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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왕궁에서 타락할 것인가? 전쟁터에서 죽을 것인가? (삼하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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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오늘도 우리의 삶을 신실하신 사랑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손길이 저와 여러분에게 가득하길 축원합니다.

▶ 필리핀 팔라완 지역, 마블 마운틴 교회 봉헌예배 보고 (PPT 10컷)

오늘 저는 다윗의 이야기를 여러분과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하지만 엄격하게 오늘의 주인공 이야기는 우리아입니다.
지난 주에 처음으로 주보에 다음 주의 성경말씀 묵상을 실었는데 읽어 오신 분 계신가요? 오늘은 사무엘하 11장 전체를 오늘 본문으로 읽어야 하지만 앞 부분만 봉독하였습니다. 아마 미리 읽어오신 분들은 전체 내용이 눈에 다 들어오실 것입니다.

■ 전쟁터를 떠나 왕궁에 거하기 시작한 다윗
군인이 전쟁터를 떠나 있으면 타락합니다. 전방의 군인이 후방의 군인보다, 최전선의 군인이 후방의 군인보다 더 날이 선 검처럼 빛이 날 수 밖에 없습니다.

다윗은 누가 뭐라해도 군인입니다. 그가 형들을 만나기 위해 갔던 전쟁터에서 우연히 골리앗과 마주쳐 싸워 이긴 후로부터 그는 거의 평생을 군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던 그가 이젠 왕궁에 편히 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삼하 7:1) 『여호와께서 사방의 모든 대적을 파하사 왕으로 궁에 평안히 거하게 하신 때에』

전쟁터를 벗어나 이제 다윗은 왕이 되어 평안히 궁에 거하게 되었습니다.
사무엘하 8장을 보면 많은 주위의 나라들이 강력한 군사력을 갖고 있었던 다윗에게 조공을 바치는 것을 기록해 놓고 있습니다. 8장은 이렇게 다윗을 칭찬합니다.

(삼하 8:14) 『···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이 얼마나 화려한 소개입니까? 어디를 가든지 이겼던 하나님의 사람 다윗... 이제 그랬던 그가 어떻게 흔들리게 되었을까요? 수많은 전쟁터에서, 사울에게 정적(政敵)으로 몰려 쫓길 때도 흔들림이 없던 그에게 가장 큰 인생의 오점을 남길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성경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삼하 11:1) 『그 다음 해 봄에, 왕들이 출전하는 때가 되자, 다윗은 요압에게 자기의 부하들과 온 이스라엘의 군인들을 맡겨서 출전시켰다. 그들은 암몬 사람을 무찌르고, 랍바를 포위하였다.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

이제 다윗은 직접 전쟁터에 출전하지 않습니다. 지금 전쟁터에서는 한창 교전이 벌어지는 상황인데도 성경은, “그러나 다윗은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었다.”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도는 누구입니까? 집사의 직분은 무엇입니까? 권사의 직분은 왜 주셨을까요? 장로의 직임은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셨을까요?
만일 우리가 우리의 직임을 망각한 채로 -우리는 십자가의 군병입니다.- 편안히 왕궁에 머물러 있으면서 안일함과 편안함에 길들여져 가기 시작할 때에... 그 때가 우리에게 가장 위험한 때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압니다.

주위에서도 우리가 너무나 자주 이러한 실패를 목격합니다.
사업을 시작할 때에 밤을 새면서,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자신의 일에 열중할 때에는 자신도 건강하고, 가정도 건강하고, 부부관계도 건강합니다. 그런데 사업에 성공하고, 이젠 일 안해도 먹고 살만하면 자기 스스로도 정신적으로나 영적으로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한 채 건강치 못한 삶을 사는 분들을 보게 됩니다. 풍요 속에서 오히려 가정이 흔들리는 모습도 봅니다. 미국의 경우 복권에 당첨된 사람 중에서 가정이 깨진 경우가 많다는 통계보고(당첨자 중 91% 사람들이 자신이 불행하다고 고백)는 우리가 얼마나 편안함과 안일함에 무너져 내릴 수 있는 존재인가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믿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왕궁에 거하는 믿음이 되는 순간 타락해 버립니다. 평생을 한 목적을 갖고 열정적으로 살았던 사도바울은 그래서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고전 15:31) 『형제자매 여러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에게 거는 나의 자랑을 두고 단언합니다만, 나는 날마다 죽습니다.』

주석서에는 이 ‘날마다 죽습니다.’가 <죽음의 위협을 당합니다.> 또는 <죽음을 경험합니다.>로 번역될 수 있다고 합니다.
성도는 날마다 죽음의 위협 속에서 세상에 대해 죽고, 하나님의 영광에 대해서는 새롭게 살아나는 인생을 살아야 할 사람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를 주님의 군사(軍士)라고 부릅니다.

