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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라 (출 14: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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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세상의 역사에서 일어난 가장 위대하고 불가사이한 기적이 있다면 출애굽 사건이요, 홍해를 건넌 사건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 출애굽 사건은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가장 위대한 사건이요, 두고두고 기억할 기적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을 이끌고 애굽에서 나올 때의 사람이 장정만 603,550명이었습니다.  여러분, 장정이라고 하면 20세 이상으로 싸움에 나갈만한 젊은이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 수에는 하나님의 성막에서 일하는 제사장과 레위인들이 속한 레위지파는 그 백성의 수에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옛날에 싸움에 나갈만한 나이를 말하면 20세에서 대략 50세 정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남자라고 하면 내 조국을 지키고, 나의 사랑하는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출전할 수 있고, 군대에 들어가는 것을 영광으로 알고, 남자가 된 특권으로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남자라고 하여도 나이가 들면 사람이 소심해지고 몸과 마음이 따로 놀아서 행동이 둔해지고 순발력이 떨어져서 전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아무리 직업군인이요, 고급장교가 되었다고 하여도 나이 정년을 두기도 하고 계급 정년도 두는 것입니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은 전쟁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에 백성의 수에서 제외시킨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인구가 도대체 얼마정도가 될 것입니까?  대략 300만명 정도라고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우리 성목사님이 너무 많이 계산한 것이 아니냐'고 하실지 모르나, 장정이라고 했는데, 같은 수의 여성들이 있으니, 그것만해도 1,207,000명이 될 것입니다.  20세 이하의 모든 청소년들과 어린이들이 있습니다.  허다한 잡족도 따라나왔습니다.  연로하신 남녀를 합하면 대략 300만명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300만명의 사람들이 홍해바다를 건너가는데, 하룻밤 사이에 건너가는데 어떤 골짜기의 큰 길이라고 하여도 300만명이 지나가려고 하면 하룻밤으로 다 건너가기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교인 500명이 한 줄로 서서 한강을 건너기 위하여 출발한다고 하면 맨 처음에 길을 나선 사람이 남영동 로터리에 가고 있어도 이곳에서는 아직도 출발조차 못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당시 300만 명에는 아주 연로한 어른들, 아주 어린 아이들, 갓난아기들, 병약한 사람들, 별의별 사람들이 다 있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몸만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먹고 살아가는 세간사리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짐승들도 끌고 나왔습니다.  사람이 먹고살기 위해서는 곡식을 가지고 있었고, 음식을 만들기 위하여 조리기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보내시고 당신의 사랑하는 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노예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애굽의 황제 바로가 그렇게도 보내지 않으려고 발악하였지만, 10가지 재앙으로 온 나라는 초토화되었고, 마지막 재앙으로 애굽 전역에 사는 모든 집의 장자와 가축의 처음 난 것들이 죽었습니다.  어떤 집에는 그 집의 아버지가 죽었든지, 아들 중의 장자가 죽었든지, 가축의 처음 난 것이 죽었든지 온 집에 주검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는 양의 피를 문설주와 인방 위에 바르고 양고기를 구워먹으면서 애굽에서 나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쯤 되고 보니, 애굽의 바로가 손을 들고 말았습니다.  이 바로는 판단력이 아주 떨어지는 사람이었습니다.  진작 손을 들고 항복하였으면 장자가 죽는 것만은 면하였을 터인데, 끝까지 고집을 부리고, 오기를 부리는데 하나님과 싸워보자고 합니다.  세상에 마음이 강퍅한 사람의 대표적인 사람이 애굽의 바로였습니다.  바로의 마음이 본래에 완악하였는데, 완악한 사람이기에 하나님은 그를 완악한대로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의 완악한 마음을 그대로 사용하셔서 10번째 재앙을 치실 때에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시고 있습니다.  바로가 완악하지도 않은데, 하나님이 일부러 그의 마음을 일부러 완악하게 하셔서 완악하게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불의한 사람은 불의한 자리에서 사용하시고 의로운 사람은 의로운 자리에서 의롭게 사용하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가 백성을 떠나보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사람의 생각과 다른 것을 봅니다.  애굽에서 가나안 땅으로 올라오려면 당시의 대상이 다니는 길, "비아 마리스"라는 길이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애굽에서 지중해안으로 올라가서 해변길을 따라서 블레셋 사람의 땅으로 가는 길이 있었습니다.  이 길로 가면 단 며칠 정도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도시국가를 이루고 있는 지중해안길을 따라 가면 사람이 걸어서 4일 정도면 갈 수 있었고, 짐승을 안전히 끌고 간다고 하여도 한 달이면 도달할 수 있는 가까운 길이 있었습니다. 

