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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더 무서운 기갈 (암 8: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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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양식이 없어 굶주리고 있는 나라들에 대한 보도를  대하게 됩니다.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 무엇보다도 우리의 가장 가까운 이웃인 북한의 주민들이 식량이 없어 굶주리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가슴이 아파집니다.
그 사람들의 피골이 상접한 모습을 사진이나 영상물을 통해서 대하면 더 충격을 받게 됩니다.
특히 어린이들의 그런 모습을 대할 때는 ‘저들이 무슨 죄가 있어서…’ 하면서 안타까워하게 됩니다.
저는 몇 해 전에 평양을 방문했다가 식량난으로 체구가 왜소해지고 외모가 거칠어진 북한 동포들의 모습을 보고 마음이 매우 무거워졌습니다. 
‘북한에서는 특별히 선정된 사람들만 살 수 있다는 평양이 이렇다면 다른 곳은 어떨까?’ 하는 질문이 지금까지 마음에서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얼마 전까지는 육신의 양식이 부족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보릿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요즘은 보릿고개라고 하면 ‘아, 보리밭 사이로 난 고갯길을 말하는가 보다.’ 하기 쉽지만 사실은 가을에 거둬들인 쌀은 떨어지고 보리는 아직 나지 않아 식량이 없어 어려울 때, 늦은 봄을 부르는 말이었습니다.
한자로는 춘궁기(春窮期)라고 했습니다. 이 때가 되면 절량농가(絶糧農家), 양식이 완전히 떨어진 농가들이 많이 생겼습니다.
학교에는 평소에도 도시락을 가져오지 못하는 결식아동들이 많았습니다.
그런 것을 생각하면 요즘 음식물이 남아 쓰레기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는 것, 송구스러운 일입니다.
열왕기하  6장에는 엘리사 때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인 사마리아가 아람 왕 벤하닷에게 포위당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 성의 식량이 다 떨어졌습니다. 25절을 보면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비둘기 똥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하니”라고 하였습니다.
은 팔십 세겔을 현재의 도량형으로 환산해보면 은 1Kg 조금 못 미치는 것이라고 합니다. 먹을 것이라면 대단히 비싼 값에 거래되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열왕기하 6장에는 계속해서 더욱 기가 막힌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너무 굶주려서 두 여인이 서로 아이를 바꿔 잡아먹기로 했습니다.
먼저 한 아이를 삶아 먹었는데 한 여인이 자기의 아이를 숨겼습니다.
자기 아이를 잃은 여인이 왕에게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외치며 호소하는 이야기가 6장 26절에서 29절까지 사이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너무 비통한 일입니다.

육신의 양식이 없어 기갈에 시달리는 것은 이와 같이 무서운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와 같이 육신의 양식이 없어 굶주리는 것보다 더 무서운 기갈이 있다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무엇입니까?
11절 끝에 이 질문의 답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그렇습니다. 말씀의 기갈이 육신의 기갈보다 더 무서운 것입니다. 제일 무서운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아셔야합니다..

사람의 병에는 통증이 느껴지고 겉으로 드러나는 병이 있습니다.
통증도 느껴지지 않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사람들에게 더 큰 해를 끼치는 질병들도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들은 이런 병들을 더 조심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대표적인 것은 고혈압이라고 합니다.
의사 선생님들은 고혈압을 ‘보이지 않는 살인자’라고 부른다고 합니다.
말씀의 기갈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통증도 느껴지지 않지만, 사람을 더 위험하게 만드는 질병들과 같습니다.

오늘 본문이 들어 있는 아모스서 8장은 심판의 날을 주제로 하고 있습니다.
1절을 보세요. 하나님은 여름 과일 한 광주리를 환상으로 아모스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이 여름 과일 한 광주리는 여러 면에서 심판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우리와는 관계없는 것인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름 과일이 풍성하게 나오면 여름이 거의 끝나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번영은 이제 끝나고 있다,’ 하나님은 여름 과일을 보여주며 이렇게 말씀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과일은 익으면 따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죄악이 익어서 이제 딸 때가 되었다, 심판을 받게 되었다,’ 여름 실과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과일은 또 썩기 쉽지요. 이스라엘은 그 때 많이 썩었습니다.
여기에 과일 뿐만 아니라 광주리가 함께 등장합니다.
이것은 과일이 광주리에 담겨서 시장이나 집으로 옮겨지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포로가 되어 옮겨진다는 것을 말합니다.
무엇보다도 히브리말로 여름 과일이라는 말과 끝이라는 말은 음이 같습니다.
여름 과일은 ‘카이츠’이고 끝은 ‘카츠’입니다.
토요일 저녁에 교회에서 히브리어 강좌가 실시되고 있는데 거기서 공부하는 분들, 조금만 더 공부하시면 이런 묘미를 직접 맛볼 수 있을 것입니다.

