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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큰 믿음'의 사람 (마 9:27-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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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약이 남이 나를 신앙적으로 평가해준다면, 여러분은 어떤 평가를 받고싶으십니까? 만약 주님께서 나를 평가하신다면, 어떤 평가를 내려주기를 바라십니까? 저는 남으로부터 그 어떤 것보다도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김충현, 그 사람은 큰 믿음의 사람이었어, 믿음의 거목이었어’라는 평가를 받고 싶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삶을 평가하는 유일한 잣대가 ‘믿음’입니다. 히11장에 보면, 구약의 쟁쟁한 신앙의 인물들이 열거되는데, 그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믿음으로’ 살았고, 주님께서도 그들의 삶을 ‘믿음으로’라는 한 단어로 정리하고 평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얼마나 공부를 많이 했는지, 돈을 많이 벌어서 얼마나 재력이 탄탄한지, 세상적으로 얼마나 높은 지위에 올랐든지, 외모가 얼마나 출중한지’로 우리의 삶을 평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과 상관없이 얼마나 믿음으로 살았는지, 오직 이 것 하나로 평가하십니다. 믿음 한 가지만 보십니다.

    그렇다면 오늘 주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 나를 보실 때 ‘믿음의 사람’이라고 인정하실만큼, 오늘 우리는 믿음으로 살고 있습니까? 믿음으로 살고 있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사람이 된다는 것은 ‘나의 가능성’을 뛰어 넘어서 ‘하나님의 가능성’ 속에 사는 사람이 되는 것을 뜻합니다. ‘나의 가능성’ 속에만 머물러 있는 사람은 진정한 의미에서 믿음의 사람이 아닙니다. ‘나의 가능성’을 뛰어 넘어서 ‘하나님의 가능성’을 지향하고 그 안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을 체험하는 사람이 진정한 믿음의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을 ‘큰 믿음’의 사람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찾으시는 사람도 바로 이런 사람입니다. 주님께서는 ‘큰 믿음’의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오늘 본문이 그 증거입니다. 예수님께서 길을 가실 때 2명의 소경, 시작장애인이 따라오면서 소리를 질렀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그들의 외침은 여러 각도를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병을 잘 고치신다니 밑져야 본전이 한 번 소리나 질러보자’ 일 수도 있고, ‘되든 안되든 도전이나 해보자’ 일 수도 있고, 의심반 믿음반 메시야, 하나님의 아들로 생각하고 ‘한 번 믿어볼까’ 하고 예수님을 불러본 것 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정말 믿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 소리질른 것만 가지고는 정확한 판단이 불가합니다.

    사실상 예수님을 한 번 불러본다고 해서 자신들이 수십년간 앓아왔던 질병, 눈먼 것이 고쳐진다는 것은 이성적으로 불가능한 일입니다. 한 두 번 생각하고 믿어볼 수는 있지만, 자신의 병이 낫게 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의 가능성’에만 머물러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이 지나가신다는 소식만을 듣고도, 그들은 ‘자기의 가능성’을 훌쩍 뛰어 넘었습니다. 곧 ‘큰 믿음’의 소유자들로 변해버렸습니다.

    그들이 ‘큰 믿음’을 가졌다는 사실은 28절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집에 들어가셨을 때 그들이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확인작업에 들어가셨습니다. “내가 능히 이 일 할 줄을 믿느냐” 믿음의 확인점검을 하셨습니다. 그 질문을 받자마자 그들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주여 그러하오이다” 이미 그들은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세상적으로 치유가 불가능한 일이지만, 예수님은 치유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이것이야말로 ‘큰 믿음’이었습니다.

    아마 예수님 주변에 있는 제자들, 사람들은 그 소명, 시작장애인들을 비웃고 조롱했을지도 모릅니다. ‘저 상태에서 무슨 병을 고치겠다고, 염치없이 예수님을 찾아왔을까?’ 비난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이미 큰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예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예수의 질문에 대해 즉각 대답했다. “주여 그러하오이다”

    그러자 예수님은 그들의 눈을 만지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이보다 더 큰 축복은 없습니다. ‘너희가 큰 믿음을 가졌으니, 그 믿음대로 되라.’ 그래서 그들의 눈은 밝아지게 되었습니다(30절). 예수님은 아무에게도 알라지 말고 명령하셨지만, 병고침을 받은 사람을 너무나 큰 체험을 한 나머지 감격해서, 예수님의 말씀도 잊어버리고 예수님의 소문을 온 땅에 전파했습니다.
    예수님이 두 사람의 병을 고치실 수 있었던 동기는, 그들이 ‘큰 믿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아무리 전능하신 분이라고 해도, 그들이 그런 ‘큰 믿음’을 가지고 나아오지 않았더라면, 그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가질 수 없었던 ‘큰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를 향해서 나왔기 때문에, 예수님은 그 믿음대로 행하셨습니다.