  출13:17-18에 보면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라고 하셨습니다.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이라고 하면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지중해안 길을 말합니다.  모세가 출애굽할 당시에 블레셋 백성들은 이미 철기 문화를 가지고 있었고, 강력하고 호전적인 성격으로 다른 민족이 자기들이 사는 땅을 통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가까운 길이 있을지라도 먼길로 돌아가게 하십니다.  잘 닦여진 고속도로가 있는데, 험한 광야로 몰아넣고 힘들게 가게 하십니다.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합지졸이란 말이 맞은 말입니다.  노예 생활하던 사람들이 나가라고 해서 나오고 있지만 체계적이지 못하고, 조직적으로 정비가 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블레셋 백성들은 크게 5개의 도시국가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그들은 상호 연합으로 막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이스라엘과 가나안 남부에 살고있는 블레셋과 전쟁이 일어나면 출애굽이 나와 무슨 상관이며, 노예 해방이 무엇이며, 가나안 땅이 무엇이 좋으냐?  우선 살고 봐야 할 것이 아니냐고 애굽으로 돌아가 노예로 사는 것이 죽는 것보다 낫다고 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시는데, 지중해안 길을 따라가는 해변길을 마다하시고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서 인도하시고 있습니다.  홍해의 광야 길이란 말이 길이지 길이 없는 것은 물론이고 억지로 간다고 하여도 홍해가 가로막고 있어서 더 이상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없는 길을 개척하면서 가는 것도 힘든 일이지만, 가다가 막다른 곳에 도달한다는 것은 길이 아닙니다. 
우리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보면 우리 사람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길도 없는 광야, 사람이 살지 못하는 땅으로 인도하시고, 그것도 길이 없는 막다른 홍해로 몰아가시고 있습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어떻게 하시려고 하는 것입니까?  광야라고 하면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춥기 때문에 사람이 살지 못합니다.  광야는 사람이 살 수 없습니다.  나무도 별로 없고, 우물도 없고, 강도 없습니다.  사나운 짐승이나 지나가고, 바람만 불어올 뿐입니다.  어쩌다가 골짜기에 아카시아 나무가 조금 자랄 뿐입니다.  광야는 빈들입니다. 거친 땅이요, 거친 들입니다. 

  이스라엘이 라암셋을 떠나서 숙곳에 모이고 보니 장정만 육십만명 가량이요, 수많은 잡족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가축이 함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숙곳에서 길을 떠났는데 이스라엘 앞에는 구름기둥이 나타나서 때로는 길을 인도하고 때로는 뜨거운 햇볕을 막아주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밤에는 불기둥이 나타나서 길을 인도하기도 하고, 추운 밤에 불 덮개가 되어 추위를 막아주기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함을 따라 길을 가는데 막다른 홍해 앞에 이르게 된 것입니다. 

  광야로 가는 에담을 떠나서 비하히롯으로 돌아가고 믹돌이란 곳에 진을 쳤는데, 그곳은 바다 끝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바닷가에 장막을 치고 대기하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바다를 건너갈 항해에 필요한 배가 없고, 어떤 기술도 없이 그동안 애굽에서 흙이나 개어 벽돌을 굽고 성벽을 쌓던 노예에 불과하였습니다. 

