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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예배의 성공자가 됩시다 (창 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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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의 성공자가 됩시다 (창4:1-8)

우리 인생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예배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의 제일 된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영적 부흥과 복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예배일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는 예배하는 곳에 임재하시며 예배자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 바쁜 시기에 교회 나오셔서 예배하는 성도들을 보신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뻐하실까요?

킬케골은 예배를 둘로 구분하기를 예배를 보는 자와 드리는 자로 구분했습니다. 그의 유명한 비유는 관객과 배우의 이야기입니다. 연극에서 관객은 연극을 보는 자요 배우는 연극을 드리는 자이듯 예배할 때도 두 종류의 사람 즉 예배를 보는 자와 드리는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어느 편에 속하십니까? 모두 예배를 잘 드리는 성도들이 되시기 축원합니다.

그럼 어떻게 예배해야 예배를 드리는 것이 될까요?

1. 준비하는 마음으로 예배해야 합니다.

본문 3절을 보면 “세월이 지난 후에” 그랬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하나님께 제사하기 위해서 오랜 기간 동안 준비했음이 암시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할 제물은 아주 무흠하고 좋은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런 곡식과 양이 한 순간에 준비되지는 않습니다.

이처럼 예배를 위해서 준비해야 합니다. 기도와 말씀과 찬양으로 준비하고 시간과 정성과 물질은 몰론 사모하는 마음으로도 준비해야 합니다. 시편 기자처럼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시84:2)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예배 준비 그 자체도 예배이기 때문에 잘 준비해야 합니다. 준비된 예배에 은혜가 넘칩니다. 은혜가 넘친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계신다는 뜻도 됩니다.

준비하는 예배자의 자세는 분명 다릅니다. 김남준 목사의 "예배의 감격에 빠져라"는 책에 교인들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여러 형태로 재밌게 설명했습니다. 멀거니 강단을 응시하는 딴생각파, 주보에 밑줄 긋고 교정까지 보는 읽기파, 예배를 시작하면 졸기 시작하는 수면파,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보는 시간절약파, 옆 사람과 글로 대화하는 쪽지파, 예배 후에 있는 회의를 준비하는 회의파, 예배 시간에 뒤적뒤적 성경을 읽고 있는 독서파, 주위의 아기에게 눈을 맞추고 까꿍거리는 유모파, 설교를 평가하려는 시험채점파, 처음부터 팔장을 낀 채 예배를 구경하는 관람객파 등 천태만상의 형태가 있다고 합니다.

이러한 예배 태도는 예배를 드리는 태도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종교적인 의무로 드리는 형식적인 예배를 받으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일찍이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너희가 내 앞에 보이러 오니 그것을 누가 너희에게 요구하였느뇨. 내 마당만 밟을 뿐이라. 헛된 제물을 다시 가져오지 말라 분향은 나의 가증히 여기는 바요 월삭과 안식일과 대회로 모이는 것도 그러하니 성회와 아울러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견디지 못하겠노라(사1:12-13)"고 하셨습니다. 준비된 마음으로 예배하시기 바랍니다.

2. 예배는 진리로 드려야 합니다.

3-5절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여기서 우리는 아벨의 제사만이 진리로 드렸음을 봅니다.

