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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기드온을 통해서 본 하나님 (삿 6: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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젤리그 플리스킨(Zelig Pliskin)이라는 유대인 랍비가 ‘ 지금까지 전 생애를 걸쳐서 당신을 기다렸습니다’( I've been waiting for you my entire life) 라는 수필을 통해서 자신이 살아오면서 기다렸던 사람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 나는 평생 많은 비판만을 받아왔습니다. 나는 평생 당신같이 나의 좋은 면을 말해주는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나는 늘 용기 없이 살아왔습니다. 나는 나에게 희망을 줄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나는 늘 결단력 없이 살아왔습니다. 나는 나에게 결단력을 심어줄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나는 언제나 체계적이지 못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나는 나에게 삶을 체계적으로 조직하는 능력을 줄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나는 언제나 성실하지 못한 삶을 살아왔습니다. 나는 나를 좀 더 삶에 충실하게 할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나는 나에게 맞는 배우자를 만나기를 바라며 살아왔습니다. 나는 나에게 결혼에 대해 바른 지도를 해 줄 사람을 기다렸습니다.’

이 분의 수필을 읽다보면 우리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고, 무엇인가를 바라면서 이 땅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내 삶을 좀 더 새롭게 바꾸어 줄 그 어떤 것이 이 땅에는 없는가! 내 앞에 산적한 저 문제들, 내가 풀어 헤치고 나가야할 저 문제들 앞에 나로 하여금 당당하고 용기 있게 헤쳐 나갈 수 있는 힘과 지혜를 공급해 줄 수 있는 어떤 분이 없을까!’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기드온이라는 사람은 심한 좌절과 절망 그리고 분노 가운데서, 기다리는 한 분이 있었습니다. 그는 농부였습니다. 그가 농사를 다 지어놓고, 수확의 기쁨을 느끼기 바로 직전에 미디안이라는 이방 족속들이 쳐들어와서 그의 수확을 다 빼앗아 가고 소와 양과 짐승들과 어린아이와 여자까지 다 잡아가는 그런 비극과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사실 농산물을 빼앗긴 것뿐만 아니라 1년 동안 그가 땀 흘리고 수고했던 희망과 노력을 한꺼번에 빼앗겨 버린 것입니다. 그것이 계속 7년 동안 반복되면서 그들은 지칠 대로 지쳤습니다. 수고해도 결실이 없는 삶, 노력해도 성과가 없는 인생 이였습니다. 그리고 그 백성들은 그들의 삶의 자리를 잃어버려 산 속에 들어가서 굴을 파고 숨어서 지내야 했습니다. 그는 자기의 삶과 더불어서 민족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누군가가 우리의 이런 아픔과 고통에서 구원해 주길 간절히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오늘 우리에게 인생은 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고 우리 앞에 주어진 문제들을  풀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용기와 힘과 지혜를 주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어느날 기드온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기드온이 하나님을 만나고 난 이후에 그의 환경이 변한 것은 아무 것도 없는데, 그가 전에는 두려워서 할 수 없었던 그리고 감히 도전하지 못했던 일들을 용기와 힘과 지혜를 가지고 도전하면서 자신뿐만이 아니라 민족을 구원하는 용기 있는 믿음의 사람으로 변해있음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기드온이 만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었을까요?

그는 농부로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약하고 때로는 겁쟁이처럼 보이는 사람이었지만, 그가 하나님을 만날 때에 자기의 환경을 바꾸어 나갈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유익을 주는 인생으로 그의 삶이 바뀌었습니다. 그 주님이 바로 오늘 우리가 만나야 될 그 주님이 아닐까요? 우리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만나셔서 어떤 일들을 하셨을까요? 오늘 그 주님을 함께 묵상하기를 바랍니다.

