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4 사람이 있는가? (막 2:1~12)

  • 잡초 잡초
  • 449
  • 0

첨부 1


<목회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주일을 맞게 하시고 기둥교회에서 예배드리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새벽 1부예배 부터 밤 9시 30분에 비전센타에서 드리는 은혜 예배까지
9번의 기둥교회 주일예배를 통해 영광 받으시는 줄 믿고 감사를 드립니다.
여기에 모인 우리들 살아온 모습도, 살아가는 모습도 각기 다르지만
하나님 안에서 한 자녀 됨을 알아 자녀가 부모님을 기쁘시게 하듯
하나님께 기쁨 되고자 정성으로 예배드리오니 받아 주시옵소서.
하나님, 세상에 살며 안타까움에 절규하고, 애달픔에 눈물지으며 살던
기둥교회 성도들의 신음에 귀를 기울여 주시옵소서.
하나님, 하나님의 자녀들의 지친 육신과 영혼에 위로와 평안을 주시옵소서.
감사와 행복에 겨워 이 자리를 찾은 이들에게도
감사의 조건이 끊이지 않는 기쁨을 주시옵소서.
하나님, 귀한 이 자리에서 우리와 함께 예배드릴 수 없는 이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외국과 객지에 나가 있는 이들, 병상에 누운 이들, 군 복무로 의무를 다하는 젊은이들,
특별한 사정이 있어 인터넷에 접속을 하고 모니터 앞에 앉은 이들에게까지
이 모든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넉넉한 은혜를 베풀어주시옵소서.
부족한 종이 말씀을 들고 강단에 섰습니다. 붙드시옵소서.
상한 심령을 치료하시고 잠든 영혼을 깨워 일으키는
부족한 종의 목소리를 통해 역사가 있게 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믿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할렐루야!
요즘은 도청이니, 감청이니 세상이 뒤숭숭해서 말을 하다가도
'혹시 누가 듣는 것이 아닌가' 싶고, '녹음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걱정이 됩니다.
정부 발표도 믿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의심이 많이 갑니다.
가족도 믿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생명보험을 들어놓은 사람을 자기 가족이 죽이기도 하고…
가까운 친척도, 친구도… 쉽게 믿을 수도 없는 세상입니다.
다른 사람의 이름을 도용하여 허위대출을 받아 도망가는 사람도 있습니다.
참으로 믿기 힘든 세상이 되었습니다.
옆의 분을 살짝 보세요. "믿을 만한 분인가?"
이 자리에 함께 한 우리 기둥교회 성도들은 "다~믿을 만한 분들"이기를 바랍니다.
옆의 분과 "좋으신 분 옆에 앉게 되어 감사합니다,
믿을 만한 분 옆에 앉게 되어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는
사람을 "사회적 동물 (社會的動物, social animal)"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끊임없이 다른 사람을 사귀려 하고 다른 사람과 교제를 맺고 살아갑니다.
그렇다면,
<지금 내가 만나고 관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내 주위에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나는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어떤 사람이 나를 좋다고 할까?
좋은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 희로애락(喜怒哀樂)을 함께 할 사람,
만나고 싶고, 주고 싶은 사람이 자신의 주변에 몇 명이나 있는가?> 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얼마 전 밤 늦은 시간에 저 혼자 집에 있는데
벨소리가 나기에 봤더니 우리 교회 ○○○이셨습니다.
그래서 편안한 복장으로 있다가 얼른 옷을 갈아입고 문을 열었습니다.
그랬더니 제 손에 옥수수를 쥐어 주시면서
"목사님, 이거 밤에 꼭 삶아 놓으셔야 해요. 그냥 두면 안돼요"라고 하시며 가셨습니다.
문을 닫고 저는 그 자리에 한참 서있었습니다.
그냥 두면 안된다고 하는데 옥수수를 어떻게 삶는지 제가 알아야지요.
저 혼자 있는데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하는 생각과 함께
이왕이면 옥수수를 삶아다 주시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얼마나 감사한지요.
옥수수를 목사와 함께 나눠 먹고 싶은 그분의 마음이 참으로 감사했습니다.
- 가져오세요. 삶아서… -
사람은 누구를 만나고, 누구와 함께 하느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다른 인생을 살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사람을 좋아하고 나누고 싶습니까?
