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새사람을 입었으니 (골 3:1-11)

  • 잡초 잡초
  • 282
  • 0

첨부 1


아브람을 보면서 사람은 그 어떤 사람도 완벽하지 못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게 하고, 우리 신앙에 큰 위안이 됩니다. 자기 살려고 아내를 누이라고 속이질 않나! 아내가 첩을 얻으라 한다고 얼씨구 첩을 얻어 얼라를 낳지 않나! 그때 그 일로 인하여 지금까지 중동국가는 세계의 화약고가 되게 하기도 했으니 실수도 보통 실수가 아닙니다.

아브람이 위대한 축복의 조상이고, 믿음의 조상일지라도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면 우리가 신앙 생활하다가 실수하거나 잘못하였을 때에 큰 위안이 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위안을 삼을 수 있지만 ‘아브람도 그랬는데 뭐!’ 하면서 나의 잘못이나 실수를 합리화하거나, 실수를 당연시하여 뻔뻔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이런 아브람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이 실수하였을 때, ‘사람이 그럴 수 있지! 아브람도 그랬으니’ 하면서 감싸주고 용납해 주는 근거를 삼고, 자기 자신이 저지른 실수와 잘못에는 아브람의 실수로 인하여 수많은 사람을 희생되고, 고통을 주었는지를 생각하면서 철저히 반성하고, 회개하는 근거를 삼아, 반성하고 회개하므로 올바른 인간관계를 형성하여, 세상에 평화를 이루어가는 자들입니다.

아브람은 하나님에 대하여 다 알고, 완벽하게 신앙생활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도 그의 생활 속에서는 여전히 불 신앙적인 요소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조상적부터 지켜오던 전통, 풍습, 종교적인 관습 같은 것이었습니다.

아브람이 첩을 두어 아기를 가지는 것도 여기에 기인됩니다. 당시에 가족제도의 전통적인 풍습은 일부다처제로 첩을 두는 것은 허물이 되지 않고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또한 종의 제도가 있어, 아내 수하에 있는 여종은 아내의 소유물이기에 자기의 여종을 남편에게 들여보내 아들을 낳게 해서 자기 아들로 입적할 수 있습니다. 당시에 관습으로는 전혀 하자가 없고, 그들이 오래전부터 그렇게 행해왔으므로 자연스런 행동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상속자가 될 것이니라’(15:4)는 말씀을 이루는 데에도 문제가 없다고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아브람이 첩을 통하여 아들을 낳아 상속자로 삼아도 사래와의 관계에서 낳지 않았을 뿐, 첩과의 관계에서 낳아도 아브람의 몸에서 난 자이므로 여자는 누구든 상관없는 것이 당신의 풍습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하나님은 문제로 삼았습니다. 첩을 통하여 낳은 아들 이스마엘을 아브람의 상속자로 인정하지 않으시고, 결국 정실인 사래와의 관계에서 아이를 낳게 하여, 그를 상속자로 인정하셔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어 나가십니다.

당시 상황에서 아무 문제도 안 되는 것을 하나님께서 왜 문제 삼으셨습니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면, 하나님 나라 백성이므로 더 이상 세상풍습이나 사람의 전통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들을 다 버리고, 하나님나라 방식으로 살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에 속한 자는 이것을 꼭 명심하여야 합니다.

성경은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 것인지를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1)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은 과거에 세상풍습을 쫓고 인간의 전통을 따라 살았던 내가 그리스도를 믿는 그 순간에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음을 말합니다.

골2:20-21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본문2-3절에도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졌음이라”

세상의 풍속이나, 사람의 전통을 따라 살던 나는 죽고, 하나님의 자녀로 새롭게 난 자들이기에 위에 것을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에서 완전히 해방이 되었으므로 지킬 필요가 없고 오직 위에 계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고, 그분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자입니다.

5-6절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숭배니라. 이것들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탐심도 우상숭배에 해당되지만 실제로 오늘날 우리가 관습이나 전통에 매여 버리지 못하고 있는 우상숭배는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됩니다.