1)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참된 가치를 인정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12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께서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는 농부 기드온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입니다. ‘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신다’

“큰 용사여!”라는 말은 기드온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호칭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호칭입니다. 그는 용사가 아니라 농부입니다. 그리고 그가 큰일과 싸움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금 겁이 나서 숨어서 곡식을 찧고 있는 사람입니다. 미디안 군대와 대항해서 패배해 버린 사람 ,자기의 문제를 헤쳐갈 수 없는 연약한 사람에게 주님은 나타나셔서 “큰 용사여!” 이렇게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에 ‘큰 용사여’라는 단어는 히브리어로「깁보르 헤하일」입니다. 능력 있는 용사. 즉, 무슨 일이든지 맡겨만 주면 감당할 만한 능력 있는 사람. 이런 의미입니다. 이 단어는 룻기 2장 1절에 역시 동일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나오미의 남편의 친족 중에 룻과 결혼해서 다윗의 조상이 된 보아스란 사람을 부를 때 이런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쉽게 말씀드리면 재산과 덕망, 그리고 세력을 겸비한 사람.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그 일을 능히 감당할 능력 있는 사람이란 뜻입니다. 기드온에게 주님께서 큰 용사여! 하고 부르니까 기드온 자신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나는 아닙니다. 나에게 해당되는 말은 아닙니다. 나는 실패한 사람이요. 내 앞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해서 지금 산 속으로 피신해 있는 사람이요, 미디언 사람들을 피해서 생명을 연명하는 정말 연약한 사람입니다. 나는 용사가 아닙니다.”라고 그는 변명을 합니다.

15절 말씀에 ‘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라고 되어있습니다. 즉 “하나님! 내 출신 배경을 보십시오. 내가 살아온 행적과 가지고 있는 소유와 나의 성격과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모습을 한 번 보십시오. 저는 주님이 말씀하시는 그런 사람은 아닙니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기드온에게 찾아오셔서 왜 ‘큰 용사여!’하고 불러 주셨을까요? 그것은 기드온 속에 있는 그의 진정한 가치를 향해서 인정해 주시는 주님의 음성입니다.

아주 지혜로운 수도사 한 사람에게 방문객이 찾아와서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당신을 지혜로운 사람, 예언자라고 이야기를 하는데, 어떻게 당신을 그렇게 부릅니까?” 이 수도사가 이렇게 대답합니다. “나는 사람과 사물을 보는 능력이 다른 사람과는 조금 다르지요. 보통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만 보고 자기 현실만 보는 반면에 나는 그 속에 숨겨진 것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졌습니다. 나는 누에고치 안에 나비를 볼 수 있습니다. 알 안에 있는 독수리도 보게 됩니다. 이기적인 인간 속에 있는 성자의 모습도 볼 수 있습니다. 죽음 안에 있는 생명도 봅니다. 분열 속에 내재한 일치도 볼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고난 안에 계신 하나님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습니다.”

