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 목록
  • 아래로
  • 위로
  • 쓰기
  • 검색

설교 발은 착고에 마음은 하늘에 (행 16:16-34)

  • 잡초 잡초
  • 663
  • 0

첨부 1


바울 일행은 마게도냐의 첫 성 빌립보에서
루디아를 만나 그곳에서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
교회가 세워지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것이 마귀의 역사입니다.
이것은 개인적으로나 교회적으로나 똑 같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마치 빛이 비춰지니 숨을 곳이 없는 두더지가 도망가듯이
내 속에, 우리 가정 안에 귀신들이
성령의 역사와 빛 앞에 쫓겨 나갈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서 루디아를 만나 빌립보 교회가 세워지니
제일 먼저 일어난 일이 무엇입니까?

16절에 보니
바울이 기도하는 곳에 가다가 점하는 귀신 들린 여종 하나를 만났다고 합니다.
이 여종은 귀신을 통해 점을 치는 여인으로
그 주인에게 돈벌이를 해 주므로 크게 유익을 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 바울을 향하여 소리 질러 이르기를
17절에 [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 고 하면서
이런 말을 여러 날에 걸쳐 되풀이 하므로 바울이 심히 괴로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 여인은 무슨 일로 이처럼 바울을 따라다니며
여러 날 동안 바울의 신분을 알려주며 그를 높여 주는 일을 했으며
바울은 이런 일에 왜 괴로워하는 겁니니까?
이것은 사탄이 바울로 하여금
교만한 마음을 가지게 하여 넘어지게 하려는 간계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영분별의 능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 여종의 실체를 이미 간파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여
귀신이 이 여인에게서 떠나가게 했던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세워지면 제일 먼저 부딪히는 문제가 귀신의 역사입니다.
개척교회나 선교지에 가보면 제일 첫 번째 손님이 귀신들린 사람입니다.
그러나 빛이 들어오면 어두움이 떠나가듯이
복음이 들어오니 귀신들이 난리를 치는 것입니다.
그러니 혹 예수 믿고 집 안에 우환이 일어나서 못 믿겠다 하시는 분,
잘 들으시기 바랍니다. 마귀의 계략에 속아 넘어 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귀가 놀라 도망가는 거지 내가 놀라서 안 됩니다.
혹 예수 믿고 집에 우환이 일어나거든 <2>
아~ 이제는 귀신들이 떠나가는 구나 - 믿으시기 바랍니다.
할렐루야~ 라고 쾌재를 부르시기 바랍니다.

여기서 잠시 귀신에 대해서 말씀드린다면
귀신의 정체에 대해서는 - 두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
한가지 견해는 귀신은 본래가 마귀와 함께 타락하여
하늘에서 쫓겨 내려온 타락한 천사의 무리라는 설입니다.
이런 주장은 성경에 합당한 주장으로
정통적인 교회에서 가르쳐 주고 있는 말씀입니다.
다른 한 가지 견해는 귀신을 타락한 천사들이 아니라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라고 주장하는 설입니다. 귀신을 타락한 천사로 영적 피조물로 해석하는 견해는 성경적인 견해지만 죽은 사람의 영혼이 귀신이 되어 활동한다는 주장은
이방 세계에서 널리 퍼져 있는 미신적인 견해입니다.
이것은 불건전한 신비주의나 이단들이 주장하는 견해입니다.
이것을 주장하는 자들의 증거는
귀신 들린 사람한테 [ 너 누구냐? ] 하면
죽은 할아버지라든지 시집 못가고 병사한 고모라든지
죽은 사람의 이름을 갖다 됩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이것은 귀신이 할아버지를 가장하고 고모를 가장해서
거짓말 하는 것이지 귀신의 실체가 아닙니다. 속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말씀에 나오는 귀시들린 여인 - 귀신의 힘을 빌려 점을 쳤습니다.
그러니 귀신 들리지 않고 점을 치는 사람 있다면
그것은 소위 말하는 관상학이니 점성학이니 하는 이론이지
점이 아닌 것입니다.
이 귀신들린 여인이 바울을 보는 순간 깜짝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영은 영을 알아보기 때문입니다.
[ 나는 귀신의 영이지만 바울은 성령의 사람이구나 ] - 알아 본 것입니다.
그래서 아부를 하는 것입니다.
17절에 [ 이 사람들은 지극히 높은 하나님의 종으로
구원의 길을 너희에게 전하는 자라 ] 고 소리를 지릅니다.
그래서 바울이 심히 괴로워했다고 합니다.
바울이 왜 괴로워했는가?
귀신들린 여인에게 칭송을 받는 것이
그것도 한 번 두 번도 아니고 여러 날을 소리리지러니
바울의 마음이 편치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귀신아 물러가라고 하니 귀신이 즉시 그 여인에게서 나왔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귀신을 쫓는데 두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1) 영적 능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17: 에 변화산 아래서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할 때
예수님이 오셔서 그 아이에게 귀신을 쫓아 내어주었습니다.
그럴 때 제자들이 예수님께 [ 우리는 왜 안됩니까? ] 물으니
[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 고 했습니다.
그러니 기도 많이 하여 능력있고 거룩한 사람이 되어질 때
귀신들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 귀신아 떠날지어다
이럴 때는 떠나 주옵소서가 아닙니다. - 떠나 가라입니다.

