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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누가 세상을 구할 것인가? (삿 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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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어떤 일을 할 때  적은 수보다는 많은 수로 일하기가 쉽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작은 것보다는 큰 것이 일을 할 때 훨씬 더 많은 일을 하고 효율적이다 라는 생각을 합니다.사업을 할 때도 적은 자본보다는 많은 자본이 더 유리 하다고 생각 합니다. 특별히 전쟁을 할 때는 많은 인원과 우수한 장비가 충분히 동원되어야 승리하는 것이 당연함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 주님께서는 기드온에게 전쟁에서 소집된 32,000명 중에 31,700 명은 돌려보내고 300명만 남겨서 135,000명이라는 인원을 상대로 전쟁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을 기드온에게 요청 하시면서 전쟁을 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신 이유가 뭘까요? 하나님의 어떤 뜻이 기드온에게 전달되기를 원하셨을까요?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하나님께서 이제는 정말 해결해 주실 만도 한데, 계속해서 우리의 문제가 붙들고 계실 때가 있습니다. 사업, 자녀, 질병의 문제들로 아무리 몸부림치며 기도해도 하나님이 정말 돌아보시지 않는 것처럼 응답이 없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기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은 정말 살아계시는가? 내 기도를 정말 듣고 계시는가?  하나님은 나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이신가? ”라고 의심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기드온에게 300명으로 전쟁을 하라고 하신 그 주님의 의도와 뜻을 통해서 오늘 우리의 삶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 시간 한번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을 가르치시기를 원했습니다.

하나님은 이 전쟁의 궁극적인 목적이 전쟁의 승리에 있지 않음을 기드온에게 알리기를 원하셨습니다. 지금 이스라엘민족은 미디안과 아말렉 군대에 의하여 7년 동안 엄청난 고통을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를 부르셔서 확신을 주시고 미디안과 아말렉 군대와 싸우기를  원하셨습니다. 이제 전쟁을 일으킵니다. 전쟁은 2등이 없습니다. 전쟁은 양보가 없습니다. 전쟁에 승리해야 됩니다. 기드온은 모든 힘을 다 동원해서 승리해야 자기 백성을 구원할 수 있고 또 그 민족이 평안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기드온은 이 전쟁에 올인(all in) 하는 겁니다. 기드온은 모든 것을 투자해서 이 전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사람이 필요합니다. 좋은 전략도 필요합니다. 또 좋은 장비들도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와 조금 달랐습니다. 하나님은 그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것 이였습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때로는 전쟁의 승패에 하나님은 연연해하는 것 같아 보이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이 만약 자기의 힘으로 이 전쟁에서 이기게 된다면 그 백성들과 더불어 자신들의 능력으로 이겼다고 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이 백성들은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하나님께 예배하고 영광 돌리는 주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 있었을까요?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삶 속에서 고난과 고통이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중보기도 카드를 보면 자녀와 질병 등의 문제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안타깝게 기도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문제를 풀어주셔야 자신의 인생이 달라지고 우리 가정이 달라지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계속 그 문제를 두시는 이유가 뭘까요?

주님은 오늘 우리자신들의 체질을 너무나 잘 아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문제를 풀어지는 것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문제를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하나님 자녀다운 삶을 사는 것이 주님의 궁극적인 목적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정말 복된 길이기 때문입니다. 

문제가 풀리지 않고 오래갈 때 그 과정들을 곰곰이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나에게 뭘 요청하시고 원하고 계신지를 진지하게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주님의 뜻은 우리를 더 가까이 두시고 우리와 더 친하게 지내기를 원하시고  또한 복 있는 인생, 즉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오늘도 여전히 주님은 주님께서 우리의 삶속에서 모든 생각을 붙들고 계신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예전에 저희 가정의 문제도 한순간에 풀어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모든 것이 일시적으로 다 해결할 능력이 있으시지만 주님께서 기간을 두시고 서서히 해결해 가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 자신과 우리 가정이 믿음 안에서 하나님을 좀 더 가까이 할 때 그 문제를 하나씩 풀어 가심을 느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복 있는 사람으로 살기를 원하시는 그 간절함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문제를 통해서 우리를 붙들고 계신다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주님께 더 가까이 나가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드온에게 300명의 용사만 남기신 이유는 또한 무엇일까요?
 
둘째로, 진정한 삶의 풍성함과 승리의 삶은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서 나온다는 것을 기드온으로 하여금 고백하기를 주님은 원하셨습니다.

