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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의미있는 한가위 (골 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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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오늘은 민족의 명절인 풍성한 추석입니다. 마침내 주일과 겹쳐있어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오성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더욱 풍성한 은총이 참여한 성도 여러분들에게 임하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중추가절(仲秋佳節)!"은 우리나라 으뜸가는 민족 최대의 명절로 사물의 중심이 되는 음력 8월 보름날, 일명 추석(秋夕)을 맞이하였습니다. 아무리 짜증스럽고, 웃을 일이 사려져 버린 힘든 세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밤이 되면 추석에 저 하늘에 휘영청 떠 있는 둥근 달처럼 티 없이 맑고 환한 미소와 넉넉함으로 신령한 기쁨과 감사의 마음을 나눌 수 있는 절기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최대의 명절 가운데 "유월절과 수장절"이 있습니다. 민족적 위기에서 하나님의 극적인 도우심으로 400년간 종살이 하던 그들을 출애굽 시켜 준 것을 기념하는 절기로 여호와 하나님의 전적인 능력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구원을 받은 것에 감사하는 절기가 "유월절"이라면

애굽에서 이끌어 주신 하나님을 기억하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을 통해 약속하시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시리라고 약속하신 땅을 여호수아를 통해 마침내 정복하게 하시고, 광야 40년간은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셔서 매일 매일 필요한 식량을 얻었지만 이제는 그들이 정복한 가난안 땅에서 파종하여 첫 번 추수함을 감사한 마음을 드리는 것이 "수장절"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추수감사절은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추수감사축제를 즐기고, 기뻐하는 것과 전혀 다른 성격을 가졌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구원의 행동을 기념하며 기뻐하고 감사하는 삶 전체의 표현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키는 "추석"은 가을에 수고한 열매를 추수하고, 풍성한 결실에 대한 하나님께 감사하며, 미국의 청도교들이 지켰던 추수감사절 절기 정신으로 보내야 하는 우리 민족의 명절입니다. 동시에 하나님과 선조들의 은덕이라 여기고 감사한 마음을 갖는 것에 있어서 이스라엘의 수장절과 묘한 공통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말씀합니다. 오늘 감사와 축복의 명절인 추석이 우리에게 주는 참된 의미와 영적인 교훈을 살펴보면서, 추석에 무엇을 가지고 감사해야 할 것인지 찾아보려고 합니다.

1. 추석은 찾아가는 절기입니다.

어느 명절이건 다 그렇습니다만 특별히 추석은 더욱 고향을 그리워하며 찾아가는 절기입니다. 고향을 찾아 부모님을 뵙고 형제들과 함께 기쁨을 나누며, 조상의 묘소를 참배하고 벌초를 하며, 이웃과 더불어 훈훈한 정을 나누는, 그래서 아랫사람으로의 도리, 자식으로의 도리를 다하는 절기입니다. 다시 말하면 받은 은혜를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자 고향 부모, 형제를 찾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고향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입니다. 묘한 흥분을 자아냅니다. 그래서 "이틀이 걸려도 좋다. 사흘이 걸려도 좋다. 고향 가는 길은 좋기만 하다"고 하면서 마치 주차장을 방불케 하는 고향 길을 평상시 보다 몇 배나 더 많은 시간을 소요하면서 민족 대이동을 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에게 감사할 조건이 없음이 아니라 감사할 마음이 없음이 곧 타락이요, 병입니다. 청교도들이 미국으로 이주한 것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을 구하러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더 잘 섬기려고, 신앙의 자유를 찾아간 것이기 때문에 그들은 제일먼저 교회를 짓고 물질 이전에 정신적인 내면적인 감사절을 지켰습니다.

  히 13:15절에 "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이는 그 이름을 증거 하는 입술의 열매니라." 고 말씀합니다. 성도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부여받은 구원받은 은총에 대한 감사와 축복의 표현이 있어야 합니다. 어떤 기쁨도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긴 기쁨과 비교할 수 없습니다.

  사람들에게는 육신의 고향뿐만 아니라 내가 이 세상에 오기 전에 있었던 고향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의 고향은 바로 그 곳 "하나님의 나라"이며, 우리는 모두 그곳을 향하여 찾아가는 '순례자'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근신하여 깨어 그 나라를 사모하라."고 했고, 사도바울 역시 "나는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은 나에게 큰 의미가 없으며 그 보다도 더 귀한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다."고 자랑했습니다.

고향을 떠나 평생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나그네의 인생을 살았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여정은 곧 우리네 성도들의 여정입니다.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우리도 이 세상에서 한번은 떠나서 영원한 처소인 천국에 가게 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며 살았던 것처럼 우리도 영원한 시온성인 천국에 가게 될 것을 사모하며, 감사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복 빌어 드립니다. 언젠가 우리의 육신의 장막이 끝나는 날, 우리도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 가게 될 것입니다. 그 나라를 사모하시고 준비하시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2. 추석은 열매가 나타나는 계절입니다.