그런데 여종에게서 귀신이 떠나고 나니 문제가 생겼습니다.

점치는 여인이 더 이상 점을 칠 수 없게 되니
이 점치는 여종을 데리고 있던 주인이 자기 이익이 끊겨진 것을 알고는
바울과 실라는 잡아 관원들에게 끌고 가서 고소하기를
[ 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 하니
관원들이 바울과 실라를 옷을 벗기고 매로 치고는
감옥에 넣고는 그 발을 착고에 든든히 채워 버렸던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할 세상 즉 현실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옳으냐?? 틀리냐? 가 판단의 잣대가 아니라
내게 유익이 있나? 손해가 나느냐? 이것이 판단의 잣대입니다.
주인이 점치는 여인을 데리고 있었던 것은
인류의 복지나 사회에 공헌하기 위하여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돈 벌기 위해 여종을 붙들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돈 벌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러니 바울과 실라를 모함하고 감옥에 넣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만약 교회도 이런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교회가 존재해야할 아무런 가치가 없는 것입니다.
즉 교인들 수준이 여기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하나님 운운 할 자격이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면 관원들은 어떻습니까?
백성 중에 누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공의와 정의의 잣대로 잘 판단하고 다스려야 합니다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다분히 정치적입니다.
당시는 빌립보뿐만이 아니라 주변이 다 로마의 식민지입니다.
그러니 로마는 늘 반란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유대인이 제일 골칫거리입니다.
로마 황제를 숭배하지 아니하고 하나님만 유일신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킬 소지가 많습니다.
이런 정치적 분위기 때문에
이들은 유대인인데 로마 사람인 우리의 풍속을 해친다 - 이러니
심문도 재판도 없이 옷을 벗기고 매로 쳐서 감옥에 넣은 것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은 돈이 관여하고 정치성이 판을 치니
복음이 배척당하는 것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니 세상에서 형통하지 못하다고 너무 억울해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님도 요15:18절
[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 고 합니다.
특히 예수 믿고 전도하려고 하다 보면
이런 일은 비일비재합니다. 지금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이 반대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역사는 더 강하게 일어남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전도하다가 억울하게 감옥에 갇힌 바울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옷은 찢기고 매를 맞아 피투성이가 되고 발에 착고가 채여 져서
밤중에 끙 끙 하는 심음소리가 새어나와야 할 텐데
그 깊은 감옥 속에서 기도 소리와 찬송소리가 새어 나오는 것입니다.
그것도 옆방에 죄수들이 다 들릴 정도로
크게 기도 소리 찬송 소리가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한 번 그림을 그려볼 수 있습니다.
바울과 실라가 광신자라서
감옥 안에서 큰 소리로 기도하고 찬송한 것이 아닙니다.
감옥 문은 닫혔고 발은 착고에 매여 있는 형편에서
간절히 기도하다 보니 그 소리에 밖으로 흘러나간 것입니다.
이렇게 진실하고 절박한 기도에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아니 이런 상황에서 기도가 나오고 찬송이 나온다는 그 자체가
바로 기적이 일어날 징조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시145:8절에
[ '여호와께서는 자기에게 간구하는 모든 자
곧 진실하게 간구하는 모든 자에게 가까이 하시는도다 ] 고 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비록 발은 착고에 매여 있었지마는
마음은 하늘로 향하여 있었기 때문에 기도하고 찬송했던 것입니다.
중국의 윈 형제가 쓴 <하늘에 속한 사람>이란 책이 기억납니다.
하늘에 속한 사람 - 그것은 기적의 사람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내일의 가족 여러분~!
예수 믿는 사람들은 하늘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마치 창28장의 야곱이가 도망치던 밤에 루스 광야에서 꿈 가운데
사닥다리가 나타나 하늘까지 닿았고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광경을 보았듯이
우리는 사닥다리가 하늘까지 닿아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을 향해 호흡하는 자들입니다.
그럴 때 유쾌한 날이 이른다고 합니다.
그러니 비록 감옥이 둘러 싸여 있고 발은 착고에 매여 있어도
마음은 하늘을 향해 열려 있어
아무리 깜깜한 밤중이라 하더라도
기도하고 찬송하면 기적이 일어날 줄 믿습니다.
기억나십니까?
우리가 어떤 위기를 당해도
<할 수 있는 것 하면 할 수 없는 것도 이뤄진다>는 말.
바울이 지금 무엇하려고 빌립보 성에 왔습니까?
전도하러 왔습니다.
그런데 전도는 고사하고 지금 감옥에 갇혀 발은 착고에 매여 있습니다.
전도는커녕 자기 몸 하나 어떠할 수 없는 지경입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환경이 우리를 가두어 놓아도 마음만큼은 가두어 놓을 수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할 수 있는 것 기도하고 찬송하면
우리가 할 수 없는 것 기적이 나타날 줄 믿습니다.