지혜라고 하는 것은 우리 눈에 보여 지고 표현되어 진 것 그 이면 속에 본질을 볼 줄 아는 것 그것이 지혜입니다. 지혜의 근원 되신 그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창조하시고 만드시고, 그를 조성하신 그 하나님께서 기드온도 미처 알지 못했던 기드온의 참된 가치를 그에게 일깨워 주고 있는 것입니다.“ 너는 패배한 인생, 실패한 인생,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 너 앞에 주어진 일도 도무지 감당할 수  없어서 도피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지만, 원래의 너의 모습이 아니며, 너 속에는 내가 너에게 맡겨준 그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는 용사다”라고 주님께서 일깨워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볼때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나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1:4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게바 즉 베드로는 바위, 반석이라는 뜻입니다. 사람들이 다 웃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충동적이며, 얼마나 변화가 심한지 상황에 따라서 그 마음이 변하며 일을 할 때도 그 에게는 평안함과 안정감 느낄 수가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그 베드로에게 “너는 반석이라 네 반석 위에 교회를 세우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상한 말씀을 하신 것이 아니라 그 충동적인 베드로에게 그의 진정한 가치 속에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거듭 나며 흔들리지 않는 복음의 바위처럼 반석처럼 든든하게 설 베드로의 모습을 보시고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주님께서 우리에게 동일하게 이 말씀을 해 주십니다. 우리는 자신이 어떤 일에 성공했는가!, 사람에게 칭찬 받고 있는가!, 많은 소유를 가지고 있는가!, 이것으로 우리의 능력을 가늠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것과는 상관없습니다. 실패해도 좋습니다. 우리는 죄를 계속 해서 범하는 죄인인 것도 주님은 아십니다. 우리가 연약해서 넘어지고 쓰러지는 존재 인줄도 아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은 원래 내가 창조한 너의 모습은 약한 사람, 실패한 사람, 못난 사람이 아니라 큰 용사라고 오늘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말씀해 주십니다. 그렇다면 왜 우리가 그것을 발견하지 못했을까요? 우리의 그 가치와 능력은 주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짐을 몰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도 바울은 인생에 있어서 힘이란 로마의 시민권이라는 엄청난 파워에서 나오는 것인 줄로 알았었습니다. 그 당시에 이 로마의 시민권은 사람들이 상상하지 못 할 엄청난 법적 경제적으로 모든 면에 있어서 우월한 제도였고, 힘이 있는 제도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돈에서 모든 힘과 능력이 나오는 줄 알았었습니다. 자신의 지식에서 이 세상을 살아가는 힘이 나오는 줄 알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 속에서 하나님 안에 있을 때만이 자기가 진정한 능력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바울의 신앙 사상 중에 「엔크리토스-그리스도 안」이라는 사상이 그의 전반적인 것에 흐르고 있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노라”고 빌립보서 4장에서 고백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의 진정한 가치와 능력은 나를 만드시고 창조하신 그 분의 손에 붙잡힐 때에 가능하다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여러분들의 삶과 살아온 인생 속에서 “ 어쩌면 나는 실패한 아빠, 실패한 남편, 실패한 엄마 , 실패한 부모 , 실패한 사업가, 실패한 그리스도인이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어. 나는 내 앞에 주어진 일을 감당할 능력이 나는 없어. 그래 나는 이대로 사는 것이 내 인생의 내 모습이야.“ 라고 생각하고 있습니까?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렇게 생각하지 말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너는 큰 용사 , 네가 내 안에 있을 때에 내가 너 안에 있을 때에 너는 모든 것을 할 수 있고 너는 하나님의 사람이고 내가 너를 조성하여 창조하였다. 하나님께서 너를 이 땅 위에 보내셨을 때에 정말 아름답고 존귀한 역할을 감당할 수 있도록 만드신 하나님의 걸작품이다”라고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권면 하십니다.

기드온이 그가 자기 앞에 산적한 문제들, 해결할 수 없는 그 문제들을  헤치고 나갈 수 있었던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의 가치를 바로 인정해 주셨고, 주님 안에서 그 가치를 따라서, 그 가능성을 따라서 믿음으로 자기의 미래를 한 걸음, 한 걸음 헤쳐 나갈 때에 주님은 그 길을 열어 주셨고, 그의 삶을 승리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기드온을 만난 하나님, 그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무엇을 하셨습니까?

2)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해 주시는 분입니다.

14절 말씀을 보십시다. ‘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사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것이 아니냐 ’돌아보사 라고 번역된 와이펜의 원형 파나 는 방향을 -에게로 향하다 는 의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기드온의 얼굴 쪽으로 향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 주님이 정말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주님이 살아 계신다면, 그리고 우리의 열조를 애굽에서 노예 되었던 곳에서 구원하여 주셨던 이적과 기적의 하나님이라면, 하나님의 백성이 이토록 고통을 당하는데 어디 계셨습니까? 왜 우리를 이렇게 버려두셨습니까?”라고 울부짖는 그 기도온의 음성 앞에 주님께서는 돌아보았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돌아본다’의 원형인「파나」라는 뜻은 방향을 ‘~에게로 향한다’ 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쉽게 기드온의 불평을 듣지만, 1년 내내 땀 흘려서 수확한 양식과 자식과 여자들과 모든 가축들을 빼앗긴 것을 한번 생각 해 보십시오! 그래도 참고 견뎠고 그러나 또 빼앗아가는 상황이 7년 동안 지속되었다면 마음속에 울분과 분노가 가득 차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드온을 향해 보셨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굉장히 상징적이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은‘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해 등을 돌리셨고 얼굴을 가리우셨다.’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지 아니 하시고 등을 돌리지 아니 하셨더라면 이렇게까지 고난과 어려움을 겪을 리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기드온의 원망과 불평하는 소리를 다 들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로할 때에 ‘네 마음을 다 토하라’고 하십니다. 사람에게 토하면 그 사람에게 참 싫어버림 바 되고 멸시받게 되지만, 주님께 토하는 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기드온을 위로하며 격려해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격려는 능력이 있습니다. 단순히 인간처럼 맘을 편하게 하며 공감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이 일을 구체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알리시며 그를 지지해 주십니다. 성경의 여호수와서를 이렇게 읽다가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말씀을 발견했습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가 죽고 난 다음에 후계자로서 여호수아는 두려워지기 시작했습니다. 모세와 함께 쭉 지내면서 , 불평하기를 좋아하고, 원망하기를 좋아하고, 하나님 대적하기를 좋아하고, 지도자를 대적하는 이 백성들을 보았습니다. “어떻게 이 백성들을 이끌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하나님의 그 큰 종 모세도 쩔쩔매고 참 힘들어했는데, 나는 도무지 자신이 없다. 그런데 그 뿐 아니라 앞으로  요단강을 건너야 하는데, 저 견고한 여리고 성도 있고, 그리고 이제는 전쟁을 벌여야 하는데, 그 전쟁을 치를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라고 생각하며 덜덜덜 떨면서 두려워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이 여호수아에게 나타나셔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1장 5-6절까지 보면「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 것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버리지 아니하리니 마음을 강하게 하라 담대히 하라 너는 이 백성으로 내가 그 조상에게 맹세하여 주리라 한 땅을 얻게 하리라」

