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하나님은 전능하시다 (창 17:1)

  • 잡초 잡초
  • 551
  • 0

첨부 1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시다는 말씀은 모든 일을 능히 그분께서 하실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다는 말씀입니다. 믿으면 아멘하기를 축원합니다.

  아브라함은 75세에 하란에서 부름을 받았습니다. 75세는 결코 이른 나이가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늦은 아버지를 하란에 두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그는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버지와 자신의 인생과 자신의 모든 삶을 책임져 주시고 인도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새로운 것을 시작할 수 있도록 하는 결단의 힘을 가진 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인생을 한 자리에 가만히 정착하게 나두는 것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꿈과 비전을 향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키며 주님의 나라를 향해 우리 자신들을 앞으로 나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말씀하신 후에 “또한 뒤로 물러가면 내 마음이 저를 기뻐하지 아니하리라”(히10:38)고 하신 것이 분명합니다. 믿음은 우리를 앞으로 나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은 뒤로 물러나는 인생을 살게 하는 것이 아니라 끝없이 우리 인생을 전진하는 에너지요 원동력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오해 하는 것 중에 하나가 믿음은 마음에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마음으로 믿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마음으로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믿는다고 한다면 거기에서 끝나는 것이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내가 믿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요 삶에서 실천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며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그것을 확실히 믿는다면 주님의 이름으로 여러분은 여러분이 있는 그 자리에서 주님을 고백해야 합니다. 이 고백은 말과 행동으로 동시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말이 여러분들이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하면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야고보서에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과거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수아를 중심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 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법궤를 가장 앞에 두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법궤 뒤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약 800미터 뒤에서 따라갔습니다. 이렇게 법궤를 앞세우고 가나안 땅에 들어 갈 때에 그들 앞에 큰 장애가 발생했습니다. 그들 앞에 요단강이 가로 막고 있었던 것입니다. 더욱이 그들이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는 때는 보리 추수기였습니다. 보리추수기는 물이 많이 있는 시기였습니다. 때문에 제방까지 물이 가득하여 흘러넘치고 있었습니다. 제방은 물이 범람하는 것을 막기 위해 뚝을 높게 쌓아 놓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높게 쌓은 제방을 밟고 이제 발을 물 위에 올려  놓으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제사장들이 땅을 밟고 제방까지는 왔을지 모르지만 지금 제방을 넘어 흘러넘치는 그 물을 밟아야 가나안 땅에 들어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발을 물 위에 올려놓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제사장들은 물속으로 곤두박질하게 되고 마침 그 때가 홍수 철이라 급한 물살에 휩쓸려 빠져 죽는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죽음을 각오하고 제방 위에서 힘껏 발을 내딛었습니다. 할렐루야! 그들이 믿음으로 그 급속히 흐르는 요단강 물에 발을 올려놓자마자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급히 흐르던 물이 갈라지면서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을 보호하신다는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불가능해보여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발을 들여 놓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여러분들은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이성 위에 있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란 하나님은 살아 계시다는 것과 그분은 모든 일에 가능하신 전능자라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불가능해도 하나님은 가능합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시며 모든 일을 능히 가능하게 하시는 그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99세에 나타나셨습니다. 99세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두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것은 첫째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약 14년 전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신 적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한 가지를 분명히 약속하셨습니다. 그것은 바로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될 것이다”라는 아들에 관한 약속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반드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를 통해서 약속된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창세기 15장에 보면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아들에 관한 약속을 맺은 후에 소와 염소와 비둘기의 가운데를 쪼개고 그 쪼갠 사이를 지나갔습니다. 이 행위는 반드시 약속을 지킨다는 것이며, 약속을 어기면 둘 중에 하나는 죽어야 한다는 자신들의 생명을 걸고 피로 맺은 굳건한 약속입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나이 85세 때에 있었던 약속입니다.

  그런데, 16:16절에 보면 “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육 세이었더라”는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이게 왠 말입니까?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피의 약속을 했습니다. 생명의 약속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86세에 이집트에서 온 하갈이라는 이방의 여인으로부터 이스마엘이라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이것이 아브라함의 연약한 믿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피로 약속하셨지만 그 약속을 믿지 않고 인간의 방법으로 통해 아들을 얻으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실패한 믿음입니다. 그 실패한 믿음으로 오늘날 이스라엘과 아랍은 한 조상을 가지고 있지만 서로 원수로 생존경쟁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다면 흔들리지 않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85세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만나 약속을 받고 산에서 내려 와 은혜가 충만할 때에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브라함에게 다가 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여보, 하나님이 자녀를 주신다고 했다면 주실 것이 분명해요. 그런데, 나는 이미 나이가 많이 들어서 가능성이 없어요. 여기 내 젊은 여종 하갈이 있어요. 하갈과 동침해서 아들을 낳으세요. 그 아이를 통해 내가 자녀를 가지게 되는 것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겠어요?”라고 말합니다.

