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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기념하라 (고전 11:2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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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성찬의 떡과 잔을 나누어주시던 때가 시간적으로 로마 군인들에게 잡히시던 전날 밤입니다. 이 예식은 주님사역의 마지막 부분으로 마태복음은 26장에서 28장에 기록이 되었고, 마가복음은 14장에서 16장에, 누가복음에는 22장에서 24장 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주님의 전도 사역은 이 밤이 마지막입니다. 성찬 예식을 끝으로, 로마 군인들의 물리적 힘에 의해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를 지시게 됩니다. 오늘 주님은 이 예식을 행하시면서 나누는 떡과 잔의 의미를 “이는 내 살이요 내 피라” 이렇게 정의하셨습니다. 바로 이 말씀에 대한 신학의 차이로 여러 가지 견해의 성찬 의미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가톨릭교회의 견해는 사제의 축도가 끝난 떡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해석합니다. 그래서 성찬에 사용했던 모든 떡과 포도주는 절대 버리지 아니하고 모두 마셔서 소비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마틴 루터의 해석은, 이 성찬의 떡과 포도주는 믿음으로 취할 때만 그리스도의 살과 피의 성분이 된다고 해서 가톨릭과 다르게 믿음에 의미를 두고 해석했습니다. 믿음 없이 받으면 아무 소용이 없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의 살과 피의 성분으로 변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쯔잉글리 신학의 견해는 “이 떡과 포도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상징하는 것이다.”라는 상징설을 주장했습니다. 장로교를 비롯한 대다수의 개신교가 따르는 신학의 기초는 칼빈 선생의 신학 해석입니다. 지금 갈보리교회도 이 해석을 따르고 있습니다. “떡과 포도주는 주님의 살과 피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받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가 동반한다.”는 영적 임재설입니다. 그러니까 아무리 믿음으로 성찬 예식을 받는다고 해도 떡이나 포도주의 물질 자체가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몸과 피를 의미하는 믿음은 영적으로 그런 효과가 있는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찬의 참여는 보통 세례 받은 사람들이 할 수 있고, ‘세례는 아직 안 받았지만 성찬에는 내가 꼭 참여하고 싶다.’라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을 때는 누구든지 참여할 수 있습니다. 다만 어린아이들이 그 뜻을 모르고 먹는 즐거움으로 받으려고 할 때는 거절을 합니다. 이 시간에는 영적 임재의 뜻을 우리가 몇 가지 생각함으로 오늘 거행하는 성찬의 의미를 새롭게 하고자 합니다.

먼저 성찬의 떡과 잔은 주님과 나와의 생명의 결부가 영적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여러 번 설교를 하셨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우리가 신체적으로 어떻게 예수님 안에 들어갈 수 있으며 예수님이 어떻게 내 안에 들어올 수가 있을까?’라는 것이 영적으로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너희가 내 몸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느니라.” 즉, 우리의 자녀들과의 관계를 설명할 때 물리적으로 피와 살을 나눈 관계라는 말을 합니다. 이 피와 살이란 사람의 구성 요소입니다. 피의 성격에 따라 그 사람의 성격, 사회성 등이 나타납니다. 건강한가, 병이 있는가를 알아보는 가장 정확하고 빠른 길은 피검사를 해보면 금방 나타납니다. “너희가 내 피를 마시지 아니하고 내 살을 먹지 않으면 나와 아무 상관이 없느니라.” 주님은 이렇게 영적인 결합으로 생명의 결부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바울 신학에서 주님과 나를 동일하게 생각하는 신학적 설명들이 많이 나타나고 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감람나무의 접목 예화입니다. 이미 자란 나무의 윗부분을 몸둥이채 잘라버리고 참 감람나무를 찍어다가 그 몸에 붙여서 진액이 통할 수 있도록 빈틈이 없이 묶어버리는 것이 나옵니다. 그러면 돌 감람나무도 참 감람나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의 다른 표현은 양자됨의 원리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에 대해 가르칠 때는 하나님이라고 사용하시고, 자신이 하나님을 혼자 대면하실 때는 언제나 아버지라고 부르셨습니다. 주기도문을 가르치실 때도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라고 하나님에 대한 기도를 가르쳐주셨지만 주기도문에 하나님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것으로 시작해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로 끝나는 아들과 아버지의 대화로 가르쳐주셨습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향해서 이제부터는 하나가 된 뜻으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위대한 생명의 결부, 영적 능력이 성찬의 떡과 잔에 부여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유월절 해방의 완전한 성취로 예수님이 성찬을 의미화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성찬의 밤은 히브리 민족이 출애굽을 기념하여 유월절 행사를 민족 절기로 지키는 것을 예수님 자신의 십자가 사건과 연결하고 계신 것입니다. 