    오늘 우리를 향해서 다가오시는 주님도 마찬가지입니다. 두 맹인이 고침을 받을 때나 오늘이나 주님은 똑같이 전능하신 분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다가오실 때, 우리에게서 믿음을 보시는데, 세상사람들이 갖고 있는 일반적인 믿음을 보시는 것이 아니라, ‘큰 믿음’을 보십니다. ‘나의 가능성’을 뛰어넘어서 ‘하나님의 가능성’을 가진 믿음을 찾고 계십니다. 우리가 그런 믿음을 가지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그 믿음대로 역사하십니다.

    저는 우리 교우들이 전부 다 ‘큰 믿음’의 사람들이 되기를 원합니다. 단순히 저의 소원이 아니라 여러분을 사랑하시는 주님의 소원입니다. 우리 교회가 ‘큰 믿음’의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우리 교우들의 ‘큰 믿음’을 보시고, 믿음대로 되는 역사를 꼭 이루시기를 원합니다. 무엇이든지 믿음대로 된다고 생각해보십시요. 얼마나 감격적입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도 기뻐 어쩔 줄을 몰라서 당장 밖에 나가서 전도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큰 믿음’의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1. ‘큰 믿음’의 사람이란 기대를 크게 품는 사람입니다.
    기적은 기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기대를 적게 품으면 그만큼 밖에는 일어나지 않지만, 기대를 크게 품으면 그만큼 역사가 일어납니다. 본문의 두 맹인은 기대를 처음부터 크게 품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우리는 눈을 뜰 수 있다’ ‘예수님은 우리를 고칠 수 있다’ 남들은 도무지 상상할 수 없는, 큰 기대 수준을 가지고 나아왔을 때, 그 기대대로 되었습니다.

    오늘 여러분은 주님 앞에 나아오실 때 어떤 기대를 가지고 나아오셨습니까? 지난 주에 받았던 똑같은 은혜를 기대하면서 나오셨습니까 아니면 그것보다 더 큰 기대를 하고 나오셨습니까? 어쩌면 아무런 기대감이 없이 나오신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교회는 매주일 나와야 하는 것이니까, 안나오면 죄지은 것 같으니까, 습관적으로 나와서 앉아계신 분도 있을 수 있습니다. 만약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런 은혜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냥 왔다가 그냥 돌아가게 됩니다. 얼마나 손해입니까? 꼭 기억하십시요. 주님 앞에 나오실 때는 반드시 기대를 가지고 나오셔야 합니다. 기대를 가지되, 큰 기대를 가지고 나오셔야 합니다. 우리가 큰 기대를 가진다고 해서 주님께서 나무라거나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주님께서 우리가 큰 기대를 가지고 나오면 나올수록, 크게 기뻐하시고 우리를 향해서 이렇게 선언하십니다. ‘너희 믿음대로 되라’, ‘너희 기대대로 되라’

    몇 년 전에 미국의 한 유명한 골프 선수가 사우디아라비아 왕의 초대를 받았습니다. 왕은 자신의 전용 비행기를 미국까지 보내서 그를 데리고 왔습니다. 둘은 며칠 동안 골프를 즐기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골프 선수가 돌아갈 때가 되자, 왕은 비행기에 오르려는 그를 세워 놓고 물었습니다. “귀중한 시간을 내서 저를 찾아 주셨으니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말씀하십시요.” “아닙니다. 이렇게 환대해주신 것으로 충분합니다. 제가 무엇을 더 바라겠습니까?” 그러나 왕은 고집을 꺽지 않았습니다. “아닙니다. 꼭 선물을 드리고 싶습니다. 그래야 선생님이 이 여행을 평생 기억하실 테니까요” 골프 선수는 왕의 고집을 꺽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골프채가 좋겠습니다” 고국으로 돌아오는 내내, 골퍼는 왕이 어떤 골프채를 보낼까 궁금해서 견딜 수 없었습니다. ‘내 이름을 새긴 순금 골프채? 다이아몬드와 보석이 여기 저기 박혀 있는 골프채? 세계 최고 갑부인 사우디아라비아왕이 보내는 선물은 얼마나 대단할까?’ 집에 돌아온 골퍼는 날마다 우편함을 확인했지만 골프채는 좀처럼 도착하지를 않았습니다. 마침내 몇 주 후에 사우디아라비아 왕이 서명한 편지가 도착했습니다. 아니, 기대하던 골프채는 어디 가고 달랑 편지 한 장이라니! 그는 실망하면서 편지를 열었습니다. 그 안에는 과연 무엇이 있었을까요? 놀랍게도 안에는 미국에 있는 커다란 골프 코스를 선물로 주는 기증서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 골퍼는 골프채를 기대했지만, 그가 실상 받은 것은 그 이상이었습니다.