2절을 보세요. 하나님께서는 여름 과일 한 광주리의 환상을 보여주시고 ‘이스라엘의 끝이 이르렀다, 내가 다시는 그들을 용서하지 않겠다.’ 직설적으로 선언하셨습니다.
그리고 심판의 모습을 여러 가지로 말씀하셨는데 3절을 보세요, 궁전의 노래가 애곡으로 변할 것이다, 곳곳에 시체가 많아질 것이다, 하셨습니다.
8절을 보세요, 땅이 떨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지진을 말합니다, 
9절 보세요, 해를 대낮에 지게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일식을 말합니다.  실제로 아모스 때에 일식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때 일식은 심판과 말세의 징조로 여겨졌습니다.
10절에도 여러 가지 비극적인 일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모든 일들 때문에 사람들의 삶이 한없이 곤고해집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이 시작되는 11절에서 하나님을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을 선언하셨습니다.  이것은 심판의 여러 일들 가운데에서도 말씀의 기갈이 가장 무서운 것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지금 미국 남부 지역을 휩쓸고 있는 허리케인 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말씀의 기갈입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에 처하게 되면 어떻게 됩니까?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가운데 있으면 자유가 없습니다.

성경 여러 곳에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한다.’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장 31절과 32절에서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으로 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말씀이 곧 진리입니다. 말씀은 우리를 자유롭게 합니다.
바울 사도는 갈라디아서 5장 1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건하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를 자유롭게 하십니다.

말씀의 기갈에 시달리면, 말씀이 없으면 지금 성경 말씀대로 여러분, 자유가 없습니다.
우리가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다고 해서 그것을 참 자유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이 없이 마음대로 돌아다니는 것은 여러분, 참 자유가 아니고 방황입니다.
내 안에 그리스도의 말씀이 있을 때 우리는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염려와 근심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분노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기심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안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나아가서 죽음의 공포에서 자유를 얻을 수 있습니다.
이 자유는 참 자유입니다. 큰 자유입니다.
탈북민들에게 가서 설교할 때마다 ‘여러분, 남한에 와서 육신적인 자유를 얻었는데 육신적인 자유보다 더 귀한 것이 영적인 자유이니 예수를 믿어 영적인 자유를 꼭 누리십시오.’ 거의 빠지지 않고 간곡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에게 말씀이 있어 이런 자유를 누리고 있는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혹시 말씀과 함께 있으면서도 아직 이런 자유가 느껴지지 않으면, 무엇에인가 얽매어 잇는 느낌이면  내가 말씀을 바로 받고 있는 것인가 살피시기 바랍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가운데 있으면 빛이 없습니다.

시편 199편을 지은 신앙시인은 105절에서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잠언서 6장 23절도

  대저 명령은 등불이요 법은 빛이요 훈계와 책망은 곧 생명의 길이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두운 밤에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서 전등을 켤 수 없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어디를 가려고 하면 더듬더듬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합니다.
나중에 불이 들어온 다음에 보면 엉뚱한데 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말씀이 없으면 전등이 나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가 256장에는 이런 상태를 ‘빛을 잃은 많은 사람 길을 잃고 헤매이며’ 또 ‘어두워진 세상 중에 외치는 자 많건마는 생명수는 말랐어라’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가운데 있으면 여러분, 구원에 이르지 못합니다.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3장 15절에서 젊은 디모데에게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사람에게 구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구원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것을 말합니다.
많이 가지고 구언 받지 못한 것보다 조금 가지고, 또는 아무 것도 갖지 못하고 구원 받은 것이 낫습니다.
바울은 말씀이 없으면,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 가운데 있으면 교훈도 없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교훈이 없으면 사람이 바른 길을 걷기 어렵습니다.

신명기 8장 3절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인용하여 돌로 떡이 되게 하라는 첫 번째 시험을 물리치셨습니다.
말씀이 없는 삶, 떡으로만 사는 삶, 천박한 삶입니다.