바울이 기도하고 찬송할 때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26절 [ 이에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진지라 ]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지진이 일어나 터가 움직이는 현상, 처음 있는 일은 아니지요
행4:에 보면 베드로 요한이 옥에 갇혔을 때도
초대교회 성도들이 모여 일심으로 기도하니
4:31절에 [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 라고 합니다.
즉 우리가 모여서 간절히 기도하면
터가 흔들리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터가 흔들리면 어떻게 됩니까? 모든 조직과 체제가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복음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먼저 빌기를 다하는 기도가 있어야 하고
터가 흔들리면 체제가 무너지니 게임이 안 되는 것입니다.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려졌습니다.
터가 흔들리니 자던 간수가 깨어 보니 옥문이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옥문이 열리고 착고가 풀리는 기적보다 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27절 봅시다.
[ 간수가 자다가 깨어 옥문들이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한줄 생각하고
검을 빼어 자결하려 하거늘 ]
간수가 처음에는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찬송을 해도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얼마나 답답하면 하나님을 찾겠나? 하며 잠이나 청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진이 일어나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그 보다 더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옥문이 열려있는 것입니다.
[ 어이쿠 이제 죽었구나 ]
죄수가 탈옥하면 그 책임이 간수에게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자포자기 하는 심정으로 칼을 빼어 자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때 바울이
[ 야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났구나! 기회는 이 때다 ] 하고 몸만 빠져나왔습니까?
보통 이런 일이 일어나면 우선 살고보자 하고 감옥을 빠져나오겠지요?
그러나 바울은 그렇게 하지 아니했습니다.
28절 [ 바울이 크게 소리질러 가로되
네 몸을 상하게 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 ]
바울과 같은 상황에서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도망 갈 수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안 갈 수 있는 사람
자기의 유익을 챙길 수 있는 상황 가운데서도 이익을 챙기지 않는 사람
왜? 내 몸만 챙기고 내 유익만 찾으면
그 피해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간수가 등불을 달라해서 뛰어 와서는
두려워 떨면서 바울과 실라 앞에 무릎 꿇고는 하는 말이
30절 [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
하나님의 기적은
단순히 옥문을 열어 놓고 착고를 풀어 놓는데 그치지 않습니다.
자연의 원리를 바꾸어 놓기 까지 초자연적인 역사를 나타내시는
하나님의 목적이 무엇인냐?
바로 생명을 살리는데 있고 영혼을 구원하는데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 가운데서도 기적 같은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질 때
입만 벙긋하고 재수 횡재했네? 하고 끝나지 마시고
생명을 살리고 영혼을 구원하는데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반대로 우리에게 어떤 역경이 생긴다 할지라도
복음에 초점을 맞추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열심히 하는 권사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 분이 뜻하지 않게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을 했는데,
건강할 때에야 열심히 전도하셨지만
막상 병상에 눕고 보니 전도를 하고 싶어도 어쩔 도리가 없었습니다.그런데 '병원에서 전도하는 방법은 없을까?' 기도하던 할머니께
하나님이 한 가지 지혜를 주셨습니다
바로 아르바이트 학생을 고용하는 것이었습니다.
할머니가 아르바이트 학생에게 말했습니다
[ 내 몸이 불편해서 성경을 잘 읽을 수 없으니
대신 학생이 하루에 서너 시간씩 성경을 읽어주게나,
사례는 섭섭지 않게 하겠네. ] 그래서 이 학생은 매일 조금씩 할머니께 성경을 읽어 드리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마태복음을 읽어 드렸고, 다음에는 마가복음을 읽어드렸습니다.
누가복음, 요한복음도 계속 읽어드렸습니다.
마침내 사도행전을 읽을 차례가 되었습니다
행16:31절 [ 주 예수를 믿으라.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아르바이트 학생이 이 구절을 읽었습니다
이 구절은 할머니가 평소에 자주 읽었고 암송하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렇지만, 너무나 잘 아는 말씀이었지만 일부러 못들은 척하고
[ 학생, 잘 못 들었네. 다시 한번 읽어주게나. ] 했습니다
학생이 다시 읽습니다. 그렇지만 할머니는
[ 내가 나이를 먹더니 가는귀가 먹었나, 학생, 잘 안 들려. ]
그러면서 세 번, 네 번 반복시켰습니다.
그렇게 같은 구절을 반복해서 읽다보니
학생의 마음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성령이 역사 하신 것입니다.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이 말씀이 닫혔던 학생의 마음 문을 열고 들어가서,
그 생각을 바꾸어 놓았습니다.
할머니는 이런 방법을 통해 열 명이 넘는 사람들에게 전도했다고 합니다.