    [긍정의 힘]이란 책을 쓴 조엘 오스틴 목사님은 이런 말을 했습니다. “기대 수준을 높이라. 우리 인생은 꿈보다는 ‘기대’를 따라간다. 기대한만큼 이룬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은 우리의 기대 이상입니다. 그러므로 큰 기대를 하면, 그 기대 이상으로 주십니다. 그러나 기대가 없으면, 주시는 것도 없습니다. 오늘 이 순간 이후부터 전능하신 주님을 향해서 ‘큰 기대’를 품으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기대한만큼, 더 나아가 기대한 것 이상으로 주시는 은혜를 꼭 경험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큰 믿음’의 사람이란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사람입니다.

    사람의 얼굴을 보면, 그 사람의 인생을 다 읽어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성공할 인생인지, 실패할 인생인지, 얼굴을 보면 드러납니다. 요즘에는 인상학이란 분야도 생겨났다고 하는데, 얼굴에 나타난 인상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성공할 인생은 얼굴에 긍정이란 파운데이션으로 화장이 되어 있고, 실패할 인생은 얼굴에 부정이란 파운데이션으로 화장이 되어 있습니다.

    본문의 주인공, 두 맹인은 예수님의 소식을 듣고 예수님 앞에 나올 때의 얼굴을 한 번 상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얼굴을 하고 나왔겠습니까? 괴로운 얼굴, 체념적인 얼굴, 인상쓴 얼굴, 이마 내천자를 한 얼굴, 될대로 되라의 얼굴, 절망의 얼굴이었겠습니까 아니면 활짝 핀 얼굴,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흥분된 얼굴, 소망의 얼굴이었겠습니까? 그들은 예수님께 나아오는 순간, 부정적인 마음은 다 버렸습니다. 쓰레기 버리듯이...... 그리고 예수님 앞에 나아올 때 긍정적인 마음으로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우리가 언제까지나 이렇게 살라는 법은 없어. 주님이 우리를 고쳐주실꺼야. 지금은 우리가 이렇지만 앞으로 더 나은 미래가 있을꺼야’ 미래를 긍정적으로 보는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 더 크게 소리를 지른 것입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이것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한 희망의 부르짖음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만나는 순간, 부정적인 장벽을 다 허물어 버렸습니다. ‘우리 안될꺼다. 우리는 못할꺼다. 이런 형편에서 무엇이 가능하겠느냐. 그냥 가만이 있자’ 그동안 쌓아왔던 모든 부정적인 장벽을 한순간에 다 허물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이후로 생각을 완전히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의 가능성에 생각의 초점을 맞추고 긍정적으로 미래를 바라보았을 때, 광명의 미래를 보게 되는, 믿음대로 되는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추진할 때, 어떤 사람은 꼭 문제점은 바라보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래서 안되고, 저래서 안되고......’ 그런 사람은 문제점만 나열하다가 아까운 세월 다 흘러보내고 맙니다. 모든 일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는데, 부정적인 면만 바라보는 사람은 그 것만 바라보다가 결국 아무 일도 못합니다. ‘큰 믿음’의 사람이 되려면, 문제점만 바라보는 사람, 부정적인 면만 바라보는 사람으로부터 한 단계 도약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도우셔서 가능하게 만드시는 하나님’,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 만들어가실 영광의 미래, 찬란한 미래’를 바라보고 계속 긍정하면서 도전하는 자아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구약의 아브라함, 모세, 여호수아와 갈렙...... 이런 사람들이 다 ‘큰 믿음’의 사람들 아닙니까? 여러분도 그런 사람입니다.

    주님께서 사랑하는 서울중앙교회 교우들에게 오셔서 이런 질문을 하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지금부터 30년 후에 서울중앙교회가 대한민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가장 위대한 교회가 될 것을 믿느냐?’ 주님께서 지금 나에게 개인적으로 오셔서 이런 질문을 하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앞으로 너는 세상사람들의 머리가 될 것이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이 베푸는 사람이 될 것이고, 믿음의 가문 3대, 4대, 5대 계속 번성할 것이고, 세계에서 가장 큰 믿음의 부자가 될 것을 믿느냐?’

    ‘작은 믿음’의 사람에서 ‘큰 믿음’의 사람으로 도약하시고, ‘좋은’ 신앙인에서 ‘위대한’ 신앙인으로 도약하셔서, 눈먼 자가 다시 보게 되는 놀라운 기적을 삶 속에서 날마다 경험하시는 은혜와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김충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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