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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영적인 성장을 힘쓰라 (벧전 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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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중고등부 수련회와 장년부 수련회를 떠납니다. 이 수련회는 우리가 영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참 좋은 기회입니다. 이번 여름에 부쩍 성장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생명 있는 모든 존재는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자라납니다. 모든 생물도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성장기가 있습니다. 언제나 성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장기 때 성장하지 않으면 키가 자라지 않습니다.
몸은 어른인데 엄마의 치마폭에 싸여 있는 사람을 “마마보이”라고 합니다. 나이나 외모로 보면 성인인데 정신연령은 아직도 어린아이의 수준에 머물고 있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른이지만 어른답지 못한 생각과 행동을 합니다.

심리학자들은 이런 사람들의 증상을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감을 갖지 못하고 남의 눈치를 슬슬 살핍니다. 자기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혈기를 부리거나 싸움을 합니다. 매사를 너무 완벽하게 처리하고자 하는 완벽주의 증상이 있습니다. 죄책감 때문에 시달리며 잠못 이루기도 합니다. 사람들과 친구 관계를 맺지 못하고 주변만 맴돕니다. 이유 없는 두려움과 염려 가운데 삽니다. 직장에 가기가 싫어지고 상대방의 단점만 자꾸 보입니다. 원망과 불평이 쏟아집니다. 나쁜 습관을 끊어야겠는데 끊지 못합니다. 나이가 들수록 외롭고 쓸쓸해지는 자신의 모습이 싫어집니다. 삶의 의욕이 떨어지고 현실을 도피하고 싶습니다. 남의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일방적으로 일처리를 하다가 실수하기도 합니다. 독선적입니다. 남의 의사를 존중하지 못합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불쾌하게 생각합니다. 화를 내기도 합니다. 이런 증상이 성인아이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겉은 성장한 사람 같으면서도 아직 성장하지 못한 어른 아이의 모습이 우리 속에서도 많이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영적인 거장 바울도 그런 모습이 있었습니다. 고전13:11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영적으로 성숙해 질수록 자기 안에 있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우리도 믿음과 행함이 일치하는 성숙한 신앙의 길을 걷기 위해서는 나를 붙잡고 있는 옛 습관의 사슬을 끊어야 합니다.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사람을 입으라.”(엡4:22-24)

우리의 영적인 부분도 많이 자라야 합니다. 계속 자라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까지 자라야 합니다. 예수님은 자라는 것을 매우 소중하게 여기셨습니다. 처음부터 ‘얼마나 큰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마13:32에는 1년 초 정말로 작은 겨자씨 한일이 어떻게 자라는 지 그 과정을 말씀하셨는데 그 작은 씨가 성장하여 새들이 깃들일 정도가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엡4:15 “범사에 예수그리스도에게까지 성장해야한다” 고 말씀하십니다. 성도는 영적으로 자라야 함을 가르쳐 주는 말씀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성장하기를 갈망합니다. 그런데 왜 성장하지 못할까요? 성장하지 못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본문은 신앙이 성숙하기 위해서 두가지 일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는, 버려야할 것을 버려야하고, 두 번째는, 얻어야 할 것은 꼭 가져야합니다. 성경은 이것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1. 영적 성장을 위해 버릴 것.

1절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1) 성장 방해 요소 중 하나는 첫째가 악독이라고 말씀합니다. ‘악독’은 ‘악의’, ‘악덕’, ‘악한 행위’들을 뜻하는데 남을 해하려는 마음의 악을 의미합니다. ‘악독’은 구체적으로 나쁜 버릇, 악습을 가르킵니다. 즉, 나쁜 습관 때문에 영적 성장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어떤 나쁜 습관이 있습니까? 성경은 이런 것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버리십시오.나쁜 습관은 죽을 때 까지 가지고 갑니다. 성령님의 힘을 입어 버리시기 바랍니다.