가을은 ‘열매의 계절’입니다. 열매를 통해 감사의 마음을 가져봅시다. 요한복음 15장에서는 ‘포도나무의 비유’가 있습니다.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결단코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절로 맺을 수 없다.”고 하여 열매를 맺는 방법과 중요성을 말씀해 주셨습니다.

 
저는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 중 에 특별히 절제의 열매를 맺어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비유컨대 절제란 인생의 브레이크와 같습니다. 고속도로를 질주하다가 과속이 되면 브레이크를 밟아 속도를 줄입니다. 인생길에서 과욕이 생겨서 어떤 일에 오버할 때 절제하여 과욕을 줄여야 합니다.

달리는 차 앞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브레이크를 밟아 정지합니다. 인생길에서 큰 문제가 생기면 절제하여 그 일을 멈추어야 합니다. 자동차에 브레이크가 필수적인 것처럼 우리 인생에도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바로 그 인생의 브레이크가 절제인 셈입니다.

저는 돼지가 너무 많이 먹어서 배가 터져 죽었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 먹는 것 절제하지 못해서 과체중으로 병들어 죽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개미가 너무 일을 많이 해서 과로로 쓰러졌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 과로로 쓰러지거나 심지어 죽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원숭이가 알코올 중독에 걸려 치료를 받았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 알코올 중독, 마약 중독, 갖가지 중독으로 치료받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저는 그 어떤 동물들도 살기 힘들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은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들 중에는 살기 힘들다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습니다.

그렇습니다. 인생의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습니다. 아담 하와가 타락하여 에덴 동산에서 쫓겨난 뒤에 인생의 브레이크가 마음먹은 대로 작동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브레이크를 밟아도 속도가 줄지 않습니다. 브레이크를 작동해도 차가 제대로 서지를 않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 인생의 문제가 바로 여기서 생겨납니다.

절제라는 단어는 헬라어 원어를 보면 ejgkravteia(엥크라테이아)라는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을 영어 성경에서는 self-control(자기 조절)이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러니까 ejgkravteia(엥크라테이아) 라는 본문의 단어는 절제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그 뜻은 ‘자기 스스로 알맞게 조절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좋다고 하는 것도 알맞아야 좋지 지나치면 해가 됩니다. 보약도 너무 많이 먹으면 독약이 됩니다. 건강을 위해 운동을 해도 지나치면 오히려 병을 부릅니다. 그래서 절제가 필요합니다. 자기에게 알맞도록 모든 것을 조절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절제는 결코 쉽지 않습니다. 운동선수들이 철저하게 훈련하여 경기에 임하는 것처럼 절제도 훈련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딤전 4:7-8에서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운동선수들이 육체적으로 훈련하는 것도 유익이 있지만 경건의 훈련은 그 보다 더 큰 유익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절제를 위한 훈련이 필요하다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훈련이 제대로 이루어지면 큰 유익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추석을 맞이하여 우리가 그동안 믿음으로 살아왔는지 점검해 봅시다. 하나님 앞에 나의 현재의 모습을 가지고,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칭찬받을 만한 신앙의 열매와 전도의 열매, 봉사와 헌신의 열매가 있습니까? 무엇보다 성령의 아홉가지 열매를 맺기 위해서, 그리고 절제의 열매 맺는 인생을 살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습니까?

 
오늘 우리는 추석을 맞이하여 부모 형제를 허락해 주신 하나님의 은총을 감사하며, 부모에 효를 다하며, 형제간에 우애를 다지는 기회로 살아왔는지 반성하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보이는 형제와 부모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겠습니까? 살아계신 부모님을 헌신짝처럼 버리는 자식이 명절 때 조상들을 섬긴다고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차려놓고 아무리 수백 번 절을 한다 한들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고, 혈육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살아계신 부모님께 따뜻하게 해드리는 것이 복입니다. 그래서 제사 대신에 살아계신 부모님 앞에 추모예배를 드리고, 형제애를 나누며, 서로 사랑하며, 아끼는 마음으로 음식을 나누는 모습이 더 부모님이 원하는 모습이고 조상들이 원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이것이 또한 곧 ‘천국에서 살아가는 성도들의 모습’이기도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미스바교회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 브레이크가 필요합니다. 때로 과속하게 됩니다. 적당하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합니다. 때론 급하게 장애물이 나타납니다. 세게 브레이크를 밟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브레이크는 어떻습니까? 작동이 잘 됩니까? 식욕을 잘 절제하고 계십니까? 명예욕을 잘 절제하고 계십니까? 권력욕을 잘 절제하고 계십니까? 주님 앞에 가을에 추수할 때가 있는 것처럼 우리 모두 심판대 앞에서 공력을 시험 받을 때가 올 것입니다.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지 않습니까?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와 특별히 절제의 열매를 맺기 위해 철저하게 우리 자신을 교회 생활을 통하여 훈련해 가시기 바랍니다.

풍요로운 결실의 계절에 주님의 교훈을 따라서 주님을 섬기며, 영적인 신앙의 열매들을 맺도록 최선을 다하는 우리 미스바교회 모든 가족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아멘> (황 영복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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