어떤 분에게 ‘우리에게 말씀이 없다면 어떻게 될까요?’ 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분은 잠시 생각하더니 ‘목사님, 그렇다면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처지가 되요!’ 했습니다.
명답입니다.
여러분도 같은 땁을 하실 줄로 압니다.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에 놓이면 우리는 상상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여러분,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는 말씀에 우리나라를 비춰보면 어떻습니까?
우리의 주변, 내 주변은 어떻다고 생각하십니까?
‘말씀의 풍년입니다!’ 하기 쉽습니다.
우선 성경을 아주 흔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또 종류별로 다양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설교를 준비할 때는 기본적으로 「공동번역 성서」「표준새번역 개정판」「현대인의 성경」때로는 외국어 성경들과  여러 해설 성경들을 참고하게 됩니다.
말씀을 전하는 교회들이 여기저기에 많이 있습니다.
선교 매스컴이 발달해 있습니다.
텔레비전, 라디오, 인터넷, 각종 문서, 말씀을 담은 매체들이 풍성합니다.
말씀의 뷔페상이 항상 내 앞에 차려져 있는 느낌입니다.

그렇다고 여러분, 과연 풍년입니까?
아닙니다. 풍년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입니다.
귀여운 착각이라고 할 수도 있고 엄청난 착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셔야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이 말씀에 우리나라와 주변을 비춰볼 때 풍요 속의 빈곤입니다.
풍성함 가운데 기갈입니다.

먼저 경제적으로 풍성해 질수록 말씀이 기갈이 더 심해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풍요 속의 빈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저는 지난 열흘간 러시아에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금요일 오후에 돌아왔습니다.
지난 화요일에는 로스토프 지방의 러시아 개신교 목회자들을 저희가 세운 로스토프 교회에 모시고 세미나를 가졌습니다.
이 로스토프라는 곳은 러시아 서남부의 중요한 도시입니다.
선교에서는 이런 도시들을 관문도시, Gate City라고 부릅니다.
한국교회의 역사를 하루 종일 강의했습니다. 왜 한국교회의 역사를 배워야 하는가에서 시작해서 한국교회의 문제점들까지를 일곱 개 장으로 나누어서 강의했습니다.
강의의 시작 부분에서 러시아 개신교회 목사님들에게 ‘한국교회에 대해 아는 것이 있으면 말해 보십시오.’ 라고 주문했습니다.
러시아 개신교회 목사님들은 한국 교회에 대해서 비교적 많은 것들을 알고 있었습니다.
한 여자 목사님이 말씀하시기를 한국을 방문해서 얼마동안 묵었는데 눈을 들기만 하면 교회의 십자가들이 보이는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했습니다.
그 여라 목사님은 한국에서 어느 교회에 묵었는데 자기가 묵고 있던 교회의 목사님이 저녁마다 거리에 나가서 전도를 하셨다고 합니다.
한번은  술 취한 사람이 지나가면서 손가락질을 하고 시비를 걸어도 웃는 얼굴로 전도를 하시는 것을 보고 많은 도전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밖에도 여러 목사님들이 한국교회의 새벽기도회에 대해서, 열심히 전도하는 것에 대해서 들을 것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흐뭇하고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맞습니다.’ 또는 ‘그렇습니다.’ 라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그런데 한 목사님이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한국교회에는 저희가 배울 점도 많이 있지만 경제가 부흥해서 잘 살게 되니까 열심히 식고 성장이 중지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듣고 있습니다.’ 
저는 ‘아닙니다.’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것도 맞습니다.’ 하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실 그렇지 않습니까?
주5일 근무제가 실시되면서 교회가 여러모로 영향을 받고 있는 것도 그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것은 오늘 설교의 흐름과는 거리가 있는 이야기이지만 유익할 것 같아서 두 가지를 전해 드립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참석했던 러시아 교역자들과 다과를 나누면서 여러 이야기를 주고받는데 한 분이 체첸에 다녀온 이야기를 했습니다.
저희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하고 있는 로스토프가 체첸에서 가깝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체첸은 러시아에서 독립하기 위해 적극적인 투쟁을 벌이고 있습니다. 러시아 군대와 여러 차례에 걸친 전투 때문에 수도의 인구가 10분의 1로 줄었다고 합니다.
이 목사님과 그 교회 남자 전도사님은 그 때문에 생긴 고아들을 돕기 위해 체첸에 가서 여러 가지 일을 하고 왔노라고 하면서 사진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면서 그 목사님은 ‘러시아 당국이 체첸에 대해서 하고 있는 일이 잘못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대신해서 가서 그런 일을 하고 왔습니다.’ 라고 말하더군요.
저는 그 말에 깊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우선 러시아의 개신교회들은 작고 약합니다. 
그 목사님도 자기 집에서 삼십 여 명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런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에서 먼저 감동을 받았습니다.