2) 우리의 영적 성장을 막는 이유 중 둘째는 궤휼입니다. 궤휼은 ‘속임’, ‘교활’, ‘변절’의 뜻으로 간사한 생각으로 남을 속이는 것을 의미하는데 순전의 반대입니다. ‘궤휼’은 여우처럼 교활하고 뱀처럼 간교한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은 온통 궤휼한 자로 가득차 있습니다. 속임수가 난무하는 세상입니다. 지나친 상술에 능해서 미끼를 통해서 남을 속여서 자신의 이득을 채우는 궤휼 때문에 영적으로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재물의 유혹 때문에 성령을 속임으로 비참한 최후를 맞은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를 볼 수 있습니다. 오늘의 시대는 남을 속이지 않고는 도무지 살 수 없다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런 속임으로 물질을 조금 벌 수 있을지는 몰라도 결코 우리의 영적 성장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 그리고 우리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 중 셋째는 ‘외식’입니다. 이 ‘외식’은 속과 겉이 다른 것을 의미합니다. 즉, 가면을 뜻합니다. ‘배우’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자신을 가장하고 거짓으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의 불일치도 외식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가면에 능숙한 바리새인들을 가리켜서 “외식하는 자여! 화 있을진저” “회칠한 무덤”이라고 까지 책망하셨습니다.(마 23:5) 성경을 많이 읽는 척, 기도많이 하는 척,믿음 좋은 척, 선한 척, 잘난 척 . . .

4) 또 우리의 영적 성장을 가로막는 요소 중 네째는 ‘시기’입니다. 시기는 남을 행복을 원치 않는 마음을 가리킵니다. 쉽게 말하면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보면 배가 아파 견디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우리 말에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는 말 . .가인은 아벨을 시기하여 죽였습니다. ‘시기’가 얼마나 무서운 것입니까? 시기는 살인입니다. 결국 시기하여 미워하게 되고 살인하게 되는 것입니다. 잠14:30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5) 그 다음 영적성장을 가로막는 요소 중 마지막은 ‘비방’입니다. ‘비방’은 “나쁜 말을 만들어 붙이는 것” “흠을 찾아 살포하는 것”을 뜻합니다. 그렇게 되면 형제의 마음이 상하게 됩니다. 이렇게 남의 마음에 흠집을 발견하기 때문에 잠시 흐뭇할지는 모르나 이런 나쁜 습관이 우리의 영혼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10년이 가도 항상 제자리에 있는 것은 우리 속에 있는 이런 악성 때문입니다. 악한 습관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살전5:22 “악은 모든 모양이라도 버리라”
우리 속에 우리를 방해하고 넘어지게 하는 습관들을 성령의 불로 소멸하지 않고 서는 우리는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거기에 머무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영적 성장을 원하십니까? 과감하게 버립시다. 나를 해하는 것입니다. 나를 어른 아이가 되게 하는 주범들입니다. 악독, 궤휼, 외식, 시기, 비방을 버리시는 행복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영적 성장을 위해 취할 것

나쁜 습관을 버리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먹는만큼 되는 것입니다. 영적 영양질을 공급되는 만큼 자라는 것입니다. 순전하고 신령한 젖 즉,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라는 것입니다. 시119:10 시편기자는 “주의 말씀을 전심으로 찾았다”고 했습니다.
건강하면 잘 자라게 되어 있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건강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믿음의 건강성을 체크하려면 크게 네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말씀이 달게 느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몸이 아프면 음식 맛을 잃어버리듯이 영적으로 침체되거나 병들면 말씀의 맛부터 잃어버리게 됩니다.
말씀을 받는 자의 열린 자세, 사모하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어떤 분은 말씀에서 비판할 것만을 찾습니다. 이런 사람은 마음이 병든 분입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의 넥타이 비뚤어진 것만 잘 봅니다. 이런 사람은 집중력이 모자라는 사람입니다. 산만한 사람입니다.
편식하지 말고 잘 먹어야 건강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잘 드십시오.

둘째, 봉사가 즐거운가? 하는 것입니다.
맡겨 주심에 대해 항상 감사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입니다. 어떤 사람은 일을 안맡겨 주면 서운해 하고 맡겨 주면 짜증을 냅니다. 그러나 건강한 사람은 일이 즐겁습니다. 일이 짜증나는 사람은 병든 사람입니다.