어떤 사람을 만나고 가까이 하고 싶으십니까? 어떤 사람을 찾고 계십니까?

4 사람이 있는가?
오늘 본문 말씀의 사건이 일어난 곳은 갈릴리 호수 북쪽 끝에 자리잡은 가버나움입니다.
가버나움은 예수님께서 여러 이적을 행하시고
하늘의 도를 가르치셨던 주 활동무대였습니다.(마4:13)
예수님께서는 가버나움을 떠나 갈릴리 주변을 두루 다니시면서
말씀을 전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들린 자를 온전케 하시며…
사역하시다가 다시 가버나움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전도여행으로 예수님은 매우 고단하셨습니다.(막1:45 참조)
그런데 "예수님이 돌아 오셨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사람들이 모여들어 예수님께서 계신 집 안팎으로 용신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용신(容身)>이라는 말은 넣을 容, 몸 身 자를 써서
몸이나 겨우 들이밀 정도라는 뜻으로 방이나 처소가 매우 비좁음을 뜻합니다.
그렇게 사람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예수님이
하늘의 도(道)를 가르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지붕이 뜯겨지기 시작했습니다.
(☞ 그림을 보세요.) 

당시 가버나움 지역의 보통 사람들의 집은 흙벽돌 단층집으로
지붕은 나무로 대들보를 놓은 후 풀을 엮어 그 위에 놓고
그 사이를 석회와 흙으로 채워 비를 막도록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쉽게 지붕을 뜯을 수 있었습니다.([Daily Life at the time of Jesus] p.44참조)
그런데 뚫린 지붕에서 중풍병자를 뉘인 침상이 내려오는 것입니다.
<중풍>이란 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뇌의 일부가 손상되는 병을 말하는 것으로
반신 또는 팔다리 등 몸의 일부나 전체가 마비되는 증세를 말합니다.
오늘날에도 치료가 힘든 난치병에 해당하는 병입니다.
환자를 부축해서 걸을 수만 있어도…, 지붕을 뜯지는 않았을 것이고,
사람이 조금 모여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었다면 지붕을 뜯을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걸을 수 없는 중증 중풍병자를 데리고
많은 사람들을 헤치고 예수님께 가까이 가기가 어려웠기에
네 사람은 힘을 모아 지붕을 뜯고, 환자를 달아 내린 겁니다.
그 네 사람이 중풍병자 주변에 있는 친척인지, 친구이지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중풍병자는그 좋은 사람들로 인해
예수님을 만나고 병 고침을 받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고, 구체적인 사랑을 베풀고…
때론 감동적인 도움을 주는 친구가, 이웃이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입니다.
이제 우리는 '내 주위에는 어떤 사람들이 있는가?'
'다른 사람들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대하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에게도 중풍병자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사람들 같은 사람이,
가족이, 친구들이 있는지요?
사람이 좋은 자리에, 편한 자리에, 높은 자리에, 넉넉한 자리에 있을 때는
그 곁에 항상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항상 좋은 자리에만 있을 수 없습니다.
나쁜 자리에 있을 때, 힘들고/아프고/어려운 자리에 있을 때…
그때 자신을 도울 친구가 과연 몇 명이나 될까요.
장기간의 병에도 포기하지 않고 곁에 있어 주고, 관심 가져주고,
들것에 메고 뛸 수 있는 사람… 그런 네 사람이 여러분에게 없다면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여기 본문에 나오는 네 명의 친구처럼 할 수 있습니까?”
여러분 자신도 본문의 네 사람들처럼 다른 사람을 위해, 친구를 위해,
믿음의 형제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고 수고할 수 있으십니까?
수고할 마음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친구가 기쁠 때 얼마나 함께 기뻐했습니까?
여러분의 친구들, 믿음의 형제들, 이웃의…
결혼식, 백일, 돌, 회갑, 칠순, 팔순… 잔치에 얼마나 가 보셨습니까?
여러분은 친구가 아플 때 얼마나 함께 아파하셨습니까? 얼마나 관심 가졌습니까?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예배를 마치면
음료수와 설교테이프를 가지고 병원 심방을 다니십니다.
