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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천국과 지옥은 어디에 있는가 (눅 15:25-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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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제15장에 기록된 탕자에 대한 비유는 우리 모든 성도, 우리 모든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는 하나님의 귀한 메시지입니다. 어느 아들은 잘하고 어느 아들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맏아들이나 둘째 아들이나 모두 하나님 앞에 잘못된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아버지를 떠난 둘째 아들이 오랜 방탕의 생활을 끝내고 지옥 같이 저주받은 곳에서 아버지 품안으로 돌아옴으로 천국이 이루어 졌습니다. 잃었던 것을 찾고, 한없는 기쁨과 부유함, 사랑과 행복을 찾았습니다. 천국이 주어졌습니다. 아버지를 떠나면 지옥입니다. 아버지 없는 삶은 어디나, 누구나 지옥인 것입니다. 아버지께 돌아와 모든 것을 회복하였습니다. 아버지는 기뻐하였습니다. 아버지의 기쁨이 어디에 있습니까? 아버지로 말미암아 기뻐하는 자에게 아버지의 기쁨이 있습니다. 아버지와 만나는 모든 곳에는 아버지의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도 우리와의 만남, 이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은 가장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가 찾아오는 곳에 계시고 우리가 아버지를 찾을 때 하나님은 기뻐하십니다. 그러나 오늘 이 본문에 기록된 말씀은 맏아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둘째 아들이 돌아왔지만 기쁨이 없습니다. 잔치를 베풀었지만 잔치에 참여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불평ㆍ불만 하였습니다. 아버지와 함께 부족함이 없이 살았거늘 그의 마음은 닫혀 있었습니다. 아버지를 떠나지 않고 아버지와 같이 있지만 아버지를 마음에 모시지 않는 삶은 지옥인 것입니다. 아버지를 멀리 떠났다고 해서 지옥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지옥 같은 교인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그래서 맏아들을 유대인에 비유하고 있고, 맏아들을 하나님 잘 믿는 사람에게 비유하고 있는 이유가 거기 있는 것입니다. 주의 종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축복받은 성도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축복을 받아도 그 마음에 천국이 없는 사람은 지옥인 것입니다. 주의 영이 내 마음에 거하지 아니하시면 기쁨을 기쁨으로, 감사를 감사로 모르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누구보다 더 기뻐해야 할 아들에게 한 마디의 기쁨도 없습니다. 자기가 잔치를 베풀어서 잔치를 해야 될 터인데 자기는 뒤로 빠지고 오히려 뒤에서, 밖에서 불평ㆍ불만 하였다는 것이 본문에서 지적하는 말씀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주의 말씀에 중심해서 10가지로 이 맏아들의 잘못된 것을 지적하면서 우리 모든 성도들이 교회 안에서 지옥 같은 삶을 탈출하여 돌아온 아들도 아들이지만 집안에 있는 아들도 참 아들의 위치로 돌아가는 귀중한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첫째로 맏아들이 잘못한 것은 자기는 잘했다는 것입니다. ‘나는 의롭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언제나 한 가족의 공동체, 하나 됨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람이 있는 곳에는 절대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나는 허물이 많고 당신은 의롭다고 말하면 언제나 하나가 될 수 있는데, 나는 의롭고 너는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곳에는 어떠한 사회, 어떠한 모임이든지 그 곳에는 분열과 아픔, 불행이 있게 됩니다. 가정의 분열도 모두 하나입니다. 나는 잘했는데, 나는 아무 허물이 없는데 당신이 문제가 있다고  하는 곳은 오래 갈 수 없습니다. 이것은 신앙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가 의로워도 조금 의로운 것이지 조금 의로운 것은 의로운 것이 아닙니다. 조금 잘하는 것은 절대 잘하는 것이 아닙니다. 완전히 잘하는 사람은 이 지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내가 집 안에서 부모님으로부터 받은 은혜가 많을 뿐이지 내가 잘한 것을 내어놓은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 아들은 잘못된 생각과 말을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남이 잘되고, 번성하며 축복 받는 것을 기쁨으로 받아드리지 않고 감사하지 않는 삶, 이것이 바로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천국은 함께 기뻐하고, 함께 가서 감사하고, 하나님께 함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지옥에는 누가 들어갑니까? 온갖 이기적인 욕심에 의해서 나만 잘되고 남이 잘되는 것 싫어하고 나 혼자 중심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삶이고 땅에서도 지옥같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을 좋아하고 남이 잘 되기를 기뻐하고 축하해 주며, 기도해 주는 것이 성도의 삶인 줄 믿습니다. 모든 사람이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 여기에 자기의 행복이 있습니다. 천국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계신 곳은 반드시 그렇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아직까지도 여러분
이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잘 되는 것을 보고 마음이 편치 아니하면 여러분은 깊은 회개의 자리로 들어가야 합니다. 오랜 자기와의 오랜 싸움에서 내 영혼을 천국으로 회복하는 날이 속히 와야 합니다. 많은 기도와 눈물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은 많은 회개가 필요한 것입니다.