셋째, 자세가 긍정적인가?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항상 긍정적입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것입니다.
똑같은 사람의 똑같은 얼굴을 보더라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참 평안이 넘치시는 군요. 참, 축복을 많이 받으셨네요”라고 . . 그런데 부정적인 사람은 이런 칭찬을 해 줘도 삐딱하게 듣습니다. 마음을 치료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에 들어 있는 것이 다르기 때문에 다르게 표현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낚시질을 하는데 팔뚝만한 물고기가 걸렸습니다. 주변 사람들은 부러워 . .그러나 그 낚시꾼은 실망한 표정이었습니다. 호주머니에서 자를 꺼내더니 물고기를 재어보더니 그 물고기를 강으로 돌려보내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낚시꾼이 생태학자인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마리를 낚았습니다. 자로 재더니 어망에 고기를 담았습니다. 하도 이상해서 옆 사람이 물었습니다. “아저씨! 왜 큰 고기는 놔주시고 이처럼 작은 고기만 잡지요?” 그 때 그 낚시꾼은 “우리 집 후라이팬 그게 이만하거든요.”라고 하더라는 것입니다.
얼마나 어리석은 일입니까? 잘라서 구워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오늘의 부정적인 모습은 숨겨진 과거에서부터 발생되는 것입니다. 어린시절 경험한 상처나 충격, 학대 등에 의해 결정적인 영향을 받아서 형성되는 것입니다. 어린 시절에 받았던 무의식적인 상처의 흔적들이 쓴뿌리가 되어 지금 나를 괴롭히게 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안될 일도 되게 만드는 사람이 있고 될 일도 안되게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긍정적인 자세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 사람이 영적 성장이 잘 됩니다.

넷째, 전도의 열정이 있는가?입니다.
정상적인 사람은 사람은 은혜를 입으면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은혜를 받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마음이 불타는 것입니다. 렘20:9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이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전도를 하지 않으면 마음이 답답하고 죄송하고 부담스러워 견딜 수 없는 마음이 있는가? 아니면 전도 안해도 전혀 부담이 없는가?
여러분, 영적으로 건강한 사람은 하나님의 잘 먹습니다. 봉사하기를 즐깁니다. 긍정적입니다. 전도의 열정이 넘칩니다. 건강미가 넘치는 주님의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앞에서 말한 다섯가지(악독, 궤휼, 외식, 시기, 비방)의 죄악을 버린 자는 이제 신령한 젖을 먹기 위해 사모해야 합니다.
성도가 죄악을 끊지 못하고 갖고 살 때 자연히 말씀에 대한 욕구가 없어집니다. 이미 악독을 먹어서 쓸모없는 것으로 배부르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먹지 못하니 하나님의 은혜를 맛볼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맛보지 못했으니 계속 죄악에 머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기 위해서는 소극적으로는 죄를 버려야 하고 적극적으로는 신령한 젖,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 2절에 “갓난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이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순전하고 신령한 젖'은 가감이 없는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킵니다. 여기 '순전'은 궤휼과 정반대로 속임이 없는 순수한 것을 말합니다. 섞이지 않은 것, 그리고 허위나 가식이나 속임수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씀에 대한 강렬한 갈망은 그 사람이 중생 되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는 증거입니다.
갓난아이는 본능적으로 젖을 빱니다. 이것은 가르쳐서되는 것이 아닙니다. 갓난아이의 젖을 빠는 힘이 얼마나 센지 모릅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젖이 안나오니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살수 없으니까, . . . 그래서 젖먹던 힘까지 내라는 말이 나오게 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 것도 그래야 한다는 것입니다.
혹시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기보다 세상의 것들을 더 갈망하고 잊지는 않습니까? 그것이 영적 건강의 척도입니다.
병든 아이는 젖을 먹을 수 없습니다. 병이 있는 아이는 젖꼭지를 물지 않습니다. 모든 것이 귀찮아 졌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도 신앙이 병들면 말씀이 잘 와 닫지 않습니다. 말씀이 맛이 없습니다. 식욕을 잃은 사람은 음식이 입에 당기지 않습니다.
말씀이 읽혀지지 않으며 성경공부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여러분은 지금 당신의 영적 입맛이 어떻습니까? 말씀이 잘 당기고 있습니까? 공부가 잘 되고 있습니까? 설교가 잘 들려지고 있습니까?
순전한 젖은 바로 하나님 말씀입니다. 유명한 설교자의 설교집도 아닙니다. 은혜로운 간증집도 아닙니다. 신학서적이나 성서백과사전들도 아닙니다. 우리가 먹는 음식에도 주식이 있고 건강보조식품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성도는 주식은 안먹고 보조식품만 먹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설교집, 간증집, 신학서적들은 보조식품들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딤후3:16-17)” 이 진리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을 먹기에 먼저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보조자료로 설교집, 간증집을 활용하시기 바랍니다.
행17:11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다고 칭찬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 속에 역사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규칙적으로 밥을 먹는 어린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가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규칙적으로 읽는 사람이 영적으로 건강하게 됩니다.
수련의 계절을 통해 악독, 궤휼, 외식, 시기, 비방을 과감히 버리고 그 속에 말씀을 채우고 그 말씀을 뮥상하는 중에 우리 속에 영적인 질병들이 치유되고 영적 성장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임경택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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