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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좇아가는 사람 (창 12: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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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교회는 핀마이크가 없는데 있으면 아주 편리합니다. 무선 핀마이크는 여기 깉에다 꼿고 말하면 무선으로 전파를 타고 스피커를 통해 말이 나오게 됩니다. 어느 목사님이 집회 인도를 하러 교회에 갔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자 마자 갑자기 배가 아팠습니다. 예배가 시작되었으니 나갈 수도 없고 말씀을 시작하는데 이제는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잠시 설교를 중단하고 양해를 구한 다음 화장실에 다녀왔습니다. 얼른 일을 마치고 강단에 올라서는데 사람들이 모두 깔깔 거리고 웃었습니다. 그래서 아니 왜 웃으십니까? 하고 물으니 집사님 한 분이 "목사님 다음부터 화장실 가실 때는 핀마이크를 빼놓고 가십시오. 완전히 실황중계였습니다."

마이크가 따라가니까 목사님이 일보시는 소리가 다 들렸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깔깔 웃은 것입니다. 따라가면 알게 됩니다. 상대방의 말을 전달받아 듣는 것과 직접 대면하고 듣는 것은 다릅니다. 현장에서 만나는 하나님은 기도 중에 만나는 하나님과는 또 다릅니다. 오늘도 여러분이 삶 속에서 또 여러분의 일터와 집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하나님을 따라가는 여러분을 만나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그 현장에서 여러분이 하시는 일 속에서 당신의 능력을 보여주시고 나타내 주시고 살아 계심을 확인시켜 주실 것입니다.

믿음의 순종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좇아갔습니다. 말씀을 듣고 따라 갔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따라갈 때부터 믿음이 생깁니다. 그러나 따라 가지 않으면 알고는 있지만 그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우리가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 알게 됩니다. 그러나 거기서 우리가 아는 것을 따라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것이 믿음으로 나타납니다. 믿음은 행함으로 보여줍니다. "믿고 구하면 주시리라" 했습니다. 우리가 구하는 것이 있으면 구하고 하나님이 들으셨다고 믿고 돌아서서 안심하고 이루어진 상태에서 일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그 일을 이루십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알고 있는 것은 믿음이 아니라 지식입니다. 머리만 커져있는 상태입니다. 요즘 성도들에게 문제는 바로 성경에 대해 믿음에 대해 많이 알고는 있는데 행함이 부족하여 삶의 변화가 뒤 따르지 않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부족한 것입니다. 세상을 밝히는 빛이라 하셨지만 그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빛이 없어졌습니다.

여인이 결혼을 하면 임신을 합니다. 그러나 임신한 직후 바로 알지는 못합니다. 그러다가 어느 날 임신의 징후가 나타납니다. 속이 갑자기 메스겁다든지, 머리가 아프다든지, 자주 졸립다든지 하는 평소에 없던 징후가 나타나서 몸이 이상해서 병원을 찾아가보면 아무 이상이 없다고 하고 산부인과를 찾아가면 임신이라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면 믿음이 생기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믿음이 생겼는지 잘 모릅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믿음이 자기에게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일날만 되면 교회에 가고 싶어지고, 장로님을 만나면 반갑고, 교회에 오면 마음이 편해지고, 구역예배가 기다려집니다. 무언가 봉사하고 싶어집니다. 그렇지 않더라도 믿음이란 행동하는 것만큼 자라는 것입니다.

아브람을 보십시오. 그가 갈대아 우르에서 아버지를 따라 하란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얼마간 살았습니다. 그러던 중 하나님이 그에게 나타나셔서 부르십니다. 내가 지시하는 땅으로 가라. 목적지는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아버지 데라는 하란을 떠나기 싫었습니다. '우르를 떠나온 것만도 어렵고 힘이든데 또 이사를 가다니'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가기를 원하는 사람들하고만 떠났습니다. 여기에서 믿음과 이성이 드러납니다.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거기 하란은 살기 좋고 정착해서 지내기 좋은 곳입니다. 그런데 거기를 놔두고 떠난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거기를 떠나라 하십니다. 이 때 믿음이 드러납니다. 믿음이란 말씀을 듣는 즉시 떠나는 것입니다.