세 번째, 고립주의ㆍ폐쇄주의는 지옥입니다. 동생도 나쁘고 아버지도 나쁘다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에게까지 이렇게 잘못되었다라고 말하는 이 아들은 심히 나쁜 것입니다. 정말 욕하는 사람, 심지어 하나님도 욕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하나님에게 책임을 전가합니다. 에덴동산을 보십시오.
‘아담에게 너 왜 그랬느냐?’ 그러니까 ‘내가 그랬습니까? 내가 만들어 달라고 그랬습니까? 하나님이 이브를 만들어 주지 않았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고 책임 전가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모두가 밖에 잘못이 있습니다. 형제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쁨이 되는데 형제의 기쁨을 몰랐습니다. 부모님이 계시는 것이 얼마나 축복이 되는데 부모님이 계시는 기쁨을 몰랐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사는 것이 얼마나 좋은 세상인데 이 좋은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전부 다 싫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의 문제가 어디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모두 싫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자식도 싫다는 것입니다. 결혼도 싫다는 것입니다. 전부 다 싫다는 것입니다. 사는 것도 싫다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가 어떻게 좋은 나라를 만들어 가고, 미래에 세계를 향하여 복의 근원이 될 수 있겠습니까?

네 번째, 이 아들은 자기반성이 없었습니다. 하나님 앞에는 언제나 ‘내가 잘못했습니다.’ 는 고백을 해야 은혜를 받습니다. 그럴 때 천국이 이루어질 줄로 믿습니다. 잘 한 사람이야 한 명인들 있겠습니까? 주님 앞에 나와서 고개 숙여 보면 다 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행복하고 은혜를 받습니다. 저도 하나님 앞에, 강단에 설 때마다 지난 일 주일을 되돌아보면 또 부족한 것입니다. 내가 십계명을 범죄 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늘 부족하니까 뒤돌아보면 하나님 앞에 허물이 있어 반성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은혜가 강물처럼 내 심령에 솟아나는 줄로 믿습니다. 이 땅위에 다른 분의 잘못은 없습니다. 내 잘못 뿐인 것입니다. 이렇게 찾는 사람,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은 세상 모두가 좋습니다. 다 형제, 자매가 될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자신이 가장 부족하고 죄인이라고 생각하면 교회의 모든 성도가 천사가 되고, 형님이 되며, 성도가 될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내가 제일 부족하다고 하면 행복한 가정이 됩니다. 행복한 동리(洞里)는 죄인들만 산다는  말을 들어보지 않았습니까? 모두 죄인들만 모인 집은 행복합니다. 며느리가 그릇을 깨뜨리니까. 다 내 잘못이라고 말합니다. 동리에 문제가 있으니 다 내 잘못이라고 그러니 그 동리에 평화가 오더라는 것입니다. 나는 잘했고 이웃집은 잘못됐다고 말하는 곳, 그 동리에는 항상 지옥이 됩니다. 마귀가 역사합니다. 우리 가정에 다 의인만 있으면 가정에 편할 날이 하나도 없습니다. 다 의인만 있다고 말하고 다 잘한 사람만 있다고 하는데 어떻게 그 가정에 평화가 있을 수 있겠습니까? ‘주여! 나는 죄인입니다.’ 이 기도 하려고 교회 나오는 것입니다. 이 고백하려고 나옵니다. 그 말 한 마디만 하면 백 마디 하나님 앞에 변명하고 무슨 좋은 천사의 소리하는 것보다 그 한 마디로 인해 천국 문이 열려진다는 것입니다.