이에 대해 히11:4절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그랬습니다. 이 말씀 중에 “믿음으로”라는 말씀과 “의로운”이라는 말씀에 힌트가 있습니다. 아무렇게나 믿고 아무렇게나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복음을 그 내용으로 하며 피흘림이 없이는 죄사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낱말에는 양의 피 공로가 암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제사는 피의 제사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감사제에 곡식 제물도 가능합니다. 그러나 곡식도 피 없이는 드리지 않았습니다. 곡식을 드리려면 언제나 남의 피의 제사에 곁들어서 드려야 했습니다. 그런데 가인이 먼저 제사를 드립니다. 어떻게 이것이 피의 제사가 될 수 있습니까? 그래서 여호와께서 열납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진리의 복음 안에서 예배드려야 합니다. 그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독생자를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찬양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진리에 감사하고 성령의 교통 충만 역사하심이 있는 나눔이 있는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한 부부가 예배를 드리고 돌아가면서 주고받은 이야기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여보! 박 집사 자동차가 3,000cc로 바뀐 것 보았어요?" 라고 묻자, 남편은 "못 보았는데" 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다시 아내가 "어느 성도님 부인이 밍크코트 입은 것 보았어요?" 다시 남편이 "아니 몰랐어" 라고 대답합니다. 다시 아내가 "그러면 오늘 설교할 때 목사님 넥타이가 조금 삐뚤어 진 것 보았어요?" 라고 질문하자, 남편은 "설교 듣느라고 정신이 없었어" 라고 대답합니다. 하나도 못 봤다고 하니까 아내가 열 받아 남편에게 "그러면 오늘 성가대 찬양하던 이 집사 입술 립스틱으로 진하게 칠한 것 보았어요?" 라고 물어보자, 남편은 역시 "그것도 못 보았는데."라고 대답합니다. 열이 오를 대로 오른 아내는 "아니, 당신은 예배 시간에 무엇을 하고 있었기에 그런 것을 하나도 못 보았어요? 예배 시간에 잠만 잤어요?" 라고 따져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목사님이 설교하실 때 나를 위하여 돌아가신 예수님의 십자가가 눈을 가리워서 눈물만 났지." 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이것이 예배입니다. 남편은 예배를 잘 드렸지만 아내는 예배를 드리지 않고 구경꾼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십자가 복음으로 드리는 예배자에게는 다른 것이 보일 수가 없습니다. 혹시 보여도 그냥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오직 진리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3. 예배는 성령으로 드려야 합니다.

5절에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이 말씀에서 가인이 성령으로 드린 흔적이 조금도 발견되지 않습니다.
가인에게서 성령은 보이지 않고 시기와 분노의 그 반대의 열매만 보입니다. 5절은 제사 후의 사건이지만 예배란 예배 후에도 계속된다는 점에서 우리는 가인의 제사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동생을 처음부터 무시하고 그의 도움 없이 자기 의로 교만한 마음으로 드렸던 것입니다. 성령으로 드리지 않았어요.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4:23) 하셨습니다. 여기 “신령”이란 '엔 퓨뉴마티' 로 '성령 안에서' 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진정”이란 ‘진리 안에서’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니까 “아벨과 그 제물” 그리고 “가인과 그 제물”이란 결국 신령과 진정의 의미입니다. 왜냐하면 이름을 말할 때는 그 마음의 자세를 지칭한 것이고 제물을 말할 때는 제물 되신 예수님 모형이니 진리를 지칭한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겸비하여 드려야 합니다.

그랜트 시걸 기자가 세계 최고의 부자 록펠러에게 그렇게 성공하게 된 비결을 물었을 때 록펠러는 "나는 부모님에게서 세 가지 신앙유산을 받은 것이 비결이라고 생각합니다." 고 하면서 “첫 번째의 유산은 십일조 생활이요, 두 번째로는 맨 앞자리에서 예배드리는 것이요, 세 번째 유산은 교회에 순종하고 목회자의 마음을 아프지 않게 해드리는 것입니다.” 라고 대답하였습니다. 한 마디로 록펠러의 신앙유산의 핵심은 참된 예배였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록펠러처럼 예배의 성공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4. 이미 말씀한 대로 예배는 삶과 연결되어야 합니다.

8절에 “그 후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 아우 아벨을 쳐 죽이니라” 한 마디로 가인의 예배는 삶과 연결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삶과 연결된 가인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건 예배자의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나 아벨이 예수님 고난의 예표라는 점에서 그가 죽기까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았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퀘이커교도들이 예배를 드리는 곳에 참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예배는 순서도 내용도 별로 볼 것이 없었습니다. 그 모임이 끝이 나고 사람들이 흩어질 때 "이것이 무슨 예배냐?" 하니 "우리의 예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예배당 문을 나서는 순간부터 또 시작된다." 라고 하였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몸으로 실천하며 드리는 삶 속에서의 예배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산 제사입니다. 살아있는 제사라는 말이지요. 이 제사는 마음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찾아 충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시는 것을 보신 아버지께서 가장 기뻐하셨듯이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예배의 성공자가 됩시다. 그러기 위해서 예배를 준비하고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며 삶속에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 모두 예배 잘 드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가장 행복한 성도가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한성진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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