여호수아에게 주셨던 이 위로의 말씀이 3가지가 나옵니다. 『내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내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여러분!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위로를 받는 말은 이 3가지 단어입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그 어떤 사건 보다 일들 속에서의 외로움입니다.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돕는 사람이 없다는 것. 그것이 우리가 만난 일보다 훨씬 더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절대 떠나지 않는다. 내가 너를 버리지 않는다. 내가  어디에 가든지 너와 동행한다. 그리고 너에게 이 약속한 말씀을 다 이루리라.”라고 주님은 약속합니다. 주님은 그 약속을 기드온에게 해 주시면서 그로 하여금 용기를 갖고, 믿음 안에서 살아 갈 수 있도록 격려해 주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에서 붙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요? 내가 도움을 청했던 그 사람은 오히려 내가 도와주어야 할 형편이라는 것을 발견 할 때가 참 많이 있습니다. 세상에 의지하고 기댈 곳 없을 때 주님은 기드온에게 찾아오셔서, 그의 말을 들어주시고, 다시는 그를 떠나지 않고 함께 하겠다는 구체적인 언약의 약속을 반드시 이룰 것을 약속하시고, 이 말씀을 따라갈 때에 승리하게 될 것이라는 믿음과 확신을 주셨습니다.

동아일보에서 ‘울고 싶은 남자들‘이란 주제로 6회에 걸쳐서 2005년 한국 중년 남성들의 이야기를 다룬 적이 있습니다. 남자들이 일찍이 꿈꿔왔던 남성상은 힘과 권위와 성취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사회가 변하는 가치관 속에서 경쟁에서 밀려나고, 스트레스 속에서 어느새 돈벌이 노동자처럼 전락하였습니다. 한국의 중년남성들은 자녀들에게도 등 돌림을 당하고, 또 무엇을 해야 할지 알지 못하는 초점을 잃은 삶과 정말 맘 놓고 쉴 곳도, 이야기 할 곳도 없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언제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불안감, 가정 안에서도 따돌림 당하는 외로움. 삶의 방향을 정하지 못한 두려움. 이것이 한국의 중년 남자들이 현실적으로 겪고 있는 보편적인 문제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국의 중년남자들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는 말에 대한 갈증이 있습니다. 자신의 말을 잘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시간만 내서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맺혀있는 속상하고 복잡한 이야기를 다 들어 줄 수 있는 사람을 원합니다. 정말 내 속에 있는 것을 다 주고 싶은 그 사람을 찾지 못해서 현대인들은 방황합니다.