이 얼마나 귀한 일입니까? 참으로 감사합니다. 정말 머리 숙여 감사드립니다.
제가 매주일 환자를 심방하고 오신 장로님들의 보고를 받습니다.
한 주간 동안 성도들을 심방한 목사님들/전도사님들… 의 심방보고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여러분에게, 특별히 병원에 입원했을 때 심방을 받으셨던 분들에게 묻습니다.
여러분은 장로님들의 건강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으십니까?
여러분은 교역자들의 건강에 얼마나 관심이 있으십니까?
저도, 수술 받고 병원에 누워 있어 보았기에 아픈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압니다.
저는 지금도 다른 사람과 달리 조심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성도 여러분, 다른 사람의 아픔에 대해 얼마나 관심이 있으십니까?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기막힘에… 얼마나 관심이 있으십니까?
벌써 오래되었지만 제가 수술받고 얼마 안되었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어떤 분이 병원에 입원해 있었는데 교회에서 미처 알지 못하고
병원 심방을 못했던 모양입니다.
"목사는 뭐하면서 내가 아파서 입원해 있는데 심방도 오지 않느냐"고 투덜대더랍니다.
그 말을 듣고 저는 "아니 나 아플 때는 왔었나"하는 생각이 들며 화가 났습니다.
여러분에게 묻고 싶습니다.
여러분은 사랑하는 친구들이, 교회 믿음의 형제들이 슬픔을 당했을 때
얼마나 함께 슬퍼하셨고 동참해 보셨습니까?
다른 사람의 슬픔에 함께 눈물을 쏟았던 적이 있어야
자신의 눈물에도 함께 눈물 쏟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신앙생활하는 사람들은 받았기 때문에 갚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최소한 받은 사랑만큼이라도 갚을 줄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선교회원들, 속도원들이 함께 눈물을 흘려주었다면
최소한 받은 것만큼은 해야 합니다. 나 몰라라 하면 안됩니다.
여러분은 어떤 분이십니까?

본문의 네 사람은 이웃의 친구의 아픔을 자신의 아픔으로 여겼습니다.
그런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병이지만
'저 사람의 병을 낫게 해야겠다'는 사명의식이 있었습니다.
'사명'의 '사'는 심부름 할 때의 '사(使)'자요, '명'은 목숨 '명(命)'자입니다.
'사명의식'은 '내가 이 일을 꼭 해야 된다, 목숨을 걸고 내가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하여금 지금/이 시대에/여기에 살게 하시고
저 사람을 만나게 하신 것은 분명히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기신 일이 있다는
사명감이 있어야 일하는 것입니다.
온갖 방해와 장애를 무릅쓰고 중풍병자를 예수님 앞으로 데려가기 위해
사람들을 헤치고 가다 그것도 안되니까 지붕으로 올라가 지붕을 뜯어서
그 안으로 환자를 내린 이 4사람에게는 사명의식이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그들이 믿음으로 가진 사명의식이 있는 것을 보셨습니다.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사람을 사랑해야 할 사명감을 가져야 합니다.
이는 첫째 되는 큰 계명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눅10:27)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네 사람은 귀한 일을 하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습니다.
대부분 좋은 일을 행한 사람들의 특징이
자신의 이름을, 얼굴을, 선행이 드러나기를 좋아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 4번에 걸쳐 <계간기둥>이라는 회보가 나옵니다.
그런데 그 책을 받은 분들은 교회 행사가 어떤 것이 있었나 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얼굴이 책에 나왔나 안나왔나 살핀답니다.
그 대표적인 예로 허경제목사님이
자기 얼굴이 한번도 안나왔다고 하면서 책을 뒤적거리기에
제가 담당자에게 다음에는 허목사님 얼굴을 크게 내 주라고 했습니다.
목사님도 이런데 여러분이라고 안그러겠습니까. 사람의 마음은 다 이렇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보면, 예수님 외에는 집 주인도,
중풍병자를 메고 온 4사람도 이름이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헌신은 이런 것입니다.
가버나움의 네 사람! 성경에는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이 어떤 복을 받았는지, 그 후 어떤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서도 침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그들의 이름이 성경에는 없다 할지라도
하늘나라 생명책에는 기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삶을 살다가 기둥같은 믿음의 삶을 살다가
하나님 나라에 갔을 줄 믿습니다.