감동을 받은 이유가 또 있습니다.
러시아는 정교회가 뿌리를 깊이 내리고 있는 국가입니다.
그래서 러시아에서는 기독교라면 정교회라고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정교회는 국가와 밀착된 교회입니다. 출발부터 그랬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러시아 왕궁 안에는 정교회 성당이 거의 빠짐없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왕의 여름 별장, 겨울 궁전에도 부속 건물의 하나처럼 정교회 성당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정교회는 국가가 하는 일은 무조건 옳다고 하고 언제나 국가편을 드는 종교입니다.
제가 한국교회사에 대해 강의를 하면서 ‘한국교회는 민족교회라는 말을 듣고 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통역을 하는 성도가 뭐라고 통역을 했는데 저희 교회가 파송한 최성찬 선교사님이 ‘잠깐만!’ 하고 끼어들어서 러시아 말로 무엇이라고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최 선교사님은 러시아말에 많이 익숙해져서 러시아말로 설교도 하고 있습니다.
나중에 최 선교사님이 저에게 ‘유 목사님은 한국교회는 민족을 위해서 많은 일을 하고 민족과 기쁨, 슬픔을 함께 나는 교회하는 뜻에서 민족교회라는 말을 하셨는데, 통역을 하는 성도는 그 말을 잘못 알아듣고 러시아 정교회처럼 국가에 부속된 국가종교라는 뜻으로 통역을 하기에 제가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은 안 되겠다 싶어서 끼어들었습니다.’ 하더군요. 
그런 정교회가 주류를 이루고 있는 가운데에서 개신교 목사님이 ‘국가가 잘못하기 때문에 우리가 속죄하는 마음으로 그들을 돕는데 힘쓰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이 무척 신선하게 들렸고 어떤 소망 같은 것이 느껴졌습니다.

또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로스토프 선교에 대해 지난 금요심야합심기도회에서 영상 자료와 함께 말씀을 드렸는데 저희 교회는 그 곳에 다섯 개의 교회를 직접, 또는 간접으로 설립하여 세 그룹의 동포들을 대상으로 선교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 그룹은 러시아에 있는 동포들, 흔히 카레스키, 고려인이라고 하는 분들입니다.
주 선교대상이지요.
한 그룹은 그곳에 돈을 벌기 위해 들어와 있는 중국 동포들, 흔히 조선족이라고 하는 분들입니다. 이 분들이 숫자도 적지 않습니다.
한 그룹은 숫자가 많지 않지만 탈북동포들입니다.
지금 이 세 그룹이 모두 형편이 어렵습니다.
현지에 가 있는 동안에는 저녁마다 심방을 겸해 고려인 동포들의 집을 방문해서 식사를 하게 됩니다. 어떤 때는 하루에 두 번 저녁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번에도 주일 오후에 400리 가까운 곳에 있는 농촌교회에 가서 설교하고 오느라고 밤 열 시에 한 집을 방문해서 식사를 한 일이 있습니다.
그런데 살림형편, 무엇보다 식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을 갖습니다.
중국동포들은 경찰관들의 금품 착취를 목적으로 한 검문이 점점 심해져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탈북동포들이 불안은 더 말할 것이 없지요.
그런 가운데 교회가 있어서 그들이 교회를 통해 위로를 얻고 힘을 얻는 것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하고 보람을 느끼는지 모릅니다.

이제 다시 더 무서운 기갈, 말씀의 기갈 이야기입니다.