이성은 믿음을 가로 막습니다. 이치적으로 따지면 믿음이 이성에 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성은 과학적 논리와 증명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은 자주 이성을 초월해서 하나님의 길을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성으로 믿어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성만 가지고 생각하면 하나님은 만나지 못합니다. 알기는 합니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은 만나지 못합니다.

김찬철 집사님이 믿음으로 기도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고칠 수 있다고 말은 하지만 믿음이 좀 못 따라 갑니다. 그렇게 말은 하지만 내 일이 아니기 때문에 글쎄 하면서 의아심을 갖습니다. 그러면 안됩니다. 도전하는 것입니다. 이치를 버리고 하나님의 능력 앞에 매달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생기면 낫습니다. 고쳐달라고 기도하기 보다 우리는 먼저 그 믿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어리석은 인생은 이성과 논리로 하나님을 이해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이성으로 이해되는 그렇게 작고 우리 머리 속에 들어오실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 이성인 머리보다 수천 수만 배로 아니 그 이상으로 큽니다. 어린아이가 할아버지의 지혜를 따를 수 없는 것은 할아버지보다 다 잘 알지만 모르는 것 경험이 부족해서 꼼짝을 못하는 것입니다. 한 두가지만 상대방보다 몰라도 우리가 꼬리를 감추어야 하는데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지식과 지혜를 다 가지고 계십니다. 그러니 우리가 하나님을 이성으로 알려고 하면 모르게 됩니다.
그냥 믿어야 합니다.

말씀과 사람

창12:4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그 나이 칠십오 세였더라 아브람은 말씀을 따라 갔고 롯은 삼촌 아브람을 따라 갔습니다. 따라 간 것은 같은데 누구를 따라가는가는 중요합니다. 둘이 비숫하지만 전혀 다릅니다. 여러분, 믿음은 어느 때 들통이 납니까? 어려울 때입니다. 고통이 오면 믿음이 들통납니다. 어려울 때 드러납니다. 역경을 만나면 어떤 사람은 더욱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다가서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실망하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역경이 오면 믿음이 있는 사람은 잘 넘어가지만 믿음이 없는 사람은 그 때 쓰러집니다. 그래서 평소에 믿음 있는 행동을 해야 합니다. 믿음 있는 척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따라 행동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사람은 간혹 우리에게 본이 되기는 하지만 그도 사람이기에 우리에게 실망을 주고 길을 헷갈리게 합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기도는 잘 나오는데 저녁에는 안 나온데요. 왜 그러냐고 했더니 기도가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도가 중요하지만 말씀이 그보다 못하거나 찬양이 그에 뒤 떨어지지 않습니다. 삶의 예배는 하나님을 아주 기쁘게 해 드립니다. 목사도 믿지 못합니다. 얼마나 실수가 많고 모르는 것이 많은지 모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 이것만이 나를 진정한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시119:105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내 가는 길의 등불입니다. 환히 비추는 빛이시기에 갈 길을 잘 알게 됩니다. 사라 따라가지 마시고 빛이신 말씀을 따라 가십시오.

여러분 말씀만 따라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사람 따라다니면 우상을 섬기듯 사람을 섬기게 되고 어느 교회가 좋다고 거기 따라가면 이단에 빠지기 쉽습니다. 말씀만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성경에도 사람을 따라가지 말라고 합니다. 바울을 따라가던 사람, 게바를 따르던 사람이 있습니다. 아볼로를 따르던 사람이 있는데 그 누구에게도 속하지 말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이시고 따라갈 이라고 하십니다.

믿음의 대가

창12:6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하여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니 그 때에 가나안 사람이 그 땅에 거하였더라 아브람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들어간 곳이 가나안 땅입니다. 그 땅에 가보니 이미 거기에는 정착하여 살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믿음의 길에는 방해자, 또는 대적자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이 가라고 하셔서 가는 곳이라면 황금이 있던지, 아니면 살기가 좋은 곳이든지 아니면 자기들을 기뻐 맞이하는 곳이든지 해야 하는데 거기엔 아브람의 대적자가 있었습니다. 아브람이 바라던 곳이 아닙니다. 가나안의 원주민이 있었습니다. 이런 방법이 하나님과 사람의 차이입니다.

