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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인 누가복음 11장 33절에서 주님께서는 자신을 등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특정한 몇몇 사람만 볼 수 있도록 가리고, 숨겨두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높이 매달린 빛이라 하십니다. 모두가 볼 수 있는 이 등불은 사람들에게 가야할 곳을 가르쳐 주는 ‘삶의 목적’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6절에서 친히 거론하신 것처럼, 우리들이 걸어야 할 ‘길’입니다. 흑암이 짙은 바다에서 인생의 항로를 잡지 못하고, 표류하는 이들에게 이 빛은 안전한 포구에 대한 ‘목적’이요, 항해해야 할 항로, 곧‘길’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높이 매달린 빛은 사람으로 하여금 소생케 하는 ‘능력’그 자체입니다. 실망과 낙담의 자리에서 이 빛을 본 자는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붙잡을 수 있는 소망의 능력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에 기록된 것처럼, 소망은 인내를 동반하며 그러므로 궁극적으로 삶을 지탱하며 견인하는 ‘능력’인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12장 2절에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라고 강하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볼 때, 비로소 목적 있는 삶, 온전함 길을 걷는 인생, 소망의 능력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주님은 자신을 바라다보는 몸의 등불인 우리들의 눈을 중요시 하셨습니다(34절). 거기서 더 나아가 육신의 눈을 온전케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있는 빛이라고(35절) 설명하시면서, 우리 각자에 담지된 이 빛을 점검하고, 살피라 명령하십니다.

오늘 우리는 주님의 이러한 명령을 기준삼아 우리 마음의 빛을 점검하려 합니다. 이는 어떻게 주님을 바라 볼 수 있는가에 대한 답변이 될 수도 있습니다. 모든 믿는 자들은 주님을 바라보며, 옳은 삶의 목적을 붙잡고, 온전한 길, 소망의 능력이 충만한 기쁨의 삶을 살기를 소망합니다. 그러기에 어떻게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가라는 오늘 말씀의 주제는, 우리 생명의 근간이요, 꼭 풀어야만 하는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매듭이라 하겠습니다. 어떻게 주님을 바라 볼 수 있습니까?

1. 믿음의 빛, 그 눈으로만 주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다 자신이 믿는 만큼, 그 믿음을 기준으로 보게 마련입니다. ‘인종주의’가 왜 인류역사에 등장하였습니까? 특정 피부색깔이 더 우월하고, 열등하다는 자아도취적 믿음 때문입니다. 그런 그릇된 믿음의 빛이 사람 속에 있을 때, 누구든지 인종을 구별하여 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요한일서 5장 4절에 이르기를,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들 삶속에서, 하나님을 창조주 하나님으로 믿을 때에, 온 세상은 그분의 경이로운 역사로 보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하신 생명의 주, 능력의 주님으로 믿을 때, 그분은 보여 집니다. 살아 역사하시는 성령을 믿음으로 고백할 때, 지금 우리와 함께하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바라볼 때,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2. 집중하여 보아야 주님은 보여 집니다.

힐끗, 대충, 얼핏, 슬쩍 이라는 말은 신앙생활에서 용납될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22장 37절에서 주님께서는 하나님을 마음과 목숨과 뜻을 다하여 온전한 집중함으로만 사랑할 수 있다고 가르치십니다. 출애굽기 3장엔 모세가 드디어 하나님의 일꾼으로 부름을 받는 소명의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40년이라는 세월을 보냈던 모세는 그곳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모두 익숙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날 떨기나무에 불꽃이 일어나는 것을 보았을 때, 돌이켜 가서 다시 집중하여 보았고, 주님께서는 그런 모세에게 말씀하셨던 것을 2절로 5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복잡하고, 다양한 세상 속에서 우리는 어디에 집중해야 합니까? 우리들의 생각과 관심이 너무도 많이 분산되어 있습니다. 심지어 예배시간에도 그러합니다. 수많이 주님의 거룩한 이름이 거론되지만, 찬양되지만, 돌이켜 보면 솔직히 얼마나 주님께 우리가 집중하고 있습니까? 이제 우리는 의식해야 합니다. 주님의 살아계심을, 그분의 은총을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에게도 모세와 같이 주님은 보입니다. 말씀하십니다. 은총의 역사가 있습니다.