다섯 번째, 그에게는 희망이 없었습니다. 미래를 전혀 말하지 않았습니다. ‘동생, 이제 왔구먼. 우리 함께 살자. 재산 잃었지만 같이 살면 돼. 내가 논 줄게. 이것 가지고 삼 년만 농사지으면 잘 살 수 있어. 아니 동생은 사업하는 은사가 있잖아.’ 그거 하자고. 같이 한번 해보자고. 우리 미래를 향하여 가자고. 우리 한 번 잘살아 보자. 아버지 우리 한번 같이 합시다. 그러면 힘을 모아서 세계를 향하여 나갈 수 있습니다. 이 형님은 과거만 뜯어내는 것입니다. 너 이 자식, 집 나가서 돈 다 없이 하고, 전부 과거만 비판할 뿐이지 미래를 말하지 않습니다. 여기에 지옥이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앞으로 가게 되어져 있습니다. 이 땅 위에 있는 생명이 앞 만 보도록 지음 받은 것은 사람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보십시오. 이렇게 살아가는 생명이 어디 있습니까? 코끼리, 아래만 보고, 사람만 멀리 미래를 바라보도록 지어진 것입니다. 할렐루야! 눈을 앞으로 온전히 온 얼굴 전체를 앞만 보도록 만들어 주셨습니다. 앞으로 가야 합니다. 가자. 가자. 바다로 가자. 푸른 바다 물결치는 희망의 나라로!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희망의 나라로, 우리의 부족함이 있어도 앞으로 가면 다 고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은 완전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크는 것입니다. 크면 지난날은 다 고칩니다. 그 자리에서 고치려고 하면 절대로 고치지 못합니다. 앞으로 나가면 다 됩니다. 우리 모두 함께 서로 서로 용기를 주고, 앞으로 나아가는 성도들 되기 바랍니다. 저는 우리나라 강남 사는 사람은 다 죄인이 되는데 저는 이런 문제에 대해서 그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강남을 없애버리는 것보다 강남을 우리가 막 증오하고 미워하는 것보다 우리 모두 이 나라를 강남으로 만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강동도 강남으로 만들자, 나쁠 게 뭐가 있습니까? 우리나라는 지금 세계가 앞으로 가고 있는데 몇 십 년 동안 개혁만 하고 자꾸 과거만 들추어내니 저는 너무 안타깝습니다. 이 민족만 그렇게 과거가 나쁜 민족입니까? 그래서 저는 전에 한 번 국가 조찬기도회에 마침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저 옆에 마침 대통령이 앉아 계셔서 제가 귀에대고 이런 기회가 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에 간절하게 이야기했습니다. ‘각하, 너무 그렇게 청와대에만 계시면 답답하고 피곤하니까 밖으로 나오셔서 박정희 대통령같이 지휘봉을 들고 국민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이 국민 다 나쁘게 보지 말고, 농사짓는데 가서 논 있는 곳에 가서 농민들에게 용기를 주고 열심히 하십시오. 그리고는 또 비행기를 타고 전방에 가서 군인들에게 잘한다고 군인들에게 용기를 주고 같이 밥 받아먹으면서 좋은 이야기 나누고 공장을 다니면서 공장마다 근로자들와 기업주들에게 잘한다고 이 나라를 위해서 수고한다고. 좀 이렇게 많이 다니십시오. 헬리콥터를 타고 전국을 자꾸 다니면서 국민들에게 용기를 좀 주십시오. 이 안에 보니까 전부 나쁜 놈이구나. 이놈들, 이렇게 보지 마시고 모두 훌륭한 민족으로 한 번 용기를 주십시오’ 라고 제가 직접 말씀드렸습니다. 정말로 그랬습니다. 저는 그래서 우리나라 국정원이나 검찰, 경찰이나 군인, 이 네 곳을 너무 창피하게 만들고 내리치는 것은 반대입니다. 국정원, 미국에도 FBI가 있고 CIA가 있는데 지금 정보가 얼마나 중요한데 전부 만신창이로 자꾸 만들지 말고 이것 한 번, 두 번이지 몇 십 년 동안 나라를 지키는 군인, 경찰들에게 용기를 주고 보안을 해 나가야 이 나라가 잘 되지 다 나쁜 놈이라고 이름 바꾸자, 새로운 놈들 집어넣자고 합니다. 어디 정보를 전혀 모르는 놈이 들어가면 뭘 알겠습니까? 그 안에 있는 분들에게 용기를 주어서, 그 안에서 서서히 발전하면서 보완해 나가면 다 좋아질 텐데 너무 안타깝습니다. 그렇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이 만큼 4ㆍ50년 전 폐허에서 세계 열 번째 국가로 되었으면 잘한 것이 많이 있어서 올라왔지 다 못했으면 이 만큼 왔겠습니까? 우리 모두 서로 용기를 주십시다. 미래를 향하여 희망을 주십시다. 우리 민족! 여러분, 훌륭한 민족이라고 그러면 이 나라 사천 만 다 나쁜 놈이고 몇 명만 의로워서야 이 나라를 어떻게 잘 이끌어 가겠습니까? 항상 지도자들은 그런 생각입니다. ‘다 이 나라 다 나쁜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 세상 고쳐야 된다’고 하니, 참으로 나라가 너무 어려운 것입니다. 힘듭니다.