오늘 이 말씀은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는 것이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오늘 우리의 입술을 통해서 주님께 고백하기를 기다리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노력과, 실력 ,좋은 성품, 좋은 부모, 좋은 환경 때문에 지금까지 왔다고 혹시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모든 것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깨닫기를 원하시고 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위에 살아가고 있다고 매순간 고백하기를 원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백성이 가나안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백성에게 주신 부탁과 경고의 말씀이 있습니다. 신명기 8:12-14, 17에 ‘ 네가 먹어서 배부르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주하게 되며 또 네 소와 양이 번성하며 네 은금이 증식되며 네 소유가 다 풍부하게 될 때에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기드온은 자기 스스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자’ 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한 우리 인간의 속성을 아시기에 하나님은 가장 연약한 므낫세 지파의 기드온을 택하여 300명으로 승리하게 하면서 우리의 진정한 승리는 하나님께 있고 저들의 노력과 애씀에 있지 않다는 것을 철저하게 고백하기를 원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6장 34절보면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라고 말씀합니다. 기드온의 승리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에 가능한 것임을 기드온이 기억하고 고백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 자신이 조금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을 제거해버리셨습니다. 7장2절에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은 어떤 사람에게 일을 맡기실까요? “ 하나님 내가 살아가는 것이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내 인생이 풍성함을 얻게 되었나이다 ” 하는 그 고백이 우리들 입술 속에 끊임없이 넘쳐나기를 주님은 원하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에 보면 화려했던 한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모습이 나옵니다. 그는 예수님께 부름을 받아서 “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이 아들 ” 이라는 아무도 드리지 못했던 신앙고백을 했던 아주 탁월한 영성의 사람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이 주님을 보고  귀신이다, 유령이다 라고 두려워 떨 때에 그는 거센 풍랑이는 물 위를 걸을 수 있는 담대한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려할 때 칼을 빼들어 휘둘러서 예수님을 지키겠다고 했던 사람이요 다 떠날지라도 자기는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다고 했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하고 신뢰하고 누가 보아도 자타가 공인하는 예수님의 수제자였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이 심판 받으실 때에 그 뜰에서 어린 계집아이의 말에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며 저주하였습니다. 그의 모든 신의와 결단이 한꺼번에 무너져 버렸습니다.  자신은 대단한 존재 같았는데, 적어도 나같이 살아야 한다고 그렇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한순간 무너져 버린 것입니다. 자신은 주님을 모실만한 자격이 있는 사람이 아니며, 자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하며 원래 자기고향 갈릴리 바닷가로 돌아갔습니다. 주님은 그 바닷가로 베드로를 찾아갑니다. 베드로는 밤새도록 수고하여서 고기를 잡으려 합니다. 그러나 그날 밤은 유난히도 한 마리의 고기도 잡지 못했습니다. 베드로는 제자로서도 실패하였고 자기 직업, 그룹의 리더로서도 , 모든 것에서 실패한, 한 사람의 새벽을 우리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저 밖에서 묻습니다. “ 너희가 밤새도록 수고해서 잡은 것이 있느냐? ”“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묻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 너희들 열심히 수고하고 달려오고 최선을 다하고 밤잠 이루지 못하며 노력한 것이 너희들 속에 진정한 만족을  주었느냐? 진정한 기쁨이 너희들 속에 있느냐?” 라고 물으실 때 어떻게 대답할까요?

그때 주님께서 이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배 오른편에 그물을 던지라고, 또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리라고 합니다. 상식적으로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제가 말씀에 의지해서 그물을 내리리이다 ”라고 합니다. “지금까지의 경험과 상식과 모든 것을 통해서는 안 되지만 예수님 말씀하신 것, 그 하나 때문에 나는 그물을 내리겠습니다.”라고 할 때에 많은 고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처음 부르실 때에 그 모습과 동일한 일을 주님은 동시에 보여주시면서 베드로에게 깨달음을 주십니다. “ 베드로야, 너의 수확의 그 풍성함이 너의 능력에 있었느냐?  너의 경험에 있었느냐?  네가 내말을 의지하고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말대로 할 때에 거기에 풍성한 수확이 있고 풍성한 삶이 있다는 것을 네가 왜 몰랐느냐? ” 베드로는 자신에게 능력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를 사용하시는 그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할 때 그에게 능력 주심을 깨우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바닷가에서 물고기와 떡을 구워놓고 이 제자를 기다립니다. 여러분, 아마 제자들이 이 물고기와 떡을 보면 광야에서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는 그 사건이 기억날 것입니다. 아무것도 찾을 수 없었던 그 광야와 같은 그곳, 단지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만 가지고도 주님은 기도하시면서 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며 풍성케 했던 그 광야의 잔치, 인생이 때로는 광야 같고 어렵지만 그 주님이 함께할 때에 풍성했던 그 시간을 기억하게 하면서 “베드로야 너의 삶에 진정한 행복과 만족은 너희 노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너가 내 말을 듣고 말씀대로 순종하며 기도하며 주님께 도움을 구할 때 살아가는 그 삶의 역사 속에서 너가 진정 삶의 아름다운 열매를 거두지 않았느냐?”