유월절 사건이 자신의 십자가 사건을 예언한 것임을 영적으로 행하시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애굽에서 나오기 전날 밤에 실행되었습니다. 이 성만찬은 잡히시기 전날 밤에 행해졌습니다. 유월절은 양을 잡아 피를 흘리게 하였습니다. 이 성찬은 어린 양되신 예수님의 피를 흘리는 것입니다. 유월절은 양피를 문설주에 발랐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피를 십자가에 바르는 것입니다. 유월절에 잡는 양은 언제나 흠없고 점없는 깨끗한 양을 잡았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죄 없으신 예수님이 어린 양입니다. 하나님이 문설주의 피를 보고 재앙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십자가 예수님의 피로 심판의 재앙을 면하게 해주시는 것입니다. 유월절에는 애굽 노예 생활에서 해방되어 나온 날입니다. 성만찬은 죄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유월절에는 양의 고기를 먹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내 살을 먹으라고 하심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먹는 것입니다. 유월절의 양을 잡을 때는 해가 질 때 했습니다. 성경에 보면 십자가에 달리실 때 해가 어두워졌다고 했습니다. 유월절은 히브리 민족의 명절로 영원히 기념하라고 하셔서 사천년이 내려오도록 기념하고 있습니다. 오늘 주님은 이 성찬 예식을 영원히 실행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유월절 해방의 뜻이 예수님의 성찬과 십자가 사건에서 완성되는, 유월절과 성만찬의 연결이 바고 여기에 나오고 있습니다.

1497년 이태리의 화가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 거룩한 장면을 상상하며 한 장의 그림을 그렸는데 세계에 있는 단일 작품으로는 가장 유명한 그림이 되었고, 세계에 가장 널리 보급된 그림으로 성도들의 가정에 거의 다 하나씩은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현재 밀라노 산타마리아 그라치 사원에 있는 실제 그림이 얼마나 귀한 취급을 받는지 색깔이 변할까봐 관람자체를 제한시키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간 존재의 가치를 한번 생각해 봅시다. 무엇이 최고의 가치인가? 인간은 영적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영적 능력, 영감, 영의 건강, 영의 빈약성이라는 말을 많이 씁니다. 요즘 흔히 사용되는 단어 가운데에서도 영성 훈련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 모두가 무슨 뜻을 가지고 있습니까? 영적 존재인 인간은 성령과 나의 영의 건강한 교통 속에 복된 삶을 누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으로 잘못되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역사를 방해가 될 때는 하나님이 그것을 수정하기 위해서 심판을 내리셨습니다. 심판이란 무엇인가? 잘못 가는 하나님의 역사를 바로잡는 하나님의 사역입니다. 이 선택된 백성들의 영적 무능력은 모든 길을 막히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요즘 새벽기도회에서 신명기를 보고 있는데, 어제 새벽에 본 28장과 29장에 나온 말은 전부 축복과 저주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을 때 받을 수 있는 복의 종류에 대해서 자세히 나오고, 영적으로 막혀있을 때 받을 수 있는 재앙에 대해 자세한 설명이 나와 있었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이 영적으로 막히면 다른 모든 것이 막힌다는 것입니다. 인간관계도 막히고, 가족관계도, 출세도 막히고, 물질도 막히고 다 막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우리 인간 구성요소를 보면, 영과 혼과 육체로 되어 있는데 이 육체는 혼의 지배 속에 있습니다. 이성의 지배 속에 있어서 어쩌다가 망나니 같은 사람을 보고 우리가 말하기를 “저 사람은 혼이 나갔어! 이성을 잃었어!” 육체는 이성과 혼의 지배 속에 있습니다. 그런데 이 혼과 이성은 영의 지배를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이 병들면 그때부터 우리 인간은 사탄의 영향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성령이 충만해야 된다는 말은 악령의 역사를 물리칠 수 있는 능력은 오직 성령의 힘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토록 먹을 것이 없어 고통 받던 2,000년 유대 역사에서 배고픈 군중들을 향해서 주님은 역설적 설교를 하셨습니다. “너희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하지 말라.” “아니, 예수님! 지금 우리는 그것이 당장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가장 필요한 것보다 먼저 해야 되는 것이 뭡니까?”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실 것이다.” 영적 회복이 이루어질 때에만 다른 모든 형통이 오는 진리를 말씀하셨습니다. 맞지 않습니까? 전 세계 모든 기독교 국가는 잘 살지 않습니까? 여러분! 오늘 이 성찬의 떡과 잔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영적 회복이 이루어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하나님 아버지! 오늘 참여하는 이 성찬의 떡과 잔이 상처 나고 상한 저희들의 심령을 바로 잡고 영적 회복이 이루어지는 축복의 성찬예식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
(이 필재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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