여섯 번째, 100% 이 분은 행복한데도 행복을 몰랐습니다. 아버지가 함께 하십니다. 아버지가 뭐라고 그랬습니까? 이 모든 것이 너의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건강의 복을 받았습니다. 참으로 부유한 복을 받았습니다. 동생은 가서 돼지가 먹는 쥐엄열매를 먹었지만 이 사람은 그런 것도 없이 집 안에서 잘 먹고 잘 살고 잘 입고 어느 하나 부족함이 없이 살았지만 그 고마움을 모르니 그게 지옥입니다. 자기가 받은 은혜를 모르면 그것이 지옥인 것입니다. 내가 지금 누리는 축복이 얼마나 큽니까? 건강하십니까? 큰 복입니다. 할렐루야! 며칠 전 지난 주일에 이지선양이 우리 교회에서 간증하고 갔습니다. 이지선양은 이화여대 4학년 다닐 때 오빠와 차를 타고 가다가 술 먹고 운전하는 차와 부딪혀서 이 차가 파괴되어 휘발유 통이 터지게 되었습니다. 큰 화상을 입었는데 신체에 50%가 다 타버렸습니다. 성한 곳이 하나도 없습니다. 눈은 눈썹 탄 것 말할 것도 없거니와 껌뻑일게 없습니다. 아래, 위가 다 떨어져 녹아 버렸습니다. 파리가 와도 이런 행동을 못합니다. 그런데도 이 사람이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내게 이런 시련을 주신 것은 이 땅위에 나보다 더 고통당하는 분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이런 시련이 왔다고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희망과 용기를 갖습니다. 지선이 같은 사람이 살 수 있겠습니까? 그 어려운 수술을 14번 겪으면서 수술 다 참아내고 지금 보스턴에 지금 유학하여 박사학위 받으러 간다고 합니다. 그 얼굴 참 들고 다닐 수도 없지만 용기와 희망을 갖고 감사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이 내게 새로운 생명, 덤으로 생명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이 생명이 너무 고마운 것입니다.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감사해야 할 것 아닙니까? 요즘 여성들이 조금 코 적으면 올리고 수술하고 빼내고 귀 가져다 붙이고 떼 냅니다. 지선이 생각해 보십시오. 그 코만 해도 얼마든지 될 수 있습니다. 뭐라도 할 수 있는데 왜 자꾸 코를 건듭니까? 수술하지 마십시오. 수술하지 말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합니다. 얼굴 보고, 거울보고 ‘오, 하나님! 원더풀’ 이렇게 만족하며 살아야 복을 받지 거울만 보면 낙심하고 좌절하면 어떻게 살 수 있습니까? 행복은 환경이 아닙니다. 마음인 것입니다. 천국은 여기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100% 재벌인데도 불만을 갖는 데야 방법이 있습니까? 이렇게 부족함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온통 불만입니다. 좋은 집이냐? 좋은 차냐? 아닙니다. 아무리 공부를 많이 해도 소용없습니다. 이 안에 천국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내 영혼이 은총 입어 중한 죄짐 벗고 보니 슬픔 많은 이 세상도 천국으로 화하도다