말은 쉽습니다.
"멸시천대 십자가는 제가 지고 가오리다 / 아골골짝 빈들에도 복음들고 가오리다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 이름 없이 빛도 없이 감사하며 섬기리다"
라고 찬양하는데… 말로는 쉽습니다.
그러나 자신의 이름을 드러내지 않고 낮은 자리에 처한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또한 이 네 사람들은 믿음을 소유한 행동가들이었습니다.
네 사람들은 예수님의 소문을 듣고 토론하거나 장시간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환자를 침상에 누인채 메고 예수님께 나갔습니다.
그들은 중풍병자를 메고 가는 일이 어렵고, 창피하다는 생각도 없이
불평하거나 짜증을 내거나 돌아서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많은데 어떻게 들어가느냐고 머뭇거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예수님이 계시다는 곳에 가보니
수많은 사람들이 집 문을 가로막고 있었습니다.
이쯤 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상황이/형편이/조건이… 하면서 그 일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 네 명의 친구들의 눈에는 오직 예수님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께 가까이 가기만을 위해 힘썼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은 지붕을 뚫었습니다.
예수님만이 문제 해결 자, 병 고칠 수 있는 분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의심의 마음이 있었다면 어떻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겠습니까.
믿음을 가진 그들은 사랑을 구체적으로 행동으로 실천한 사람들입니다.
오늘은 거룩한 주일입니다.
교회에 나오는 데도 이런 저런 방해가 있었을 것입니다.
사람이 가로막고, 일이 가로막고… 그러나 여러분은 그런 것을 다 헤치고
예배의 자리에 나오셨으니 잘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 하나님을 위해, 예배드리기 위해, 섬기기 위해…
희생하고, 포기하고, 드리고, 섬기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구체적인 섬김의 행위를 보여 주기 원하십니다.
예수님은 그 사람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에 걸린 사람의 문제를 해결해 주셨습니다.
"침상에 누운 중풍병자를 사람들이 데리고 오거늘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안심하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 (마9:2)
예수님은 중풍병자를 달아내린 4사람의 믿음을 보셨는데
해결은 중풍병자가 받았습니다.
육체의 병든 자, 영적인 병든 자를 위해
희생하고/애쓰고/섬김의 자리에 있고/낮은 자리에 있으면
그 수고를 보시는 분이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보통 사람들은 대부분 사람의 외모와 그의 행동을 먼저 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셨습니다.
여러분은 사람들이 여러분을 바라볼까봐 치장을 하고 오셨는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여러분의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삼상16:7)
그 마음 속에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 지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우리 교회를 건축하고 있을 때의 일입니다.
여름이었는데 어떤 여자 청년이 배꼽을 드러내고 예배 드리러 왔습니다.
안내위원들이 놀라서 "이런 차림으로는 예배 드리기 곤란하다"고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청년이 "하나님은 중심을 보시는 분 아니냐"고 대답하더랍니다.
하나님이 보시는 중심이 배꼽이 아닙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고 행동을 볼 지 모르지만 하나님은 중심의 믿음을 보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의 중심이 하나님께 보여질 때 부끄럽지 않은 믿음이 되시기 바랍니다.
병자는 홀로 걸어서 예수님께로 갈 수 없었기에 도움이 필요했고,
그 도움 때문에 예수님을 만나 병 고침을 받은 것처럼
이 시대에도 주님 앞에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
교회에 자기 발로 오지 못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사실 교회에 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가운데도 교회에 처음 오려했을 때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는 다 같은 마음으로 모인 사람들입니다.
교회에 처음 오는 것이 어색하고 낯설은 사람이
선교회로/속회로/찬양대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습니다.
교회는 끈끈한 정으로, 친함으로, 허물없는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얼마나 친한 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똘똘뭉쳐 있는 것 때문에 낯선 사람이 그 속에 들어가기가 힘들고,
여러분이 잘 어울려 있고 조화된 곳에 새신자가 들어가기가 어렵습니다.
심지어 어떤 속회에서는 자기 속회를 갈라놓지 말라고 협박(?) 하기도 합니다.