(딤후 2:3-4) 『[3] 네가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군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을지니 [4] 군사로 다니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군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 다윗을 흔들리게 한 순간.
왕궁에 머물던 다윗이 어느 날 저녁 때에 그 침상에서 일어나 왕궁의 지붕 위를 걷고 있던 때에 한 여인을 보게 됩니다.
이스라엘 가옥은 쉽게 생각하면 슬라브 지붕같은 것을 연상하면 됩니다. 중풍병에 든 친구를 떼매어 온 친구들이 지붕을 뜯어서 친구를 달아 내린 일을 아시죠? 슬라브 지붕 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임금의 왕궁 주변에 임금의 측근들의 집들이 있다는 것도 어렵잖게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저녁이 되어 잠자리에 들어도 잠이 오지 않는 다윗이 거닐다가 본 한 장면으로 인해 다윗은 하나님 앞에 큰 범죄를 저지르고 맙니다.

침상에서 일어나서 거닐었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걸까요? 쉽게 생각해서 잠이 안오는 겁니다. 하루를 열정적으로 남을 힘이 없도록 다 사용하고 피곤한 몸을 안락한 침대에 눕힐 때에 오는 잠은 얼마나 꿀처럼 달고 깊이 잠들게 합니까?
다들 경험해 보셔서 알겠지만 하루 종일 빈둥빈둥한 날 낮에 낮잠도 슬슬 자고, 몸에 힘든 일도 하지 않아서 저녁이 되어도 말똥말똥한 채로 잠이 오지 않는 경험들을 해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구르는 돌에는 이끼가 끼지 않는다는 격언처럼 부지런히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성도에게는 시험이 없습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면 시험이 오지만 그것이 시험이 되질 못합니다. 열정으로 자신의 삶을 사는 사람은 한눈 팔지 않습니다. 자신을 부르시고, 사명을 주신 하나님의 목적대로 일생을 살았던 바울은 자신의 인생을 <푯대를 향한 삶>이라는 한 마디 말로 정리했습니다. 푯대를 보고 가는 사람에게는 악한 영이 틈탈 새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기 스스로를 늘 쳐서 복종시키는 삶을 살았습니다. 안일함과 나태함이 나 자신을 좀먹기 시작할 때에 우리는 자기 스스로를 쳐서라도 말씀 앞에, 주님 앞에, 사명 앞에 복종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고전 9:27)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 진정한 군인 우리아
지붕을 거닐다가 본 그 여인은 다윗의 장수, 헷사람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였습니다. 절대 권력을 가졌던 왕은 자신의 권력으로 그 여인을 데려오게 하였고 그녀와 동침하는 죄를 범합니다. 어떻게 이 일이 가능했을까요? 밧세바의 남편 우리아는 지금 전쟁터에 나가있는 중이었기 때문에 가능했습니다.

그 후에 밧세바로부터 임신의 소식까지 듣게 됩니다. 다급해진 다윗은 전쟁터의 우리아를 소환합니다. 그리고 그에게 집에 가서 쉴 것을 허락합니다. 다윗의 속셈을 잘 아시겠죠? 자신의 실수를 은근슬쩍 우리아에게 떠 넘기려는 얕은 수를 부리는 것이죠.
왕이 이렇게 명령합니다.

(삼하 11:8) 『그런 다음에, 다윗은 우리아에게 말하였다. "이제 그대의 집으로 내려가서 목욕을 하고 쉬어라. " 우리아가 어전에서 물러가니, 왕은 먹을 것을 함께 딸려서 보냈다.』

그러나 우리아는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삼하 11:9) 『그러나 우리아는 자기 상전의 종들과 함께 대궐 문간에 누워서 자고, 자기 집으로는, 내려가지 않았다.』

다시 우리아를 불러서 왜 집으로 가지 않느냐고 다윗이 말합니다. 그러자 우리아가 한 말이 있습니다.