할렐루야 찬양하세 내 모든 죄 사함 받고 주 예수와 동행하니 그 어디나 하늘나라♪

주님과 함께 하는 곳, 천국인줄 믿습니다. 좋은 사람, 특별한 사람, 잘 난 사람, 유명한 사람 아닙니다. 마음 겸손하게 가지고 주님 모시면 날마다, 날마다 천국을 누릴 줄로 믿습니다. 충청도에 소금 장수가 있었습니다. 이 소금 장수는 너무너무 가난하여 소금 팔아서 먹고 사는데 아들 하나가 태어났는데 얼마나 머리가 좋고 영리한지 모릅니다. 양반 집 아들도 아니니까 글도 배우지 못합니다. 그런데 서당에 가서 밖에서 들으며 공부를 하는데 너무 잘하는 것입니다. 다 한문 천자, 이 천자, 맹자 다 외웁니다. 너무너무 총명합니다. 그래서 이 아버지는 이 아들을 한양으로 보냈습니다. ‘얘야, 너는 여기 있어 봐야 소금 장사 밖에 안 된다. 그러니까 한양 가서 네가 한 번 독자적으로 공부를 해 봐라.’ 그래
서 한양 와서 열심히 독학을 하고 고생을 해서 과거에 급제했습니다. 제가 쉽게 이야기를 해서 그렇지 긴 이야기입니다. 이 내용이 아주 긴 이야기를 짧게 줄이는 것입니다. 그래, 과거에 급제를 해서 나중에 관리가 되었습니다. 정승의 사돈이 됩니다. 좌의정의 사위가 됩니다. 사람이 너무 좋으니까 사위로 맞이하게 됩니다. 혼인날을 받아서 시골에 있는 소금 장수 부모님에게 보냈습니다. 그러나 옷을 입고 올라와서 사돈과 이야기하는데 소금장수 색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말하는 것 하나 하나가 금방 드러납니다. 세상에 이 정승이 그런 말 처음 듣습니다. 희한한 말들 다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누구냐고 알아보니 소금장수입니다. 파혼이 되고 결혼을 못하게 되었습니다. 온 집안에 난리가 났습니다. 딸이 막 절망하고 온 집안에 슬픔이 찾아 왔습니다. 큰일 난 것입니다. 집안 망신이 되고 이 딸은 이제 일생이 끝납니다. 저녁이 되었습니다. 딸이 모든 집안 식구들에게 말합니다. ‘오늘 저녁은 제가 대접하겠습니다’고, 모든 하인들에게도 자기의 말만 들으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아버지 상을 진수성찬 차리는데 뭘 빼느냐? 전부 소금을 빼고 반찬을 만드는 것입니다. 국도 소금을 뺍니다. 김치도 소금을 빼는 것입니다. 간장도 뺐습니다. 하여튼 짠 것을 다 빼냈습니다. 된장이고 뭐고 모두 짠 것을 빼 버리고 반찬을 해서 올리니까 아버지가 노발대발 하십니다. 이게 밥이냐고 내가 어떻게 이 맛도 없는 것 간도 맞지 않는 것을 어떻게 먹겠느냐? 라고 막 소리소리 지르는 것입니다. 누가 이렇게 했냐? 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딸이 나서서 이야기하는데 ‘저가 그렇게 했습니다.’ ‘이게 밥이냐? 어떻게 먹으라고 하냐?’ ‘아버님, 소금 없으면 못 잡수시지요? 그렇게 소금 장사 아들이라고 버릴 수 있습니까? 소금이 그렇게 중요하듯이 나는 그 분이 중요합니다. 나는 그 사람과 결혼하렵니다.’ 마음이 겸손합니다. 그래서 아버지를 설득해서 그 소금장수의 아들을 남편으로 맞이해서 잘 살았다는 그런 이야기입니다. 할렐루야! 사람은 별 사람이 없습니다.

