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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추석] 하늘의 고향 (히 11:13-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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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말 중에서 가장 따뜻하고 정감이 있는 말은 가족이란 말과 고향이란 말일 것입니다. 가족이란 말을 들으면, 고향이란 말을 들으면 웬지 마음이 설렙니다. 그래서 가족이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어도, 고향이 아무리 먼 곳에 있어도, 늘 그리운 것이 가족이요 고향입니다.

    추석은 그 가족을 찾아서, 그 고향을 찾아서 길을 떠나는 명절입니다. 그렇지만 이런 추석이 되어도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다. 고향이 이북에 있다든지, 가족이 죽었다든지 하면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습니다. 이것이 육신의 고향의 한계입니다. 육신의 고향을 찾아가는 것은 그저 우리의 목숨이 붙어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육신의 고향은 일시적입니다.

    그러면 영원한 고향은 있는가? 히브리서 기자는 그 고향에 대해서 본문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 히 11장에서 믿음의 사람들에 대해서 열거하면서, 그 사람들 중에서 특히 아브라함과 그 자손, 믿음의 족장들에 대해 언급하는 과정에서, 본문 13절에서는 이런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살다가 죽었고, 약속을 받지 못했지만, 그것들을 멀리서 보면서 환영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땅에서는 자신들에 대해서 외국인(‘길손’)과 나그네 신세임을 고백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을 외국인(‘길손’)이라고, 나그네라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들이 본향을 찾고 있다는 증거라, 14절에 말씀합니다. 지금은 이 땅에서 외국인과 같은 신세이지만, 나그네와 같이 방황하는 신세이지만, 나중에는 반드시 돌아갈 곳, 단지 육신의 고향(갈대아 땅)이 아닌 본래의 고향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그 곳을 늘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육신은 땅에서 살고 있었지만, 마음 속으로는 돌아가야할 고향, 곧 영원한 고향을 항상 사모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히브리서 기자는 16절에서 증거합니다.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 (표준새번역 개정판)“그러나 사실은 그들은 더 좋은 곳을 동경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것은 곧 하늘의 고향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하나님이라 불리는 것을 부끄러워 않으시고, 그들을 위하여 한 도시를 마련해 두셨습니다.”

    ‘하늘의 고향’(하늘에 있는 고향) 바로 이 곳이 우리가 돌아가야할 진정한 고향입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삶은 그 고향을 향한 순례의 길입니다. 하늘의 고향을 동경하면서, 하늘의 고향에 소망을 두고, 하늘의 고향에 먼저 간 사람들을 그리워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가는 순례자의 삶!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인생 여정입니다.

    사람에 따라 그 순례의 여정은 길 수도 있고 짧을 수도 있는데, 그 순례의 길을 어떻게 걸어가느냐에 따라서, 그 삶이 행복할 수도 있고 불행할 수도 있습니다. 시 90:10에 의하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라고 했는데, 70, 80세까지 살면 하나님이 주신 수명을 다 누린 것인데, 그 수명도 다 보장을 못하는 것이 언제 어떻게 하나님의 부르심받을지 모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늘의 고향에 이르기 전까지, 오늘 우리의 삶이 행복한 순례의 길이 될 수 있을까요?

    1. 우리는 ‘목적이 있는 나그네’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인생이 나그네길과 같다는 사실은 누구나 인정합니다. 제 고향을 떠나서 객지를 떠도는 사람을 나그네라고 합니다. 자기 집을 떠나서 여기저기 여행하는 사람도 나그네라고 합니다. 나그네는 뚜렷히 어느 한 곳에 머무는 곳이 없이 여기저기 방랑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은 이렇게 나그네와 같기 때문에 다 살고나면 허망하고 허무합니다.
    세상의 모든 부귀영화와 권력을 다 누려본 솔로몬은 그 화려했던 인생의 막을 접으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전 1:2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2:22-23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와 마음에 애쓰는 것으로 소득이 무엇이랴 / 일평생에 근심하며 수고하는 것이 슬픔뿐이라 그 마음이 밤에도 쉬지 못하나니 이것도 헛되도다”