믿음은 저절로 성장하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의 복도 그냥 주어지지 않습니다. 반드시 거기에는 대가가 지불되어야 합니다. 통과해야 할 문이 있습니다. '저 사람 믿음 좋다.' 라고 할 때는 이미 그 사람이 수 많은 역경과 고난의 터널을 거치고 왔다는 사실입니다. 그 시험의 무대를 통과해서 어엿한 믿음의 장부가 된 것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 살고 부자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그것을 감당하며 부유한 재물과 재산을 하나님 뜻에 맞도록 잘 관리하고 사용할 줄 알아야 그에게 넘치는 것으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재물 주었더니 엉뚱한 곳에 사용해서 죄나 짓고 하나님 원하지 않는  곳에 사용한다면 누가 그에게 주겠습니까? 그리고 본인 당사자에게도 하나님 없이 주어진 재물은 그에게 근심 덩어리입니다. 죄의 길입니다. 왜냐하면 그 재물을 사용해도 하나님 원치 않는 일에 사용할 것이요, 쓰지 않고 자꾸 욕심껏 모아들이려고만 한다고 해도 그는 그 욕심으로 인해 하나님을 배반하기 때문입니다. 차라리 그에게 재물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알고 잘 섬기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가 올 해 커다란 비전을 가지고 교회를 세워고 예배를 세워 가고자 합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수 많은 방해 요소가 있습니다. 나 자신이나 우리 모두도 이미 지켜오던 예배의 형식과 틀이 있고 새로운 것을 받아  들이기에는 너무나 과거에 익숙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장로교에서 굉장히 중요시하는 신앙고백은 사실은 초대교회 예배에는 없는 순서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외우기 어려운데도 불구하고 그 긴 문구를 외우고 또 잊지 않으려고 예배에 사용하다보니 그것이 우리 교회에 들어와 자리 잡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주일 예배에 사도신경이 빠졌다고 해서 그 예배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물론 베드로도 예수님께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고백은 아주 짧은 고백문 입니다. 마16:16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것이 다입니다.

우리 교회는 예배의 원형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드려진 참된 예배의 모습들을 우리가 드리면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세워 나가야 합니다. 그러나 성경의 예배를 찾는데는 방해가 있습니다. 나부터 과감히 지금의 예배의 틀을 벗어날 준비를 해야 합니다. 잘못된 것은 버리고 참된 것은 받아들여야 합니다. 순서도 그렇습니다. 어느 것이 먼저고 나중이고는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앞에 와야 할 이유가 있는 것이 있습니다. 죄의 고백이라든지 아니면 찬양이 앞에 온다든지 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그러나 꼭 묵도로 예배를 시작해야 한다는 규정이 성경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배의 목적은 하나님 앞에 영광을 드리는 것이지 순서에 있지 않습니다.

가나안 땅에는 기득권세력이 있었습니다. 내 마음에도 그 기득권 세력이 다른 것을 용납하지 못하게 합니다. 굴러 들어온 돌이 박힌 돌을 차 버리려고 합니다. 그러니 나도 용납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안정을 주고있는 예배의 순서나 내용을 바꾸고 살리려면 피나는 아픔과 노력이 뒤 따라야 합니다. 그렇다고 무조건 다 바꾸고 한번에 바꾸자는 것은 아닙니다. 초대교회의 예배형태는 많이 달라 졌지만 더 좋아진 부분도 있습니다. 그러한 것은 더 지켜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는 곳에서 옥토에 기를 꽂게 하시지 않고 들어가서 피눈물나는 어려움과 훈련을 거쳐 결실을 얻게 하십니다. 아브람이 들어가서 큰 흉년을 만나 어려움도 겪고 사랑하는 조카 롯과의 시비도 생겼습니다. 우리도 그런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대하는 것은 과장이 부장되고, 내년에도 딸을 사야 하고, 자식들이 잘 되어 출세의 가도를 걷고, 늘 건강해서 병원에 다니지 않아야 합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런 일을 통해 우리가 더 나아져 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영적 전쟁입니다.