  지금 애굽의 바로가 정보를 수집하는데, 자기를 떠난 이스라엘이 지금 광야 끝에 가 있다는 것입니다.  앞은 홍해요, 뒤에는 다시 되돌아오기 힘든 무서운 광야였습니다.  바로가 선언합니다.  "이스라엘은 광야에 갇혔다"고 했습니다.  그동안 완악하고 강퍅하였던 바로인데, 하나님은 지금도 그의 완악하고 강퍅한 마음을 그대로 사용하시고 있습니다.  바로가 생각합니다.  지금 군대를 동원하여 이스라엘을 사로잡아오면 애굽을 위하여 노예를 부릴 수 있다고 판단하였습니다.  그동안 10번의 재앙으로 얻어맞았고, 마지막 10번째의 재앙은 장자가 죽는 것이었는데, 어쩌자고 또 다시 하나님에게 도전하려고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은 완악한 사람은 완악하게 사용하고, 강퍅한 사람은 강퍅한 대로 사용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하십니다. 

  바로는 군대를 소집하였습니다.  왕실에서 사용하는 정예부대가 가지고 있는 600대의 병거와 애굽의 모든 군대가 가지고 있는 병거들을 동원하고, 모든 지휘관들을 출전시켰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다시 잡아오려고 추격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최종적으로 장막을 치고 있던 믹돌의 해변을 향하여 전군대로 나아가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뒤를 돌아보았는데, 광야에 엄청난 먼지를 일으키면서 달려오는 전차대며, 많은 군인들을 보면서 기가 질리고 심히 두려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모세에게 나아가 말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우리를 내버려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고 했습니다. 

  이에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14:15-16)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추격하고 잡아오려는 애굽 사람들을 홍해에 수장시키겠다고 하시고, 그것으로 인하여 영광을 받겠다고 하셨습니다.  "내가 바로와 그의 병거와 마병으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을 때에야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리라"(18)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앞에 가시고 때로 그늘이 되어주던 구름 기둥을 뒤로 보내어 이스라엘과 애굽 사람을 나누시고, 이스라엘을 향하여 더 이상 나아올 수 없는 캄캄한 구름과 흑암으로 그들 뒤덮어버렸습니다.  이스라엘이 있는 이편에는 환한 대낮과 같이 밝고, 애굽의 군대가 머물고 있는 뒤쪽은 캄캄한 밤이 되었습니다.  애굽의 군인들이 한발자국도 움직일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괴롭히고 죽이려는 이들을 구름 하나를 사용하여도 막을 수  있습니다.  인간의 힘이란 하잘것없고, 보잘것없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있습니다.  위대한 지도자 한 사람이 정말 중요하고, 엄청난 결과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손을 바다 위로 내어 밀라"고 하셨습니다.  16절에서 하나님은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고 했습니다.    21절에서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밀매 여호와께서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시니 물이 갈라져 바다가 마른 땅이 된지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바다 한 가운데로 지나 육지와 같이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를 지나 건너가는데, 광야를 지나가는 것처럼, 육지와 조금도 다를 것이 없는 아주 넓은 지역을 건너가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좀 많은 수입니까?  약 300만 명의 사람들이 짐승을 이끌고 어린 자녀를 데리고 홍해를 건너가려고 했다고 하면 하루 종일 걸렸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얼마나 서둘렀을 것이며, 애굽의 군인들은 얼마나 초조하게 어둠이 걷히기를 기다렸을 것입니까?  애굽사람들은 바로 눈앞에 있는 이스라엘을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저는 여기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잘 이해하지 못하고 방황하고 불신하여 원망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의 살길이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안전하게 건너간다는 것과 300만 명이나 되는 사람과 수 없는 가축들이 건너가려면 평지를 이루고 해안선의 길이가 길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 동리 정도가 아니라, 아주 긴 해안선을 따라 큰 길을 내셨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불러내어 어느 골짜기에 두지 않고, 탁 트인 해안선에 두셨다가 하룻밤 사이에 걸너가게 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좌우에 바닷물이 물러가 벽을 이루고 있는 그 한 가운데로 바다를 육지와 같이 광야와 같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거의 다 건너갔습니다.  애굽의 군인들을 움직이지 못하게 하던 구름과 흑암이 걷히더니 그렇게 넘실거리던 홍해가 갈라져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애굽의 바로는 다시 한번 잘못된 판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자기들의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육지와 같이 건너가고 있다는 것이며, 홍해바다가 물러가 바닷물이 벽을 쌓고 있는 것을 보면서 바로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요, 홍해를 지나서 이스라엘을 잡아오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일이요, 하나님을 대적하다가는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가져야 했습니다.  그런데 저들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고, 이스라엘을 잡아오면 자기들이 편하고 잘 살고, 상전 노릇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습니다.  지금까지 10가지 재앙으로 당하고도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능력이 많으시고, 참 신이신 것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잡겠다고 홍해 한 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새벽에 여호와 하나님은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위하여 쉬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고 구름 기둥 사이에 이스라엘을 지켜보고 인도하시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어려운 형편을 모른다고 하지 않고, 우리와 함께 거하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애굽의 군대를 어지럽게 하셨습니다.  병거 바퀴가 벗겨져 굴러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앞에 가던 병거가 가로막아 뒤에 있는 병거들이 나아가거나 뒤로 가지 못합니다.  병거가 힘이 되어주는 줄 알았는데, 하나님 앞에 서고 보니 아무런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이심전심으로 소리칩니다.  "이스라엘 앞에서 우리가 도망하자.  여호와가 그들을 위하여 싸워 애굽 사람들을 치는도다"  이제는 바로의 명령도 필요 없습니다.  우선 하나님의 진노에서 피하고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때는 늦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하셨습니다.  모세는 곧 손을 바다 위로 내밀매 새벽이 되어 바다의 힘이 회복되었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홍해 한 가운데 수장되었습니다.  물이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치는데, 물이 다시 흐를 때의 속도가 엄청난 속도와 힘을 발휘하면서 서로 부딪치면서 하늘로 치솟아 오르는데, 그 파도에서 살아남을 사람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흐르던 물이 아니라, 바다는 가득 차 있었던 물인데, 바다 한 가운데서 커다란 공간을 내면서 길을 만들었는데, 다시 원상 회복될 때에는 마치 지진해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엄청난 힘과 속도로 밀려들어 눈 깜짝할 시간에 바다에 있던 모든 것을 집어삼키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와 같이 광야와 같이 건너갔습니다. 