일곱 번째, 내 마음 겸손하게 가지면 천국이 옵니다. 마음 높이면 뭐 잘 난 사람이다. 최고 다 잘 입어야 된다. 뭐 좋은 집에 좋은 차에 그런 마음을 먹으면 지옥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 모시고 살아가는 행복한 성도들 되시기 바랍니다. 예수 믿으면 왜 좋습니까? 주님이 계시니까 어디든지 행복하고 무슨 일이든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감당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 나와도 아버지와 함께 있어도 아버지의 은혜를 모르고 아버지를 영접하지 않고 아버지 없는 봉사, 아버지 없는 기도는 그게 지옥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예배를 드려도 아버지 없는 예배에는 참 기쁨이 없습니다. 불평, 불만이 많습니다. 성도는 다른 것이 성도가 아닙니다. 성도의 마음, 가슴 속에는 하나님이 함께 하셔야 합니다. 아버지 집에 와도 아버지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나온 모든 성도들에게 주님께서 여러분 안에 거하시기를 바랍니다.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나의 구주가 되셔서 내가 어떤 경우, 어떤 어려움을 만날지라도 주님이 나에게 은혜 주시고 함께하시는 그 은총으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거기에 천국이 있습니다.

여덟 번째, 이 아들은. ‘나는 뭐 했냐? 나는 왜 알아주지 않냐? 나를 위해서는 왜 염소도 잡지 않냐? 나를 위해 해주는 것이 뭐 있냐?’ 자꾸 이렇게 말했습니다. 자기가 뭔가 바라고 자기를 위해서 뭘 해주지 않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유명한 케네디 대통령을 여러분께서 잘 알지 않습니까?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 뭐를 해 주는가를 생각하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서 뭘 할까?’ 이런 생각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공산주의는 무엇입니까? 국가가 다 해주는 것입니다. 가만있어라. 다 공부 시켜줄게. 다 먹여줄게. 다 입혀줄게. 양식 다 대줄게. 다. 다 줄게. 이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기독교 국가는 그렇지 않습니다. 기독교 국가는 내가 나라를 위해서, 내가 세계를 위해서, 내가 나라와 민족, 이웃과 한국 교회, 온 인류를 위해서 내가 하겠다는 것입니다. 내가 은혜 받았다는 것입니다. 믿으시면 아멘하시기 바랍니다. 누가 나 위해 안 해주나? 교회도 늙고 병든 교회는 ‘아휴, 목사님이 우리 위해서 뭐 안 해주냐? 누가 우리 교회 위해서 안 해주냐?’ 남에 대해서는 비판하고 바라는 것은 많으면 병들었다는 것입니다. 오늘 이 민족이 상당히 병이 들었습니다. 사람은 우리의 사명을 가지고 내가 무슨 일을 해야 되겠다? 보람된 일을 해야 되겠다. 자기 사명에 일어서도록 만들어야 우리 사람을 건지고 나를 건져냅니다. 사람을 병신으로 만들면 안 되는 것입니다. 바보로 만들면 안 됩니다. 일어서면 다 할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할 수 있습니다.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일어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룻이라고 하는 여인은 보잘 것 하나 없어도 그 어려운 가운데 일어나니까 다윗 왕의 조모가 되었고, 다윗 왕은 그 어려운 가운데도 일어나니까 이스라엘의 최고의 임금이 되었습니다.
‘난 목동이다. 누가 날 안 도와주나?’ 이렇게 살면 목동으로 끝나는 것이고 나도 주님을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서, 부모님을 위해서, ‘위해서’가 있어야 잘 되는 것입니다. ‘나는 일하리라. 세계를 위하여 일어나리라.’ 할렐루야! 새벽기도 꼭 나만 위해 나옵니까? 교회 위해서도 나오고 이 나라 어려우니까 나라 위해 기도하려고 나오는 것이지 꼭 내게 맞아야만 나옵니까? 그렇게 신앙생활하면 그 믿음은 병든 믿음입니다. 오래갈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라와 민족과 세계를 향하여 일어나는 성도들 되기를 바랍니다.