  이는 마치 사탄이 하와를 통해 말씀을 받은 아담을 유혹하여 타락시켰던 것처럼 지금 막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은혜에 충만한 아브라함을 유혹하여 시험에 빠지게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분의 가능성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이성을 사용해서 현재의 환경과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아브라함을 설득시켰던 것입니다. 이 때 아브라함이 “아니야! 여보,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야. 하나님은 우리의 생각과 다른 방법을 가지고 계셔!”라고 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성 위에서 역사하시면서 우리의 환경과 처지를 바꾸시는 그분을 믿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낳은 후 14년 동안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그리고 99세가 되어서야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하는 첫 말씀이 바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믿음없는 연약한 아브라함에게 “나는 무엇이든지 가능한 하나님이다”라는 것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하나님은 무엇이든지 가능하시다”는 그분의 가능성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들과 달리 “가나안 족속들은 우리들의 밥이다”라고 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자신이 그들을 이길 수 있는 군사적인 능력이 있었기 때문입니까? 지혜가 있었기 때문입니까? 용기가 있었기 때문입니까? 결코 아닙니다. 그는 오직 하나님은 가능하시다는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다윗이 감히 어떻게 골리앗 앞에 설 수 있었겠습니까? 그가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던 가능성은 객관적으로 합리적으로 이성적으로 논리적으로 과학적으로 그리고 확률적으로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실 것입니다”(삼상17:37).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다윗은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에도 나를 보호하시고 이기게 하셨던 것처럼 이 블레셋 사람에게서도 나를 이기게 하실 것이라는 담대한 믿음을 소유한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능력에 의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능성에 의지하여 도전했던 것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이처럼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고 도전하고 또 도전하며 앞으로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의 가능성에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자신이 어떤 일을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의 일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분의 가능성을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 지난 14년간 믿음에 실패해온 아브라함에 하나님은 나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 과거 여러분들이 아브라함처럼 자신의 이성에 의지하여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다면 이제 자신의 생각과 자신의 이성적인 방법들을 포기하고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분의 가능성을 믿고 도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전능자입니다. 하나님에게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과거의 삶에 실패한 아브라함은 이제 14년 만에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 음성이 바로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이다”라는 것입니다. 이제 이 음성이 이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지기 원합니다. 아브라함은 비로 14년 전이었던 85세에 실패했지만 그분의 음성을 듣고 과거보다 더 가능성이 없는 99세에 이제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고 도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에 대한 약속과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함으로 불가능에 도전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은 가능하신 분입니다. 나도 여러분도 이제 하나님의 가능성과 그분의 전능하심에 의지하여 세계 선교와 교회 부흥에 도전하기 원합니다. 여러분들에게 막힌 담이 무엇입니까? 이제 하나님의 가능성과 그분의 전능하심을 의심하지 말고 도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은 가능하신 분입니다. 그분은 전능하신 분입니다.

  자녀가 없었던 한나도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고 도전하여 사무엘이라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를 낳았습니다. 느헤미야는 비록 노예였지만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고 기도하여 민족의 지도자가 되었고, 퇴락한 이스라엘 성을 세우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에스더 역시 페르시아의 이름없고 나약한 노예였고 여자였지만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고 도전해서 왕비가 되었고, 나라를 구하는 위대한 영웅이 되었습니다. 기드온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아주 연약하고 소심하고 나약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의 눈을 피해 포도주를 만드는 술통에 들어가 곡식을 타작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자는 그를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라고 불렀습니다. 그가 현재는 약하고 힘이 없는 나약한 인간이었지만 하나님은 그가 믿음의 사람으로 크게 쓰일 미래를 보시고 그를 큰 용사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의 가능성을 믿고 도전해야 합니다. 믿음의 승리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가능성과 그분의 전능하심을 믿고 도전했습니다. 예수님 역시 마가복음 14:36절에서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시오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가능한 분이라는 것이 주님의 고백입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이제 99세가 된 아브라함에게 두 번째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네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자신이 하나님 앞에 있다는 사실을 확증하지 못하기 때문에 세상에 나가서, 그리고 교회 생활에서 온전한 믿음의 복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먹고 마시고 살아가는 생계를 지켜 주실 것을 믿습니까? 그렇다면, 왜 십일조를 바르게 드리지 못하고 십일조를 드릴 때 고민하고 있습니까? 왜 선교헌금을 바르게 드리지 못하고 있습니까? 생명을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이 전능하시고 하나님은 가능하시다는 것을 믿는다면 모든 삶의 문제를 주님께 맡겨야 합니다. 하나님의 것이 세상에 빼앗겨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에게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그분의 살도 주셨고, 그분의 몸속에 흐리고 있었던 물과 피도 온전히 우리를 위해 부어 주셨습니다. 심지어 그분이 입고 있었던 겉옷도 주시고, 속옷도 주셨습니다. 우리를 저 지옥의 뜨거운 불구덩이와 멸망의 무저갱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모든 것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제 하나님은 전능하시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나가는 사람은 그분이 계신 것을 믿어야 하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상 주시는 분임을 믿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믿음에 실패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그분은 모든 일이 가능하시다는 믿음으로 승리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이제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그분의 말씀만을 의지하여 그 말씀을 행함으로 완전함을 인정받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 용 근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