간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상황에서 바울과 실라에게 묻습니다.
[ 선생님들,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겠습니까? ]
현재 우리에게는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문제를 통해서 하나님 만나기를 원하십니다.
즉 하나님 만나 구원 얻기를 원하십니다.
사실 인간이 가진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31절 [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이것은 간수의 심각한 문제에 대한 답일 뿐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답이기도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구원의 종교입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 즉 예수란 뜻이 구원이란 뜻입니다.
사람에게 제일 급선무는 구원입니다.
왜 우리에게 먹고 마시고 즐기는 것보다 우선이 구원인고? 하면
물에 빠진 사람에게 제일 급선무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물에 빠져서 죽어 가는데 어떤 사람이 떡을 사 가지고 가서
[ 여보시오, 물에 빠져서 헤매느라고 얼마나 배가 고프겠소.
떡을 가지고 왔으니 이것 잡수시고 힘을 얻으시오 ] 한다면
물에 빠진 사람이 뭐라고 하겠습니까?
[ 지금 떡이 문제요 빨리 나 좀 구원해 주소 ] 할거예요
어느 사람은 좋은 옷을 한 벌 해 가지고 와서
[ 여보시오, 당신 물에 빠져서 옷이 다 젖었으니 얼마나 춥겠소?
이 옷으로 갈아입으시오 ]
[ 야~ 말 좀 대는 소리해라 ] 고 할 것입니다.
또 어느 사람은
[ 야, 너 물에 빠져 얼마나 고생하느냐?
그케! 진작 수영하는 법 좀 배워놓지
자 수영법 책이 있으니 읽고 헤엄쳐 나오너라 ] 하면 뭐라 할까요?
[ 야~! 지금 물에 빠져 죽어 가는 사람보고 팔자 좋은 소리 한다 ] 하며
되려 역정을 낼 것입니다.
이 인생을 구원해 보려고
경제정책, 첨단과학 생명공학, 심지어는 온갖 웰빙을 다 찾아보지만
그리고 귀신 떡다리 같은 달마도 부쳐 놓으면 된다고~! 장사속,
먼저 인생은 죄악에서 구원받는 일이 급선무인 것입니다.
구원받지 못한 인간은
제아무리 훌륭한 지식과 지위, 명예, 돈을 가져다 줘도
참 만족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내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예수님을 구주로 믿어야 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바로 내 마음에 영접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마음은 하나의 방입니다. 마음에 무엇을 담아두느냐,
마음에 누가 함께 하고 있느냐에 따라 삶이 달라집니다.
우리들이 지내는 방에 밥상을 놓으면 식당이 됩니다.
책상을 갖다놓으면 공부방이 되지요.
방석을 깔면 응접실이 되고, 이불을 깔면 침실이 됩니다.
요강을 갖다놓으면 화장실도 되고
화투 치려고 담요를 깔아놓으면 금세 도박장이 되지요.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도 그렇습니다.
누구와 함께 하는지,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는지에 따라 많이 달라지지요.
우리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시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분을 우리 마음의 방에 영접하면 평안 가운데 삶이 새로워집니다.
변화된 삶 속에 확신이 생깁니다. 날마다 기쁨 속에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내 마음에 구주로 모시는 결단의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바울에게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는
말을 들은 간수는 어떻게 행동을 했습니까?