한국의 중년 남자들에게 정신과 선생님 한 분이 “남자란 이런 것이다 라는  생각에 얽매이지 말라. 아줌마식 수다를 배워라. 힘들면 힘들다고 말하라. 사색할 시간을 마련하라.” 라고 충고를 했습니다. 제가 아무리 생각해도 해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중년이 되어서 40 중반을 넘고 50을 넘도록 그렇게 훈련을 받고 자라 왔기 때문입니다. 아줌마식 수다를 배워라. 이상할 것입니다. 남자들이 아줌마식 수다를 떨면서 왁자지껄하면 그 분위기가 이상할 것입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이야기 해라! 돈도 못 벌어오면서 힘들다고 말만 한다고 핀잔을 받을 것입니다. 사색할 시간을 마련하라! 돈 벌기 바쁜데 사색할 시간이 어디 있냐고, 멍청하게 공상할 시간에 나가서 돈을 벌라는 이야기를 들을 것입니다. 물론, 도움이 되는 말이지만, 결국 자기의 인생은 자기가 알아서 스스로 하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얼마나 추상적인 위로의 말인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 속에 다가오셔서 구체적으로 말씀하시고, 동행해 주시겠다고 그렇게 약속해 주십니다. 예레미야애가 3장19절-23절까지 보면 「내 고초와 재난 곧 쑥과 담즙을 기억하소서, 내 심령이 그것을 기억하고 낙심이 되오나 중심에 회상한즉 오히려 소망이 있사옴은 여호와의 자비와 긍훌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 이니다. 이것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주의 성실이 크도소이다.」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외롭지 않는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다 편한 것처럼 보여도 그 내면의 삶 속에는 외로움이 있고, 고통과 아픔이 있습니다. 자신이 살아야 될 또 넘어야 될 많은 인생의 벽들 앞에서 주저앉을 만한 어려운 일들이 우리들 속에 있지만, 오늘 주님은 우리에게 찾아 오셔서 할 수 있다고 말씀해 주시고,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말씀해 주시고, 위로해 주십니다. 그리고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다시 그 약속을 기억하시고 붙드셔서 일어서시기를 바랍니다. 바로 이 기드온처럼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기드온을 만나셨을 때 무엇을 하셨습니까?

3)하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나타나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할 것을 명령하셨습니다. 위로함도 받았습니다. 그러나 막상 자신이 전혀 해보지 못하고, 할 수 있다고 상상도 못했던 미디안군사와 싸움을 시작하기에는 두려웠습니다. 무엇인가 자신이 시작할 수 있는 확신의 증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요청 했습니다
17절에 ‘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그리고 나서 기드온이 하나님께 드릴 예물을 준비해서 옵니다. 그는 여러 명이 먹을 분량을 준비했습니다. 아마 기드온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나왔을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자가 고기와 무교전병을 반석위에 놓고 국을 그 위에 쏟으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사자가 지팡이를 그 끝에 대니까 갑자기 반석에서 불이 나와서 그 제물을 다 태워버린 후 사라져 버렸습니다. 기드온에게 이 장면은 굉장히 익숙한 장면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에서는 번제시 제물이 탈 때에 포도주를 붓습니다. 하나님께 그 향을 함께 올려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국을 부을 때 포도주를 붓는 것을 연상케 하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가 친히 제사장이 되셔서 그의 제물을 받으시는 그 장면을 기드온은 경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 때서야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하나님이신 것을 깨닫게 됩니다.

율법에 하나님을 본 사람은 죽는 다는 생각에 기드온이 벌벌 떱니다. 그 때 하늘에서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죽지 않을 거다”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립니다.‘하나님은 우리와 화평하기를 원하시는구나!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우리를 괴롭게 하고 고통스럽게 했다고 생각을 했는데,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 공급받지 못한 것이 우리의 고통이고 아픔이었구나! 우리가 하나님께 더 큰 죄인이고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에게 평강주시기를 원하시는구나!’하며 기드온은 깨달았습니다.
   