아홉 번째로 이 아들은 동생의 허물만 들추어냈습니다. 창기와 함께 먹어버렸다. 창녀하고 놀아난 것을 아마 알았나 봅니다. 막 그런 곳에 다니는 것을 알았나 봅니다. 여러분, 오늘 남의 이야기를 해도 수치스런 부분을 다 들추어내는 것, 이것이 좋지 않습니다. 선진국은 절대로 개인윤리에 대해서 남에게 그 인격을 손상시키는 일은 절대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몇 억이 그렇게 살아보십시오. 그 나라가 들추어내면 사회가 완전히 지옥이 되어 버립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과거에 그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 되는 것은 건드리지 않아야 가정이 행복해집니다. 오늘 우리 모두 이 사회가 양면으로 너무 극단적으로 가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 탕자의 길로 가는 한쪽은 너무 퇴폐, 음란, 불의, 온갖 술 취하고 세속문화 쪽으로 둘째 아들의 길로 가는 쪽이 반입니다. 또 반은 내가 잘났다. 온갖 증오와 비난과 비판하고 자기  주장만 굽히지 않고 세우는 이런 쪽이 또 반입니다. 나라와 이 사회를 이끌고 앞으로 나아가고 우리 모두를 품고 힘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나아가는 이 힘이 적습니다. 양쪽이 당기니까 다 못 갑니다. 그래서 바다의 게 영덕게 들어 보셨습니까? 게, 게는 천 마리가 있어도 한 마리도 앞으로 못나갑니다. 다 서로 물고 있다고 말합니다. 전부 집는 걸 가지고 그래서 게는 다라이에 이렇게 담아놓으면 한 마리도 밖으로 못나갑니다. 기어 나가려고 하면 다리하나 뒤에 딱 붙잡아서 한 다라이가 다 같이 물고 물고 늘어져 있는 것이 게판이다, 게판. 그러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모두 과거에 이렇게 뭐 창녀하고 뭐 이런 식으로 나가서 말하기 시작하면 그 다음에는 끝나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항상 두고 이렇게 소중하게 서로 인격을 존중하고 그 돌아온 동생의 생명을 감사하고 아버지처럼 말해야 합니다. 형님처럼 말하면 자기는 의로우냐? 그것도 아닙니다. 자기도 죄인이고 온가족 다 버림받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나라 대기업들 보면 형제간에 자주 소송합니다. 형제는 사랑해야 할 협조해야 할 그래서 ‘제(弟)’자입니다. 서로 함께 도와야 할 파트너입니다. 그런데 막 재벌들도 형제간에 소송합니다. 회사 창피 당합니다. 동생 검찰에 잡아가라는 것이지 그러면 동생만 잡아갑니까? 신문에 보니까 형도 같이 다룬다고 말합니다. 동생은 망하고 나는 살겠다. 그렇게 되는 것입니까? 헬라에는 그런 말이 내려오고 있습니다. 동생의 친구가 너무 인기가 있어 동상을 세운 것을 그 친구를 어떻게 하더라도 넘어뜨리려고 동상 넘어뜨리려고 팠더니 자기가 깔려 죽더랍니다. 남 넘어뜨리면 자기가 깔려 죽습니다. 질투하면 안 됩니다. 셰익스피어는 말하기를 ‘질투란 푸른 눈을 가진 괴물이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간에 질투하고 이웃 간에 질투하고 모두 질투하는 마음을 우리에게 떠나게 해야 천국이 이루어질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 중심이어야 합니다.

열 번째는, 이 아들은 아버지가 기뻐하면 되는데 아버지의 기쁨을 무시하고 내 기뻐하려고 했습니다. 신앙생활은 적어도 내가 기뻐하려고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가 오늘 한국교회가 상당히 문제가 무엇인가? 너무 사람을 좋게 하는 방향으로 많이 가고 있습니다. 설교가 꼭 우리에게 좋아야 합니까? 오히려 약처럼 내게 아픔을 주고,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으로 나를 책망하는 말씀 들으려고 해야지 사탕 발 림 식으로 하나님 말씀 들으려고 하면 그것이 참 하나님의 예언자의 말씀입니까? 성가대가 사람을 위해서 지금 부르고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께 찬양을 올리는 것이 성가대입니다. 모두가 하나님 중심이어야 전능하신 하나님이 영광 받으시고 우리를 만 대에 축복해 주실 줄 믿습니다. 내 귀에 듣기 좋은 설교하는 사람 찾아가는 것은 이미 타락한 것입니다. 그것이 지옥입니다. 그리고 조금 안 맞으면 탁 차버리고. 하하, 맞아, 헤헤헤, 그러고 그러면 됩니까? 자기에게 맞추면 안 됩니다. 오늘 우리 교회가, 명성교회가 주님만 기쁘게 하는 교회 되고 주님만 영광 받으시면 나는 어떻게 되어도 괜찮다. 이런 교회가 되면 우리 교회는 하나님 기뻐하시는 교회 하나님 영광 받으시는 교회, 우리는 천국같이 사는 성도 될 줄 믿습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김 삼 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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