3.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라보아야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또 다른 본문인 민수기 21장 4-9절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광야에서 불뱀에 물려 죽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의 중보기도를 들이신 하나님께서 명하신 놋뱀, 장대위에 높이 달린 놋뱀을 바라봄으로써 살게된 사건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4절엔 왜 불뱀에 물려 죽게 되었는지 설명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길로 인하여 백성들의 마음이 상하였기 때문이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시고, 이끄시는 길이 왜 이리도 험하고 어렵냐는 투정이지요. 사실 이 투정을 어버이된 마음으로 보면 이해할 수도, 그래서 가볍게 넘길 수도 있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단순히 덮을 수 없는 심각한 영적 피폐함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사야 선지자가 선포하였던 것처럼, 골짜기를 메우시고, 사막에 길을 내시며, 흐르는 강을 막으시는 하나님에 대한 갈망함, 그 변화의 기대감을 잃어버린 영적침체인 것입니다. 골짜기를 보면 한숨만 나옵니다. 사막을 보면 죽을 것 같습니다. 거센 물살을 보면 이제 더 이상 서 있을 수도 없을 만큼 오금이 저려옵니다. 오늘 민수기에서 보여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딱 이런 모양입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믿지 않고 노예생활하던 애굽이 더 좋겠다는 아우성입니다. 주검의 문, 그 돌문을 훼파하시는 분, 말씀으로만 이 땅을 창조하신 분에 대한 기대감이 상실되었습니다. 장대위에 매달린 놋뱀이 도대체 무엇입니까? 지금 독이 퍼지고, 열이 끓어올라서 죽게된 이들에게, 그 험난한 길 가운데 있는 이들에게 놋뱀이 무엇이란 말입니까? 도대체 골고다 언덕에서 발가벗겨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지금 당면한 인생살이는 빚 때문에, 자식문제로, 질병 때문에, 실업문제 등으로 험한 길이고, 죽음의 길인데, 죄인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높이 달린 예수가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러나 장대위에 매달린 놋뱀을, 내가 낳으리라 라는 변화의 기대감으로 바라본 자는 살았습니다. 우리도 그와같이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우리 주님을 부활이라는 영원한 생명, 그 능력에 대한 기대감으로 바라볼 때,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변화가 일어납니다. 역사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변화에 대한 타는 갈망함만이 주님을 보게합니다.

4. 무한한 사랑의 눈으로 주님을 볼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9장은 실로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눈먼 자였던 이를 제자들은 누구의 죄 때문이냐고 묻습니다. 주님을 좀 안다고, 주님과 함께 했다고 교만해 진 것입니까? 긍휼한 마음은 온데 간데 없고, 그 알량한 연민의 동정심도 없이, 무작정 소경이라는 나타난 현상으로만 죄인이라 판단하는 이 답답함! 주님께서는 ‘실로암’ 그말 그대로 ‘보내심을 받은 분’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해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분입니다. 그러므로 눈먼 자를 ‘사랑의 눈’으로 바라 보셨고, 비로소 그 안에 계시고,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을 보셨습니다. ‘이는 누구의 죄도 아니라, 그 안에 계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나타내기 위함이다’라고 선포하시는 겁니다. 오늘 우리도 요한일서 4장 8절, 16절에 고백된 것처럼 사랑이신 하나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의 마음으로만 볼 수 있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판단과 정죄라는 자기 경험, 자기중심적 눈이 아니라, 무한한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서로를, 이 땅을, 온 열방을 바라보아야 주님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갈2:20)’주님은, 그분이 보내심을 받은 것과 같이, 사랑의 보냄을 받은 자의 눈에만 머물러 계신다는 사실을 확신이 믿어야 하겠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에게 들려진 이 복음을 기억합시다. 믿음으로, 오직 예수를 향한 집중으로, 변화에 대한 기대감으로,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 모두는 분명 이 땅을 살되, 하나님의 땅을 사는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안에 믿음의 빛이 살아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주님을 향해 뜻과 목숨을 다하는 집중의 빛이 비취고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주님으로 인해 변화될 것이라는 기대감의 불꽃이 타오르고 있습니까? 여러분 안에 무한한 사랑의 긍휼함이 꺼지지 않는 빛으로 임하여 있습니까?

주님께서 명하십니다. 오늘, 네안 에 있는 이러한 빛을 점검하라! 나를 만나리라.  아멘.
(진대흥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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