주님은 그 베드로를 깨우쳐 주시면서 삶의 풍성함이 인간에게 있지 않다는 것을 주님은 베드로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오늘 그 주님은 이스라엘과 기드온에게 인생의 풍성함과 보람 그리고 진정한 기쁨은 우리의 노력과 소유의 많음과 경험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앞에 순종하고 기도하며 주님의 명하신 길을 걸어가는데 있음을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그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동일하게 그렇게 깨닫기를 원하십니다. 오늘 주님은 우리가 살아가는 이 걸음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며 고백하기를 원하십니다. 나의 나 된 것이 나로 인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받기를 원하십니다. “주님! 오늘 내가 살아가는 것은 주님의 은혜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우리의 입술이 되기를 주님은 원하고 계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도 여러분의 힘으로 살아가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노력으로 자신이 이만큼 이루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 앞에 다시 청종하십시오. “주님! 내가 내 마음대로, 내 생각대로, 내 뜻대로 살았더라면 이 자리에도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인생의 위기와 벼랑 끝마다 나를 인도해 오신 그 하나님, 그 하나님이 지금까지 나를 붙들지 아니했더라면 오늘 나의 풍성한 이 삶은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생활과 삶 가운데서 이 고백이 나오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또한 주님께서 기드온에게 삼백 명만 남기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셋째로, 주님은 헌신된 사람을 사용하셔서 일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은 주님의 일을 펼쳐나가실 때 어떤 사람을 쓰실가요?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을 쓰셔서 주님의 역사를 이루어 갈까요? 주님은 헌신된 사람, 준비된 사람을 쓰십니다.

오늘 이 미디안과 아말렉 사람들과 전투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모았습니다.  32,000명이라는 많은 숫자가 모여듭니다. 그러나 아말렉과 미디안 군사들에 비하면 많은 숫자가 아닙니다. 135,000명이라는 저 미디안과 아말렉 군사들은 바다에 모래처럼 많았고, 골짜기에 진치고 있는 저들의 모습을 볼 때 메뚜기 떼와 같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셀 수 없이 많은 숫자 앞에 비교도 안 되는 숫자인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다 돌려보냅니다. 어떻게 돌려보냈을까요? “ 너희 중에 이 전쟁을 통해서 목숨을 잃을 사람이 있을 것이다. 적군은 너무나 강하고 숫자도 많고 우리는 너무나 적다. 정말 이 전쟁에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싸울 수 있는 사람만 남아라.”라고 했습니다. 두려운 사람은 다 떠나라고 할 때에 많은 사람이 떠났습니다. 22,000명이 떠났습니다. 대부분이 다 떠났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는 사람을 통해서 일하시지 않습니다. 왜 주님께서는 두려워하는 것을  사용하시지 않으실까요?  여러분, 하나님이 주신 감정 중에 여러 감정이 있지만 이 두려움이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파괴하는 무서운 영적인 감정입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믿음이 우리 속에서 작동할 수가 없습니다. 두려움이 있으면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가 신뢰할 수 없습니다.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그 두려움을 이웃에게 전파하고 다닙니다. 두려움을 다른 방법으로 포장하고 계속 자기 두려움을 이야기 하면서 공동체를 상하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쓰신 사람들을 성경에서 보십시오. 공통적으로 그들에게 하신 말씀이 뭡니까? “두려워 말라!”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진실로 믿는 그 믿음이 깨어지지 않도록 그 믿음을 간직하라는 의미와도 동일하다는 뜻입니다