바로 그런 것 때문에, 예수님 곁에 바짝 붙어 있는 사람들 때문에…
중풍병자가 예수님 곁으로 쉽게 다가서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잘 믿는 사람, 먼저 믿은 사람, 예수님 곁에 있는 것 같은 사람 때문에
중풍병자와 같은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서지 못합니다.
교회에 쉽게 적응하지 못합니다. 교회는 혼자 오기가 어렵습니다.
때로는 영적인 중풍병으로, 죄의식 때문에, 용기가 없어서…
교회에 혼자 나온다는 것이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이들을 교회에 데려올 수 있는 4사람이 필요합니다.
마치 중풍병자를 침상에 눕혀서 들고 예수님께 나오듯이
왕을 받들 듯 섬김의 모습으로 정성을 다해 예수님 앞에 내려놓을 때까지
병고침을 받을 때까지 그 잡은 줄을 놓지 말고 잘 잡고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새신자영접위원들이나 전도사님들, 지역장들은
새신자에게 신경을 많이 써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작은 협력의 손길을 보시고 역사 하십니다.
기둥교회는 바로 그런 사람들의 마음과 손길들의 희생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가족들도 한 마음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도울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정에 장병에 고생하는 분들 계십니까. 돌보시느라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그렇게 정성스럽게 간호하고 돕는 것, 그 애쓰는 수고가 헛되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들도 한 마음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4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이 4사람이 되어야 내게도 다른 4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셨습니다.
"…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7:12) 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가 받은 사랑은 귀합니다.
그러나 내가 남에게 베풀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제가 지난 5월에 캐나다에 부흥회를 갔습니다.
첫날 저녁에 설교를 마치고 그 교회에서 숙소에 데려다 주었습니다.
새로 생긴 호텔에 숙소를 정해 주었는데 교회하고는 거리가 꽤 멀었습니다.
둘째날 저녁에 설교를 마치고 교회에서 데려다 준다는데도
캐나다에 간 이면규전도사님이 자기가 차를 태워다 준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전도사님이 운전을 하는 차에 타고
호텔로 가는 길 이름을 적고 호텔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 전도사님이 호텔을 찾지 못하는 것이었습니다.
밤은 깊어가고 저는 피곤한데 호텔로 가는 길을 못찾고 계속 빙글 빙글 돌았습니다.
전화를 걸어 물어보라고 했더니 전화기에 배터리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이 전도사님이 공중전화에 가서 전화를 하고 있을 때
순찰중인 경찰이 보이기에 제가 다가가서
제가 묵는 호텔이름을 가르쳐 주며 어디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새로 생긴 것이라 그 경찰도 모른다고 하면서
다른 사람에게 무전을 쳐서 알아보는 것이었습니다.
알고보니 제가 호텔로 가는 길 이름을 잘못 받아 적었던 것입니다.
그 경찰이 제게 '길을 가르쳐 줄테니 가겠느냐,
아니면 내가 앞에서 인도할 테니 따라 오겠냐'고 하기에 얼른 따라 간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경찰의 안내를 받아 호텔까지 갔습니다.
얼마나 고맙던지요. 그래서 제가 가만히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이 제게 길을 물으면서 저와 똑같은 상황을 만나게 됐을 때
저라면 과연 그 늦은 시간에 그 사람을 목적지까지 데려다 줄 수 있겠는가… !
여러분 잘 들으세요.
내가 받는 사랑은 고마운 줄 알지만 내가 베풀기는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서,일터에서, 교회에서 <4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4사람이 있기를 바랍니다.
없다면 여러분이 잘못 산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4사람>이 있는 것 감사하고, 여러분이 <4사람>이 되기를 결단해서
하나님과 사람 앞에 부끄러움 없는 믿음의 사람으로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
전능하신 하나님, 은혜와 사랑을 감사합니다.
이 거룩한 주일에 예배의 자리에 있게 하신 것 감사합니다.
우리가 4사람 되게 하시고 우리 곁에 4사람이 있는 삶이 되도록
연약한 우리들을 도와 주시옵소서.
우리로 인하여 구원 받은 사람이 있고,
우리로 인하여 은혜 받은 사람이 있고,
우리로 인하여 치료함 받은 사람이 있게 우리들의 삶을 새롭게 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2005년 8월 21일 주일낮설교> 
(고 신일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