(삼하 11:11) 『우리아가 다윗에게 대답하였다. "언약궤와 이스라엘과 유다가 모두 장막을 치고 지내며, 저의 상관이신 요압 장군과 임금님의 모든 신하가 벌판에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저만 홀로 집으로 돌아가서, 먹고 마시고, 나의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 할 수가 있겠습니까? 임금님이 확실히 살아 계심과, 또 임금님의 생명을 걸고 맹세합니다. 그런 일은, 제가 하지 않겠습니다."』

가슴이 뭉클해지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충직한 장수를 둔 임금은 얼마나 행복할까요? 하지만 다윗은 이 말을 듣고 행복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초조해 진 다윗은 또 한번의 꾀를 부립니다. 다음 날 우리아를 불러서 마시고 취하게 하는 작전을 폈습니다. 취김에라도 집에 가서 아내를 만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아는 부하들과 함께 자고 집으로 가지 않았습니다.

이제 다윗은 하지 말아야 할 일까지 손을 대게 됩니다. 우리아의 손에 친서를 써서 보내 자신의 군대장관 요압에게 보냅니다. 성경은 끔찍한 표현으로 다윗의 편지를 소개합니다.

(삼하 11:15) 『다윗은 그 편지에 다음과 같이 썼다. "너희는 우리아를, 전투가 가장 치열한 전선으로 앞세우고 나아갔다가, 너희만 그의 뒤로 물러나서, 그가 맞아서 죽게 하여라. "』

요압은 명령대로 행했고 우리아는 그 전투에서 장렬하게 최후를 맞게 되었습니다. 전투의 패배 소식과 우리아의 전사 소식을 들은 다윗은 그토록 충직한 부하의 죽음을 또 한번 욕되게 합니다.

(삼하 11:25) 『그러자 다윗이 전령에게 말하였다. "너는 요압에게, 칼은 이 편도 죽이고 저 편도 죽이기 마련이니, 이번 일로 조금도 걱정하지 말라고 전하여라. 오히려 그 성을 계속 맹렬히 공격하여서 무너뜨리라고 전하여, 요압이 용기를 잃지 않도록 하여라."』

성경이 참 성경이라고 생각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의 왕, 메시야가 바로 다윗의 후손에게서 나오는 위대한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다윗의 가장 치졸한 부위까지 상세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 다윗과 우리아, 왕궁과 전쟁터
저는 오늘 “다윗과 밧세바”라고 짝을 지어 자주 소개하는 도식이 아니라, “다윗과 우리아”를 비교해서 여러분에게 소개를 드렸습니다.
성경 전체를 놓고 볼 때에 다윗과 우리아는 상대가 되지 않는 사람입니다. 신분으로 볼라치면 왕과 신하요, 혈통으로 볼 때에도 우리아는 헷사람, 즉 이방인입니다.
헷족속은 창세기 23장에 처음 등장하는 족속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에 헷사람의 땅 가운데 있는 막벨라 굴을 사서 그곳에 장사를 지냅니다. 그 후에는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전쟁 때에 가나안에 살았던 부족으로 나옵니다. 우리아가 헷족속 출신이라는 것을 보면 얼마나 우리아가 출중한 사람이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외국인이 우리나라 군인이 되어 별까지 단 스타가 되었다면 얼마나 대단한 것입니까? 아마 오늘의 일화를 통해서 우리아가 군인 중의 군인이었다는 것을 그려 볼 수 있으셨을 겁니다.

그리스도의 군사로 부름 받은 오천가족 여러분,
인생은 늘 선택입니다. 무엇을 선택하든 자유인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회보다 더 구속력이나, 강제력이 없는 조직체입니다. 어느 것으로도 여러분을 강제적으로 움직이게 할 힘이 제겐 없습니다.