33절에 [ 밤 그 시에 간수가 저희를 데려다가 그 맞은 자리를 씻기고
자기와 그 권속이 다 세례를 받은 후 ]
온 가족과 함께 세례를 받았습니다. 즉 온 가족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프레미엄 하나님이십니다.
[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정말 안 믿는 가족 두신 분 - 마음대로 안 되고 걱정 되지요
그러나 너무 걱정 하지 마세요. 나부터 먼저 예수 바로 믿어 보세요
조금 있어면 다 구원 받게 되어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할 일은 교회에 데리고 나오는 일입니다.
어느 교회 광고 시간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제법 진지하게 광고를 하고 계시는데,
한쪽에서는 여자분들이 키득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좀 더 큰 소리로 목사님이 말씀하십니다.
[ 다음 주에는 여전도회 주최로 각 가정에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가져다
싸게 파는 행사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잊지 마시고 안 믿는 남편들 데리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 남편들을 한번이라도 교회에 나오게 하려는 목사의 마음이 들어 있는 광고입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집안에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가져다가 싸게 파는 바자회 광고에
그 말을 덧붙이는 바람에 남편들이 졸지에 집안에서
필요 없는 싸구려 물건이 되고 말았고, 모두들 한바탕 웃었습니다.
제발 소중한 사람을 필요 없는 물건 만들지 마시고
필요한 일군 만들기 위해서 이번 116오직전도주일을 D-day로 삼으시기 바랍니다.
(김 성덕 목사)

이런 글도 찾아보세요!

공유

facebooktwitterpinterestbandkakao story
퍼머링크

댓글 0

권한이 없습니다. 로그인

신고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신고 하시겠습니까?

삭제

"님의 댓글"

이 댓글을 삭제하시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