그 죄인 된 자신을 찾아오셔서 친히 주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다시 알려주십니다. 회개의 제사를 주님께서 마련해 주신 것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자기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만들므로 인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만큼 사랑했는가를 그 십자가에서 확증시켜주셨다고 했습니다. 기드온은 자기가 하나님을 위해서 한 것이 없습니다. 정결하기 위해서 회개한 것도 없고, 변한 것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이 그를 찾아오셔서 그에게 하나님께 돌아갈 길. 회개할 길.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고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며 주님과 함께 교제할 수 있는 귀한 길들을 그에게 가르쳐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화평하기를 원하십니다.‘여호와 샬롬 ’은 평강을 말합니다. 평강이라는 것은 관계의 아름다운 회복을 말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인간과의 관계가 회복되고, 자신과 회복되고, 자연과 함께 회복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 ‘여호와 샬롬!’ 이 평강의 하나님. 그 하나님을 기드온은 거기서 깨달았습니다. 그가 이것을 깨닫았을 때 제일 먼저 한 것은 자기 집에 있는 바알과 아스라 목상을 찍어 버리고 불태웠습니다. 자기 삶 속에 하나님과 교제하지 못하게 하는 것,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지 못하게 하는 것,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도록 만드는 그 근원 되는 것을 그의 삶에서 제거해 버렸습니다. 고통스러운 그 순간까지도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가 고통과 아픔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아보지 않았다고 흔히 이렇게 이야기를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주님은 이미 우리의 삶을 아시고 우리에게 예수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우리의 죄를 사해 주셨습니다. 이미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그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믿고 따라가는 사람에게 죄 용서의 기쁨과 구원과 감격을 주시고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는, 회복할 수 있는, 하나님과 친교 할 수 있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능력을 덧입을 수 있는 길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미리 열어 놓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자격이 있어서 한 것이 아니라,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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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도 미스 아메리카로 뽑힌 헤더 화이트 스톤(Heather Whitestone)이라는 자매가 있습니다. 헤더가 18개월 되었을 때에 귀머거리라는 것을 부모가 알게 되었습니다. 듣지 못하면 말하지도 배우지 못하고 결국 3학년을 넘기지 못할 것이라고 의사선생님에게 설명을 들었습니다. 이 헤더의 어머니는 낙심했습니다. 절망했습니다. 듣지를 못하니까, 말을 배우지 못할 것이고, 말을 배우지 못하면 말을 못하고 결국은 인생을 저렇게 살아가겠다는 생각 때문에 너무 가슴 아파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거기에 주저앉지 않았습니다. 그 딸의 선생이 되어서 말을 가르치지 시작했습니다. 자기 딸의 한계에 집중하지 않았습니다. 그녀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무엇인지 찾아서 그 가능성에 도전했습니다. 그녀는 동분서주하며 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면서 딸의 손을 엄마의 목에 대어서 진동을 느끼게 하고, 다른 손은 엄마의 입술에 대게 해서 호흡을 느끼게 하면서 그 언어의 표현을 하나씩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6년 만에 처음으로 자신의 last name 즉 성을 발음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씩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쉽게 이야기 하지만, 피눈물 나는 고통이었을 것입니다. 엄마는 그 딸이 음악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박자를 가르쳐 줍니다. 음정을 가르쳐 주고, 노래를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에 따라서 춤을 추는 것을 가르쳐 주기 시작합니다. 드디어 미스 아메리카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향하는 노래에 맞추어서 헤더는 춤과 노래를 엮은 멋진 연기를 펼쳐냈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습니다. 그녀가 자신은 청각 장애인이라는 것을 고백을 하기 전까지 장애인이라는 사실을 알았던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미스 아메리카로 그녀가 선발되고 난 다음에 그녀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의 최고의 복은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나를 한 번도 장애인으로 본 적이 없습니다. 어머님은 나를 가능성을 지닌 한 멋진 인격체로 끝까지 바라보았습니다. 나의 가치를 인정해 주었습니다.”


오늘 나의 가치를 진정으로 인정해 줄 분이 누가 있을까요?  실패한 사람, 패배한 사람, 정말 나쁜 사람 등 인간을 좌절하게 하는 것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오늘 내 속에 있는 진정한 가치와 그 속에 있는 가능성에 초점을 맞추시고  나를 이끌어 주시고, 격려하는 분이 누가 있습니까? 바로 우리 주님입니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들을 무한한 가능성을 가진 주님의 자녀로 보시기에 자기 아들 독생자를 죽이면서까지 우리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있는 참된 가치. 우리에게 맡겨 주신 일들을 능히 감당할 능력 있는 주님의 자녀라는 것을 오늘도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일깨워 주시길 원하십니다. 다시금,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드시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너는 참으로 큰 용사다」라는 그 음성 앞에 여러분의 마음 문을 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한 번도 여러분을 영적인 장애인, 혹은 실패한 사람으로 보지 않고, 가능성을 가진 존재라고 하시며 그 삶을 인도하시는 그 주님과 동행하는, 그리하여 우리에게 남은 삶을 더 복되고 아름답게 만들어갈 수 있는 주님의 자녀가 되기를 간절히 축복합니다.  - 아멘 -  (김 형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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