여기 어떤 배가 있습니다. 이 배가 바다에서 풍랑에 시달리는데 식수가 다 떨어졌습니다.
이 배에 탄 사람들은 바닷물을 퍼 마실 수는 없고, 목이 말라 갈증에 시달렸습니다.
그런데 바람의 방향 때문에 이 배가 강물로 들어섰습니다.
이제 물통을 내려 강물을 길어 올리기만 하면 얼마든지 맑은 물을 길어 올려 마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도 이 배에 탄 사람들은 계속해서 갈증에 시달렸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 배에 탄 사람들은 이 배가 강물에 들어섰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영적 상황은 이 배에 탄 사람들과 비슷합니다.
한국은 오랫동안 우리에게 별 도움이 되지 못하는 샤머니즘의 바다, 오랜 인습이라는 바다 위에 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께서 한국이라는 배를 말씀의 강물 위로 옮겨 주셨습니다.
이제 누구든지 물통을 내려 길어 올리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것을 모르고 계속해서 영적 기갈에 시달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알면서도 물을 퍼 올리는 것이 귀찮아서 가만히 있는 사람들도 없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나라에는 이런 분들, 자기가 탄 인생의 배가 진리의 강물 위에 떠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사람들, 알면서도 물을 떠 마시려 하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전체의 4분의 3이나 됩니다. 인구의 75%가 불신자이거나 다른 종교를 믿고 있습니다.
우리는 결코 말씀의 풍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일부에게만 풍년일 뿐입니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그 배 옆을 지나면서 그 광경을 본다면, 탈진해 있는 사람들을 본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저런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나!’ 하면서 그냥 보고 지나가겠습니까?
‘여보시오! 당신들은 지금 민물로 들어섰소! 어서 물통을 내려요! 물을 길어 올려 마시고 힘을 내요! 힘을 내서 항해를 계속해요!’ 소리를 질러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 배에는 알고서도 물통을 내리기가 싫어서 탈진상태에서 가만히 있는 사람들, 탈진상태를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면 우리는 그 사람들에게 ‘이보시오! 그렇게 어리석은 일이 어디 있소! 그런 무책임한 짓이 어디 있소! 당신 그렇게 하다가는 죽어요! 당신도 죽고 배에 탄 사람들도 모두 죽어요!’ 깨우쳐야합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중견 여자 탤런트 한 분이 있습니다. 권사님인데요, 기아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돕기 위한 한 선교단체에서 이 탤런트에게 아프리카를 같이 방문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이 탤런트 권사님은 현지에 갔다가 굶주린 사람들의 모습을 실제로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 분은 굶주린 이들을 돕는 일의 중요성을 홍보하는 홍보대사가 될 것을 자청했습니다.
이 분은 지금도 홍보대사의 일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누구인지 짐작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을 해결하는 일에 동참하는 홍보대사들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홍보대사로 임명하십니다.
여러분,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홍보대사이다!


아까 열왕기하 6장이 비참한 형편에 대해 말씀드렸는데 7장에는 네 나병환자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 때 포위당해 모두 굶어 죽게 된 사라미아 성문 어귀에 나병환자 네 명이 있었습니다.
이 네 나병환자가 회의를 합니다.
‘우리가 성읍으로 들어가면 굶어죽을 것이고 여기 이대로 있어도 죽을 것이고 그러니 우리가 아람 군대에 가서 항복하자 그들이 우리를 살려 두면 살 것이요 우리를 죽이면 죽을 것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해 질 무렵에 아람 진영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아람 진영은 텅 비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고 병거 소리와 말 소리와 큰 군대 소리를 듣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아람 사람들은 ‘이거 이스라엘 왕이 헷 사람들과 애굽 왕에게 우리를 쳐 달라고 부탁해서 그들의 군대가 공격해 오는 것이로구나!’ 하고 해질 무렵에 다 도망을 갔습니다. 장막, 말, 나귀 다 두고 급하게 도망쳤습니다.
이 네 명의 나병환자는 이 장막, 저 장막 돌아다니면서 먹고 마셨습니다.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감췄습니다.
그렇게 하다가 나병환자들이 무엇이라고 했는지 아세요?
열왕기하 7장 9절의 말씀을 잘 들어보세요.

나병환자들이 그 친구에게 서로 말하되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좋은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하고

그리고 그 나병환자들은 성읍으로 달려가 문지기에게 본 것을 알렸습니다.
그때는 밤이었는데 불편한 몸으로 밤길을 달려 성읍까지 가기가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힘써 달려가서 문지기를 불러 “우리가 아람 진영에 이르러서 보니 거기에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왕하 7: 10) 알렸습니다.
문지기는 다른 문지기를 부르고 그들은 왕궁에 알리고  나병환자들의 말이 시실인 것이 확인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달려가서 아람 진영에 있는 것들을 취했습니다.
사마리아 성은 기갈에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좋은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우리가 이렇게 해서는 아니되겠도다”
우리만 이 풍성한 말씀의 잔치를 즐기고 있다면 안 됩니다.

“오늘은 아름다운 좋은 소식이 있는 날이거늘”
예수 믿으면 구원 받는다는 소식, 아름다운 소식입니다. 좋은 소식입니다.

“우리가 침묵하고 있도다”
침묵은 금이라고 하지만 이 침묵은 비겁한 침묵입니다. 더러운 침묵입니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라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지금 전도해야합니다.
‘내 믿음이 좀 더 자란 다음에 전도하겠습니다.’ 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런 분들의 믿음은 자라지 않습니다.
전도는 믿음이 자라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벌이 우리에게 미칠지니, 바울도 이와 비슷한 고백을 한 일이 있습니다.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알리자”
우리는 수지 거리에 나가, 사는 곳 주변에, 일터에 알려야 합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그런 가운데 있는 사람들을 향해 오늘, 말씀을 들고 나가는 여러분이 되고 제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유 관 지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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