주님 일을 해나갈 때에 주께서 우리에게 가정의 일들을 맡기셨습니다. 또한 직장과 교회 더 나아가 민족의 일을 맡기실 때, 자신의 물질과 건강과 생명을 때로는 다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그 두려움으로 우리가 선뜻 나서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돌려보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께서는 떠나지 않은 이들을 물가로 데리고 가셨습니다. 물을 먹게 했습니다. 그런데 전부다 엎드려서 무릎 꿇고 물을 마시는데 무릎 꿇지 않고 물을 떠서 개처럼 핥아먹는 사람 300명을 주님은 선택하셨습니다. 여러 가지 해석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적어도 전쟁하러온 사람들이라면 그들이 갈증이 있을 때 뒤를 돌아보지 않고 무릎꿇고 물을 먹지 않을 것입니다. 삶 속에 때로는 어려운 일, 힘든 일, 마음 상하고 속상한 일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과 본분이 무엇인지를 늘 기억 하는 사람, 하나님께서 나를 불러주신 그 일 앞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감당할 수 있는 사람, 사명을 끝까지 기억할 수 있는 사람, 하나님은 그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바로 헌신된 사람입니다.

여러분, 헌신된 사람의 특징은 자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다 내어 놓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이 기드온에게 미디안군대와 싸우라고 할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준 그 힘을 가지고 싸우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걸 영어성경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Go in the strength you have. 가라 네가 가지고 있는 그 힘, 그것을 가지고 싸우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신다고 할 때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하라고 말씀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것을 두려움 때문에 사용하지 못합니다. 내속에 이런 능력이 있는 지도 알지 못합니다. 아니 이것을 최선을 다해서 쓰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것을 사용하는 그 사람에게 위로부터 주시는 하늘의 힘을 함께 더하여서 도와주신다고 하셨습니다. 헌신된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자기 속에 있는 모든 힘을 다 사용하여서 헌신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분! 이 헌신되지 않은 사람은 자기 것을 쓰지 않으며 자기희생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희생이 없이 새로운 변화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희생이 없는 전쟁은 없습니다. 희생이 없는 역사는 없습니다. 주님의 역사는 주님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사람, 바로 그 사람을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그 사람이 아직 헌신될 준비가 되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그를 준비시키시는 분인 것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공동체보다도 내가 더 우선이라고 생각한다면 그 공동체가 존립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붙잡지 않고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는 사람들, 자기의 진정한 희생이 없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은 아무런 역사를 하실 수가 없습니다. 때로는 주님을 위해서라면 우리의 물질, 시간, 노력, 정성을 함께 사용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명절이 되면서 경제적으로 많이 어려운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웃에 있는 사람들에게 물질을 내어놓고 마음을 드려서 정말 구체적으로 주의 사랑을 하나하나 헌신하여 나갈 때에 하나님께서는 영적인 역사와 심령의 역사를 통해서 영광 받으십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기드온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을 여러분의 삶에 적용하시기를 원합니다. 주님은 때로는 우리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으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근심하며 고생하는 것이 하나님의 본심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계속 붙드시고 가까이 두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때로는 근심하고 걱정하고 염려하는 일을 두시면서까지라도 주님 곁을 떠나지 않도록 우리를 붙들고 계시는 그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 때문입니다. 그 사랑 앞에 우리가 다시금 “주님! 오늘 나의 나 된 것은 나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에게 있는 이 어려움은 나를 괴롭히는 가시가 아니라 나를 붙드시는 주님의 은혜의 사슬인 줄 내가 믿습니다.” 라는 그 고백이 우리들의 입술을 통해서 함께 올려지기를 원합니다.

종교개혁자 존 칼빈은 자신의 삶의 지표가 라틴어로 Coram Deo'라고 했습니다. 즉 ‘하나님앞에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오늘 내가 살아가는 이 삶이 하나님 앞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삶,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예정하신 나를 이 땅에 보내신 하나님 목적을 이루는 삶을 살겠습니다.” 주님 앞에 그렇게 고백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칼빈을 통해서 종교개혁이라는 하나님의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중요한 일을 맡기시고 그의 삶을 영광스럽게 사용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사랑하는 모든 동안의 성도 여러분! 주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붙들고 계시며 놓지 아니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의 자녀이며 주의 은혜 가운데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고난과 어려움 중에도 주님께 고백하십시오! 그럴 때 주님이 바로 우리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 역사를 하나씩 펼쳐 가실 것을 믿으면서 오늘 주님을 향한 감사의 고백과 주님을 사랑하는 아름다운 삶의 모습이 함께 모아지는 복된 예배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김 형 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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