 21일 동안 금식한다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닙니다. 금식은 단 하루도 하나님이 힘주시지 않으면 못합니다. 
 
  어떤 나라의 임금님이 나라에서 가장 용감한 청년을 뽑아서 큰 상을 내리고자 했습니다. 수많은 청년들이 모두 자신의 용맹성을 뽐내기 위해 몰려들었습니다.  왕은 그들을 물살이 세고 깊은 강가로 데려가서 누구든 이 강물을 헤엄쳐서 건너는 사람을 가장 용감한 사람으로 상을 주겠다고 했습니다.
  모인 청년들은 그 깊고 물살이 거센 강물을 보자 그만 기가 죽었습니다. 누구도 먼저 강물에 뛰어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왕은 건너편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모두 머뭇거리고 있는데 이윽고 한 청년이 용감하게 강물로 뛰어들어 수영을 해서 무사히 강을 건너는 것이었습니다. 왕은 그 청년을 불러 칭찬하며 어디서 그런 담대함이 생겼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폐하 제가 용감해서가 아니라 누군가 저의 등을 떠밀어 강물에 떨어졌고 죽지 않으려고 죽을힘을 다해 헤엄을 치다보니 강물을 건너게 된 것이옵니다.”

  어쩌면 저도 그 청년처럼 등 떠밀려서 금식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등을 떠밀었습니다. 나의 부족함과 연약함이 등을 떠밀었고 기도해야 할 제목들이 등을 떠밀었습니다.
  사람들은 장기 금식기도를 하면 무슨 큰 영광이나 얻은 것처럼 자랑합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20일이든 40일이든 장기금식 자체가 자신의 문제 때문에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죽 답답하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많았으면 생사를 넘나드는 장기 금식을 하겠습니까. 그리고 인간은 금식을 하기 전에도 인간이고 금식을 성공한 후에도 여전히 밥 먹고 온갖 욕구를 분출하며 사는 인간입니다. 그러기에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금식을 백날을 해도 인간은 천사가 될 수 없고 신이 될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임해야 합니다. 긍휼히 여기시는 은혜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금식 기도든 밥을 먹고 기도하든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우리교회는 하나님께 등 떠밀려서 여기 까지 왔습니다.
  개척 때부터 선교의 강물에 하나님이 우리를 내 몰았습니다. 교회가 해야 할 일이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사명감으로 선교현장으로 내 몰아주셨습니다.
  우리 쓸 것 못쓰고 선교했습니다. 선교에 미쳤다 소리 들으며 오직 전력을 바쳤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님께서 또 다시 등 떠밀어서 교회를 건축하게 했습니다. 선교를 앞세우고 선교에 모든 재력을 투자했기 때문에 교회 땅을 사고 건축하는 일은 생각도 못했습니다. 그래서 건축 헌금 한 푼도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순전히 하나님께 등 떠밀려서 부지를 구입하고 오늘의 성전을 지었습니다.

  성전을 지으면서도 선교했습니다.
  예배 기념으로 선교사 파송하고 입당예배 기념으로 선교사 파송했습니다. 현재 7명의 선교사를 파송하고 재정수입의 30%이상을 해외 선교와 국내 선교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어여삐 보시고 건축 중에도 178 명의 새 신자를 주셨고 완공 후에 교인 숫자가 두 배로 불어나는 축복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우리의 자랑이 아닙니다. 선교한다는 핑계로 성전 건축 3년이 되어 가는데 도 아직 하나님의 성전을 헌당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선교가 우리의 교만한 자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헌당식을 못한 핑계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선교는 당연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전 봉헌은 우리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전이 더 낡아지기 전에 은행돈으로 지어 건물 소유권이 은행에 있는 이 예배당을 우리의 헌신으로 하나님께 돌려 드립시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즐거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사람은
  ① 받은 은혜를 깨닫는 사람입니다. 
  ② 믿음의 사람입니다.
  ③ 헌신적인 마음 구조를 가진 사람입니다.   
(박재신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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