  이스라엘은 애굽 사람들이 죽은 시신들과 죽은 말들이 떠다니는 것을 보았고, 홍해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행하신 큰 능력을 보고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여호와를 경외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 모세도 대단한 인물인 것을 믿게 되었습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묵상하면서 넘실거리는 바다 위로 팔을 매어 밀고,  손을 내밀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손을 내밀라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오고 있습니다.  그러면 손을 내민다는 말씀은 무슨 뜻이 있습니까?  한마디로 믿음으로 순종하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앞에 홍해가 가로막고 우리를 삼키려는 듯이 넘실거리고 있습니까?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한계상황이 되었습니다.  이제는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습니다.  우리가 건너가야 하는 이 세상은 전혀 길이 보이지 않는 홍해와 같습니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홍해로 몰아넣고 있는 것입니까?  사면초가라는 말을 하는데, 더 이상 벗어날 길이 없습니다.  나를 안되게 하고 죽기를 바라는 무리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습니다.  이제는 또 다시 애굽에 끌려가 노예로 전락할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죽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일생이 여기까지요, 이제는 일어날 길이 없고, 파멸이요, 망했다고 할 때에 하나님은 홍해를 가르시고 길을 내시고 있습니다.  문제 속에 해답이 있고, 길이 있었습니다.  막힌 담을 허시고, 가로막힌 바다에 길을 내시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간의 힘으로 해결되는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시33:16절입니다.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  구원하는데 군마는 헛되며, 군대가 많다 하여도 능히 구하지 못하는도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앞에 기도하십시다.  우리 앞에 홍해를 창조하시고, 홍해를 사용하시고 홍해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가만히 있으라.  너희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라.  너는 홍해 앞에서 손을 내밀라"고 하십니다.  오늘 말씀을 들었습니다. 믿음의 사람이 되십시오.  순종의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저 넘실거리는 바다위로 손을 내어 미시고, 하나님이 내시는 방법대로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성 홍 모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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