9-10절에 “옛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버리고 새사람을 입었으니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자니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는 말씀의 의미를 생각해보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전통적인 관습을 따라 알던 지식들, 일반적인 상식수준으로 이해하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들, 이런 것들이 이제는 성경 안에서 참된 지식으로 하나님을 아는 자가 되었음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이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바르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뜻 안에서 살고, 마땅히 미신이나, 유교나 불교적인 관습, 가문의 전통, 세상의 풍속등을 버리고 온전히 그리스도의 교훈을 따라 살아서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골로새서2:6-8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감사함을 넘치게 하라.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이제 여러분들은 온전히 그리스도를 따르고 성경에 위배되는 모든 전통과 관습들을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복들을 가로막는 요소들이 됩니다.

첫째 미신적인 풍습을 버리십시오.

무슨 날을 잡을 때 뭘 따지는 것, 삼신단지, 사주, 팔자, 관상, 궁합, 작명, 부적, 토정비결등에 매이지 마십시오. 신앙생활에 방해되지 않으면 다 좋은 날이고, 다 좋은 것입니다.

점쟁이나 무당들에게 무엇을 묻거나, 행여나 달(月)이나 어떤 영험이 있다는 돌이나 나무등에 소원을 비는 행위, 동전을 던지는 일등은 하지 마십시오.

둘째는 불교적인 관습에서 벗어나십시오.

가족들이 별세한 이후에 사십구제니, 극락왕생을 위한 무슨 제(祭)등

셋째는 유교적인 관습에서 벗어나십시오.

우리 한국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이것인줄 압니다. 특히 장례문제, 제사문제입니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에 잘 할 것을 강조해야 하는데 죽은 다음에 아무리 잘한들 그것이 무슨 소용입니까? 돌아가신 분이 땅에 묻으면 차갑다고, 화장(火葬)을 하면 뜨겁다고 합니까? 가끔 텔레비전에서 죽은 조상이 와서 묘자리가 좋지 않다고 해서 묘자리를 옮겼더니 하는 일이 잘 되었고, 혼령이 구천에 떠돌고 있어 묘를 이장하였더니 꼬이던 일이 풀렸다는 사람들의 얘기들을 방영하는데, 이런 것들은 다 귀신의 수작일 뿐입니다.

음식을 많이 차리면 많이 먹고 가며, 적게 차리면 적게 먹고 갑니까! ‘있을 때 잘해!’

제사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추모(追慕) 혹은 추도(追悼)입니다. 즉 그를 그리워하고, 회상하여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좋은 것은 본 받고, 잘못된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추도예배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돌아가신 날, 혹은 명절에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살아온 것이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임을 감사하며, 찬양하고, 돌아가신 분을 다시 한번 생각하며, 그가 살면서 나누었던 정들을 생각하고, 돌아가신 분은 없지만 아쉬워하면서, 온 가족들이 함께 가족의 정을 나누는 것입니다.

넷째는 가문에 이어오는 성경에 위배되는 전통에서 벗어나십시오.

우리 한국의 가문의 전통이란 거의 앞에서 말한 미신적인 것, 불교적인 것, 유교적인 것 중에 다 포함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다만 가정마다 특히 강조하는 것이 다를 수 있다는 것외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의 풍속과 인간의 전통에 얽매여 살고, 세상 초등학문에 매여 하나님 앞에 온갖 죄를 지으며 살았던 마귀의 자녀였던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므로 완전히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자입니다. 그러므로 마귀의 자녀로서의 삶에 매일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만유시고 만유안에 계시기 때문에(11), 오직 그리스도를 따르면 됩니다.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 옛것은 지나고 새사람이로다. 그 생명 내 맘에 강 같이 흐르고 그 사랑 내게서 해같이 빛난다. 영생을 맛보며 주안에 살리라. 오늘도 내일도 주 함께 살리라”(찬493장)
(강 재식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