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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눈 뜬 장님 (사 29:17~20, 행 9:1~9, 막 7:3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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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공생애가 지난 후 2년 내지 3년 사이에 일어났던 일입니다. 예루살렘에 모여 있던 교인들은 베드로를 비롯한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설교와 목회만 맡기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과부들과 가난한 사람들을 구제하고 교회를 유지하는 봉사 사업을 위해서 책임자를 선출하였습니다. 그리하여 7분의 집사가 선출되었는데, 그 중에서 수석 집사가 바로 스데반 집사님이었습니다. 스데반 집사님은 예수 그리스도만이 하나님 나라의 길이라고 선포하다가 하나님을 모독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에 의해서 돌로 쳐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게 스데반 집사님이 처음으로 순교를 당하자, 스데반 집사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핍박을 피하여 로마가 지배하던 지역 각지로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한 두 사람이 아닌 수많은 사람들이 흩어져 나가면서 발이 닿는 곳마다 예수님을 이렇게 전하게 됩니다. “예수가 메시아로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새 세계를 열어 주셨습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의 영광을 제가 그 분의 부활을 통해서 직접 보았습니다.” 핍박이 전도의 확산을 가져온 것입니다. 즉 스데반의 순교가 복음의 첫 시작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스데반 집사님이 순교하실 때, 그 현장에는 책임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바로 오늘 말씀드릴 사도 바울입니다. 세상일은 참 오묘합니다. 스데반을 죽일 때 그것을 지켜보면서 하나님을 모독한 사람은 누구나 죽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바울. 예수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하는 인간들은 다 죽여야한다고 믿었던 바울. 바울의 정체성은 예수의 복음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기에 나섰습니다.

사도바울은 바리새파로서 당시 유대교 입장에서 보면 최고의 엘리트 계층이자 학문과 덕을 익힌 지성인입니다. 그의 입장에서는 스데반을 비롯하여 예수를 믿는 인간들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아 멸망하고 망해야 할 집단이었습니다. 그 당시 유대교의 표현에 의하면 ‘암 하아레츠’, 즉 땅에 속한 무식한 천민들이었습니다. 이런 천민들이 전파하는 예수를 사도바울은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천민들이 우리 민족과 우리나라와 하나님을 욕보이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사도바울은 하나님을 모독하는 천민들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길을 나서게 됩니다. 바로 다메섹이라는 길입니다. 여기에서 사건이 발생합니다. 다메섹 도상에 도착을 했는데 하늘에서 갑자기 빛이 나더니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하늘을 올려다보니 빛이 빛나고 눈을 뜬 것 같은데도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때에 하늘에서 말씀이 들려옵니다. 사울아, 왜 나를 핍박하느냐.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십자가에 달려서 피 흘리고 찢긴 예수 그리스도의 음성입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다. 사도바울은 십자가에 달린 사람을 보았으나, 그 십자가의 빛이 너무 밝아서 눈을 뜰 수가 없었습니다. 

이 사건 이전에, 예수님께서는 갈릴리 해변가에서 기적 하나를 행하셨습니다. 벙어리와 귀머거리가 된 사람이 예수께 찾아왔습니다.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예수께서는 손가락에 침과 흙을 묻힌 다음에 그의 입과 귀에 대며 말씀하셨습니다. Εφφαθα(ephphatha), 에바다. 즉 “열려라” 말씀하셨더니 입이 열리고 귀가 열렸습니다. 그리고 이제 다마섹 도상에서 사도바울에게는 에바다라는 말씀 대신에 빛을 보내셨습니다. 이 사실이 오늘 우리에게는 어떻게 적용될 수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모두 눈을 뜨고 삽니다. 그런데 눈을 떴음에도 제대로 보지 못하면 “착시” 현상이라고 말합니다. 또 실제로는 자극이나 대상이 없는데도 그것이 있는 듯이 느끼면 “환각”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을 잘못 보았으면 “환상”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요즘 세상을 보면 권력을 잡았다고 재산을 얻었다고 쉽게 환상에 빠져서 부도덕한 일을 벌이는 사람이 많습니다. 오늘의 문화는 환상에 빠져 제대로 보지 못하는 문화입니다.

이제 사도바울은 다마섹에서 예수님을 만났을 때 자신이 착시, 환각, 환상에 빠졌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니었습니다. 피 흘리는 몸과, 못박힌 손과 발을 가지신 예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너는 왜 나를 핍박하느냐. 너는 이제부터 다마섹으로 가서 나의 복음을 전해라. 사도바울은 율법으로만 구원받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 분은 복음을 전하라고 엉뚱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당신은 대체 누구입니까.

그리고 나중에 사도바울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라 하는 분은 본래 하나님과 똑같은 신분이셨지만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가장 낮은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다. 나는 모세로부터 받은 율법으로 구원받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은 돌판에 쓴 글자일 뿐이었다. 하지만 예수께서 전한 복음은 우리의 마음판에 성령으로 새겨진 글씨이다. 그리고 사도바울은 이제 자기가 그렇게도 경멸하고 멸시했던 천민들 속으로 들어가 함께 어울리고 그들의 리더가 됩니다. 이제는 율법과 유대교를 공격하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자고 앞장섭니다.

사도바울의 변화를 보면, 이런 환상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요즘에 은혜를 받으면서, 착각과 환상에 빠져서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상한 세계를 보았다면서 그리기도 하고, 하나님의 심판도 보았다고 하고, 천국은 어떻게 생겼더라고 설명도 합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은 자신이 본 것에 대해서는 자랑하지 않았으며 단지 예수님의 말씀만을 전했습니다. 그는 로마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하고 싶다. 그 분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전하고 싶다. 환상의 세계가 아닌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만을 전하고 싶다. 십자가 없이는 하늘나라에 갈 수 없다. 예수님의 못박힌 손자국없이 환상의 세계에 빠지는 것은 하나님의 길이 아니다.

항상 가난했던 사람이 부자되는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상할 것입니다. 항상 아픈 사람이 건강의 비결에 대해 이야기하면 이상할 것입니다. 자녀가 없는 사람이 자녀 양육법에 대해 말한다면 아무도 신뢰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위해서 직접 인간의 고통을 겪어보셨습니다. 고통을 건너뛰지 않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고통을 당할 때 함께 고통당하시고 아파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또한 하늘의 영광을 받고 싶다면 십자가를 건너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죽음까지도 짊어지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도바울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십자가 없이 하나님의 부활의 영광을 말하는 사람들에게 가서 전하여라. 십자가는 건너뛰는 것이 아니다. 세상의 온갖 어려움을 함께 질 수 있어야 부활의 길로 갈 수 있다. 바울아, 너도 이제 세상을 등지지 말고 세상 속에 들어가거라. 아픔과 죽음의 고통이 있는 곳에 가거라. 그걸 이기고 부활하여 나와 함께 새 생명을 얻자. 그러자 사도바울은 인간의 아픔을 향해서 들어갑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 아픔, 작아짐, 천함. 이런 인간들의 모든 슬픔을 배제한 채 하늘나라를 말하는 것은 착시이며 착각이며 환상일 뿐입니다. 진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십자가의 고난 속에 함께 동참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부활이 있습니다. 오늘 진실로 하나님을 믿읍시다. 십자가 속에 움터나는 부활의 영광을 선물로 받으십시다.
(박 종화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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