우리의 속성은 왕궁에 머물고 싶어합니다. 우리의 몸은 부드럽고 따뜻한 침대에 더 눕고 싶어합니다.
교회를 다니더라도 전투적으로 다니고 싶기 보다는 우아하게 다니고 싶어하는 것이 우리의 속성 중에 하나입니다. 믿음 생활 하면서도 예배에 참석해서 아름다운 찬양, 엄숙한 예배 분위기 속에 달콤하고 행복한 은혜를 받고 행복한 마음으로 집에 돌아가고 싶어합니다. 교회 공동체에 큰 의무감을 지고 싶지 않습니다. 내가 만족될 수 있을 때까지만 헌신하고 봉사할 뿐 나를 희생시키는 데까지 나아가는 신앙인을 보면 광신적 신앙인으로 비췰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신앙은, 믿음의 행진은 결코 유람하듯이 지나쳐 가서는 안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히브리서 11장, <믿음 장>이라고 불리우는 그 11장의 마무리는 그런 믿음의 사람들이 어떤 삶을 살았는지를 보여줍니다.

[히 11:35] ··· 또 어떤 이들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더 좋은 부활의 삶을 얻고자 하여, 구태여 놓여 나기를 바라지 않았습니다. [36] 또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기도 하고, 채찍으로 맞기도 하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기도 하고,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면서 시련을 겪었습니다. [37] 또 그들은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켜이기도 하고 시험을 당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하였습니다. 그들은 궁핍을 당하며, 고난을 겪으며, 학대를 받으면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떠돌았습니다. [38] 세상은 이런 사람들을 받아들일 만한 곳이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을 헤매며 다녔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비참한 삶을 살기를 원하진 않습니다. 그러나 또한 안일한 삶으로 영적인 병에 걸려 죄가 자신 속으로 파고 들어오는 것을 깨닫지 못한 채로 사는 것은 더욱 더 원치 않습니다. 차라리 영적으로 죽지 않도록 왕궁을 무너뜨리고, 편안한 침대를 둘러 엎어 딱딱한 바닥에 무릎을 꿇는 것이 낫다는 믿음을 저는 갖고 있습니다.

편안함에 젖어 죄가 자신에게 스며 오는 것을 깨닫지 못했던 다윗, 죄가 죄를 낳고, 결국은 다른 사람을 죽이면서까지 죄의 달콤함에 젖어 들어가는데도 깨닫지 못했던 하나님의 사람 다윗...
다윗의 시점은 어리숙한, 미성숙한 신앙의 때가 아니었습니다. 산전수전 다 겪으면서 숱한 전쟁터에서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경험한 때였습니다. 수 많은 시편을 지어 하나님께 노래하던 때였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이젠 모든 족속들이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조공을 바치던 최고의 순간이었습니다. 충성스런 부하들이 자신의 목숨을 아끼지 않고 그를 위해 충성을 다 바치던 때였습니다.

우리가 불렀던 찬양 중에 이런 찬양이 있습니다.

내 주의 일 하는데
󰊱 내 주의 일 하는데 피곤함이 많았네 어떤 때는 슬펐고 어떤 날은 괴로워
그 많은 날 지나고 이제 주님 뵈올 때 내 피곤함 아시고 나를 맞아 주시네
󰊲 내 주의 일 하는데 고난 또한 많았네 핍박받아 서럽고 유혹 많아 괴로워
그날 모두 지나고 이제 주님 뵈올 때 겪은 고생 아시고 편히 쉬게 하시네
󰊳 내 주의 일 하는데 눈물 또한 많았네 고통 받아 멍들고 외로워서 슬펐네
그 많은 날 지나고 이제 주님 뵈올 때 나의 눈물 씻기고 나를 칭찬하시리

사랑하는 오천가족 여러분,
여러분은 왕궁에서 타락하고 싶습니까? 아니면 전쟁터에서 죽고 싶습니까?
육체의 선택은 당연한 선택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눈으로 선택하신다면 어떤 것을 선택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을 이 교회에 부르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연단하신 하나님의 뜻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붙드시고 살기 바랍니다. 섰다고 생각하며 교만해 지지 마시고 넘어질까 두려워 하며 사십시오.
영적 전쟁터에서 장렬하게 싸우다가 우리 주님 품에 안겼을 때에 영광의 주님과 함께 영원한 천국에서 왕노릇하는 그 날을 바라보며 매일 주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걷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 연 수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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