믿음이 들어 올 자리

창12:7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 곳에 단을 쌓고 가나안에 들어가 한 참 그 땅의 거주민들과 어려움을 겪고 있을 때 하나님이 나타나셔서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어려워 할 때 나타나 주십니다. 당신을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비전을 주십니다. "이 땅이 네 땅이다."

그러나 내 땅이라고 말씀해 주셨지만 그 땅은 내 땅이 아니라 이미 임자가 있는 땅입니다. 그래서 당황합니다. 히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그렇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또 이 땅은 내 땅이 아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내 것이라고 하실 때 내 것입니다. 여러분의 조상이 처음 새텃말에 들어와 살 때 땅이 없었습니다. 모두가 남의 땅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내 땅 내 집을 지니고 삽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또 반대로 내 땅이지만 이것은 네 것이 아니라고 하시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믿음 안에서만 이해가 됩니다. 지금은 아니지만 내 것이라 하시니 내 것입니다. 믿음은 나로 하여금 앞을 내다보며 비전을 갖게 합니다. 그래서 미리 감사합니다.

믿음을 수학공식으로 표현하자면 믿음=예배입니다. 주일 날 하루만 교회 참석한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입니다. 저녁 예배까지 참석한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좀 있습니다. 그러나 새벽예배까지 참석한다면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모든 예배에 100% 참석한다면 그 사람은 목사보다도 더 믿음이 좋은 사람입니다.

아브람이 그 말을 듣고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믿음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고 하나님을 만나는 순간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보이지 않지만 본 것같이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옵니다. 손에 쥐지 않았으나 가진 자같이 감사의 제사를 드립니다. 그러므로 예배자가 가장 큰 믿음과 감사의 마음을 가진 자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있는 사람은 교회에 나와서 기쁨으로 감사의 제사를 드리고 봉사합니다. 봉사도 감사의 제사입니다. 그러나 봉사가 먼저인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선 안됩니다. 봉사를 앞세우면 안됩니다. 봉사는 예배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예배의 결과여야 합니다. 진정한 사역은 예배에서 흘러 나와야 합니다. 참된 예배 없이 사역만 계속 된다면 그 사람은 금방 지치고 힘이 없어 집니다. 금방 탈진하고 지치고 또는 교만해지고, 우쭐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진정으로 예배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면 자기는 없어집니다. 사라집니다. 하나님만 나타납니다. 얼마나 믿음이 있느냐는 그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서 얼마나 일을 많이 하느냐가 아닙니다. 내가 예배 속에 얼마나 깊이 들어갔는가가 중요합니다.
예배 속에 깊이 들어가서 감격으로 제사드릴 때 기쁨이 있습니다. 감격이 있습니다. 예배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요, 하나님의 임재의 사건입니다. 여러분이 예배 때마다 하나님을 만나는 사건이 일어나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드리고 감격하는 마음으로 사역하고 봉사하는 사람은 절대로 피곤하거나 지치지 않습니다. 오랫동안 일해도 시간 가는 줄 모릅니다.

창12:8거기서 벧엘 동편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는 벧엘이요 동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9점점 남방으로 옮겨 갔더라 여기보면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했습니다. 예배의 장소에 여호와의 이름이 있습니다. 여러분, 여호와라는 이름이 있는 곳이 예배의 장소입니다. 여러분이 하루를 살면서 여호와의 이름을 얼마나 부르십니까? 우리는 내 이름이 불러지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이제는 내 이름 대신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의 이름이 불려져야 합니다.
101. 천지에 있는 이름 중 귀하고 높은 이름 나시기 전에 지으신 구주의 이름 예수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광을 받으시기에 합당한 이름입니다. 교회에서는 그 누구도 영광을 받아서는 안됩니다. 높아져서도 안됩니다. 여러분의 마음에 예수님의 이름이 충만하시기를 바랍니다.
(최 진 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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