    이렇게 허무하게 막을 내릴 인생인데도, 우리는 종종 자신이 나그네란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삽니다. 그래서 지상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세상적인 권력과 재물에 집착을 하고, 쾌락적인 문화를 추구하면서 삽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면서, 아무런 가책없이 육체의 욕심을 따라서 범죄하며 살아갑니다. 오래 전에 ‘막가파’라는 조직이 사람을 끔찍하게 죽였는데, 그들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의 사람들이 어찌보면 삶의 가치관을 상실한채 막가고 있습니다.
    결국 우리의 인생이 그렇게 길지 않은데, 그렇게 막가는 식으로 살아서는 안됩니다. 자기 하고싶은 대로 막가다는 것은 비참한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게 됩니다. 막가는 식으로 사는 나그네는 그 길의 끝에 사망이 기다리고 있고, 죄에 대한 심판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막가는 식으로 사는 나그네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목적이 있는 나그네’입니다. 지상에서의 삶은 잠시 장막치고 사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하나님의 소환명령이 내리면 곧 장막을 거두고 다시 돌아가야할 본향이 그리스도인에게는 있습니다. 어느 시인의 고백처럼, 잠시 소풍왔다가 다시 돌아가야할 곳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좋은 곳에 소풍을 가고, 아무리 경치가 좋은 나라에 여행을 가도 몇 시간이 지나고 며칠이 지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항상 돌아가야할 최종 목적지, 하늘의 고향을 바라보면서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목적이 있는 나그네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쓸데없이 방황하지 않게 되고, 헛된 것에 집착하지 않게 되고, 허황된 욕심과 시험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전도라는 것도 이런 차원에서 생각하면서, 세상사람들이 ‘목적없는 나그네’로 방황하고 있는데, 그들에게 인생의 분명한 목적, 최종적인 목적지를 깨닫게 해주어서, 그 목적을 갖도록 해주는 것이 전도입니다. 그러니 전도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위대한 일입니까? 나같은 죄인을 ‘목적이 있는 나그네’로 먼저 변화시켜주신 것을 감사하시면서, 우리의 최종 목적, 하늘의 고향을 항상 바라보시면서 그 곳을 향하여 똑바로 전진하시는 순례의 길이 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우리의 삶이 행복한 순례의 길이 되려면)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지고 ‘여기서’ 천국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초대교회 성도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곧 있을 것이라고 여기면서 항상 영적 긴장감을 가지고 경건하게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런 종말론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은 하루하루를 진지하게 살고 의미있게 살려고 합니다. 늘 하나님을 의식하면서 그 분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벧전 1:17 “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그리스도인은 이렇게 경건한 두려움으로 지내면서, 동시에 오늘 ‘여기서’ 천국인답게 살아야 합니다. 죽어서 천국에 가서 거기서 행복할 것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서 천국인답게 살면, 그 것이 바로 행복한 나그네 인생길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여기서 천국인답게 살고 계십니까? 하루하루가 천국에 사는 것처럼 즐겁고 기쁘고 행복하십니까?
    천국인은 이 세상에서나 저 세상에서나 똑같이 삽니다. 오늘 이 세상의 삶이 지옥같다고 한다면 저 세상에서의 삶도 마찬가지, 지옥같습니다. 반대로 이 세상의 삶이 천국같다고 한다면 저 세상에서의 삶도 마찬가지, 천국같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여기 있다 저기 있다 할 것이 아니라 너희 마음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매일 천국이면, 오늘 여기서도 얼마든지 천국인으로 살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오늘 여기서 천국인답게 살 수 있을까요? 엡 3:12-17에 보면 그 천국인의 모습을 상세히 증거되어 있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여러분들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랑받는 거룩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불쌍히 여기는 마음과 친절과 겸손과 부드러움과 인내로 서로 참으며 언짢은 일이 있더라도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같이 서로 용서하십시요. 그리고 이 모든 것 외에 사랑을 더하십시요. 사랑은 그 모든 것을 하나로 온전히 묶어주는 띠와 같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평안이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하십시요. 평안을 위해 여러분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감사하는 사람이 되십시요. 그리스도의 말씀이 여러분 가운데 풍성하게 하여 모든 지혜로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며 시와 찬미와 영적인 노래를 부르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요. 그리고 무엇을 하든지 말과 행동에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 분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한 구절 한 구절이 깊이 묵상하고 실천해야할 말씀들입니다.

    지금 여러분이 지금 들으신 말씀 중에서 특별히 마음에 와닿는 단어는 어떤 단어입니까? 사랑, 친절, 겸손, 부드러움, 인내, 용서, 평안, 감사...... 이런 단어들이 우리 삶 속에 용해되어 있어서 향기로 나타내는 사람! 그 사람이 천국인으로 살고 있는 사람입니다. 사랑의 반대는 미움, 친절의 반대는 불친절, 겸손의 반대는 교만, 부드러움의 반대는 완고함, 인내의 반대는 성질내는 것, 용서의 반대는 저주, 평안의 반대는 불안, 감사의 반대는 불평...... 이런 단어들이 자신의 삶을 채우고 있다면, 그 사람은 지옥에는 아직 안갔지만, 지옥에 살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천리행군을 하다보면, 사람들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 하루, 이틀은 누구나 다 잘합니다. 그러나 나흘, 닷새...... 육체가 한계상황에 이르면, 힘들고 지쳐하면서, 그 때부터 그 사람의 됨됨이, 인간성, 본색이 드러납니다. 친절했던 전우가 이기적인 모습을 보이고, 악마처럼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때 오히려 천사처럼 행동하는 전우들도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진짜 전우입니다. 진정한 천국인은 끝까지 사랑하고, 인내하고,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요, 그런 사람만이 천국문에 행복하게 입성할 수 있습니다.

    빌 3:20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하늘의 고향에 우리의 참된 시민권이 있는 줄을 믿음으로 확신하시고, 하늘의 고향을 향해서 날마다 행복한 순례의 길을 걸어가시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김 충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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